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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야 -<단편소설> : 소다빵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다.
마침 남편과 아이들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은 아침부터 텔레비전 앞에서 여기 저기 채널을 돌려가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쉬는 날이면 어디론가 휑하니 떠나고 싶다. 파도치는 바닷가나 아니면 깊은 산 속 암자라도 찾아가 스님이 대접하는 녹차 한 잔이라도 음미해 보고 싶다. 그냥 자리에 퍼질고 앉아 하는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이 어쩐지 아까웠다. 그럭저럭 휴일 하루해가 넘어갈 판이었다. 종일 어둑한 실내 컴퓨터 앞에 앉아 글자나 읽고 있어야 할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럴게 아니었다. 생각해볼 새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옷장 문을 열고 즐겨 입던 청바지부터 꺼내 입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던지고 꽃무늬가 놓인 분홍색 블라우스를 걸쳤다. 등 뒤에서 남편 소리가 들렸다.
“당신 어디 갈 거야?”
묻는 말에 대꾸도 없이 내가 옷 입기를 계속하자 남편은 조금 궁금해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어허, 어딜 가기에?”
“나, 합천 좀 다녀 올게요”
“합천은 왜? 이 시간에?”
남편은 한꺼번에 두 가지를 물었다.
“남부 터미널 가서 시외버스 타면 자정 전에 도착해요”
지금 나는 바쁘다. 화장대 옆에 놓인 핸드백을 집어 들어 우선 지갑부터 챙겨 넣었다. 남편이 답답하다는 듯이 또 말을 했다.
“이 사람아? 밤중에 내릴 텐데 어떻게 찾아가려고?”
“왜, 합천 읍내엔 택시 없어요?”
나는 다부지게 핸드백을 손아귀에 움켜잡았다.
“그래도 그렇지. 다음 주에 내 차로 가면 안 돼?”
“안 돼요. 나, 엄마 보고 싶으면 당장 봐야 하는 거 당신 몰라요?”
남편이 허허허 웃었다. 늘 그랬다. 말싸움을 해도 남편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만 하면 됐다. 무조건 가는 거야.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문소리에 딸이 내다보며 물었다.
“엄마? 어디 가?”
“응. 나, 외할머니한테 갔다가 올게.”
“엄마도 미쳤어? 지금 가면 한밤이야.”
“그래도 가야해.”
나는 누가 붙잡기라도 하듯이 부리나케 신발을 꿰차고 현관문을 열고 뛰어 나왔다. 바깥 공기가 얼굴을 스치면서 푸른 하늘에 눈이 갔다. 오랜만에 보는 하얀 구름송이가 무리를 지어 떠돌고 있었다. 좁은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밀고 나오는데 왠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슬픈 일도 궂은일도 없건만 왜 눈물이 앞을 가릴까? 나는 애써 손가락으로 젖어든 눈시울을 훔치며 급하게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내가 탄 버스가 합천읍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가 훌쩍 넘어선 시간이었다. 초여름인데도 밤바람이 제법 서늘하였다. 스치는 바람에 묻은 습기로 봐서 한줄기 소낙비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서둘러 시골택시에 몸을 실었다.
어둠이 깃든 시골길을 택시는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길가에 늘어선 농가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불빛들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모두가 낯익은 밤풍경들이었다. 어렸을 때 보아왔던 이웃마을들이었다. 나는 저 마을 앞 논밭 길을 따라 학교를 오고 갔다.
좁은 한길 가에 늘어선 보리밭들이 보였다. 그 때도 저렇게 보리가 익었다. 넘실거리는 보리밭을 끼고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마을 앞을 지나다녔다. 배고픈 시절이었다. 보릿고개에 허기진 배를 안고 아이들은 깜부기를 빼들고 입이 새까맣도록 빨았고 논두렁 잔디밭에 막 올라오는 삘기를 뽑아 단맛을 즐기기도 했다.
