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노산시조백일장 고등부 입상작
<장원>
의자
수원 영덕고 3년 이재희
막차 끊긴 밤중에도 학원가는 한낮이다
살갗이 짓눌리는 의자에 묶인 채로
펜대를 하루의 끝까지 움직이는 우리들
어릴 적 한참을 뛰놀았을 다리들은
비좁은 의자 속에 쳐박혀 꿈을 잊고
한 줄기 빛이 비추기를 감옥에서 바란다
올지 모를 미래를 오늘도 쳐다본다
길었던 노고를 끝마치는 그날에
우리는 저마다의 안식을 찾게 되길 바란다
<차상1>
의자
수원 영덕고 3년 김민지
아버지는 무척이나 큰 그림자를 품었어요
어딜 가든 따라오는 긴 꼬리는 공사장에
구르는 그날의 걱정을 남김없이 쓸어가요
아버지의 등 뒤로 늘어진 검은 꼬리
붉은 해가 뉘어가면 더욱더 길어지고
꼬리는 하루를 가득 안고 집으로 들어오죠
삐그덕 소리 내는 나무 의자 위에서
무거운 꼬리들을 내려놓고 앉으면
내뱉는 한숨을 마시며 늘어나는 그림자
덜그럭 거리는 그날의 잡동사니
꼬리표를 떼어주는 사람도 없어서
아버지 그늘 아래서 쌓여만 가지요
해가 지고 검푸른 어둠이 몰려온 뒤
술잔에는 달빛이 동그랗게 말아질 때
유난히 더 큰 발걸음이 골목길을 울려요
어둠 속에 홀로 선 의자 위를 무겁게
앉은 이의 길어진 꼬리를 잠시나마
떼준 건 삐그덕거리는 낡아빠진 의자네요
<차상2>
의자
삼천포고 1년 권정현
하루도 빠짐없이 너와 난 한 몸이고
소리 없는 공부 전쟁 살얼음판 긴장감
언제쯤 시험 끝나고 마음껏 쉬어볼까
교실의 형광등에 달려드는 하루살이
어쩌면 우리 역시 성적에 매달리는
가엾은 존재들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기나긴 밤 지나고 아침이 올 때 즈음
새롭게 맞이하는 눈 부신 햇살처럼
우리가 함께한 시간 찬란히 빛날 거야
<차하1>
내 친구 의자
경기도 초월고 3년 김혜진
저 나무는 굴곡진 한 평생을 호수에
발을 묻고 햇빛에 몸을 섞고 살았다
아무도 찾지 않아도 외로운 줄 몰랐다
귀 시린 삭풍이 불어와 푸른 잎
가지들이 호수에 떠돌고 흩어져도
나무는 강너머 사는 친구를 생각했다
가로등이 켜지면 의자에 앉아서
도란도란 속삭이던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물수제비를 힘차게 던졌다
촤르르 촤르르 물살을 가르며
나무를 향해서 다가오는 돌멩이에
고독한 나무 한 그루는 너털 웃음 지었다
<차하2>
의자
수원 영덕고 3년 유서연
아버지의 공방에 놓여진 나무 의자
굽어가는 아버지의 허리는 탄식한다
이제는 의자 등받이처럼 허리 펴고 살고파요
아버지의 공장에서 끊임없이 들리는
나무 타는 소리와 아버지의 콧노래
구석엔 완성된 가훈들이 열을 맞춰 놓여있다
아버지가 편하게 쉬기를 바라며
보냈던 소파를 아버지는 잊은 걸까
여전히 나무 의자에만 온기가 돌았다
내가 드린 소파 위로 먼지만 쌓여간다
어느 날 보게 된 의자 위의 아버지는
편안히 쉼을 즐기는 아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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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작품
제35회 노산시조백일장 고등부 입상작
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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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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