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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리옹의 세계적 레스토랑 폴 보퀴즈 내부. 반세기 동안 미슐랭 최고 평점을 유지하고 있다. |
베스트셀러 시리즈 중 ‘죽기 전에…’로 시작되는 책이 있다. 죽기 전에 가야 할 도시 100곳, 죽기 전에 봐야 할 오페라 99편, 죽기 전에 경험해야 할 역사의 현장 555곳….
‘죽기 전에’라는 말이 던져주는 필사적인 상황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나 물건, 작품이 구체적인 숫자로 연결됨으로써 ‘묘한 느낌’을 주는 책 제목이다. 인생을 80세로 본다면 대략 3만일 정도 세상을 살다가 간다고 계산할 수 있다. 미식가에게 폴 보퀴즈(Paul Bocuse) 레스토랑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3만일 인생을 사는 동안 반드시 경험해야만 하는 단 하나뿐인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받아들여진다. 3만일의 삶 중에서 단 하루라도 폴 보퀴즈 레스토랑에서 보냈다면 그렇게 실패하지 않은 인생이란 것이 음식 예찬론자들의 지론이다.
밥이 아니라 요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 세계 요리는 프랑스와 그 외의 나라로 대별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반발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프랑스 요리를 음식으로서만이 아닌, 음식을 테마로 한 고난도의 종합 작품으로 볼 때 그 같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맛, 장식, 서비스, 후각, 색상, 레스토랑 장식, 꽃, 접시, 재료, 분위기, 화장실, 역사, 와인 셀렉션과 와인 글라스 등이 모두 종합 작품의 평점 대상에 속한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레스토랑은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나기 어렵다. 굳이 예술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각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이 바로 프랑스 요리다. 폴 보퀴즈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랑스 요리만이 갖는 품격의 최고봉에 서 있는 곳이다.
리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유서 깊은 도시다. 북쪽의 파리까지 약 470㎞, 남쪽 바다에 접한 마르세유까지 약 32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육로만이 아닌, 운하를 따라 파리까지 갈 수 있다. 운하는 지중해와 북해로까지 이어진다. 농산물과 해산물이 교차하는, 옛날부터 음식과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최고의 미식 도시가 리옹이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 중 꽤 많은 사람들이 리옹 출신이기도 하다.
폴 보퀴즈 레스토랑은 리옹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택시를 타고 15분 정도 가면 나타난다. 옆에 운하를 끼고 있기 때문에 2~3인용 보트로 여행하는 사람은 곧바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밖에서 볼 때 3층 건물로, 1층이 레스토랑이다. 2층은 특별 파티장, 3층은 이 레스토랑의 주인이자 요리사인 폴 보퀴즈와 가족이 거주하는 곳이다. 폴 보퀴즈는 닭 문양이 그려진 3층 창문 옆 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문 옆에는 프랑스 요리를 대표하는 요리사들의 모습이 벽화용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메릴 스트립 주연의 2009년 영화 ‘줄리 앤드 줄리아’의 실제 주인공인 미국인 요리사 줄리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림 속 인물들은 프랑스 요리사를 상징하는 키가 큰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폴 보퀴즈의 심벌이기도 한 높이 50㎝의 모자는 ‘토크(Toque)’라 불리는 요리사 전용 모자다. 높이에 따라 격이 다른 것이 아니고 키가 큰 모자는 19세기 이전 스타일, 키가 낮은 모자는 그 이후의 모자임을 상징한다. 폴 보퀴즈는 자신은 물론, 주방에서 일하는 30여명의 모든 요리사에게 큰 모자를 고집한다. 보다 오래된 과거의 전통에 맞춘다는 의미이다.
