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아리랑 7......인삼, 그리고 사람
나는 한때 어린 아이였다.
영원히 아이로 머물것 같았던 길고 지루했던 그 시절 모든 꿈의 종결지는 언제나 어른 되기였다. 어떤 일이든 척척 해내는 어른의 동경심과 부당한 대접을 받는 듯한 억울함은 어른을 더욱 갈구하게 했고, 그 비좁고 조바심 나는 아이의 틀을 깨트리는 유일한 분출구는 어른이 되는 길밖엔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은 사실 만만한게 아니었다.
가볍게 날아와 무겁게 쌓이는 시간의 접층 사이엔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들은 대게 예고도 없이 튀어나와 내 발을 걸고, 목덜미를 감아 질질 끌고 다니고, 느닷없이 휙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과정은 혁명이다.
어미의 자궁 문을 열고 세상과 접촉할 때부터 살고자하는 의지의 혁명을 시작으로, 이쪽저쪽 내편 남의편을 분간할 줄 알게 되는 눈치 터득기를 거쳐, 사랑과 미움의 혼란스런 감정의 변화에 몸살을 앓는 사춘기 혁명기를 만나고, 어설픈 어른 흉내내기가 스스로도 보기 민망했던 청년기를 스치면, 어떤 정의를 내려야 가장 적절한지도 모른 체 결혼의 혁명과 팔짱을 끼고, 급기야 무슨 의지로 일을 저질렀는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미, 아비가 되어 인생의 고난이도 혁명기와 부딪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 때 어른이었어 라는 등식은 성립 할 수가 없다.
보드라운 물살에 떠 있는 작은 배에 가만히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하듯 어른이 되는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모년 모월 모시에 태어나 잘 먹고 잘 살다 잘 죽었습니다’ 라는 비문을 새기고 생을 마감할 이가 몇이나 될까 ?
‘여기까지 산 것도 기적이다! ’ 라는 비문 이라면 또 몰라도.
그러나 어른이 되어도 정말 어른답다 라는 말을 듣기는 쉽지 않다.
어른이 어른 꼴을 못하는게 어디 한두 가지 예문을 들어 될 일인가.
어릴적 숱하게 꿈꾸었던 미래의 얼굴을 지금의 거울 속에선 볼 수 없는 현실...그 쓸쓸한 조우에 슬쩍 비치는 얕은 한숨소리를 세월은 못들은 척 외면하고
어쩌다 아이에게 못난 행색을 들킬 때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 넌 나중에 나처럼 살지 마!” 라니.
그럼에도 난 아직도 제대로 산다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어른이 안 돼도 좋으니 이쯤에서 노화를 촉진하는 세포 분열은 좀 쉬었음 좋겠고, 만약 알라딘의 램프속 거인이 나타나 멋진 어른 되기와 아이로 돌아가기 소원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무조건 나중을 택하겠다.
난 더 이상의 어른은 되기 싫은 건지 모른다 .
그런데,
누가 날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인삼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자 잊었던 얼굴들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른이 되어선 단 한번도 만난적 없던 수 많은 얼굴들이 바스러진 유리 파편처럼 공중으로 부양하면서 돌연히 나타났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기억의 창고 안에 저장 되어 있었다. 조금도 숙성되지 않은 채, 누룩 같은 세월도 그들을 발효 시키지 못한 아주 오래된 얼굴로. 지금의 내 얼굴을 만들기 위해 잠깐 스쳐갔지만 아주 떠나지는 못한 사람들. 내가 어른이 되는데 일조했던 그 모든 풍경들.
지금부터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억 뒤지기 놀이를 하다보면, 내가 기억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건지, 기억이 내게로 다가와 배회하는 건지 모호해질 때가 있다. 기억은 살갗에 붙어 있는 표피처럼 씻으면 떨어지는 물질이 아닌 의식에 달라붙어 집을 짓고 사는 독특한 성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늘 아득하고 가깝다.
흐릿했던 윤곽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그들을 이어붙이는 손길도 급해진다. 예쁜 조각 이불보를 만들 작정으로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해나가는데, 중간에 앗! 하고 손을 찔릴 때가 있다. 빨간 핏방울이 천 조각을 물들이면 얼른 그것을 딴 곳에 치워야 한다.
손을 찌르는 기억은 대게 나쁜 기억이거나 아주 슬픈 기억이다. 어둡고 습기찬 우물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못생긴 기억이 틈새를 노려 줄을 타고 올라오면 본능적으로 내 달리던 기억의 연상 작용이 “중지” 하고 외치며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다. 그런 기억은 아주 오래되어도 질기고 거칠게 가슴팍을 스치며 상처를 헤집지만 그들 역시 사라져주지 않으므로 버릴 순 없다.
하지만 내게는 이런 회색빛 기억 창고만 갖고 있는건 아니다. 검은강 건너편 아련한 등불처럼 반짝이는 예쁜 집도 함께 갖고 있다. 수많은 세월이 쌓이듯 켜켜이 쌓여진 낙엽더미 사이로 진한 숲의 향기를 뿜어내는 멋진 통나무집 말이다.