이제는 시골도 많이 변했다. 마을엔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이웃집에서 들리는 아이들 울음소리도 끊어진지 오래다. 적막하기 이를 데 없어 한낮의 마을은 유령의 마을처럼 노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런 시골집에 팔십 노모는 아직도 헌집을 지키며 홀로 살고 계신다. 자식들이 많다지만 각자 자기 살림하느라 잠시 잠깐 다녀갈 뿐, 그 외엔 찾는 이도 없었다. 그런데도 노모는 이 인적 드문 시골생활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새 택시는 마을 앞길에 들어섰다. 작은 시골 마을은 깊은 밤 소리 없이 다가오는 찻소리를 멀리하고 잠이 들어 있었다.
어느새 집 앞에 차가 닿았다. 집안은 불이 꺼진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녹슨 파란 대문을 슬쩍 밀어 보았다. 가져갈 것도 없는 시골집이라 문은 그냥 형식적으로 닫아두기 마련이다. 문은 쉽게 열렸다. 코에 익은 우리 집 흙냄새가 왈칵 나를 반겼다. 나는 주저 없이 낮은 쪽마루 앞까지 다가가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깊은 잠에 빠진 모양이다. 내가 목청을 조금 높이자 “누고? 이 밤중에?” 놀란 엄마가 내복바람으로 급하게 방문을 열었다.
“누구긴. 엄마는 딸내미 목소리도 못 듣나?”
“야가 밤중에 우짠일고?”
“우짠 일은. 엄마 보고 싶어 이렇게 달려 왔구먼.”
엄마는 허둥지둥 불을 켰다.
“야가 지금 뭔 소릴 하고 있노. 그래, 장서방이랑 아아들은 다 우짜고 왔노?”
“엄마도. 장서방이랑 아아들이 어린앤교”
“니가 없으문 조석은 우짤끼고?”
“엄마도. 내일이면 갈 낀데 조석 하나 몬 끼리 묵을라고.”
나는 우선 피곤한 몸을 쪽마루에 걸쳤다. 열린 방문 사이로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독특한 노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들온나. 거기 앉았지 말고. 어여?”
나는 엄마의 재촉소리를 들으며 문지방을 건너 엉금엉금 기다시피 방안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앙상한 손으로 내 양손을 움켜잡았다. 노인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찬찬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정말이제? 니 장서방하고 싸우고 오는 길 아니제?”
“엄마도. 내가 운제 장서방 하고 싸우는 거 봤소?”
“그레게 말이제. 창원 필순이도 지난주에 다녀갔다 아이가.”
“그쪽도 별일 없고예?”
“별일 있을끼 뭐 있노. 거기 노서방은 운전하다 한 쪽 팔을 쪼께 다쳤다 안 카나.”
“없는 집에 가장이 팔을 다치면 우짜노?”
“그러게. 내가 갸 땜에 늘 맘이 안 핀타. 너거 오남매가 다 잘 지내는데 필순이 고거만 힝편이 안 핀다 앙이가.”
“걱정 마소. 그늘지면 햇볕들 날 있는 법이니까.”
나는 입고 있던 블라우스부터 벗었다.
“밤늦었다. 이리 와서 눕거나.”
그러지 않아도 눕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다. 서울서 여기까지 천릿길이다. 버스로 대여섯 시간을 시달리고 보니 눈이 절로 감겼다. 어머니가 따로 이부자리를 펴주자 나는 사지를 뻗고 누웠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가 못 미더운 눈치였다.
“정말이제?”
“뭐가 또?”
“장서방 말이다. 하는 일은 잘 되고?”
“잘 되든지 못 되든지. 밥 먹고 살면 되지. 엄마는 그런 걱정 마소.”
나는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몸을 반쯤 눕힌 채 시시콜콜 캐물었다. 외손자 걱정에 캐나다에 가 있는 외손녀 걱정까지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나는 건성건성 대답을 하며 미어져 나오는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피곤하제. 불 끄꾸마. 고만 자거라.”
“엄마. 나 내일 첫 차로 서울 올라가야 하누매.”
“원시야. 그럴 걸 말라꼬 왔노?”
“엄마 보고 싶어 왔다지 않아.”
나는 또 하품을 했다.
“늙은 에미 걱정은 말라꼬 하노.”
