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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차사’가 있어 제 명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나 죽는 일이 없도록 한다. 우물가에는 ‘단물차사’가 기다렸다가 세상 떠나는 영혼을 인도하고,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거나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영혼을 인도하는 ‘용궁사자’도 있으며 객지나 노중에서 저세상으로 간 영혼을 인도해 가는 ‘객사차사’도 있다. 나무가지에 걸려 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의사차사’, 멱을 감다가 갑자기 세상을 하직한 영혼을 데려가는 ‘엄사차사’, 날아온 돌에 맞아 비명에 간 혼을 인도하는 ‘탄석차사’, 불에 타죽은 영혼을 인도하는 ‘화덕차사’, 옥에서 목숨을 잃은 영혼을 인도해 가는 ‘무죄차사’도 있다. 느닷없이 오면서도 어김이 없고 비정하기로는 죽음의 사자, 차사만한 것이 없는 법이다. 차사는 염라대왕으로부터 저승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위해 이승으로 온다. 차사는 복장부터 서슬이 퍼렇다. 남색바지에 백색저고리, 자주색 행전을 차고 백색버선에 미투리를 신고 있다. 까만 쇠털 전립(戰笠)을 머리에 쓰고 한산모시 겹두루마기를 두르고 남색 쾌자를 걸친다. 옆구리에는 붉은 오랏줄을 달고 옷고름에는 적배지를 달아매고 팔뚝에는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석자오치짜리 팔찌걸이를 맨다. 가슴에는 용(勇)자, 등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고 등뒤에는 상여의 용두머리를 매어 끌고 갈 행차배를 지고 온다. 눈은 부릅뜬 것이 봉황의 눈이다. 초군문, 이군문, 삼사도군문을 지나면 드디어 지옥의 시왕이 있는 저승의 열두 대문이 나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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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령 이야기 이 땅 한 곳에 동경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버물왕이었다. 임금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만도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자식 복이 없어서 아들 아홉 형제 가운데 위와 아래로 삼형제를 연달아 잃었다. 가운데 삼형제가 남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늘 걱정이었다. 큰 아이가 열두 살, 가운데가 열한 살, 작은 아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다. 삼형제는 심심하던 차에 궁궐 뒷문을 나와 연못의 연꽃을 구경하다가 너른 바위에 앉아 놀이에 빠져 있었다. 그 때 웬 스님이 삼형제를 보더니 쯧쯧 혀를 차고 지나갔다. 이상하게 생각한 아이들이 뒤쫓아가 물었다. “스님, 왜 저희들을 보고서 혀를 찹니까?” “보아하니 온몸에 복록이 넘친다만 앞으로 3년을 넘기지 못하겠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삼형제는 그 길로 궁궐로 뛰어들어와 아버지 어머니에게 스님의 말을 전했다. 얼굴이 잿빛이 된 버물왕은 얼른 사람을 시켜 그 스님을 불러오도록 하였다. 스님이 이르자 왕이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어느 절 스님인지 모르나 우리 삼형제 수명이 3년밖에 안 남았다니 무슨 소리입니까.” “그것이 운명이니 어쩌겠습니까?” “사람이 죽을 길이 있다면 살 길도 있지 않겠습니까? 방법을 알려주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아이들을 집에서 내보내 3년 간 세상을 떠돌며 장사를 하게 하면 혹 운수를 벗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양땅 과양생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버물 왕은 곧바로 운물 집, 공단 짐, 유기 짐을 준비해 삼형제에게 주면서 길을 떠나도록 했다. 3년 안에 돌아올 생각을 말라는 당부와 함께. 삼형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부모님에게 하직하고 정든 궁전을 나섰다. 