오랫동안 방치하다 방문해도 금방 따뜻한 난로에 불을 지피고, 먼지 쌓인 소파를 쓱 문지르기만 해도 원래의 문양을 간직한 섬유조직이 드러나며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 곳에서 내가 만나고자 했던 금빛 호스를 용케 찾아 잡아 당겼다. 동그랗게 내려 쪼이는 햇살 좋은 마당가에 그것을 들고 버튼을 누르자 와르르 쏟아지는 물줄기.
제일 먼저 양손을 번쩍 들고 서 있는 리어카 두대가 튀어나 오고, 뒤 따라 빛바랜 헝겊 같은 무채색 오거리가 나타난다.
제재소, 천일화물, 기쁜소리사, 뻔데기집 , 이발소까지 주루룩 매달고서...
리어카 앞 귀퉁이에 앉아 누런 청자갑에서 마지막 담배까치를 꺼내는 아저씨도 튕겨져 나온다. 차마 혼자 피우지 못해 친구에게 권하는데 그가 손사래 치며 물러나자 윗저고리를 세워 성냥을 긋는 모습과, 내뿜는 뽀얀 연기를 기 다렸다는 듯 쓸고 가는 풍기바람도 보인다. 이발소 앞 작은 나무의자에 오도마니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자그마한 계집애.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두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다. 나다.
시골의 중심지라 해봤자 걸리버의 한 걸음도 안될 것 같은 오거리는 시장통로, 순흥통로 등 다섯 갈래 거리를 통과하는 지점이었고, 굵직굵직한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짐을 부리고 일삯을 받는 리어카 아저씨들의 직장터이기도 했다.
앉은뱅이 상위에 몽땅 그려 놓아도 충분할거 같은 오종종한 읍내지만 여느 시골마을에선 좀체로 볼 수 없는 풍경 중 하나가 그 리어카들이다.
우리집 앞 천일화물로 거대한 트럭이 늘어진 전신주 줄을 아슬아슬하게 걷어내며 정차를 하면 읍내 인견 공장마다 비스코스 레이온이라 쓰여 있는 넓고 납작한 상자들을 옮기기 위해 리어카들은 바빠진다. 최대한 많이 싣고, 최소한 적게 왕복하길 원하는 공장주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리어카 바퀴는 찌그러진 물풍선 꼴이었고 무게를 이기기 위해 손잡이를 내리누르는 아저씨들의 팔뚝엔 검푸른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움툴거렸다.
그 리어카를 거쳐야 사과와 인견과 인삼은 상품이 되었다.
현란한 나일론 치마무늬 같은 가을이 죽령고개를 넘기 시작하면 리어카 아저씨들의 대목이 시작된다. 새벽부터 삼포밭의 차양막이 하나 둘 걷어지면서 바야흐로 풍기인삼 추수가 막을 올리는 것이다. 황토 빛 흙더미 위로 몸통을 드러낸 인삼들은 아직은 인삼이 아닌 척 누런 흙을 두르고 누웠지만 그걸 오래 봐줄 사람은 없다. 그들도 너무나 오랫동안 그 순간을 기다렸기에.
발빠른 경동시장 중간 약재상들이 중앙선 열차를 타고 풍기에 내려 인삼밭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면 그 많은 인삼들은 모조리 리어카에 실려 인삼 주인네로 옮기는데, 리어카 아저씨들만 바빠지는건 아니다. 풍기 아낙네들 몸짓이 분주해지고 어린 처녀들은 쌈짓돈을 마련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지라 집집마다 숨소리가 쉭쉭거린다.
양조장 이씨가 배달 길에 갖다 놓은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사발에 따르며 하루의 노역을 달래는 리어카 아저씨들 . 그 곁으로 동태 한마리 신문지에 둘둘 말고 잰 걸음질 하던 젊은 아낙네가 다가가며 말을 건다.
“아저씨요, 오늘 어디 댕기 오신니껴?”
“오늘요? 보자, 역전 풍기인삼방도 캐고, 동부동 오사장 네도 캔니더. 왜요? 저녁 자시고 인삼 깍으러 갈라 꼬요?”
“ 야. 얼라들 퍼뜩 밥맥이고 서너접 깍고 와야지요. 큰눔이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잔니껴.”
“벌씨 그리 컸니껴? 아지매 시집 올때가 아즉도 삼삼한데, 무시라 그눔의 세월은 입도 크제.”
"요새는 삼포 추수 때문에 언가이 바쁘제요? 어여 드시던거 드시이소. 지는 가니데이.”
“야, 댕기 가시더”
그들은 이렇게 삶의 현장을 누비며 정확한 소식통 노릇도 단단히 했다.
