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구이백선(禪名句二百選)
77. 微風吹幽松(미풍취유송) 《한산시(寒山詩)》
이 글귀 앞에 「욕득안신처 한산 가장보(欲得安身處 寒山可長保=안신할 곳을 얻으려면 한산은 길이 보전되리라)」는 두 글귀가 있다.
몸(마음)의 편안함을 얻고 싶다면 이곳 한산(寒山)이야말로 영구히 그 목적을 달성하기에 좋은 곳이 되리라고ㅡ.
한산(寒山)은 지명이며 또한 인명의 고유명사임과 동시에 마음의 괘애(罣礙)를 여읜 마음을 표상 (表象)한다. 이 순수한 마음을 응시하고 개발해야 비로소 몸(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풍취유송 근청성유호(微風吹幽松 近聽聲愈好)」로 이어진다.
「산(山)」이라고 하면 고요하고 나무그늘도 있어서 서늘한 곳으로 상상한다.
그 호적(好適)한 입지 조건을 「한(寒)」자로 부정하고 「한산(寒山)」으로써 상대적인 지(知)를 공화 (空化)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화된 경지가 「미풍취유송(微風吹幽松)」이다. 「유(幽)」는 감각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오관의 대상으로는 되지 않지만, 그러면서도 실재하는 「송(松)」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일련 의 시는 한산의 시 중에서도 걸작으로 치는 것인데, 이 두 글자에 말이나 문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뜻이 있다고, 옛날부터 선자가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다 치고 이 글귀의 뜻은 "미풍이 유송(幽松)을 불고 있는데 가까이 가서 들을수록 그 소리는 더욱 아름답다."라는 것이다. 근접하면 할수록 자신과 유송과 미풍이 하나로 융합한다. 듣는 자[자신] 와 들리는 자[풍성(風聲)]의 주관과 객체가 하나로 된다.
그러나 하나로 된다고 해도 소나무는 소나무이고 자신은 자신이다. 소나무와 자신과는 동일물이 아 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대립하고 서로 반발하지 않는 세계를 동양 사람은 실감할 수 있다. 그것은 한 사코 매달리는 「자아」를 공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공화한 경지가 「유(幽)」이다.
위의 시는 다시 계속된다.
下有斑白人 喃喃讀黃老 十年歸不得 忘却來時道 하유반백인 남남독황로 십년귀부득 망각내시도
그 뜻을 풀이하면
"소나무 그늘에서 머리카락이 반백(半白)이 된 노인이 남남하면서 도교의 서적[黃老]을 읽고 있다. 이미 十년 동안이나 집에 돌아가지 않았으므로 올 때의 길조차 잊어버렸다."는 뜻이다.
수도자는 마음의 고향인 「한산(寒山)」에 정착하여 깨달음 위에 또 깨달음을 거듭했으므로 이제는 그 깨달음까지를 잊어버릴 수 있었다. 자기가 노력했다는 것을 의식해서는 안 된다. 무집착(無執着)의 의식까지도 철저히 공화한 경지가 「망각내시도(忘却來時道)」이다. 인간의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출처 : 柳淞月 選解 <선명구이백선(禪名句二百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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