감당하기 벅찬 날들의 시작이었다. 연 삼 년을 살라고 한 것을 / 단 일 년을 겨우 사니까 버물왕 아들 세 형제가 / 해만 쳐다보면서 어머니 아버지 생각만 하면서 / 제비새 울 듯 우는구나 “저 해와 달이야 / 우리 어머니 아버지 /쳐다보고 있으련만 우리는 이처럼 / 못 보는구나.“ 어떻든 세월은 흘러 삼형제가 손을 꼽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3년이 다가왔다. 세상 천지를 정한 곳 없이 떠돌던 삼형제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 동경국으로 가는 길 위에 있었다. 부모님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푼 삼형제는 지금 지나는 곳이 광양땅이란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음은 고향을 향해 훨훨 날아가는데 발걸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뒤에서 뭐가 잡아당기는 듯 걸음이 떼어지질 않았다. 한 발자국 앞으로 가면 두 발자국 물러났다. 어느 사이에 시장기까지 찾아들자 삼형제는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설운 형님들아, 우리 등에 진 물건을 아무한테라도 주면 찬밥에 물이라도 말아서 주지 않겠소? 저 기와집이 큰 부잣집인 듯하니 가서 식은 밥이라도 얻어먹고 갑시다.” “ 그 말이 백 번 옳다.” 삼형제가 기와집에 다다라 문을 두드리고 먹을 것을 청하자 주인집 각시가 나오는데 미모가 사람을 호릴 만했다. 낯을 잠깐 찡그리더니 개가 먹던 바가지에 식은 밥 세 숟가락을 놓아 물을 말아 내어주었다. 삼형제가 부엌문 앞에서 그 밥을 한 술씩 먹으니 그것도 음식이라고 감기던 눈이 뜨이면서 정신이 훌쩍 났다. 큰형이 말하기를, “남의 음식을 공짜로 먹으면 목 걸리고 등 걸리는 법이다. 은물 공단 끌러내어 밥값을 주자꾸나.” “그 말이 천 번 옳습니다.” 형제가 제물을 꺼내 주인각시한테 건네주자 각시의 낯빛이 싹 바뀌더니 분길 같은 손으로 삼형제를 잡아끌었다. “마음 좋고 뜻 좋은 도련님들아, 방으로 들어갑시다. 아픈 다리 푹 쉬고 내일 떠나오.” 삼형제가 반가운 마음에 방으로 드니 주인각시가 통영 칠반에 귀한 술과 고기 안주를 가득 차려와서 권했다. “이 술 한잔 들어보오. 한 잔 먹으면 천 년을 살고 두 잔 먹으면 만 년을 살고 석 잔 먹으면 구만 년을 사는 술이라오.” 그 말에 혹한 삼형제가 술을 석 잔씩 마시고는 담뿍 취해서 동쪽으로도 휘청 서쪽으로도 휘청 머리 간 데 발 가고 발 간 데 머리가 가서 풀썩 자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주인각시가 입가에 생글생글 웃음을 띠었다. “호호, 저 귀한 재물이 이제 다 내 것이야!” 각시가 광에 달려들어 3년 묵은 참기름을 따라다가 청동화로 숯불에 오송오송 졸여서 삼형제 왼 귀로부터 오른 귀로 소로록 부으니 삼형제가 구름산에 얼음 녹듯 어머니 아버지 말 한마디 못 하고 죽고 말았다. 그 각시는 누구였던가 광양땅 과양생이의 아내 과양각시였으니, 사람 홀려 재물 뺏는 일이 부부가 늘상 해온 일이었다. 과양생이 부부가 삼형제 재물을 빠짐없이 챙기고 뒤처리를 하는데, 이런 일에 잔뜩 이골이 난 터다. 과양생이가 어깨에 두 형제를 짊어지고 과양각시가 또 하나를 둘러메고 뒤천당 연화못에 가 큰 돌을 매달아 풍덩 빠뜨리니 설운 삼형제는 속절없이 물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며칠이 지난 뒤 과양각시가 거동이나 보려고 대바구니에 빨래를 담고 뒤천당 연화못에 가 보니 물 위에 난데없는 삼색 꽃이 떠 있다. 맨 앞의 붉은 꽃은 벙싱벙실 웃고, 가운데 노란 꽃은 구슬프게 울고, 맨 뒤의 파란 꽃은 팥죽같이 화를 내니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꽃이었다. “얘들아, 나를 위해서 온 꽃이거들랑 내 앞으로 어서 오렴.” 과양각시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빨랫방망이로 연못 물을 잘락잘락 잡아당기자 삼색 꽃이 동실동실 각시 앞으로 다가왔다. 과양각시가 오도독 꺾어다가 붉은 꽃은 대문에 꽂고 노란 꽃은 샛문에 꽂고 푸른 꽃은 뒷문에 꽂고 보니 집안이 눈부시다. 과양각시가 좋아서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런데 영 성질이 나쁜 꽃이었다. 집 밖에 나가자하면 붉은 꽃이 앞 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들어가자 하면 뒷머리채를 박박 잡아끌었다. 방에 밥상을 들이자 하면 노란 꽃이 앞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내가자 하면 뒷머리채를 박박 잡아끌었다. 