프랑스인들만큼 모자에 집착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요리사의 모자는 원래 아랍인의 모자에서 유래된 것이다. 프랑스 요리사가 18세기부터 자신의 직업을 나타내는 모자로 변용시킨 것이다. 당시에는 흰색이 아닌 다양한 색상이 있었다고 한다. 권위를 경쟁적으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모자의 높이가 계속 올라갔다. 19세기 중엽 유명한 요리사인 마리 앙투안느 카렘(Marie-Antoine Careme)이 낮고, 흰색으로 통일된 모자를 유행시켰다. 청결과 간편함을 위한 모자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요리사용 옷도 낮은 모자와 함께 당시에 등장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자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케 하는 듯한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테이블이 한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왕이나 귀족이 수백 년 전 누렸을 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간에게는 자신만 특별하게 대우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다. 고급 레스토랑은 그 같은 인간 심리를 극대화시킨, 사치를 파는 비즈니스의 현장이기도 하다. 청빈을 내세우는 동양문화는 사치를 정신적으로는 부정한다. 인간의 본능에 주목하는 서양의 경우, 능력이 있으면 사치는 물론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라고 가르친다. 레스토랑은 전부 채울 경우 약 200명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점심·저녁 관계없이 대부분 만원이라 보면 된다.
필자는 여유를 갖고 4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점심을 예약했다. 위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른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저녁 8시가 첫 번째 예약 시간이다. 유럽 대부분이 그렇지만, 프랑스 미슐랭 레스토랑은 저녁 8시부터 심야까지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유럽 남부로 내려가면 갈수록 저녁 식사는 늦어진다. 포르투갈 레스토랑의 경우 밤 10시부터 저녁 식사가 시작된다. 식사만이 아니라, 와인과 디저트를 포함해 보통 3~4시간 동안 천천히 먹는다. 체중을 생각해 심야의 만찬을 피했다.
메뉴표는 전부 4종류로 나뉘어 있다.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영어 메뉴도 있어 이해하기 쉬웠다. 프랑스 상류사회에 갈수록 프랑스어만 고집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지만, 필자가 아는 한 그 같은 생각은 30여년 전 얘기에 불과하다. 괜찮은 곳일수록 영어가 일상화돼 있다.
메뉴는 처음부터 고정된 메뉴로 구성된 것(픽스 메뉴)과, 하나씩 주문하는 아라카르테(A LA CARTE)로 나누어져 있다. 픽스 메뉴는 ‘전통’ ‘부르주아주’ ‘클래식’ 등 3개 분야로 나뉘어 있다. 전통이 225유로, 부르주아주가 180유로, 클래식이 140유로다.
픽스 메뉴는 에피타이저, 육류와 시푸드로 이뤄진 메인, 솔베, 치즈, 디저트를 비롯해 6가지 이상의 음식이 제공된다. 필자는 아라카르테로, 폴 보퀴즈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요리들을 하나씩 주문했다. 픽스 메뉴의 경우 값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먹는 과정에서 진짜 알아야만 하는 폴 보퀴즈의 센스를 놓치기 쉽다. 적게 먹는 것이 맛을 이해하기 쉽다.
폴 보퀴즈의 요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해, 리옹에 오기 전부터 면밀히 조사한 결과, 미슐랭 3스타 요리사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요리를 골랐다.
먼저 에피타이저로 특별히 ‘두 코스’를 시켰다. 채소 수프와 시푸드 샐러드다. 요리의 정수는 메인보다 에파타이저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좋은 레스토랑을 찾을 때의 습관이기도 하지만 에피타이저를 복수로 하거나, 아예 메인이 없이 에피타이저만 세 개 코스로 시키는 경우도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수프는 육류나 시푸드가 아닌 양파 수프다. 오래 끓인 양파 수프에 신선한 치즈를 듬뿍 넣은 것이 프랑스를 대표한다. 폴 보퀴즈의 채소 수프는 양파가 아닌, 시금치를 주로 한 것이다. 시금치는 폴 보퀴즈가 직접 가꾼 것이다.
