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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선생님, 명화를 감상하면서 수학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일깨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떻게 미술을 통해 수학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미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총 29점의 주옥 같은 명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명화들을 차례로 감상하고 나면 신선한 충격과 함께 미술과 수학이 정다운 한 쌍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다음 순서는 수수께끼 그림으로 알려진 뒤러의 <멜랑콜리아 1,1514>입니다.
<멜랑콜리아 1>는 독일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화가요, 동판화가로 널리 알려진 뒤러의 대표작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떨쳤던 뒤러는 1514년 동판화인 <멜랑콜리아 1>을 완성했어요. <멜랑콜리아 1>는 발표된 순간부터 숱한 화제를 낳았어요. 뛰어난 예술성에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내용이 담겨 있어 뒤러가 활동하던 시절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예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렇게 <멜랑콜리아 1>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면서 학자들은 명작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러나 그토록 많은 학자들이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가장 난해하다’.고 알려진 그림의 해석에 도전했지만 그 숨은 뜻을 명쾌하게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 졌어요. 20세기 가장 뛰어난 도상학자로 평가받은 파노프스키가 수백년 동안 학자들을 괴롭혀 온 미술의 난제를 해결한 것이지요.
도상학이란 미술품이 제작된 시대로 눈길을 되돌려 그 시절 관객의 눈과 마음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즉 눈높이를 과거 미술품이 제작된 시대에 맞추는 것이지요. 당시 사회와 정치, 문화적 상황을 모르면 그림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늑정 회화가 그려질 시대에는 쉽게 이해가 되었던 그림도 현대인들에게는 마치 암호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럼 파노프스키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한 결과를 함께 살펴볼까요. 먼저 천사처럼 날개를 달고 머리에는 화환을 쓴 여인이 돌계단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인은 왼팔로 얼굴은 받쳤으며, 오른손은 컴퍼스를 잡고 있어요. 그런데 여인의 표정은 마치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듯 어둡고 침울해 보여요. 양미간을 잔뜩 찌푸렸으며 눈의 흰자위가 무섭게 번뜩입니다. 여인은 어딘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어요.
세상만사가 죄다 귀찮은 것일까요? 여인이 앉은 주변에는 구와 자, 톱과 대패, 못, 집게 등 잡다한 도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습니다. 여인의 발치에는 쇠약한 개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어요. 그 개의 등뒤로 육중한 다면체가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습니다. 맷돌 위에 쭈그리고 앉은 아기 천사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펜을 뒤고서 무언가를 열심히 끼적거립니다. 이런 물건들을 보는 것만도 머리가 혼란스러운데 그림의 배경을 보세요. 마방진과 종, 모래시계와 저울이 눈을 어지럽힙니다. 또 바다 위를 힘차게 날아가는 박쥐도 보입니다. 박쥐의 날개에는 ‘멜랑콜리아 1’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어요. 과연 이 복잡한 그림의 의미는 무엇이며, 박쥐의 날개에 쓰인 글자와 숫자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파노프스키는 이 신비한 그림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흔히 기분이 우울할 때 ‘오늘 나는 멜랑콜리해.’하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심리적 질병을 ‘멜랑콜리아’로 부르는데요, 그림은 ‘멜랑콜리아’를 상징하는 주제와 소재들을 통해 우울증이 무엇인가를 알리고 있습니다. 너저분하고 번잡한 실내 정경을 여인의 심사가 어지러우며 삶에 대학 의욜리 사라졌을을 나타내고 있어요. 한편 개와 박쥐는 멜랑콜리아를 상징하는 동물이며, 여인이 머리에 쓴 화환은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초로 만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인이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상태임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렇다면 박쥐의 날개에 쓰인 숫자 1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우울증 기질을 지닌 예술가를 뜻합니다. 뒤러가 살던 시절에 아그리파라는 유명한 학자가 <어둠의 철학>이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인간이 최상의 진리를 깨닫기 위래서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첫 번째 1단계는 예술가이며 두 번째는 지식인, 세 번째는 신학자가 해당된다고 밝혔어요.
예술가는 천상의 영역으로 솟아오를 수 있는 세 번째 단계를 열망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피안의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아그리파는 16세기 유럽의 인문학자들이 신봉했던 ‘멜랑콜리=천재’라는 등식을 이론에 담은 것입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철학, 정치, 예술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사람’을 모두 ‘우울증 환자’로 여겼으며 ‘멜랑콜리한 증세’를 ‘천재 특유의 광기’로 보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박쥐의 날개에 적힌 1은 ‘멜랑콜리한 예술가’를 의미합니다.