나만보면 왕방울, 왕방울 놀려대던 이발소 아저씨가 연못가 버드나무 귀신이야기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노래를 가르쳐 주던 곳도 오거리다. 손님의 머리를 다듬기 위해 그가 안으로 들어가면 어린 그 계집아이는 오가는 행인들의 행색을 살피며 그들의 가난한 삶의 질곡을 가늠해냈고, 알 수 없는 저들의 모션을 파악하기 위해 더 한층 눈알을 굴러댔다.
1978년? 혹은 79년 이쪽저쪽이다.
이성의 호기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육체의 대 변혁기를 맞이하여 백자 연적 같은 가슴이 팽팽히 부풀어 오르던 14살, 아니면 15살 소녀시절. 중학교 교복을 입은 그 계집아이는 더 이상 오거리 나무 의자에 앉지 않았다. 물론 왕방울 소리도 듣지 않았다.
어쩌다 하교길에 이발소 안을 기웃거리면 면도날을 쓰윽쓰윽 비비다가 거울에 비친 왕방울을 향해 쓰윽쓰윽 웃어주던 아저씨.
짧은 군인 머리에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주던 이발소 아저씨.
신기하게도 날카로운 면도날을 가진 길쭉한 면도기가 그 아저씨 손에 들려지면 어느새 그것은 하모니카처럼 부드러운 물건으로 전환 되는 듯 했다. 이 세상에 무서운 물건이란 하나도 없다. 다만 무서운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걸 알게 했던 멋진 이발사는 지금 어른의 단계 중 어느 단계에 다다랐을까. 어른이 채 못 되자 다시 아이로 전환되어 하모니카를 쓰윽쓰윽 옷에 문지르고 있지는 않을까? 알 수 없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였다. 툭하면 ‘이 어린 것이!’ 됐다가 ‘벌써 다 큰 것이!’ 로, 이쪽저쪽 편리하게 갖다 써 먹던 어른들이 어지간히 싫었던 그 때, 풍기초등학교 후문 가는 쪽에 친구 부모님이 하는 지름방이 있었다. 들기름 참기름방이 아니고 등유나 벤젠을 파는 기름방을 왜 지름방으로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안된다.
그들은 남원다리 부근에도 또 하나의 지름방을 운영했던지라 친구의 자매들은 교대로 그쪽 지름방을 지켰고, 나는 걸핏하면 공부를 핑계 삼아 그 곳으로 야행을 했다.
집에 있으면 지옥이요 집을 나서면 천국이었던 내가 옆구리에 책을 끼고 지름방 문을 드르륵 열면, 휘발유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콧구멍을 자극했고, 구석진 곳엔 커다란 드럼통 세개가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던 붙박이 장처럼 조용히 서있었다. 5촉짜리 전구하나로 전체를 밝히기가 힘겨웠던 어둑한 가게의 벽을 따라 내 그림자가 거대하고 납작하게 드리워지면 방 안에 붙어 있는 쪽창으로 친구의 반들거리는 두 눈알이 쏟아질 듯 튀어 나왔다.
본래의 색상은 짐작도 할 수 없는 가게 유리문은 양쪽 네 개씩 나누어 한쪽 문을 이루고 있었고, 세월에 뒤틀린 문짝은 이가 맞지 않아 스르르륵이 아닌 덜커덕덕 거리는 소리를 내지르며 겨우 문이 열리곤 했지만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는 그 소리를 신호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손님을 맞이하곤 했으니 한편으론 요긴한 쓰임새이기도 했다.
따끈따끈한 방 안 이불 밑에 옹기종기 발을 뻗고 앉아 떠드는 이야기라는게 선생님한테 알랑거리는 친구 흉보기 아니면 , 해 본 적 없는 연애상식 아는 척 하기 같은 시시껄렁한 주제였는데 그 시시한 수다가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어둠이 찾아온 시골 지름 방엔 손님이 아주 뜸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건 또 아니다. 노끈을 매단 커다란 댓병을 들고 석유곤로에 넣을 석유를 사러 손님이 오면 친구는 커다란 드럼통 안 쪽에 매달려 있는 한되짜리 됫박에 석유를 하나 가득 넣고 깔때기 받힌 대병으로 졸졸졸 따라 부었다. 단 한방울의 오차도 없이 능숙한 숙련공 같은 친구의 기술을 보고 있자면 나도 해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거렸다.
“내가 한 번 해 볼까?” 하고 물으면 단박에 그 친구는 “안돼!” 하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안되는지 그 깊은 속 뜻은 알지 못했지만, 아마 그것은 그녀만의 영역에서 그녀만이 갖고 있는 고유 권한이라 그랬을 거라 짐작한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우리 또래의 남학생이 가게로 기름을 사러올 때가 있는데 그땐 정말 난리가 났다. 어색한 몸짓으로 기름 을 따르는 친구와 멀뚱하니 서 있는 남학생을 훔쳐보며 우리들은 웃음이 새나갈까 키득거리며 발로 방바닥을 비벼대면서 요란을 떨다가 기어이 남학생 뒤통수에다 웃음 한 됫박을 쏟아 붓곤 했다.