“엄마? 올해는 고추농사 짓지 마소.”
“그거라도 안 하면 내가 심심해서 몬산다.”
감긴 눈에 안개처럼 잠이 쏟아졌다. 머리맡의 어머니가 뭐라고 묻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에 빠져 든 모양이었다.
밤중이었다. 퍼뜩 잠이 깼다. 화장실을 찾아 더듬더듬 문쪽으로 기어가는 참이었다. 문득 닫힌 문사이로 달칵거리는 그릇소리들이 들렸다. 자리를 더듬어 보니 엄마의 자리가 비었다. 노인 양반이 밤중에 부엌에 들어가 뭘 하는 모양이었다. 얼른 방문을 열고 쪽마루로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반쯤 닫힌 부엌문 사이로 희뿌연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호기심에 숨을 죽이고 툇마루를 내려섰다. 열린 부엌문 사이로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불빛 사이로 큼직한 양재기에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나는 나무로 된 부엌문을 급하게 열며 물었다.
“할마시가 잠도 안자고 뭐 하요?”
반죽을 하고 있던 엄마가 얼른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릇 소리에 니 잠 깼제. 내가 소리 안 낼라고 용을 쓰는데도….”
“도대체 뭐 하요?”
“니 내일 떠나기 전에 니 좋아하던 소다빵 좀 맹글어 줄라고.”
소다빵이라니? 그게 무슨 떡인지 빵인지, 시골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밀가루에 소다와 사카린이나 설탕을 넣고 고루 반죽을 하여 따뜻한 곳에서 발효를 시킨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밀가루 반죽에도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재료의 비율이 맞지 않으면 제대로 빵떡 맛을 낼 수가 없다. 발효가 된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찍어 올렸을 때 끊어지지 않아야만 제대로 발효가 된 것이다.
구멍이 숭숭한 소다빵이 노랗게 부풀어 오른다. 무쇠솥에 푹 쪄낸 그게 진 맛이다. 내 어릴적만 해도 소다빵은 집집마다 만드는 단골음식이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는 으레 소다빵을 넣은 보자기에 물주전자 하나를 안겨 주었다. 그걸 들고 일꾼들이 일하는 밭까지 들고 가는 것이 나의 일과 중의 하나였다.
빵은 연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소다향이 섞여 달콤했다. 자매들 중에서도 유독 나는 그 소다빵을 밝혔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동생들 몰래 내 손에 그 소다빵을 건네주곤 하셨다. 지금 엄마는 어릴적 내가 즐겨 먹던 소다빵을 만들고 있었다.
“시상에. 엄마도. 요새 누가….”
나는 미처 뒷말을 잇지 못하고 얼른 돌아섰다. 집 뒤 화장실을 찾아가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를 일이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불쌍한 엄마. 아직도 소다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울 엄마야. 나는 냄새나는 시골 통시칸에 앉아서 소리 없이 울었다.
날이 샜다. 나는 또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툇마루 한 쪽에서 전화 거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시 회삼니꺼? 여기 율곡면 임북인데 예. 택시 한 대 얼렁 보내 주소. 우리 딸이 급히 서울 올라가야 한다, 앙이요”
나도 엄마도 부산하다. 채 여명이 가시지 않는 마을 앞길을 타고 택시가 와서 섰다. 나는 들고 있던 지갑에서 지전 몇 장을 뽑아 엄마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엄마? 제발, 그 돈 안 되는 농사짓지 마소. 힘들면 서울 와서 장서방 허고 함께 삽시더.”
“야가, 뭔 소리 하노. 나는 서울 가서 몬산다. 그게 전중 사는 기지 사람 사는 시상이가. 에미 걱정 말고 니나 잘 살아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를 급히 내 품에 안겨 주었다.
“이기 뭔교?”
“니 좋아하던 소다빵이다. 서울 가면서 묵어라. 남는 것은 장서방도 주고 민아랑 민호도 묵어라 캐라.”
“엄마도? 요새 애들이 피자 먹던 입에….
