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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미노와 교회
타이를까 망설이기를 몇번이나 했지만 참았는데, 밤을 새우며 떠들어 댈 것 같던 여인들이 잠잠해졌다.
언행으로 보아 뻬레그리나들(Peregrina)이 아닌 듯이 느껴졌는데 이를 입증하려는 듯 꼭두 새벽에 어디론
가 떠나버린 것이다.
비로소 방해받지 않고 새벽잠이 들었다.
파띠마의 3박에 몸은 편했으나 정신은 되레 매우 시달렸고, 지친 상태가 되도록 혹사당하고 있었던가.
짧은 시간이기는 해도 개운한 기분일 정도로 단잠을 잔 것 같았으니까.
알베르게를 나와 전일에 걸었던 비또르 꼬르동 길(Rua Vitor Cordon)과 쁘라사 두 무니시삐우(Praça do
Município)를 따르는 서남행으로 시작된 아침의 까미노 뽀르뚜게스.
엔제녜이루 모니즈 다 마이아 길(Rua Engenheiro Moniz da Maia)로 이어지는 전통 돌포장로가 끝나고
아베니다 두 발베르지(Av. do Valverde)를 따라 도심을 벗어난다.
이후, 알베르게 발(發) 1km 미만의 로터리에서 N3 도로에 들어선다.
양쪽 도로변에 'Azambuja' 간판이 하나씩 서있는 지점.
붉은 사선(斜線)이 있는 간판은 아잠부자의 끝임을 의미하며 반대 쪽의 사선 없는 간판은 아잠부자의 진입
지점임을 알린다.
아잠부자는 지자체와 여러 프레게지아 중 하나가 동명(同名)인데, 여기(N3)의 아잠부자는 프레게지아를 말
하며 지자체 아잠부지의 지역은 아직 광범하게 계속되고 있다.
까미노는 200m쯤 후 N3 도로를 떠나 좌측의 비포장 길을 따른다.
지자체 아잠부자의 프레게지아가 빌라 노바 다 하이냐(Vila Nova da Rainha)로 바뀌는데, 어렵게 찾은 진
입점에서 200여m를 동남행한다.
이 짧은 농로는 철길을 건넌 후 3km픞 철길과 평행으로 남서진한다.
프레게지아 빌라 노바 다 하이냐의 이스빠다날 역(Espadanal da Azambuja) 앞이며 아침에 떠난 알베르
게에서 4.4km 지점이다.
다시 3km를 지나면 빌라 노바 다 하이냐 역이다.
이른 아침의 까미노 7.4km 지점(아잠부자 역에서)이며 그 안에 아잠부자 역을 포함해 3개의 역(驛) 있다.
아잠부자는 수도 리스보아의 위성 도시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통근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따라서 열차역 간의 거리가 짧으며 역사 또한 자주 통과하게 된다.
아침 길 7.4km 중에 철로와 평행하는 6km가 지루한 일직선 길이다.
까미노에서 링반데룽(Ringwanderung/環狀彷徨)에 걸리거나 까미노를 이탈한 뻬레그리노스에게 해결사
는 인근의 교회다.
거의 모든 교회의 특징은 원(遠) 거리에서도 식별이 용이한 우뚝 솟은 첨탑이다.
대부분의 까미노는 어떤 형태로든 교회를 거쳐 가거나 교회가 까미노를 익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황하거나 방황하지 말고 교회로 가면 된다.
까미노 주변의 대대적 개발과 도시화로 인해 교회와 해결사의 등식이 깨지는 경우가 날로 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유지되고 있으니까.
뻬레그리노스 이전, 최초로 걸어간 사도 야고보의 여정은 선교가 사명이며 목적이었다.
". . . . . . .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 . . ."(신약성서 마태오 28:19,20)
사도 야고보는 유다를 제외한 11제자 중 최초로 선교길에 오른 제자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예수의 이 명을 이행하는 중이었으며 그 때의 선교 여행 길이 오늘날의 까미노가 되이었
으므로 당시에는 까미노는 물론, 교회가 있었을 리 없다.
AD 40년, 최초(Original)의 선교 여정(훗날 까미노) 이후 1밀레니엄(millennium)과 몇 세기가 지났다.
그 사이에 까미노와 교회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까미노와 뻬레그리노스의 관계처럼, 까미노와 교회 역시 영구 불변의 관계가 된 것이다.
까미노를 설정할 때 이미 존재하는 교회를 거쳐가도록 했거나, 까미노가 설정된 후 자연 발생적으로 교회가
생성되었거나 선후에 관계 없이 까미노에 존재하는 교회에는 특별한 사명이 주어져 있다.
막막한 사막의 오아시스 또는 망망대해의 등대에 비유되는 임무다.
그래서 까미노에서 교회는 해결사였다.
까미노와 철도
까미노(camino)는 보통의 길'(way, road)을 의미하는 스페인어다.
자체가 독자적 기능의 길이 아니고 이용하는 주체의 용도에 따라 품격과 위상이 달라짐을 의미하며 실체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물리적인 온갖 길들을 망라해서 활용(편승)하는 보통명사 길이다.