어른의 눈이 없이 혼자 있는 그런 친구가 있어 우리는 한동안 너무나 즐거웠다. 친구 대신 그의 언니가 가게를 지키는 당번이 될 때면 갈곳 잃은 방랑자처럼 허둥거리며 친구 당번 날만 기다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단한 명승지도 아닌 보잘것 없는 지름방을 순례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오롯이 갖고 있어서일까? 아무리 좋은 곳을 찾아 유람을 해봐도 그저 유람일 뿐인 건조한 여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고향엔 있다. 그래서 고향은 근원이다.
오는 친구들의 순서가 다르듯 돌아가는 친구들의 순서 또한 대중이 없다.
자정 사이렌이 울리기 한 시간 전이면 우리들을 쫓아내고 친구는 덧문을 닫기 시작한다. 양철과 합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듯한 덧문에는 검붉은 글자가 써있다.
맨 먼저 석유라고 쓰여진 첫번째 문과, 벤젠이라 쓰여진 두번째 문짝이 닫히면 쪽문이 있는 세번째 문에 이어 등유라 쓰인 마지막 덧문이 허술한 유리문들을 모조리 감싼다.
바깥에 서서 닫히는 순서를 모조리 외고 있던 나를 향해 “잘 가” 라는 소리와 함께 쪽문으로 그친구 머리통이 쏙 들어가면, 갑자기 내쫓긴 며느리처럼 허무함이 밀려오고 각각의 용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석유와 벤젠 등유만이 붉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배웅했다.
천천히 등을 돌려 집을 향해 걸어가는 신작로. 시꺼먼 밤 보자기가 마을을 덮어 씌운 듯 인적과 소음은 끊기고, 마치 허전해서 켜둔 촛불처럼 하늘엔 별들이 반짝였다. 오거리에 다다르면 불꺼진 상점들 틈에 번데기 집만이 오뎅 국물로 흐려진 뿌연 창문너머로 아스라이 불빛을 내뿜고, 진종일 일만하고도 두손을 번쩍든 채 잠들어 있는 리어카들 앞 쪽을 바람이 설렁거리다 다 큰년의 늦은 귀가를 나무라 듯 내 등짝을 내리쳤다.
어느날, 지름방에 모여 앉은 고만고만한 계집애들 사이로 인삼 얘기가 나왔다.
“오늘, 선희네 인삼 캤대”
“분이가 그래서 안 왔구나.”
“인삼이랑 분이랑 뭔 상관인데?”
“아마 인삼 깍으러 갔을 걸?.”
“인삼? 그거 우리도 깍을 수 있어?”
“그럼, 하나도 안 어려워. 대나무 칼로 슥슥 문대기만 하면 돼.”
“정말?”
“돈도 줘.”
“진짜? 얼마나 주는데?”“얼마라더라? 한 접으로 쳐서 주는데 하여간 줘. ”
“그럼 우리도 깍으러 갈까?”
“갈래?”
의미심장한 눈빛들이 마주쳤다.
“가자!”
“가자, 가자!!”
이불 속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던 지름방 친구가 한마디 내지른다.
지랄도~”
아! 어떻게 표현할까. 그 날 보았던 그 밤의 풍경을.
가로등 하나 없던 으슥한 골목길을 접어들자 어느 한집만 둥실하니 해가 떠오른 듯 지붕 전체가 빛에 싸여 훤했고, 오래된 나무 대문 안에 머리통을 집어 놓자마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별안간 나타났 다. 모두 여자들이다. 마당가까지 끌어 매달아 논 수많은 알전구가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발 디딜 틈 없이 빨간 대야들이 뒤엉켜 있다. 그 붉은 대야엔 잔가지가 잘려나간 인삼들이 빼곡히 들어차 물에 잠겨 있고 한쪽 구석엔 용케 자리잡은 아낙들이 인삼껍질을 벗기느라 정신없었다.
인삼을 깍는데 알아야 할 순서나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대야를 들고 순서를 기다려 주인집 딸네가 인삼 백개를 담아주면 몸통을 싸고 있는 잔가지들을 모조리 제거한 뒤, 펌프로 물질을 하여 대야에 인삼을 담근다.
젖어야 때가 잘 벗겨지는건 사람이나 인삼이나 마찬가지다. 미숙한 계집애들에겐 한 접 이상 할당해 주지 않았다. 친구이자 그집 딸인 선희 빽이 있어서 그나마 수월하게 배당을 받았다. 잔가지 제거하는 작업을 할때 그 친구는 샘플용 인삼가지를 코앞에 들이대며 이보다 더 굵은 가지를 꺽으면 절대 안되노라 경고를 했다.
그래서 어중간한 크기의 가지가 나타나면 기준이 적응 안된 나는 이걸 꺽어야 돼, 말아야 돼, 갈등을 하느라 더욱 손이 더뎠다.
