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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한국교회를 보수적으로 만든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교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박해를 받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한 유물론자들이다. 그래서 북한에 살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피해서 남으로 내려왔고, 6.25 전쟁 중에 남한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공산주의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그들의 근간이 공산주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 없다. 최근에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을 구금했었다. 한국교회가 보수적 자세를 취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교회가 현대의 사회사상이나 과학과 대립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교회 전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다. 현대 사상가들은 대부분 상대주의를 내세우면서 절대 진리를 부인한다. 그리고 다윈의 진화론은 창조론을 위협해 왔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에 대항해서 창조과학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현대의 천체 물리학이나 전자 생물학이 신을 부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현대과학에 등을 돌리면서 보수적 태도를 취한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적인 특수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교회의 보수적 성향은 이해할 만하다. 진보 좌파를 표방하는 유물론자들과 대립한다는 의식을 지닌 유신론자들은 신앙 면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 보수 우파적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공산주의자들과 한패거리가 되라는 말이냐고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종북 좌파로 몰리기 쉽다. 그리고 진보를 표방하는 기독교인들 중에 종북 세력처럼 행동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발언이다. 보수주의는 주어진 현상이나 전통의 옹호 혹은 점진적 개혁을 받아들이는 주의인 반면, 진보주의는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오던 전통적 가치나 정책을 반박하며 그 틀 자체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나 정책의 창조를 주장하는 혁신적인 사상이나 태도를 말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기득권층이나 가진 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고, 진보주의자들은 기득권층을 비판하면서 가지지 못한 자들 혹은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선다. 공산주의자들을 진보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가진 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노동자와 농민 같은 소외 계층을 위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슬로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 슬로건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생산 이론과 관계가 있고 공산주의자들의 유물론적 귀결이다. 기독교에서 유물론자들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슬로건은 무조건 기독교인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선다는 면에서만 보면, 그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지 않다. 예수는 율법주의적 전통을 중시하는 유대교인들의 신앙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 소외된 자들의 이웃이 되었다. 그리고 유대교의 가르침을 대신하는 새로운 복음을 선포했다. 개혁자들 역시 율법과 전통 위에 세워진 부패한 가톨릭교회에 맞서서 교회를 혁신하려고 새로운 신앙 원리를 내세웠다. 분명히 예수와 개혁자들은 혁신적 자세를 취한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 예수와 개혁자들이 모두 기득권층에 각을 세운 진보주의자들이었다면, 그들을 본받아야 하는 한국교회의 보수적 자세가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예수의 진보적 자세 유대교는 철저하게 율법에 기초한 종교다. 유대교에는 랍비의 교훈 속에 하나님의 계명을 전개해 놓은 248개의 계명과 365개의 금지령, 도합 613개의 규정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이 율법을 만드셨고 지금도 하나님은 매일 계명을 깊이 연구하신다고 믿는다. 따라서 유대교에 있어서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뜻이 담겨 있는 율법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메시아가 온다면 그는 새로운 율법을 가져오기보다는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기존의 율법을 연구할 것이며, 그 율법에 우주적인 가치를 부여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유대교에서는 철저하게 율법을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수는 이렇게 전통과 율법을 지키려는 유대인들에게 대항해서 싸웠다. 예수는 그들의 전통과 율법을 수정하거나 뒤엎었으니 말이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1)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 5:27)에서 외형적 행동보다 내면적 변화가 중요하다는 수정된 계명을 제시했다. 여기서 언급된 옛 사람은 모세를 가리키고, 살인이나 간음을 하지 말라는 계명은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는 유대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그 계명을 과감히 수정하여 가르치면서 은혜의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예수는 유대교를 혁신한 분이다. 그리고 예수는 노골적으로 종교적 권위를 자랑하는 바리새인들과 율법 교사들을 비난했다. 그는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인해서 생겨난 믿음 없는 행위, 권위의식, 자만심, 위선을 유대인들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눅 11:39-52)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위선, 권위의식, 정죄하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습성을 비판했다. 우리는 또한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자만심에 대한 예수의 비판을 읽을 수 있다. 