뒤뜰에 장을 뜨러 나가자 하면 푸른 꽃이 앞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장을 떠서 들어오자 하면 뒷머리채를 박박 잡아끌었다. “이 꽃 저 꽃이 곱기는 곱다마는 행실이 괘씸한 꽃이여!” 과양각시는 꽃 세 개를 휙 잡아빼더니 손바닥에 놓고 복복 비벼서 청동화로 숯불에 툭 털어 넣었다. 삼색꽃은 얼음산에 구름 녹듯 바스슥 타버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과양각시가 마당에서 검불을 긁고 있는데 청태할망이 불을 빌리러 찾아왔다. 청태국에서 시집와 살고있는 꼬부랑할미였다. 과양각시한테 불을 좀 빌리자 하니 각시가 고갯짓으로 청동화로를 가리켰다. 청태할망이 화로를 뒤지다 말고, “화로에 불은 없고 삼색 구슬이 오골오골 나오니 웬일이오?” 그러자 과양각시가 쪼르르 달려들어 구슬을 재깍 빼앗았다. “만지지 마. 내 구슬이야!” 과양각시가 구슬을 손바닥에 넣고 둥글둥글 놀리는데 삼색이 영롱했다. 햇빛에 비추니 구슬이 방실방실 웃는 것 같다. 구슬을 입에 넣고 혀끝으로 도골도골 놀려보니 감촉이 감미롭다. 그렇게 놀리고 있는데 갑자기 구슬이 얼음 녹듯 자르르 녹아서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 일이 잇고 나서 두 달 석 달이 지나자 과양각시 몸에 뜻하지 않게 태기가 있어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열 달이 되어 청태 할망을 불러 해산을 하는데 아들이 하나도 둘도 아니고 셋이나 태어났다. 자식이 없던 과양생이 과양각시는 입이 함박처럼 벌어졌다. 삼형제의 재주는 당할 자가 없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삼형제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나라에서 인재를 뽑으니 과양각시 삼형제가 도읍으로 올라갔다. 아니나다를까, 1등 2등 3등이 모두 삼형제의 차지다. 삼형제가 화려하게 단장하고 하인을 거느리고 과양생이 집으로 행차를 하니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삼형제가 집에 이르니 과양각시 마음이 하늘까지 치올랐다. “하하, 누가 난 자식인데 오죽하겠어. 세상에 나만큼 복 많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이윽고 삼형제가 들어와 부모한테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땅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리더니 일어나지를 않는다. “얘들아, 됐다. 이제 그만 일어나.” 아무리 재촉해도 대답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과양각시가 깜짝 놀라 달여들어 큰 아들 머리를 들어보니 눈동자가 저승으로 돌았고, 둘째 아들 머리를 들어보니 입에 거품을 물었고, 막내아들 머리를 들어보니 손톱발톱에 검은 피가 서 있다. 세 아들이 전부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넋이 달아난 과양각시가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내 일이여! 내 일이여! 세상에 이런 법도 있는가. 이게 무슨 일인가!” 과양각시 재주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지만 죽어버린 자식이야 어찌할까. 소리내어 울어도 보고 폴짝폴짝 뛰어보아도 속절없는 일이었다.1)
1) 무척이나 독특한 형태의 복수담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꽃으로 환생하고 구슬을 거쳐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설정이나 십여 년에 걸친 복수라는 긴 호흡, 원수의 행복을 한없이 끌어올리다가 한순간에 그것을 절망으로 뒤엎는 반전이 두루 눈길을 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하필 원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다. 남의 자식을 죽여 피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그 또한 그런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는 식의,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응보의 논리다. 하지만 원수를 부모로 삼은 자식들이라는 설정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한다. 