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백난아' 기념비 고향 명월에
찬바람 불던 식민 치하의 무대에서, 만세소리 드높던 해방의 무대에서, 포연이 자욱한 6.25의 무대에서 뜨겁게, 뜨겁게 성원해 주시던 팬들의 박수소리,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백난아 히트 애창곡집>중에서 망국망향의 설움 속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애국애족으로 메아리쳐 겨레의 애창곡 된 '찔레꽃'을 부른 ‘백난아(본명 오금숙)’를 기리는 ‘국민가수 백난아 기념비’ 제막식이 고향 명월리(구 명월초등학교 입구)에 세워져 6일 제막식을 가졌다. ‘국민가수백난아기념사업회(회장 오경욱)’주최로 열린 이날 제막식에는 백난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역주민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또한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시사와 강택상 제주시장, 양승문 제주특별자치도의원과 전현직 한림읍장을 비롯해 한림읍지역지도자와 자생단체장들도 참석해 행사를 축하했고 특히, 故 백난아 여사의 셋째 딸 이현옥씨와 외손자가 서울에서 내려와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행사는 한림읍새마을부녀회의 거리 풍물놀이를 시작으로 명월리 출신 홍관수씨와 제주가수 ‘유채화’씨, ‘해오름 예술단’의 노래와 민요 축하공연에 이어 ‘이현옥’씨가 어머니의 노래 ‘소양강 처녀’와 ‘찔레꽃’을 직접 불러 기념사업회와 명월리 주민들의 노고에 보답했다. 눈보라의 추운 날씨로 식전 행사와 제막식 1부 행사는 실내에서 치러졌다. 제막식 1부 행사는 그간의 경과보고와 오경욱 기념사업회장의 제막인사와 장문협 한림읍장의 환영사, 김태환 도지사의 격려사, 양승문 도의원의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오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 4월 '국민가수 백난아기념사업회를 구성하여 고 백난아 여사의 발자취를 따라 동분서주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앞으로 할일이 많이 남아 있다” 말하고 “오늘 제막식에 이어 내년에는 ‘백난아가요제’개최와 백난아기념관 건립, 생가복원, 기념공원조성"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성급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충분한 자료검토와 전문가의 조언을 거쳐 하나씩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특히 “제주지역의 문화발전에 앞장설 수 있고 제주여인의 위상을 높이 알리며, 제주를 문화관광의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도와 도의회 등 행정적인 지원과 도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가 있기"를 당부했다. 여러 가지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참석한 김태환 도지사는 격려사를 통해 자랑스런 제주여성이자, 국민가수인 백난아 여사 기념사업을 통해 문화제주 발전을 실현하고 있는 기념사업회의 활동을 격려했다. 특히 “지역의 발전은 지역주민들의 화합과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지역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나가면서 산업과 문화를 연계하여 미래를 개척해 나간다면 지역의 미래는 한층 밝아질 것”이라며 “현재 월동채소 처리난과 관련하여 한림농협이 사활을 걸고 양배추 매취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강조하면서, 매취사업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한림 지역주민들의 전폭적인 협력이 있기를” 당부했다. 또한 이러한 결집된 주민역량과 지역전통, 다양한 문화사업을 통해 한림읍이 더욱 살기좋은 지역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했다. 양승문 도의은 “송구영신의 뜻 깊은 시점에서 백난아 선생을 추모하는 기념사업회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주고 있는 것에 대해 한림읍민의 한사람으로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80년대 백난아 여사가 현인 선생과 함께 한림문화관에서 공연을 할 당시 명월 리가 자신의 출생지 고향이라고 당당하게 자랑하던 그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이 행사를 계기로 백난아 기념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아 기념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며 한림읍 발전은 물론 제주특별자치도의 문화발전을 위해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야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부 기념식을 끝내고 2부 제막식 행사가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제막식에는 기념사업회와 유족, 기관단체장들이 주민들이 뜨거운 박수 속에 이루어졌다. 제막식을 마친 후 백난아 여사를 추모하는 분향도 이어졌다.
오늘 다시 고향을 보내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명월리 떠나온 지 수 십 년 육신을 보내놓고 혼백으로 오늘 다시 고향을 보내 붉게 피어났던 찔레꽃도 이제야 제빛 찾았는가? 흰 꽃잎 하늘에서 나리시네 언덕 위 초가 얼싸안고 피어나네 고향 찾아 오시는 길 거리마다 하얀 꽃잎 지천으로 피어나네 온 세상 하얗게 물들이며 찔레꽃 백설(雪)로 피어났네 즐거운 시절 찔레꽃 피어나던 고향 사진 속 동창생은 아직도 봄이건만 육신은 어디 갔나 망국의 설움 명월떠나 뿌리내린 만주청진 열다섯 단발머리 망향초 사랑 빛 고운 백설 난초로 피어났네
꿈에도 못 잊을 고향이 목 놓아 부른다. 찔레꽃 백난아(白蘭兒) 명월의 금숙(金淑)아 다시 찾은 찔레꽃 고향 봄이 저물어 그새 겨울이 섰네 이별의 술잔 뉘와 나누리 너도 가고 나도 가고 남은 향기 세월을 넘는다. 찔레꽃 백설로 나린다. 백설로 다시피는 찔레꽃 못 잊을 님의 사랑가 찔레꽃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문물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음력 오월 야산에 찔레꽃 지천으로 피어나면 님 그려 부르리라 찔레꽃 애향가 <기념비 제막식에 다녀와서 봉수>
故 백난아 여사의 셋째 딸 이현옥씨와 외손자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http://ko.wikipedia.org/wiki/백난아 전 세계 여러 언어로 만들어 나가는 인터넷 자유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수록된 『백난아(白蘭兒, 1923년5월 16일 ~ 1992년)는 함경북도청진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오금숙(吳金淑)이다. 약력 / 1923년 5월 16일 함북 청진에서 태어났다. 1927년생이라는 설도 있지만 데뷔 연도와 여러 가지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신빙성은 떨어진다』정보는 잘못되었습니다. 백난아는 본명이 오금숙(吳金淑)으로 1927년 5월 16일 제주도 한림읍 명월리에서 어부 ‘오남보’씨의 3남4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세 살 때 가족들과 만주로 이주하였고 아홉 살때는 함경북도 청진에 정착을 하였다. 부친이 청진에서 정어리공장을 하다가 병고로 인해 백난아가 9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고 이때부터는 제주출신의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나가며 힘들게 생활을 하였다. 오금숙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어린 금숙은 청진의 동덕보통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악기점에서 매일 새로운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노래를 좋아했던 오금숙은 늘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러한 행동을 눈여겨본 악기점의 일본인 주인 사이도 마사오는 오금숙을 가게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곤 피아노로 ‘소녀의 기도’를 연주해 들려주자 어린 금숙은 곧바로 멜로디를 익힐 정도로 음악성이 뛰어났다. 이러한 천재성을 알아차린 주인이 노래를 몇 차례 시켜본 뒤 곧바로 그 해 가을, 빅타레코드사 주최로 청진에서 열리는 신인 콩쿠르에 참가할 것을 권유한다. 물론 전문 교육이나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소녀 금숙은 결국 빅터레코드사에서 주최한 콩쿠르에서 참가, 영예의 1등을 차지하게 된다. 그 때 나이 불과 열세살, 동덕보통학교 6학년 때(1940년)였다. ......<국민가수백난아기념사업회 제공>
|
출처: 섬지기 원문보기 글쓴이: 섬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