또한 이 그림은 뒤러 자신의 생각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어요. 뒤러는 창작의 샘이 막힐 때마다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나는 모른다. 오직 신만이 안다.’고 자책했으며 ‘암흑에 휩싸인 나머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며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어요. 또 영원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일에 지친 나머지 일기에 ‘멜랑콜리한 기분에 사로잡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한편 화가 지망생들에게 ‘너무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 우울증이 덮쳐온다.’고 경고한 후 현악기를 연주하며 머리를 식힐 것을 권했습니다.
<그림>
이렇게 그림에 나타난 우울증과 관련된 소재들과 박쥐의 날개에 적힌 숫자의 수수께끼는 풀렸어요. 그렇다면 그림에 기하학과 관련된 도구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 까닭이 궁급해집니다. <멜랑콜리아 1>뿐 아니라 뒤러의 그림에는 수학에 관한 상징물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뒤러가 기하학적 상징물을 그림에 표현한 것은 수학을 무척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수학을 학문의 제왕으로 떠받들었지만 특히 뒤러는 열광적으로 수학을 신봉했어요. ‘창작품은 숫자와 무게, 비례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잘라 말할 정도였습니다.
수학자들도 인정하는 뒤러의 기하학에 대한 숭배는 <멜랑콜리아 1>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그림에 다각형, 구형, 컴퍼스, 마방진, 저울, 자, 모래시계 등 기하학에관련된 도구들을 총동원했어요. 그래서 제목을 ‘멜랑콜리한 기하학’, ‘기하학의 상징물로 된 멜랑콜리’로 바꿔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멜랑콜리아 1>을 보면 유독 흥미로운 소재가 눈에 띄어요. 바로 배경 벽에 붙은 숫자 판입니다. 이것은 ‘마법의 숫자 판’으로 불리는 데요, 신기하게도 네숫자를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그 합이 똑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지요.
지금까지 뒤러의 <멜랑콜리아 1>이 왜 명화인가를 미술로 풀어 보았는데요, 수학 선생님의 눈에도 이 작품은 흥미롭게 느껴질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럼 선생님께서 수학으로 <멜랑콜리아 1>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관장님의 흥미로운 미술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재미있는 수학이야기로 뒤러의 <멜랑콜리아 1>을 살펴보겠습니다.
관장님의 설명대로 이 작품에는 여러 물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끄는데요, 그중 왼쪽에 커다랗게 그려진 다면체에 대해 먼저 이야기할까 합니다. 이 다면체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하며 면의 수를 세어보세요. 맞아요. 이 다면체는 모두 여덟 개의 면(삼각형 두 개, 오각형 여섯 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같은 모양의 다면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분도기와 자를 이용하여 내각이 각각 126-108-72-108-126도인 오각형 여섯 개를 그린 후 잘 오리세요. 그리고 이 오각형 여섯 개를 서로 붙인 후 여기에 맞는 이등변 삼각형 두 개를 만들어 붙이면 됩니다. 이렇듯 뒤러는 상상의 다면체를 그린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계산된 수학적 다면체를 그림 속에 등장시킨 것이지요.
< 그림 >
이번에는 멜랑콜리아 오른쪽 위에 그려져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숫자 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 숫자 판을 잘 관찰하면 1부터 16까지의 숫자들이 한번씩 사용되어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어요. 특이한 점은 가로줄, 세로줄, 대각선에 배열된 네 수들의 합은 어느 것이나 34가 된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 가로줄 중 4,15,14,1이 포함된 줄에 주목하면 그 수의 합이 34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특기 14와 15는 이 그림의 제작연도인 1415년과 일치하기도 하지요.
< 그림 >
이번에는 대각선의 끝에 위치한 숫자들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6과 1을 더하면 17이고, 13과 4를 더하면 17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안쪽의 작은 정사각형에서 대각선 방향에 있는 숫자10과 7, 11과 6의 합도 17이 됩니다. 이 수들의 합은 어느 것이나 짝수와 홀수의 합으로 표시되지요. 동양에서 홀수는 해와 하늘을 상징한다 하여 양(陽) 또는 천수(天數)라 불렸고, 짝수는 달과 땅을 상징하여 음(陰)또는 지수(地數)라 불렸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수들의 합은 하늘과 땅의 조화 또는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셈이 되겠지요.
이 숫자 판은 정사각형 안에 숫자들을 신기하게 배열했다는 것으로 대개 ‘마법의 진’ 또는 ‘마방진’ 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수학에선 가로, 세로 숫자들의 개수를 강조하여 ‘4x4 마방진’ 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뒤러는 <멜랑콜리아 1>에 왜 4x4 마방진을 그려 넣었을까요? 당시에는 수에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여 3x3 마방진은 토성, 4x4 마방진은 목성, 5x5 마방진은 화성, 6x6 마방진은 태양, 7x7 마방진은 금성, 8x8 마방진은 수성, 9x9 마방진은 달을 상징한다고 믿었습니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토성(측량, 연금의 신)의 영향을 받는 다고 생각했고 사색에 열중하면 우울한 기질이 생기므로 목성의 힘을 빌리면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방진을 그려 넣은 것이지요.