인간살이의 한 단면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는 뜻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세 아들을 잃고 성에 못 이겨 발악을 하던 과양각시는 광양땅을 다스리는 김치원님에게로 달려갔다. “내 아들 삼형제가 한날 한시에 나고 한날 한시에 시험에 뽑히고 한날 한시에 죽어버리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대로는 못 살겠으니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밝혀주오.” 사람 죽은 영문을 알 턱이 없는 김치원님이 모른 척 무시하자 과양각시는 날마다 찾아와 원님을 닦달했다. 김치원님이 계속 모른 척 외면하자 과양각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임금이 이런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며 마구 김치원님을 욕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일이 어찌나 고약스러운지 김치원님은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한테는 변변한 아랫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듣자니 강림도령이란 자가 쓸 만하다던데 이럴 때 안 쓰고 무얼 합니까?” “강림도령 솜씨는 내가 잘 알지만 그가 이 일을 어찌 해결한단 말입니까?” “저승에 보내서 염라대왕을 불러 오면 되지요.” “산 사람이 못 가는 저승인데 무슨 명목으로 강림이를 거기 보냅니까?” “듣자니 강림도령의 각시 첩이 열여덟이랍니다. 새벽에 갑자기 사령들을 소집하면 강림이가 늦을 테니 짐짓 그 죄를 물어서 보내면 될 일입니다.”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 김치원님은 사령들에게 급한 연락을 보내 새벽 일찍 관가에 모이라고 영을 내렸다. 강림도령도 소식을 들었으나 그날이 마침 열여덟째 각시 첩 장모의 생일인지라 늦게까지 술판을 벌인 터였다. 새벽에 겨우 일어는 났으나 이 각시 저 각시 얼굴 보고서 관청에 들다보니 혼자만 늦고 말았다. 김치원님이 작두를 꺼내놓고 죄를 물으려 하자 강림이 놀라 말했다. “시키는 일을 다 할 테니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네 살 길은 하나 뿐이다.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을 잡아와라. 못 하겠거든 당장 목숨을 내놔라.” 당장 목숨이 급한지라 강림도령은 염라왕을 잡아오겠노라 다짐을 하고서 풀려났다. 하지만 염라왕을 잡기는커녕 저승을 어떻게 가야 할지 깜깜하기만 했다. 함께 놀던 첩의 집에 찾아가서 어쩌면 좋으냐고 물으니 열여덟 첩의 용대가 한결같았다. 그걸 어찌 알겠느나며 못 지킬 다짐을 한 서방 탓만 하는 것이었다. 오갈 데가 없어진 강림도령은 장가갈 때 한 번 보고 인물 없다 소박 놨던 본처 각시 집으로 허적허적 찾아 들어갔다.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 것인지. 본원적인 차원의 애정과 집착, 그것이 때로 그만큼의 갈등과 고통을 수반하는 것을 보곤 한다. 자식이 원수일 수 있다는 것,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정든 부모님 곁을 떠나 수년이나 세상을 방랑했음에도 끝내 죽음을 맞이하고 만 버물왕의 삼형제. 그 험한 행로에도 인생사의 단면은 함축돼 있다.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쳐보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지. 그 운명은 비켜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부딪쳐야함 할 일이었다. 그리하여 미래를 예언한 스님은 그 운명의 길 속으로 삼 형제를 들여보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 운명을 헤쳐나가는 길에 있는 터이니, 한 번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들은 꽃으로, 구슬로, 원수의 사식으로 거듭 태어나면서 운명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싸늘한 연못 속에 퍼렇게 눈을 뜨고 누워 있을 버들왕의 삼형제, 그 삼형제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늙은 부모. 그 우여곡절의 행로는 어떻게 이어질까? 강림도령을 무대로 이끌어내는 건, 다름 아닌 과양각시다.
