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이 금 모으기를 제안하자 김수환 추기경은 취임 때 받은 십자가를 주저없이 내놓았다. 1998년 6월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만찬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이 순간 모두 한국인이 됐습니다”라고 했다. 신(神)은 백척간두의 경제 위기에 준비된 대통령으로 사용하기 위해 김대중에게 세 번의 대통령선거 낙선과 6년의 투옥,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겪게 했던 것은 아닐까.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김수영(1921~1968) 시인은 6·25전쟁 때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고, 반공포로가 되면서 아내가 친구와 살림을 차리는 아픔을 겪었다. 배신했던 아내와 재결합하는 혼돈의 정점에서 시인을 지켜준 것은 하이데거였다.
김수영은 시(詩)라는 언어를 통해 존재의 집을 구축했다. 온전히 나로 살았고, 억만무려(億萬無慮)의 모욕을 참아냈다. 시인의 아픔은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군사독재의 강을 건너야 했던 이 땅의 모든 영혼이 예외없이 겪었던 부당한 형벌이었다. 대통령은 무도한 폭력과 광기어린 이념이 퍼붓는 억만 개의 모욕을 묵묵히 감당해 온 국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가 되고, 부처가 돼 천심(天心)을 얻을 수 있다. 하이데거식으로 사유한 김수영의 언어로 “죽음이라는 전제를 놓지 않고서는 온전한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생명만을 사랑하고 싶다”(『나의 연애시』 1968)고 선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