흡사 시장 장터에 나타난 약장수 묘기를 보러온 사람들처럼 왁자 지껄한 소란스러움에 기가 짓눌러 어린 계집애들은 한껏 긴장한 체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꺼칠꺼칠한 삼베 보자기와 뾰족한 대나무 칼을 받아들고 눈치껏 옆 사람 깍는 모양새를 살피며 하나씩 하나씩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어디에 있다가 이 많은 아낙네들이 집합을 했을까? 종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소식을 알고 저마다 대야 하나씩을 옆구리에 끼고 짜자잔 나타난 걸까? 난 그때 풍기에 여자가 이렇게 많다는 걸 알고 정말 놀랐던 것 같다 .
인삼깍는 재미가 들리자 우리들은 지름방 대신 인삼방 순례를 시작했다.
의외로 친구들 중에 인삼집 딸네미가 많아 알음알음 정보를 캐낸 뒤 저녁밥 먹기가 무섭게 인삼 칼을 주머니에 넣고 삶의 현장으로 줄달음질 쳤다 . 똑같은 재질로 만들고 비슷하게 날을 세운 대나무 칼이라도 자기 손에 착 달라붙는 것이 있는데 그걸 슬쩍 가진다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친 삼베 위에 인삼을 척 눕히고 몸통부터 사삭사삭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면서 인삼은 보다 나은 가치를 부여 받았다.
사람의 귓속 같은 머리통을 깍을 때는 대나무 칼을 바짝 세워 미로 같은 그들의 구조가 탈이 나지 않게 세밀하게 다듬어야 하는데 귀찮다고 대충 깍으면 주인장 눈꼬리가 슬쩍 올라가면서 퇴짜를 맞기도 했다.
죽령 고갯길에서 잠시 멈추었던 가을바람 주머니에 소백산 칼바람이 슬쩍 끼어들면 인삼 추수가 슬슬 막을 내리고 목단이나 작약 같은 약용 식물을 캐기 시작한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했을까? 짚시 여인 카르맨의 머리에 꽂아도 썩 어울릴것 같았던 화려한 모란꽃 아래 검고 길다란 목단 뿌리가 살다가, 때가 되어 드르륵 달려 나오던 그광경이 생생한 걸 보면 어지간히 싸돌아 다녔나보다.
아~ 인삼 깍는 여인들의 하얀 밤이 조금씩 내 눈가를 붉게 물들인다.
뽀얗게 속살을 드러낸 인삼들이 한 광주리씩 담겨 나올 때마다 손바닥 전체를 봉숭아 물들인 듯 빨개지던 그녀들의 손.
물에 분 굵은 손가락은 마디를 이루던 실핏줄 까지 팅팅 불게 해 마치 소시지를 엮은듯 모양새가 험했다. 휘어진 허리를 외마디 비명을 누르며 잠깐 폈다가 요추 끝에 겨우 갖다 맞추면 또다시 굽어지던 등짝들. 그곳엔 느림의 미학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속도의 경쟁뿐. 톱밥처럼 쌓이는 인삼 껍질이 두꺼비 무덤을 이룰 때마다 집에 두고온 걱정거리를 덜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집념처럼 그녀들 손을 재촉한다.
인삼이 훗날 이 고장 지역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할 거라는 의미심장한 예견 따위야 알게 뭔가.
소백의 변화무쌍한 기온이 산삼을 키우고, 그 산삼의 자식이 인삼이라는 상식 따위야 모른들 어떠하리.
몇 달만 키워도 우람한 머슴 종아리처럼 굵어져 나오는 무와는 좀 다르겠지. 몇 년씩 해 가리고 달빛 받아 키워도 당근만한 크 기도 안되니 명약이라 하겠지. 그 정도는 나도 알지.
어쨌든 이 작고 요상하게 생긴 인삼이 옆집 달근이가 입고 있는 겨울 돕바를 장만케 해서 내 새끼한테도 입힐 테니 고마운 물건이지. 아암 고맙고 말고. 그랬을 아낙네들.
오늘은 세 접만 깍고 조금 눈을 붙여야 내일 사과밭에 일하러 갈 텐데. 하다가도, 새벽 마다 어구구구 비명을 지르며 몸 일으키는 남편 생각에, 까짓꺼 내 아직 젊었는데 잠 좀 못잔다고 일 나겠냐는 낙관이 또 한 접을 추가해 깍게 하고.
시어미가 아이를 업고 젖을 먹이러 오면 젊은 며느리는 아이를 안고 으슥한 뒤란으로 간다. 며느리 깍던 자리에 앉아 무릎에 삼베를 깔며, 깍아 놓은 광주리와 깍아야 할 대야 숫자를 얼추 세면서 우선 한숨부터 내쉬던 시어미. 이 며늘아가 밤을 셀 작정인갑다 한다.