예수는 직선적으로 바리새인들을 눈먼 인도자, 말만하고 행하지 않는 자, 존경받기를 좋아하는 자, 외식하는 자라고 비난하면서, 그들을 뱀,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의인들의 피가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그들을 저주했는가 하면, 유대교 지도자들, 다시 말해서 기득권층이 자리 잡고 있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예수는 유대인들이 지키는 전통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유대교 지도자들이 공박해 왔을 때, 예수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그들의 오류에 대해서 공박했다. 그리고 고르반의 전통을 언급하면서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고 전통에만 얽매인 그들의 허점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갔을 때는 장사꾼들을 내쫓으면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지 장터가 아니라고 말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고발한 것은 그가 이렇게 그들의 전통과 율법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렇게 기득권자들에게 희생된 진보주의자였다. 예수는 여러 유형의 소외된 자들을 사랑하고 겸손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당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이방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사람 수에 들지 못하던 여인들과 아이들을 중히 여겼다. 또한 맹인, 절름발이, 사회에서 격리된 한센병환자 등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치료해 주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인간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죄인으로 취급받는 세리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예수의 헌신은 죄인들을 위해 짊어진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전통을 중시하고 권위를 좋아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삶을 비판하면서 소외된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돕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예수는 진보주의자들의 영원한 스승이다. 정치적 진보주의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고 상대적이다. 그러나 예수의 진보성은 시대가 달라져도 변치 않는 정신적 진보주의다. 요즘 복지 문제가 한국 정치계의 화두가 되어 있어서 복지를 줄이느냐 그렇지 않고 늘이느냐, 증세 없는 복지냐 복지를 위해서 증세를 해야 하느냐가 격론의 대상이 되어 있다. 복지의 확대는 진보주의 정신이다. 그런데 예수는 현대사회의 중대 관심사인 복지와 사회보장 정신의 원조다. 예수의 진보성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그의 삶의 장소가 단적으로 말해준다. 예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시골마을 나사렛에서 살았고 나사렛이 있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했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기득권층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는 한 번밖에 올라가지 않았고, 요한복음에 따르면 세 번 올라갔다. 어떻든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권세를 잡은 기득권층의 보수주의자들에게 고발당하고 결국 십자가형을 받았다. 예수는 태생적으로 진보주의자였다.
개혁자들의 혁신적 자세 590년부터 1517년까지 거의 천 년 동안 로마 가톨릭교회가 유럽사회를 지배했다. 특히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만나 용서를 구한 후에는 교황권이 왕권 위에 군림했다. 그 결과 극도로 팽창한 사제주의는 중세 사람들의 삶을 종교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지배하게 되었다. 특히 영세, 견진, 성찬, 고해, 결혼, 서품, 종유의 일곱 가지 성례제도를 통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삶이 사제들의 손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중세의 사제들은 오랫동안 그리고 철저하게 유럽사회를 장악했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이 썩는 것처럼, 장기간 절대권을 행사한 교회는 부패의 늪에 빠졌고 그 부패의 여파가 유럽사회 전체를 오염시켰다. 교회가 절대권을 행사한 중세에 일반인들은 사제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교회에서는 교육받은 성직자들만이 읽을 수 있는 라틴어 성경을 사용하고 성경 번역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권한은 교황에게만 주어졌다. 이렇게 사제들이 전권을 쥐고 있고 일반인들은 성경에 나타난 복음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에, 일반 신앙인들은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서 고안한 가르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세교회의 재정적 부패는 아주 심각했다. 14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영국인 혹은 프랑스인이라는 민족적 틀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족국가의 왕권이 강화되면서 자국의 돈이 교황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세력이 생겨났다. 설상가상으로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까지 가톨릭교회 안에 세 명의 교황이 나와서 서로 싸웠기 때문에 각 교황청의 수입이 대폭 감소하자, 교황청에서는 새로운 자금원을 찾는 데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교황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파문 조처를 내린다고 위협하면서 세금과 각종 부담금을 요구하기도 하고, 심지어 성직을 매매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새로 임명되는 주교는 첫해 수입을 교황청에 내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 성직에 공석이 생기면 교황은 주교들을 이리저리 전임시켜서 교황청의 수입을 늘렸다. 공석이 생길 경우를 고려하여 후임을 약속하는 예약세, 서약을 지킬 수 없을 때 내는 약속 변경세라는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자금원은 면죄부 판매였다. 십자군 원정 때 시작된 면죄부 판매는 교황의 재정 수입을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이었다. 전쟁에 참가하는 일, 성지나 성소를 순례하는 일 같은 선행 대신 면죄부를 사거나 교회 사업에 헌금을 내면 당사자의 영적 상태와 관계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열정적인 설교자들은 이러한 면죄부에 마술적 효력이 있는 것처럼 선전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 데에 자금이 부족해지자 교황이 테첼을 시켜서 1517년에 대대적으로 면죄부를 팔게 했다. 