비록 수학을 수학답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같은 신비주의와 수학의 결합은 일 반 대중들에게 수와 도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 이후 사람들 사이에 마방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모양의 마방진까지 생겨났습니다. 마방진과 관련하여 조선시대 화가였던 김홍도의 그림 <씨름>을 살펴보지요.
< 그림 >
그림의 중앙을 보면 씨름하는 두 선수를 볼 수 있는데요, 이 선수들을 기준으로 가로선과 세로선으로 한 점(원점)에 모이도로고 열십(十)자 모양으로 선을 그으면 그림은 네 개의 영역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 네 개의 영역 중 오른쪽 윗부분을 제 1사분면 , 왼쪽 윗부분을 제 2사분면, 왼쪽 아랫부분을 제 3사분면, 오른쪽 아랫부분을 제 4사분면이라 부릅니다. 원점과 각 사분면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수로 표현해 보세요. 어떤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대각선에 위치한 세 수들의 합이 모두 12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신기한 수의 배열을 ‘X자형 마방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마방진에는 또 다른 재미있는 수의 신비가 숨어 있어요. 8을 기준으로 보면 가로의 함(8+5)과 세로의 합(8+5)은 13이고, 오른쪽 밑의 2를 기분으로 보면 가로의 합(5+2)과 세로의 합(5+2)이 7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수들은 어느 것이나 짝수와 홀수의 합으로 표시되지요. 관장님, 김홍도의 <씨름>을 미술이 아닌 수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니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아마도 흥미롭고 유쾌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김홍도의 <씨름>을 미술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뒤러와 김홍도의 그림을 비교하니까 숨은 의미가 더욱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럼 김홍도의 <씨름>에 관한 미술적의미를 살펴보겠어요.
김홍도는 한국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풍속화가로 인정받고 있어요. 그가 한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화가로 평가받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민의 고유한 정서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으로 그림에 완벽하게 접목시켰기 때문입니다.
미술이란 말 그대로 ‘아름다움을 기술로 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화가의 고유한 생각과 감정, 사상을 선과 색채, 형태, 질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내용과 형식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미술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화가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과 색채, 형태 등을 능숙하게 다뤄야 합니다. 대가들은 천부적으로 내용과 형식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들은 단순하게 보이는 선 하나를 바꾸어도 조화가 깨지고 붓 터치만 달리해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홍도가 위대한 화가로 칭송받는 것은 그가 한국 민중의 보편적인 정서를 탁월한 기술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 그림 >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풍속화첩을 보면 ‘명화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금세 느낄 수가 있어요. 풍속화첩이란 서민들의 다양한 일상사와 정서, 해학이 담긴 총 25점의 그림을 말하는데요, 지금 감상한 <씨름>은 이 풍속화첩에 실려 있습니다.
김홍도의 풍속화첩은 ‘조선후기 풍속화의 백과사전’ 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지만 특히 <씨름>은 화면의 구도와 구성 능력이 발군인,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왜 명작인가 자세히 분석해 보겠어요.
그림 중앙에 두 씨름꾼이 한창 시합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장사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씨름 기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승부는 절정에 도달하고 있어요. 등을 보인 장사가 들배지기라는 기술을 구사해 상대선수를 번쩍 들어 바닥에 냅다 꽂으려는 순간입니다. 김홍도는 이 긴장된 순강의 열기를 상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형 구도를 선택했어요. 원형 구도를 취하면 관객의 눈길을 단숨에 씨름판 중앙으로 끌어들이는 이점이 있어요. 그리고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관객이 위에서 씨름판을 내려다보는 시접을 취했어요. 상대방을 땅에 내던지고, 안간임을 쓰면서 방어하는 두 장사의 힘과 투지를 보다 실감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지요.
또 먼 곳을 바라보며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엿장수 소년을 보세요. 소년은 한판 승부가 벌어지는 씨름판의 열기를 등진 채 짐짓 딴청을 부리듯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 엿장수의 역할이 절묘해요. 만일 소년의 존재가 없다고 가정해 보세요. 구도가 화면 중앙으로 쏠려 답답한 느낌을 주었을 거예요. 김홍도의 천재성은 관객의 눈길을 씨름이 벌어지는 한복판으로 집중시키면서도 작은 변화로 화면의 숨통을 틔어주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혹 사람들에게 씨름판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엿장수 소년처럼 여유를 찾으라는 교훈을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 알바 가기 전에 잽싸게 올려땅 ㅎ 그럼 수고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