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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74
1375독, 사람 인(人) - 네 번째
오늘의 ‘정토뉴스’는 지난 11월 10일 봉은사 거사림회법회 소식입니다.
세 가지 희유한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현재 한국불교에서 거사림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는 한 봉은사거사림회가 유일합니다.
둘째는 제가 초청을 받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봉은사는 한 30년 전에 『천수경』 강의를 하러 많이 다닌 절입니다. 학교 밖에 나가서 절이나 법회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법회를 하러 간 것이 언제인가 헤아려 봤더니, 8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안심가(安心歌, 통칭 원왕생가)」를 소개해 드리고 난 뒤, 질문이 하도 많이 나와서 제가 “이제 그만 합시다”라고 해서 중단했을 정도입니다. 목이 아파서 그랬습니다. 그만큼 거사님들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거사림회가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 같은 사람도 1년에 1번 정도는 학교 밖에서도 강의할 수 있는 법석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우리 불교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이제 ‘오늘의 「정신게」’ 독송을 하겠습니다. 다같이, 가능한 환경이라면 크게 소리내서 읽어주십시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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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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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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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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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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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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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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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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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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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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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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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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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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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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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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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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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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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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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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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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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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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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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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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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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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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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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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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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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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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사람 인’의 네 번째 용례가 들어있는 게송을 다시 읽어봅니다.
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이 게송은 칠고승 중의 여섯 번째, 일본의 고승으로는 첫 번째인 원신(源信, 942-1017)스님을 찬탄하는 맥락에서 나옵니다. 원신, 즉 겐신스님에 대해서는 두 송을 바칩니다만, 그 두 번째입니다.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겐신스님의 저서 『왕생요집(往生要集)』을 읽어서 해당되는 내용이 있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왕생요집』은 전체가 3권입니다. 그 중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저 하나하나의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서 염불하는 중생은 다 거두어서 버리지 않으니, 나 역시 저 (광명에) 섭취되어 있다. (나는) 번뇌가 눈을 가려서 비록 보지 못하지만 (아미타불의) 대비는 게으르지도 않고 언제나 내 몸을 비추시네.(밑줄 – 인용자)
밑줄 친 부분에 상응하는 한문은
“我亦在彼(아역재피), 섭취지중(攝取之中)
煩惱障眼(번뇌장안), 雖不能見(수불능견)
大悲無惓(대비무권), 상조아신(常照我身)”
입니다. 『왕생요집』에서는 여덟 자가 1행을 이루고 있으나, 신란스님은 7자로 줄여서 1행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가능한 것은 ‘섭취지중’에서 ‘지’, ‘수불능견’에서 ‘능’, ‘상조아신’에서 ‘신’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그 뜻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4구까지 세 구절은 이루어졌습니다만, 위에 인용한 『왕생요집』의 말씀에서 우리가 체크해야 할 것은 오히려 밑줄을 긋지 않은 부분입니다. 밑줄 그은 부분은 밑줄 긋지 않은 부분, 즉 “저 하나하나의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서 염불하는 중생은 다 거두어서 버리지 않으니”라는 말에 이어지는 결과 내지 공덕입니다. 즉 앞의 밑줄 치지 않은 부분이 있기에, 뒤의 밑줄 친 부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관무량수경』에 나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관무량수경』은 16관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제9 편일체색신관(遍一切色身觀)에 보면, 『왕생요집』의 인용문 중, 밑줄 긋지 않은 부분이 그대로 나옵니다.
무량수불은 팔만 사천의 큰 특징(相/상)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특징 중에 또한 팔만사천 가지의 미세한 특징(隨形好/수형호)이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미세한 특징에서는 다시 팔만사천 갈래의 광명이 나오고, 그 하나하나의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고 있으니 (무량수불을) 염불하는 중생들을 거두어 주시고 버리지 않는다.
(밑줄 – 인용자)
이 말은 정토불교에서 너무나 유명하고, 너무나 자주 말해집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외기 쉽도록 한문 그대로 제시해 둘 필요도 있습니다. “一一光明(일일광명) 편조시방세계(遍照十方世界), 염불중생(念佛衆生), 섭취불사(攝取不捨)”입니다. 특히, 뒤의 ‘염불중생, 섭취불사’는 꼭 외워주시길 빕니다.
