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은 이러한 역사가 잠들고 있었다
(기행 수필 제1편)
루수/김상화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귀뚜리의 소리가 들린다. 그들의 애절한 울음소리에 가을은 예쁘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가을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소리는 참으로 아름답다. 오늘은 청량한 그 소리를 듣고 싶다. 어디를 가야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초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길까?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은 산으로 가보자. 그래서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자연과 호흡하고 대화도 하고 싶다. 또 노래도 해보자. 제일 가까운 관악산을 가면 좋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관악산은 나를 오라고 손짓했다.
같은 서울에 자리 잡고 있는데도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다. 올라가는 길이 바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우 가파른 지형이 많아 등산하기에 힘도
들고 위험을 느끼는 산이다. 그래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가기가 꺼려졌다. 100대 명산의 하나인데도 이 산에 대한 글을 한 편도 남기지
못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솟구친다. 이 산은 30여 년 전에 사랑하는 처와 한 번 다녀왔다. 그리고 한참 뒤에
혼자서 또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웅장하고 아름다웠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관악산 산행을 끝내면 그곳에서 생생하게 느낀
소감을 수필과 시로 남기고 싶다. 또 체력도 단련해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독자에게 감동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은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고 또 수필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생각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한 소재가 그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또 우주 만물이 생동하고 서로 사랑하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자체가 시고 수필이다. 마음속에 흐르는 향기와 한 줌의
추억도 글로 표현해 보자. 또한, 만물이 숨 쉬고 살아가는 것과 그들과 아름다운 대화도 좋은 글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상상하는 허구의
세계도 잘 다듬어 글로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것들을 글로 잘 다듬어 쓴다면 이것이 시나 수필이 아닐까요? 시와 수필은 장르가 다르지만,
결과적인 목적은 같다. 왜냐하면, 독자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10시에 강찬순(에로
니모) 아우를 잠실역에서 만나 가기로 했다. 오늘 관악산은 둘이서 가는 것이다. 위험한 산이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잠실역으로 나갔다. 반가운
아우님을 만나 전철을 탔다. 오늘 코스는 서울대 역에서 출발해 사당역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이 코스가 가장 긴 코스라고 한다. 서울대 역에서
내려 관악산 입구까지 버스를 탔다. 관악산 입구 역에 내리고 보니 관악산 공원이란 대궐 같은 문을 세워놓았다. 우리는 이 문을 통과해 걷기
시작했다. 소풍 온 가족들과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많은 사람의 틈에 끼어 걷는다. 9월 2일의 하늘은 가을을 알리는 듯 에메랄드
보석처럼 파란색으로 예쁘게 깔려있다. 맑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기만 해도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는 듯하다. 옆에 있는 개울에선 시원한 물이
흐르고 고추잠자리 하늘을 날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소풍 나온 가족들은 개울의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집에서 정성 들여 싸 온 음식을 즐긴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지 가족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아마도 그간 하지 못했던 사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만 같다. 참으로 보기
좋다.
관악산(冠岳山)은 어떠한 산인가? 먼저 알아보자. 관악산(冠岳山)은 높이가 629m 되는 산이다. 북한산, 남한산 등과
함께 서울 분지를 둘러싼 자연의 울타리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산이다. 서울 근교에 자리하고 있어서 연일 많은 등산객으로 붐빈다. 예로부터
개성의 송악산, 파주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에 속하는 산이다. 서울의 남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관악산(冠岳山)은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간뫼)" 또는 "관악(冠岳)"이라고
했다. 관악산(冠岳山)은 빼어난 수십 개의 봉우리와 바위들이 많다. 오래된 나무와 온갖 것이 바위와 어울려서 철 따라 변하는 산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같다 하여 "소금강(小金剛)" 또는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西金剛)" 이라고도 하였다.
가을의 고운 햇살을
받으며 아우님과 나는 걷는다. 소풍 나온 가족들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매미의 힘 빠진 소리도 간혹 애처롭게 들려온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발 닿는
곳마다 깔려있다. 관악산(冠岳山)에는 서울시에서 테마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관악산(冠岳山) 계곡 나들길이라 이름 지은 이 나들길은 외사산의
남쪽에 솟은 관악산과 삼성산이 엇물리는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도림천 계곡을 따라 걷는 나들이 길이다. 총 거리는 3.2km로 관악산(冠岳山)
입구를 시작으로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어느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등산길이 이어져 있다. 가파른 무너미고개 가기 전 삼거리
약수터가 나오면 관악산(冠岳山) 계곡 나들길의 마지막 종착지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길로 접어든다.