폴 보퀴즈는 신선한 채소를 주로 사용하는 누벨퀴진의 대부(代父)다. 최고의 요리사라면 레스토랑 바로 옆에 자신의 채소 농원을 가져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땅 속의 채소를 직접 수확해 만들어내는 요리야말로 최고의 음식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폴 보퀴즈는 레스토랑에서 자동차로 10분 떨어진 곳에 작은 채소 농원을 갖고 있다.
이어 시푸드 샐러드는 접시 한가운데 바닷가재가 통째로 담긴 채 등장했다. 폴 보퀴즈의 사인이 새겨진 고급스러운 접시와 붉은 색깔의 신선한 바닷가재가 묘한 예술적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바닷가재 맛의 정수는 짠 바다의 맛을 부드럽고 섬세하게 즐기는 데 있다. 지중해 시푸드의 경우 다른 바다보다 짠맛이 한층 강하다. 그러나 폴 보퀴즈가 만든 바닷가재 샐러드는 단순한 소금맛이 아닌, 지중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깊고도 깊은 ‘생명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바다의 부산물인 비릿한 생선 냄새도 찾아보기 어렵다. 바닷가재를 즐기는 중요한 포인트인, 씹을 때 느껴지는 땡땡한 느낌도 적당하다.
보통 중국이나 아시아에서는 가재의 나쁜 냄새를 죽이기 위해 강한 향의 재료를 사용한다. 생강, 마늘, 파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강한 향의 재료는 가재가 갖고 있는 좋은 맛도 전부 죽여버린다. 나쁜 맛과 냄새는 죽이고, 좋은 맛과 느낌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최고 요리사의 능력이다.
메인으로 시킨 것은 ‘투르네도 로시니(Tournedos Rossini)’이다. 폴 보퀴즈가 가장 자신있게 만드는 육류 요리이자, 폴 보퀴즈를 찾는 미식가라면 예외없이 주문하는 음식이다. 등(背) 부위의 소고기에 거위 간인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인 트러플을 얹은, 사치의 극을 달리는 최고급 요리다. 푸아그라, 트러플은 러시아의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 식재료다. 3대 식재료 가운데 무려 두 개가 들어 있는 요리가 바로 투르네도 로시니이다.
로시니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로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로시니를 뜻한다. 음악가 로시니는 소설가 발자크와 더불어 19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미식가이자 대식가다. 초상화를 본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거구에다 체중도 엄청나다. 투르네도는 이탈리아말로 ‘등을 진 채 마주 서다(Tournez moi le dos)’라는 의미라고 한다. ‘투르네도 로시니’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로시니의 성격과 일화를 반영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로시니는 자신의 전속 요리사에게 소고기 위에 푸아그라와 트러플을 얹은 요리를 주문한다. 문제는 주문한 뒤 주방에까지 따라 들어와서 요리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듯 서성거렸다는 점이다. 요리사는 주방은 자신의 공간이라면서 계속 지켜볼 경우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로시니는 요리사에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등을 진 채 반대로 서지!”
프랑스 요리의 거장인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는 1903년 발간한 자신의 ‘요리 가이드(Le guide culinaire)’에 투르네도 로시니 조리법을 기록해 두고 있다. 폴 보퀴즈는 새롭게 창작할 수도 있지만, 에스코피에의 조리법에 따라 프랑스 전통요리를 그대로 복원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로시니가 프랑스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이다. 이탈리아 작곡가의 이미지가 프랑스 최고 요리에 접목됐다는 사실은, 유럽인들끼리만 공유하는 유럽적 오픈 마인드의 본보기일지도 모르겠다.
로시니 상층부의 푸아그라를 입에 대는 순간, 혀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전체적으로 트러플 향이 고기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한약(韓藥)을 입에 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육류의 경우 움직임이 없는,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가장 맛있다. 어두육미(魚頭肉尾)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어두육배(魚頭肉背)다. 근육이 생기면 질겨서 씹기가 어렵고 소화하기도 불편하다. 투르네도 로시니에 사용되는 소고기는 소의 목 바로 뒷부분에 위치한 등 부위를 재료로 한다.