강림도령은 대꾸도 없이 사랑방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강림도령 큰각시가 한숨 한번 내쉬고서 밥상을 한 상 차려 사랑에 이르니 문이 잠겨 있다. 두드려도 불러도 열어주지 않으니 호미를 가져다 문을 뜯고서 들어가 말했다. “대장부 명색에 이게 웬일이란 말입니까? 이유나 일러주오.” 각시가 세 번을 재촉하자 강림도령이 마지못한 듯 염라대왕 잡으러 가야 하는 사연을 울음 섞어 끄집어냈다. “설운 낭군님아. 대장부가 그만한 일 때문에 이리 운단 말이오. 우습고 우스워라. 그 일은 내게 맡겨두고 진지나 드시오.” 그러자 강림도령이 하얀 이빨을 훌쩍 드러내며 허우덩싹 웃더니 차려온 밥상에 달려들었다. 강림도령 큰각시는 광에 들어가서 나주 영산 고운 쌀을 내다가 얼음같이 구름같이 절구방아에 넣어놓고 물을 버무려 콩콩 찧은 다음 가루를 체로 쳐서 떡시루를 앉혔다. 첫 층은 문전 시루, 둘째 층은 조왕 시루, 셋째 층은 강림이 먹을 시로. 떡을 다 찐 큰 각시가 옷을 깨끗이 갈아 입고 정성을 다해 문전신 조왕신께 축원을 드리니 감응이 없을 리 없다. 각시가 깜빡 잠든 사이에 꿈속에 나타나 얼른 서방을 저승으로 보내라고 일렀다. 각시의 재촉에 강림도령이 깨어 일어나 저승 갈 복장을 차리는데 모양이 볼 만하다. 남방사주 붕에바지, 백방사주 저고리, 한산모시 두루마기에 들소털 흑두전립과 너울대는 상모, 관장판을 등에 지고 포승줄을 옆에 찼다. “김치원님이 저승길 증표를 어떤 걸 줍디까?” “이걸 주었습니다.” 강림도령이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쓴 증표를 내보이자 각시가 깜짝 놀라 김치원님한테로 우레같이 달여들었다. “원님아, 우리 서방님이 저승으로 염라왕을 잡으러 가는데, 증표가 어찌 이렇습니까. 저승 증표는 붉은 종이에 흰 글씨라는 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김치원님을 재촉해서 새 증표를 받아온 큰각시가 강림도령과 이별을 하는데, 길 가다가 낯선 할아버지 할머니를 공대하면 저승길이 열리리라 한다. 시루떡 한 짐을 서방의 허리에 감아주고 바늘 한 쌈을 남 몰래 옷섶에 찔러두고는 어서 떠나라 재촉하니 강림도령이 가뭄에 물 만난 듯 붕어눈을 부릅뜨고 좁은 목에 벼락치듯 넓은 목에 번개 치듯 호기롭게 길을 나서는 것이었다.2) 1) 용사 강림도령의 등장이다. 영웅이라기에는 무척이나 투박한 모습이다. 허우대와 용맹은 어떨지 몰라도 꽤나 허술한 데가 많아 보이는 인물이다. 첩들을 챙기다가 공무에 늦는 것도 그러하지만, 제 손으로 소박놨던 아내를 찾아가서 응석을 부리는 모습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오랜 독수공방의 원망을 뒤로 한 채 그 응석을 받아주고 저승길 채비를 차려주는 아내가 서방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인다. 돌이켜보면 난세에 부딪힌 김치원님에게 해결책을 알려준 것이 또한 그의 아내였고, 자식 잃은 원통함을 풀고자 나선 것도 과양생이가 아닌 과양각시였다. 세상을 움직여나가는 힘은 여성한테서 나온다는 것. 신화가 그려내고 있는 우리 삶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공은 강림도령한테로 넘어가 있다. 출처 : 'Daum'블로그 '나주라는 세상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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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하는 드라마 49일의 저승사자와 같네요~~강림도령~ㅎㅎ
그런 드라마가 있어요?
난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ㅠㅠ
"강림도령" 을 읽고나니 신화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관심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부수가 많은데 글쓰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요^^
복사해 온 글이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