그런데 테첼은 헌금하는 이들에게 이 세상뿐 아니라 연옥의 형벌까지도 감면시킬 수 있는 면죄부를 주겠다고 선전했다. 당시 루터가 열거한 95개 조항 중 하나에는 면죄부를 선전하는 사람들은 헌금이 연보궤에 땡하고 떨어지는 순간 영혼이 연옥을 벗어난다고 선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테첼이 면죄부를 팔러 다닌 1517년 10월에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부속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의 논제’ 중 24개 조항에서 면죄부의 문제점을 언급한 것을 보면, 면죄부 판매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교회의 재정적 부패 외에, 사제들의 성적, 도덕적 타락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혼이 금지 되어 있어서 아내가 없는 사제들이 첩을 두고 있었다.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축첩제를 도입했고 첩과의 사이에 4명의 사생아가 있었다. 좀 과장된 것같이 들리지만, 어떤 감독은 많은 첩을 두어서 22개월 만에 14명의 사생아를 낳았다고 자랑했다는 말이 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들의 사생아들을 고위 성직자의 자리에 앉혔다는 사실이다. 개혁자들은 철저히 부패한 가톨릭교회가 정화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같이한 혁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면죄부, 순례, 교회 출석 등 공적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반대하면서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백, 미사, 성상숭배, 성자숭배, 성모숭배, 7성례 등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중시하던 것들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고, 오직 성경에 근거한 것만을 지키고 가르쳐야 한다는 ‘오직 성경’의 원리를 내세웠다. 이렇게 성경을 중시한 개혁자들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각 나라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그리고 교회의 직급제도나 사제들의 언행을 철저하게 불신한 개혁자들은 교회는 교황이나 사제들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백성들의 모임이라 믿고, 교회의 민주화를 위한 원리, 만인제사장주의를 내세웠다. 이 원리에 따라서, 그들은 신도들이 사제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개혁자들은 이렇게 가톨릭교회를 혁신한 사람들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어올린 1517년 전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 개혁운동에 동조했다. 13세기 말부터 고전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이탈리아의 보카치오와 단테, 영국의 초서 같은 작가들의 활동을 통해서 자국의 언어와 인간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제들의 전횡으로 인해서 부패한 가톨릭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4세기 말에 이르러서 영국의 위클리프와 보헤미아의 후스는 개혁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1517년에 루터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자 그를 이어서 츠빙글리, 그레벨과 만츠, 칼빈, 영국의 헨리 8세 등이 본격적인 개혁운동에 동참했다. 위클리프로부터 영국국교까지 각자가 내세운 주장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개혁자들은 모두 사제중심적인 가톨릭교회의 체제를 비판하면서 라틴어 성경 대신 개별 국가의 언어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하고 성경중심적인 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들은 전통과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가톨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신앙적 대안을 제시한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
예수와 개혁자들을 본받아서 우리는 예수와 개혁자들에게서 유사점을 발견한다. 예수는 유대교 지도자들과 맞섰고 개혁자들은 가톨릭교회 사제들과 맞섰다. 예수는 전통과 율법에 의지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권위의식, 외식, 맹목, 무지 등을 지적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사랑의 복음을 전파했다. 개혁자들 역시 교회의 관행과 규칙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가톨릭교회 사제들의 권위의식, 위선, 부패, 도덕적 타락을 비판했을 뿐 아니라, 그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교리를 정립했다. 예수와 개혁자들은 이렇게 기존의 교회를 혁신한 사람들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통과 관행을 따르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경직된 전통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도 자기 취향에 따라 보수적일 수도 있고 진보적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보수적 자세를 취하는 기독교인들은 현대의 과학적 연구나 인문학이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보수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할 만하다. 특히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겪은 아픔을 잊을 수 없는 한국교회는 그들에 맞서서 보수주의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와 개혁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외면한다면, 기독교인이라고 그리고 개신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의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와 개혁자들의 진보적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고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예수의 진보적 자세를 따라서 우리도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중세의 가톨릭교회처럼 권위주의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지금 우리도 개혁자들의 혁신적인 자세를 따라서 교회를 개신교답게 만드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당당뉴스-최재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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