그 시절 아이들은 왜 또 그리 많았는지.
초저녁부터 들락날락 거리는 아이들 땜에 정신 사납다며 소리소리 질러대던 할미들.
“야들아, 그만 좀 들락거리래이~ 니 엄마 도망 안가고 인삼 깍는거 눈깔로 안뵈냐?”
“아부지가.... 언제 다 깍을라나 가보라 캐서요..” 하면
“보래이 달근이 어매. 니 후딱 가서 남편부터 재우고 온나!” 죄없는 아낙을 잡는다.
와르르 터지는 웃음소리에 키득거리는 어린 처자들.
“달이 떠도 좋구나, 별이 떠도 좋구나, 이 밤만 새지 마라” 듣도 보도 못한 자작곡을 흥얼거리면 저쪽 어디선가 “얼쑤!” 추임을 넣고, 고단함을 멀찌감치 밀어버린 아낙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동생들 잘 건수해래이. 아랫목에 묻어둔 아부지 밥사발 엎으면 니 책임이다 알겄제? 아부지 오시믄 곤로에 불지펴 된장 뎁히고 찬장에서 반찬 꺼내 상봐 드리고.”
열 살도 채 안됐을 어린 맏딸의 소임이 막중도 하다.
딸 손에 은근슬쩍 지전을 쥐어주는 어미의 머릿속은 온통 아랫목에 묻어둔 지아비 밥사발에만 신경이 쓰이고, 지전을 받은 소녀의 버짐핀 얼굴엔 화색이 돌면서 오랜만에 받아든 용돈에 전신이 짜릿해지는지, 절대 걱정말고 인삼만 깍으라는 듯 두 눈에 철통같은 밥사발 사수 의지가 엿보인다.
집안일을 거드는데 어른 아이 구분이 없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풍경들이다.
SPAN>
그 해 가을 내가 터득 했던 인삼깍기 기술.
지금 당장이라도 인삼과 삼베 보자기와 대나무 칼을 손에 쥐어주면 인수분해 일단계 풀이보다 더 쉽게 실력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암기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여 들던 그 때의 모든 광경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의식 한켠의 생생한 정물화로 그려졌다.
단순한 노동의 뒤안길에 감추어진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의 현장에서 분명 난 무엇인가 배웠고, 체험했으며, 습득했다.
보슬보슬한 인삼 부스러기들을 털어내고 서둘러 집으로 가는 길목엔 온몸에 배인 인삼 향수가 동행했다. 모두들 꿈길을 거닐고 있을 시간. 그래서 한없이 고요한 밤길에 발을 내디디면 달빛 받은 돌멩이들이 뿌옇게 길바닥의 표식을 암시하며 길을 안내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자족감에 어른이 된 듯 돌아오던 그 새벽. 까만 밤하늘에 셀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은 마치 소녀의 기분을 안다는 듯 저마다 꽁무니에서 별빛을 발광하며 네온처럼 반짝이고, 바로 그때,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소녀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으리라.
어쩌면 작은 성찰이, 어쩌면 먼 미래에 이루어질 꿈의 한 조각이..
그 후 , 대나무 칼은 더 이상 칼이 아닌 채 예쁜 지우개처럼 나의 의식 안쪽 주머니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하고 안 주머니에 간직한 것은 아마도 내 삶의 최초의 도구이자, 최후의 노역을 감당할 수 있는 상징의 징표임을 어렴풋이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닐지.
인삼깍는 현장에서 마주친 우리집의 베짜던 처녀.
금세 두눈이 동그래지면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네가 왜?”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겠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낮에는 베를 짜고 밤엔 인삼을 깍으러 다녔을 그녀를 떠올리며 부끄러움이 뭔지 알았다.
한 타스 연필 숫자만큼도 누비고 다니진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 보았던 모든 풍경과 모든 경험들은 내게 예정 되어 있던 어른 만들기 단계중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 번 돈이 얼마인지, 어디다 썼는지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닌가보다. 그 용도의 기억은 이미 사라져버렸는지 긁어도 나오지 않는다. 엄마에게 갖다 주거나 누군가를 위해 썼다면, 그 당시 난 이미 어른이 됐을 테지 .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 굵은 내 팔뚝을 볼 때마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붉은 상자 속에 은밀히 살고 있던 고칼로리 쵸콜릿이 떠오르긴 하지만, 것도 확실친 않다.
인삼깍을 일이 더 이상 없게 되자, 우리는 역 앞에 있던 친구 명숙이 집에서 목단을 빼기도 했다. 인삼은 깍고 목단은 뺀다고 말한다. 색깔은 더덕이요 모양은 긴 도라지 같았던 목단 빼기는 손가락을 시꺼멓게 물들이곤 했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목단 뿌리 속에는 하얗고 단단한 심이 박혀 있는데 바로 그 심을 빼는게 일이다. 너무 굵을 땐 연필 깍는 도루코 칼로 동그랗게 칼집을 낸 후 빼내야 하지만 어쩌다 막힘이 없이 스르르 심이 끝까지 딸려 나올 땐 울트라 캡 숑! 기분이 짜릿하다.
