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 (榖雨)
곡식(穀)이 때 맞춰 내리는 봄비(雨)를 맞아 새싹과 새순을 틔운다는 뜻으로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비가 자주 내리는 시기이며 양력으로 4월 19, 20일 경이다.
조선 초 이순지(李纯之) 김담(金淡)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内篇)의 기록을 보면
연못의 마름이 싹이 트고, 산비들기가 깃털갈이를 하며 여름 철새인 후투티가 뽕나무에 날아드는 시기라고 하였다.
농촌에서는 볍씨를 물에 담가 못자리를 마련하여 본격적인 농사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니 이때 농사에 필요한 물과 관련된 속담이나 풍습이 많았다.
'곡우에 가뭄이 들면 땅 속이 석 자나 마른다' 거나 '곡우에 비가 오면 농사가 않된다' 하여
곡우의 비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였다.
옛날에는 농사에 필요한 볍씨를 소중히 여겨, 집 밖에서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이 돌아와 볍씨를 손에 대면
싹이 트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된다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집앞에 불을 놓아 잡귀를 몰아내 부정을 타지 않게 하였다.
이때는 부부가 잠자리도 삼가하라 하였는데,
흙의 신(土地神)이 질투를 하여 쭉정이 농사를 짓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 물이 잔뜩 오른 나무의 수액을 '곡우물' 이라 하여 산다래나무,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를 내어
나오는 물을 받아먹었는데, 위장병이나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하였다.
또한, 곡우를 기준으로 그 전에 잎을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雨前茶),
그 후에 만든 차를 우후차(雨後茶)라 하였고 곡우 날 만든 차를 곡우차(榖雨茶)라 불렀다.
이무렵 동해안 함경도 용흥강 지역에서는 산란기를 맞아 살이 통통히 오른 숭어를 잡아 회(膾)나 찌개로 요리하여 잔치를 벌였고, 서해쪽은 해류를 타고 흑산도를 거쳐 충청도 격렬비열도 까지 올라온 조기가 통통하고 맛이 꽉 차올라 '곡우사리'라 하여 임금님에게 바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