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4<화>
민들레 복음
Dandelion
Evangelical
Mission
교회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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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누룩없는 자로다
새로운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교회의 교회다운 권위는 내부의 정결함을 지키는 일이다 ㆍ<고전5:1~13>
당시 고린도 지방을 비롯한 고린도 교회는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상태였다
교회안에서 까지 교인들 끼리 근친상간이 공공연이 자행되고 있었다ㆍ
이를 바라 본 사도바울은
죄에 대한 방관이 공동체전체를 부패시키는 누룩임을 경고하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보혈에 합당한 정결을 속히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ㆍ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회 역시 세상을 위한 모본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교회의 기본 문제는 교회의 세상성
<worldliness>이란 점을 우리는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교회가 세상을 더 잘 알게되고 , 더 친밀하게 이해하면서부터 교회는 세상 문화를 예언적인 심판의 말씀과 치유하는 예언적 말씀으로 진작시키는 일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교회자체가 세상적인 문화의 한 표현이 되어 있기 때문 이다ㆍ
교회의 권위는 가장 세상적인 그리스도교와 이별할 때 가장 교회다운 거룩성과 초월성을 유지할 수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가장 세속적인 구조 안에서 선한 시간과 아름다운 정력을 성적 에너지로 소비하도록 부름받지 않았다ㆍ
교회의 권위는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거룩과 초월>을 지킬 때 세워지고 유지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너지면
교회는 셰상으로 부터 멀어진다 .타락한다 ㆍ
교회의 권위는 크리스천의 삶의 모본인
성화 <聖化>ㅡ즉 " 네 행위가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자신있게 "예" 라고 답 할 힘을 가졌을 때만 가능하다 ㆍ
최근 일부 초대형 교회 내부에서 비롯된 아주 교회 답지않은 불미스러운 목회자들의 <섹스ㆍ 스캔들>은 교회의 권위는 물론 이요 말씀의 위엄 마저 무너 뜨리는 <묵은 누룩> 사건이다ㆍ
숨기고 감춘다고 해서 악행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ㆍ
왜 교회는 쉬쉬만 하는것인가? 나쁜것은 왜 나쁘다고 교회의 권위로
징계하거나 벌 주지 못 하는가?
할 말을 못 한다기보다
해야 할 말을 못하는 것은 영적 기만이다
"일어나 걸어라" 는 <달리다쿰>의 선언만이 아니다ㆍ 그것은 어쩌면
"일어나 말하라 "라는 영적 용기 일 수 있다ㆍ
교회는 도피자를 위한
죄인 도피소가 아니다ㆍ
교회는 죄인을 품는 곳이긴 하지만 죄 자체가 잉태하는 곳ㅡ 더 더구나 오래된 누룩이 저장되어 있는 곳은 아니다ㆍ
교회의 권위는 오히려 교회안의 정결함을 철저히 지키는 일이다 ㆍ
교회의 진정한 권위는 무엇인가?
<칼 바르트>의 이해 처럼
흐름에 항거하는 것, "Against the Stream" 이다.
교회의 권위는 철저한 항거를 나타낼 때만 교회는 성화된다ㆍ
교회는 스스로 우리 안의
惡을 판단하고 정죄 할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진정한 권위는 세상의 ,세속적인 타락을 비난하는 입술이 아니라,
내 살과 뼈를 도려내고 짤라내는 아픔과 고통이 있을 지라도 교회공동체의 정결함과 순결을 끝까지
지키는 결단과 선택 위에 세워진다 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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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Edwin Lewis
The biblical faith
and Christian Freedom
집필자 ㆍ
김영목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