식후용 디저트에 앞서 조그마한 카트에 실린 치즈 군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가장 ‘재미있고 신기한 시간’은 아마도 치즈 군단을 만날 때가 아닌가 싶다. 메인이 끝난 뒤 곧바로 제공되는 치즈 군단은 리옹을 대표하는 10여종류의 치즈로 구성돼 있다. 테이블 앞에 온 치즈 군단의 웨이터는 치즈의 이름을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요리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식사 전에 시킨 샴페인 외에, 일부러 따로 와인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치즈 군단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알코올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리옹은 프랑스 최고의 와인 생산지를 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부 지방은 보졸레누보로 유명한 보졸레, 남부는 코트 뒤 론(Cotes du Rhone)으로 연결돼 있다. 코트 뒤 론은 시라(Syrah)의 형제에 해당하는 그르나슈(Grenache) 와인의 집산지다.
그르나슈는 그리스와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남부에서 자라는 와인이다. 값도 싸고 전체적으로 원시적이고 강한 맛으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2류 와인 정도로 취급된다. 치즈 맛을 느끼기에는 너무도 강하지만, 2000칼로리가 넘어설 듯한 로시니가 가득 찬 상태에서 뭔가 강력한 충격이 필요했다. 보르도 와인을 선택할까도 생각했지만, 리옹의 와인인 그르나슈를 잔으로 시켰다. 치즈는 리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염소 치즈 세 종류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번만 입에 대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독특하고도 강한 향이 각각의 치즈 속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디저트로 과일을 들고 있는 동안, 레스토랑 전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요리사 폴 보퀴즈가 식당에 나타났다. 특유의 큰 모자를 쓰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테이블을 하나씩 돌면서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사진도 함께 찍었다. 85세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건강하게 보였다. 똑바른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인들이 점령군인 독일군을 정신적으로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프랑스 음식이 손꼽힌다. 소시지와 맥주를 음식의 전부로 아는 미개인들이 어떻게 하얀 냅킨과 함께 치즈를 넣은 빵과 와인을 즐기는 선진 문화 대국을 유린할 수 있단 말인가?
프랑스 음식 문화는 자타가 인정하는 전 세계를 지배하는 ‘고품격’ 소프트파워다. 반세기 동안 미슐랭 3스타를 이어온 폴 보퀴즈는 프랑스 소프트파워의 핵(核)에 해당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3만일 인생을 사는 동안 반드시 경험해야만 하는 단 하나뿐인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은 인류가 만들어낸 고품격 소프트파워의 생생한 현장이다.
누벨퀴진의 대부, 폴 보퀴즈 50년간 미슐랭 3스타 유지… 프랑스 요리계의 황제 폴 보퀴즈의 명성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이자 주인이라는 점에 한정되지 않는다. 1969년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취항식 때, 기내식으로 제공된 프랑스 요리의 원형을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누벨퀴진(nouvelle cuisine)’이란 새로운 요리를 처음으로 선보인 인물이 바로 폴 보퀴즈다. 누벨퀴진이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저칼로리 고단백 요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프랑스 요리는 진한 맛의 소스를 근간으로 만들어진다. 육류나 채소를 넣은 수프에다 엄청난 양의 버터를 녹여 만든 진한 소스를 요리에 뿌려 먹는 것이 정통 프랑스 요리(cuisine classique)다. 음식에 관해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인이라 해도 저녁 식사로 정통 프랑스 요리를 먹는다면 밤에 불면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스 요리를 소화하기 쉽고, 먹어도 살이 안 찌는 다이어트 음식으로 변신시킨 인물이 바로 폴 보퀴즈다. 프랑스 시골에 가면 아직도 정통 프랑스 요리를 고집하는 곳이 있겠지만, 1970년대 이후 프랑스 요리의 대세는 누벨퀴진이다. 