무량수불에게서 나오는 모든 광명들이 결국은 무량수불을 염하는 중생들을 거두어 서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를 겐신스님은 좀 더 부연하는데, 그 아름답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번뇌에 가려서 무량수불의 자비광명을 볼 수 없지만, 그런 때조차도 무량수불의 자비광명은 언제나 나를 비추어주고 있다는 신앙적 감수성을 노래한 것입니다. 사실 저 자신은 가끔 고백한 바 있습니다만, “아역재피섭취중하니, 번뇌장안수불견이라도, 대비무권상조아하시네”라는 이 말씀을 「정신게」의 120구절 중에서 가장 좋아합니다. 최애(最愛)의 시구(詩句)입니다.
겐신스님은 『왕생요집』 중권에서 이 일을 다시 한 번 더 비유로써 나타냅니다. 스님 자신의 창작이 아니라 어떤 문헌으로부터의 인용인데, 번역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자불견부모(子不見父母), 아이는 부모를 보지 못해도
부모상견자(父母常見子), 부모는 항상 아이를 보네.
제불시중생(諸佛視衆生), 모든 부처님은 중생을 보시기를
유여라후라(猶如羅睺羅), 마치 라후라처럼 하시네.
중생수불견(衆生雖不見), 중생은 비록 보지 못해도
실재제불전(實在諸佛前). 참으로 모든 부처님 앞에 있네.
모든 부처님 앞에 있으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언제나 중생들을 보시고 보호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의 명호를 외고 부르고 해야 하겠지요? 그 이야기를 「정신게」에서는 바로 앞으로 당겨서 ‘극중악인유칭불’이라 한 것입니다. 이 역시 겐신스님의 『왕생요집』 하권에 나오는 말입니다.
『관무량수경』에서는 “극중악인은 다른 방편이 없으니 그저 부처님(의 명호를) 일컫고 염한다면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라고 하였다.(밑줄 – 인용자)
밑줄 그은 부분인데, 한자로는 “極重惡人(극중악인), 唯稱念佛(유칭염불)”이라 하였습니다. 「정신게」에서는 ‘염’ 한 글자만을 생략하여 7자로 맞춘 것입니다. 다만, 『관무량수경』에서는 이 말 그대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토진종성전전서’의 제1권에서는 ‘『관무량수경』(意)에서는’이라고 해서 ‘(意)’라는 말을 더 넣어주었습니다. 글자 그대로는 안 나온다. 다만, 그 뜻을 취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달아준 것입니다. 옛날 스님들은 다 외워서 인용하다보면, 본인들의 머리속에서 그 문장들이 재배치되거나 재창조됩니다. 이를 ‘취의(取意)’라 합니다. 도작스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만, 겐신스님도 그렇게 했습니다.
정토문의 신자들은 본인이 ‘극중악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본인이 ‘극중악인’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면 정토문의 신자는 되기 어렵습니다. 그런 극중악인들은 ‘달리 방편이 없다. 오직 아미타불의 명호를 외고 일컬을 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어느덧, 비록 극중악인이라 할지라도, 아미타불의 자비광명 속에 살아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제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이제 지난주에 내드린 ‘퀴즈 8’의 정답을 공개합니다. 답변주신 분들은 모두 정답이었습니다. 상배(上輩)입니다. 스님들은 다 상배라고 『무량수경』은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 지점입니다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다만, 이역본인 『여래회』나 범본에서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는 점, ‘초기 『무량수경』’의 영향을 받아서 스님들을 상배라고 했다는 점만을 언급하고 다른 기회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저의 책 『정토불교성립론』의 제2부 1장 「출가, 재가, 그리고 비승비속」을 읽어주십시오.
오늘의 ‘퀴즈 – 9’를 말씀드립니다. 『무량수경』 하권에 보면, 부처님의 지혜를 믿지 못하고 의혹하는 중생들은 극락에 가더라도 바로 연꽃에서 화생(化生)하지 못하고 태생(胎生)한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태생을 하게 되면,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스님들을 공양하지 못하는 세월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회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만, 몇 년 동안 그렇게 해야 할까요?
오늘도 긴 편지 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202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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