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실부모한 탓에 비빌 언덕이 없어 학교는 적만 걸어 놓고 가정교사로 연명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방을 얻어 살던 친구가 본가로 들어가는 바람에 거소도 잃게 되어 한동안 동가숙 서가식 하게 되었다. 이러한 난국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일단 군입대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절차를 밟아 입대 날짜를 잡아 놓고 보니 한 달여간의 기다림이 필요했는데 마침 가정교사 자리도 떨어져서 최악의 상황이라 그 기간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세끼를 모두 먹을 수가 없어서 저녁 무렵에 나가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자장면 한 그릇으로 때우기도 벅찬 생활이었다.
그 시절에 한 친구의 집에 고급 와인 몇 병이 장식장에 놓여 있었는데 아주 보물처럼 아껴서 아무리 누가 와서 한 병만 달라고 하거나 먹어 보자고 하여도 완강하게 거절하던 친구였다. 그런데 이친구가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줄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 팔아서 쓰라고 와인 한 병을 내주는 것이었다.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고마운 마음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는 염치 불문하고 그 술병을 받아 들고 양주 매매하는 가게를 찾아갔다. 고급와인이라고 했으니 값이 꽤나 나갈 것 같았다. 시세의 절반이라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게 주인은 한참을 살펴보더니, 이게 웬일인가, 고급 와인은 맞는데 저장 상태가 좋지를 않아 이미 식초로 변해 버렸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절망감으로 앞이 깜깜해졌다. 나는 술병을 받아 들고 돌아왔다. 마땅히 둘 곳도 없는데다가 식초로 변해버려 아무런 가치가 없으니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친구의 마음을 버리는 것 같아 누님에게 맡겨 놓고 입대하게 되었다. 제대 후 가정을 가지고 누님 집에서 그 술병을 찾아 왔다. 그리고 아직까지 오랜 시절을 간직하고 있다. 내 장식장 제일 깊숙한 곳에 보물처럼 말이다. 비록 식초로 변했지만 그 술병을 볼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와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