얼른 택시에 올랐다. 품에 안고 있는 보자기에서 소다빵 냄새가 왈칵 치솟았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배웅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마저 보지 못했다. 망할 놈의 눈물이 또 다시 앞을 가렸다.
서울에 닿았을 땐 짧은 하루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나는 피곤한 몸을 거실 소파에 눕혔다. 그때 탁자 위에 올려놓은 엄마의 소다빵 보자기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떨리는 손으로 보자기를 풀었다. 야무진 매듭 사이로 엄마가 밤새 만든 노란 소다빵이 다소곳이 엎드려 있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소다빵 한 조각을 떼어내어 입에 넣었다. 소다 냄새와 함께 어릴 때 먹어 봤던 달콤한 소다빵 맛이 혀에 와서 달라붙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 소다빵 한 덩어리를 씹어 먹었다. 그건 어릴 때 먹던 그 소다빵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지나간 세월의 체취가 묻어 있었고, 쪼그라진 우리 엄마의 주름살이 박혀 있었다. 달착지근한 단맛 사이엔 한 노인의 손때에서 묻어난 찝찔한 눈물 자국도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또 울었다. 울컥울컥 넘치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울고 울었다.
그때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 문이 열리며 언제 보아도 활달한 아들 모습이 들어왔다.
“엄마? 이게 뭐야?”
“먹어봐. 엄마가 어릴 때 젤 좋아하던 빵이야.”
“그래. 그럼 세수하고 먹어 봐야지.”
아들은 얼른 소다빵 한 덩어리를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 탁자 위에 소다빵을 올려놓은 채 침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막 돌아서던 참이었다. 남편이 거실 컴퓨터 끄는 것을 깜빡하고 나간 모양이었다. 메일이 들어왔다는 컴퓨터 소리가 들렸다. 얼른 마루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컴퓨터 속의 메일을 찾기 시작했다. 순간 낡은 컴퓨터의 모니터가 노랗게 변하더니 글자들이 가물가물해졌다. 나는 컴퓨터에 서투른지라 이럴 땐 언제나 아들의 손을 빌렸다.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아들의 방문으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얘, 저 거실 컴퓨터 좀 봐주렴.”
“왜요, 또?”
아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장났나봐. 모니터 색깔이 이상해.”
“금방 갈게요. 엄마 먼저 나가요.”
“그, 그래. 알았다.”
나는 쫓기듯이 아들의 방을 나오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아들이 앉아 있는 책상 아래 쓰레기통에 퍼뜩 눈이 갔다. 방금 아들이 들고 들어간 소다빵이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너 이게 뭔 짓이야?”
아들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뭐? 엄마?”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이 소다빵!”
“엄만? 그걸 빵이라고…. 난 못 먹겠어. 냄새 나.”
나는 철썩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고 정신없이 방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정말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걸 빤히 알면서도 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움켜잡고 흐득흐득 울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그칠 수가 없었다.
“엄마아? 엄마아…?”
그때 놀란 아들이 방에서 뛰어 나왔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엉, 엄마? 아프면 약 사올게.”
나는 그 소리가 더 서러워서 소리 내어 울었다.
뜨거운 눈물은 쉴 새 없이 가슴을 타고 흘러 내렸다.
약력 : 진남진주 출생.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99). 계간문화마당 시 등단(89년). 월간 문학세계 시 등단.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한양수필문학회, 경남 시문우회, 한국 여성문학회 회원. 수필부문 심사위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이사, 사무국장, 월간 수필문학 편집국장. 대야신문 수필, 연재 중. 시집:「우루무치엔 별들이 산다」, 수필집 :그는 늘 색안경을 쓰고 다닌다. 소설집 :그남자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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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어렸을때 먹던 소다빵 생각하면서 우리 엄마 ...참 보고싶네요 모두들 소다빵 그리울거예요 지금도 비슷한거 길거리에 팔고있어요 1년에 몇번 먹어요 사림씨의 글 감명깊게 읽고갑니다 봉화
잘 정돈된 문장 잘 읽었습니다.
어쩌면 글이 그렇게 잘 써지나요. 책 받고 늦게나마 인사합니다. 문우회서 만나니 더 반갑고. 진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