이제 조각 이불이 거의 완성돼 가고 있는데 또 다른 천 조각이 눈앞에서 팔랑거린다. 그래, 내친 김에 너도 갖다 붙이지 뭐 , 하며 집어 들자 오로라처럼 따라오는 풍경.
SPAN>
남원다리 가는 길에는 삼승농원이라는 색 바랜 간판을 이고 있는 가게가 있다.
곡식의 종자나, 약재를 파는 그 가게 앞엔 거대한 가마솥 하나가 심을 제거한 목단을 솥 가득 담고 푹푹 삶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마솥이 내 뿜는 뜨거운 김을 따라 목단의 짙은 향기가 거리에 퍼지면 얇은 옷에 소름 돋는 꼬마들이 아궁이로 불을 쬐기 위해 몰려든다.
한번씩 뒤적이기 위해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열어젖히면 작은 분화구처럼 솟구치는 뭉게구름 같은 하얀 김 폭격에 놀란 아이들이 엉덩이를 물리다 뒤로 자빠지고.
성가시고 귀찮아도 매정하게 내치지 못하는 목단 삶는 아주머니.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허리끈을 질끈 동여 맨 치마는 바람의 저항을 받아 아래쪽이 부풀어 있다. 그녀 손에 들려진 표주박 모양의 커다란 나무 주걱엔 목단액이 흐르고, 허리가 아프긴 인삼 깍기와 별 차이가 없는지 한번씩 등짝을 곧추 세운다. 물론 정확한 생김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 역시 우리 고향의 여인이다.
얼마 전 친구와 통화를 하는 중에 인삼이야기를 쓴다며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놀랍게도 목단 삶던 그 분이 바로 자기 어머니였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돈 벌러 타향에 가신 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조롱조롱 달린 새끼들 입 걱정에 허리 필날 없이 일만 했다며..못난 아들은 눈시울을 붉히는 듯 울먹였다.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역 마당에 부려 놓은 거대한 나무들의 껍질을 벗기러 다녔어. 송진이 묻어 햇살에 며칠씩 내다 말려야 땔감이 된다는 걸 넌 아니? 하면서.
인삼 깍기가 끝 나면 채반에 삶은 수삼을 말리러 다니고, 목단을 삶으러 다니고, 일의 고통보다, 일 없는 불안감에 얼굴 펼날 없던 어머니에게 나보다 못난 아들은 이세상에 없을 거라며 자꾸 화를 냈다.
다 지나간 일인데 그 기억들이 왜 자꾸 슬퍼지지 ? 반문했던 내 친구. 나는 그저 이 친구도 어른이 되기 위해 많은 곡절이 있었구나 생각할 뿐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었다.
내겐 아름다운 인삼 동화가 네겐 슬픈 인삼 우화였구나 . 그저 그렇게 말할 뿐.
그 많던 여인네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지금은 인삼깍기 대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들의 능숙한 기술은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고, 이제는 허리들 펴고 사실까? 호통 치던 할미들은 다들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났겠지. 그녀들의 흔적을 품은 바람만이 윤회하여 갔다가 또 오고, 갔다가 또 돌아오지만, 이제는 아득한 옛이야기 되어 남원천을 떠돌려나.
백열등 조명아래 거친 마당을 무대 삼아 예쁜 무희가 아닌 억센 여인네로 인생의 단막극을 멋지게 연기했던 그녀들.
바람에 길든 투박한 말투와 거친 피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내 인생의 선배님들.
그렇게 번 돈으로 당신들의 아들딸들에겐 당당한 주연이 되길 소원했던 어머니들.
모두들 호강하며 사시는가.
“잘 지내시죠?”
내 기억 속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 본다.
대답이 없다.
SPAN>
요즘은, 풍기 인삼을 모르는 이는 아이들 빼곤 거의 없다.
정부가 지원하는 몇 안되는 지방축제 가운데서도 풍기인삼축제는 으뜸이다.
주세붕 원님이 인삼을 재배했고, 그 모태가 소백산 산삼이며, 이미 신라 선덕여왕 때 소백 산삼은 당나라 무역 상품이었다는 기록도 인터넷 검색하면 다 뜬다.
인삼 이야기를 쓴다고 인삼 자랑만 늘어놓는건 너무 진부해질 만큼 풍기 인삼은 유명하다.
인삼은 풍기에 풍요를 가져다주면서, 풍기 사람에겐 자부심을 덤으로 얹어주었다.
고향을 갈 때마다 놀라는 건 도시 여인네 못지 않는 곱고 멋스런 여인들이 많다는 건데, 다른 농촌보다 훨씬 활기차고 젊은 우리 고향엔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명품 인삼이 있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엔 지리 교과서에 한 줄 달랑 써 있는 풍기 특산물 인삼이라는 활자가 신기해서 그 책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간직했던 기억이 난다.