올라가다 보니 나무는
시, 숲은 소설이란 글을 써 놓았다. 시인이며 수필가로서 참 좋은 자료다. 숲은 한 음절로 된 단어이지만, 그 속에는 동화와 경이의 세계가
숨겨져 있다. 송강 정철, 고산 윤선도, 헤르만 헤세, 괴테, 그리고 소로 우는 나무와 숲을 찬미하고 이를 대상으로 아름다운 시외 글을 썼다.
숲 속에 사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있다. 착한 백설 공주는 깊은 숲으로 들어가 일곱 난쟁이와 함께 몸을 숨겨서 살았다. 그리고 의적 로빈후드,
임꺽정, 그리고 홍길동은 숲 속에서 세상을 향해 정의를 펼쳤다. 떡갈나무로 만든 피노키오는 여러 모험을 즐겼다. 나무꾼은 깊은 숲 속에서 금도끼
은도끼를 얻기도 하고 어여쁜 선녀와 결혼도 했다. 떡을 좋아하는 호랑이는 깊은 산 속에서 떡장수를 기다리기도 하고, 산속 동굴에서 곰과 함께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황량한 벌판에 참나무와 자작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이 모든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숲을 배경으로 활동했다. 만약 숲이 없었더라면 이 많은 동화 속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는 악기, 숲은 콘서트 홀이란
글도 써 놓았다. 숲 속에서 눈을 감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천차만별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자연의 교향곡을 듣는 듯한 기분이다. 아름답게 변화하는
숲이라는 무대에 서서 온갖 종류의 것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연주하는 듯하지 않나요? 필자는 지금 거대한 콘서트홀에 와 있는 것이다. 숲 속에는
무궁무진한 음향 재료가 숨 쉬고 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새 울음소리, 여치 소리, 매미 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하나의 완성된 음악이다.
나무와 풀들이 모여있는 숲은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는 장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어 다 보면 오만가지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쉬며
아우성치는 소리가 담긴 콘서트홀을 발견하게 된다. 물소리, 바람 소리, 잎 갉아 먹는 곤충 소리, 새 울음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열매
떨어지는 소리로 벅신거리는 숲에 서면 자연이 교향악을 연주하는 곳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 자연이다.
관악산은
풍수지리학상으로 궁궐의 모습을 변화시켰다는 것을 여기를 와서야 알았다.풍수학자들은 관악산의 "풍수"를 보고 궁궐을 짓는 것도 거기에 맞춰 지은
것 같다. 관악산은 서울 경복궁의 조산(祖山) 또는 외안산(外案山)이 되는데 산봉우리의 모양이 불과 같아 풍수적으로 화산(火山)이 된다. 따라서
이 산이 바라보는 서울에 화재가 잘 난다고 믿어 그 불을 누른다는 상징적 의미로 산꼭대기에 못을 파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옆 양쪽에 불을
막는다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조선 태조는 화환(火患)을 막기 위해 무학의 말에 따라 이 산에 연주(戀主) 원각(圓覺) 두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의 숭례문을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과 관악산을 잇는 일직 선상에 위치하게 해서 관악산이 덜 보이게 한 것 등은 불기운을
막기 위한 풍수적 의미라고도 한다. 관악산의 한 봉우리인 호암산 능선에는 통일신라 때 판 것으로 추측되는 산상 우물(한 우물)도 있는데 이것도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옛 어른들께서 생각하는 풍수는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한다. 광화문 정문 양옆에 세워 놓은
해태까지 서울의 불을 막기 위해 상상의 동물을 세워놓았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지금은 불 수 없어 아쉽다. 아마도 서울이 세계 10대
도시로 번창하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는 것도 우연이 아닌가 싶다.
관악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산이었다는 것을 오늘 비로써 알았다. 풍수학적으로 과연 그러할까? 풍수학은 통계학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많은 의문점을 남겨
놓은 산이다.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2편에서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쓸 것이다.
2018년 09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