폴 보퀴즈는 1926년 리옹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때부터 레스토랑을 경영해온 음식 전문가 집안 출신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지만, 맛을 아는 능력은 보통 10살 미만에서 결정된다. 음식을 안다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많이 경험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릴 때부터 특정 음식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닥치는 대로 경험하는 과정에서 미각과 후각 센스가 발달한다. 21세기 들어 요리사라는 직업은 돈과 명성, 심지어 권력까지 갖춘 유명 인사로 받아들여진다. 요리사가 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펼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긴 것도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셀러브리티 요리사의 탄생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글로벌 현상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경우 먹고살아가기 위한 생존으로서의 직업이 요리사였다. 요리가 맛을 넘어서 ‘예술의 차원’이 된 것은 20년 정도에 불과하다. 아무리 프랑스라고 하지만, 폴 보퀴즈가 탄생한 1920년대 리옹의 상황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도와 음식을 만들었던 폴 보퀴즈는 16세 되던 해인 1942년, 리옹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인 ‘라 스와리(La Soierie)’의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최고의 요리사라 하더라도 자신의 자식을 교육시키기는 어렵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이을 자식이라 해도 음식에 관한 견습은 다른 레스토랑에서 한다. 프랑스 요리의 근간은 견습 생활에 경험하는 혹독한 도제 시스템에서 시작된다. 견습 생활만 최소한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한다. 요리를 직접 하는 것은 견습 생활을 끝낸 뒤부터다. 감자를 깎고 자르는 법에서부터 달걀 깨는 법, 식기를 닦고 부엌을 깨끗이 정리정돈하는 게 견습생의 주된 일과다. 식당 안에서 먹고 잠자는 것은 보통이다. 최근 한국에도 다녀간 뉴욕의 3스타 레스토랑 ‘다니엘’의 셰프 대니얼 볼루드(Daniel Boulud)는 아홉 살 때 시작한 요리사 견습생활을 닭털 뽑기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기 움직임이 전혀 없는 지하실에 들어가 막 죽은 닭의 털을 손으로 뽑는 일이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털이 날리지 않는 지하실에서 죽은 닭과 싸우면서, 하루라도 빨리 내가 만든 음식을 선보이겠다고 결심했다.” 폴 보퀴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군에 들어가 요리사로 종군하게 된다. 1946년 리옹으로 돌아온 뒤 다시 요리사 견습 생활을 하다가 파리로 올라간다. 1959년 33세의 나이로 부모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잇게 된다. 그리고 레스토랑의 주인이 된 지 2년 만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국가최우수장인상(MOF)을 수상한다. 이어 1965년 미슐랭 3스타를 얻게 되고 지금까지 46년 동안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폴 보퀴즈의 명성은 자신이 만든 요리상인 ‘보퀴즈 도르(Bocuse d’Or)’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된다. 보퀴즈 도르는 정부가 수여하는 요리상인 MOF를 제외할 경우,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요리상이다. 보퀴즈 도르의 수상자가 된다는 것은 미슐랭 스타 대열에 들어선다는 의미다. 독일계로 미슐랭 3스타를 처음으로 얻은 요리사 엑카르트 위치그만(Eckart Witzigmann)은 보퀴즈 도르를 수상한 뒤 요리계의 셀러브리티로 등장했다. 미국, 일본, 대만 등 세계 8개 나라에 퍼진 폴 보퀴즈 요리대학도 폴 보퀴즈의 명성을 세계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4개월 과정인 요리대학은 음식, 치즈, 과자, 와인에 이르는 프랑스 요리의 전반을 가르친다. 폴 보퀴즈의 누벨퀴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975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을 위해 만든 트러플 수프(Soupe aux truffles)다. 대통령 만찬에 등장한 수프로, 프랑스인의 대부분은 늦가을 트뤼플 수프를 먹기 위해 일부러 리옹에 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