애향심이 아니다 . 나를 알리기 위한 유용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이고, 아직도 풍기 인삼을 모른다고요? 어데 외국 살다 오신니껴?” 해도 된다.
누군가 부단히 노력했고, 애쓴 증거다.
그 모든 것을 단 몇 사람이 해냈을까?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후배 세실은 인삼가게 사장님이다. 그 예쁜 미소와 정스러운 마음으로 인삼을 알린다.
내 친구 나경이, 보경이도 인삼 대사 역할을 한다. 친구들 모임 있을 때마다 인삼 튀김을 한 상자씩 해 오는 인정들. 그녀들이 고향에 있어 친구들의 배가 부르다.
스승님의 젊은 아들도 인삼 때문에 고향을 등지지 않고 어린 아이를 고향에서 키운다.
그래서 인삼은 축복이다.
그런데, 이들만이 명품 지킴이는 또 아니다.
고향을 떠난 숱한 풍기인들 또한 외곽에서 외야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고향의 친구가 만드는 인삼즙을 홍보하고 판매하고 자랑하면서 풍기인삼을 도처에 알리는 것이다.
둘째 언니네 집에 가면 한 쪽 거실을 인삼엑기스가 점령하고 있다. 우리 형부 왈,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는 선물이라며 예찬론을 편다.
고향을 지키는 일과 고향을 지킬 수 있도록 모두가 돕고 살기에 미래가 있다.
비록 우리는 떠나왔지만 인삼은 여전히 우리를 한마을 사람으로 이어주고 있다.
그 걸 잊어선 안된다.
마지막 조각만 남았다.
짧은 이야기를 쓰는데 정말 많은 노력이 들었다.
어쩌면 한 토막 꿈같은 그 순간을 배회 하느라 그랬을 수 있고,
뒤늦게 발견한 그녀들의 마음을 어떻게 내 비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무엇보다도,
덜 자란 나에게 훌쩍 어른이란 탈을 씌우고 시치미 떼고 앉아 있었던 저 얄궂은 운명의 저의를 모르니까.. 그 진의를 파헤치는데 많은 생각이 필요했다.
어느 날,
성인이 되어 돌아온 오거리에 리어카가 없어지고 이발소가 없어졌는데도 난 아무런 자각 없이 지나쳐버렸다. 세심한 누군가가 그들의 등장과 퇴장의 기록을 해 놨다면 얼마나 근사한 기록물일까 만은, 사람들은 언제나 엉뚱한 것만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럴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야 무거운 외투가 모든 것을 막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들을 기억해내려니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뒤돌아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룩한 것도 없는 주제에 혼자 바쁜 척 잘난 척 살았던 것이다.
간절하게 머리를 쥐어짰지만 그들이 사라진 흔적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마법사 마을로 날아가던 도로시가 오거리에 그만 불시착하면서 리어카를 얻어타고 갔는지 모르겠다. 마법의 나라에도 이발관이 필요할지 모르겠군 하면서, 잘드는 면도칼 서너개 주머니에 꽂고 이발사님도 리어카 아저씨들이랑 동행 했을 수 있다.
어차피 기억 나지 않는다면 상상으로 때울 수 있다. 그러니 정말 그랬을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사무치게 그립다.
내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내게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어둠의 창고가 아닌 내 예쁜 통나무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아직도 여전히 제대로 된 삶의 기준을 헛갈리고, 어른다운 어른 되기 포기!. 철없는 소리를 해도 날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을 것 같은 여인들.
그나마 이만큼 어른으로 만드는데 소중한 역할을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그들 마음에 들었음 좋겠다.
언젠가 나도 그들 곁으로 가겠지.
영혼의 무게 21그램이 되어 찾아 갈 곳이 과연 어디겠는가.
그들은 모두 고향에 살고 있다. SPAN>
풍기사람 이 경 진
2011.2.7
첨단 기술을 맹신했던 어리석음이 첫 번째 인삼이야기를 상실시켰다. 최첨단 기술? 그런건 없었다. 망가진 USB 저장칩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체 어느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일주일을 허비한 시간과 수고를 외면하며 떠나버렸다. 보잘것 없었지만 몇 개의 빛나는 문장을 간직했던 두 편의 소설도 인삼을 따라갔다 . 그래서, 절망감과 회의감과 무기력감의 대표들과 마주 앉아 대화했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한결 같이 이런 말만 했다. “흥! 알게 뭐야. 어차피 네 일인데” 더욱 무기력하게 만드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듯 의자를 집어차고 회의장에서 빠져 나왔고, 오늘 이렇게 실종된 인삼이야기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나 스스로가 대견하다.
당신들의 격려 한마디가 제겐 별빛이고, 달빛이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첫댓글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늘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저두 동감...^^*
세월...... 기억마저 없는 세월의 자락을 떠 올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건강한 시간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