이 길(camino)을 사도 야고보가 선교 여행에 이용함으로서 성스러운 길이 되었으며 고유명사화 된 것이다.
중동지역의 정세 악화로 다수의 빨메로스(Palmeros/Palestina성지순례자)가 까미노로 선회하게 되었다.
까미노의 명성이 높아졌고 뻬레그리노스도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까미노(Camino)가 야고보의 선교 여행과 무관한 이베리아 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급증하는
뻬레그리노스는 대부분이 관광객 수준으로 전락함으로서 보통명사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 까미노.
까미노의 교회는 해결사의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아잠부자 철도노선(The Route from Entrecampos) 47km에서는 열차 역이 교회를
대치(代置)했으며 철로가 까미노를 안내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철길과 함께 하는 구간의 까미노는 예외 없이 철로를 닮은 긴 직선 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달리 의존할 길이 없는데 직선이라는 이유로 거부할 수 있는가.
울며 겨자먹기처럼 순응할 수 밖에.
그럼에도 까미노로 선정되는 순간, 그 길은 성부와 더불어, 성자와 더불어, 그리고 성령과 더불어 가고 오며
걷는 축복의 길이 된다.
뽀르뚜갈에서 철도 노선이 최초로 개통된 때와 구간은 1856년 10월 28일의 리스보아와 까헤가두(Carrega
do/지자체 Alenquer의 前 Freguesia) 사이 37km였단다.
뽀르뚜갈 철도의 효시는 그러하지만 대부분의 철도 노선은 20c 중후반에 개통되었다.
아잠부자 노선(47km)도 예외가 아니다.
아잠부자 역에서 빌라 노바 다 하이냐 역의 6km는 물론, 리스보아까지 철도와 병행하는 모든 구간이 곧은
알작선일 수 밖에 없다.
직선이어야 하는 철로의 특성 때문이며 각종 영농기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직선화다.
그러나 최초의 까미노는 분명코 이러지(직선) 않았을 것이다.
개발이 이뤄진 극히 일부지역 외에는 광대한 자연 녹지와 습지, 구릉지대 등 산야로 난 길이었을 것.
미세하지만 자연처럼, 지세(地勢)를 따라 상하로 기복이 있고 좌우로 꾸불거리기도 하는 길.
오늘날처럼 각종 공사장비를 동원해서 만들어진 길이 아니고 사람이 가장 덜 힘든 곳을 따라 걸었고 그래서
굳어진 길을 까미노가 차용했으며 그 길을 걷는 사람을 뻬레그리노(뻬레그리나)라고 부른 것이다.
빌라 노바 다 하이냐 역의 철로를 건너(footbridge?) 아베니다 가구 꼬띠뉴(Av.Gago Coutinho)를 따라서
서북진하는 까미노.
N3 도로를 횡단한 후 곧(350m지점) 좌회전, 마누엘 조아킹 알베스 디니스 길(R. Manuel Joaquim Alves
Dinis)을 따라 서남행한다.
오따 강(Rio Ota/좁은水路)을 건넌 후 이스뜨라다 다 바르제아(Estr. da Varzea)를 따라 조금 전에 건넜던
N3 도로를 도로 건넌 후 50m의 남동진에 이어 긴 남서진(농로)을 계속한다.
지자체가 아잠부자에서 알렌케르(Alenquer)로 바뀐 지역이며 프레게지아도 까헤가두(Carregado)로 바뀌
었다(2013년의 행정구역 개편에서 Carregado와 Cadafais가 통합되었단다)
A10 고속도로(Autoestrada do Ribatejo)와 입체 교차한 후에도 계속되는 남서진.
이스뜨라다 다 센뜨랄(Estr. da Central)을 따르기 500m쯤의 좌측(순방향에서는 우측)에 발전소(Central
Termoeléctrica do Ribatejo/Power station)와 변전소(Posto de Corte do Ribatejo REN/Electrical
substation) 가 있다.
EDP(Energias de Portugal/Electric utility company/뽀르뚜갈의 전기 생산 공급회사) 그룹이란다.
따구스 강가에 대형 연돌들이 서있는 것으로 보아 화력발전소임이 분명하다.
(이 발전소는 1968년 ~ 2012년 사이에 전기를 생산했으나 수명이 다되어 중단, 해체작업 중이란다)
까미노는 500m쯤을 더 남서진하여 따구스 강(좌측)에 합류하는 수로(rio Grane da Pipa) 위에 놓인 다리
를 건넌 후 N1-3 도로(Estr. da Vala/수로 길?)와 교차하는 십자로에서 좌회전, N1-3 도로를 따른다.
다리의 순 방향 입구에는 포만감을 느낄 만큼 까미노 마크(노랑, 파랑arrow)와 파띠마 안내판이 모여 있고
일명 까헤가두 도랑(Vala do Carregado)이며 알맞은 간격으로 벤치들이 있는 수로뚝은 걷기 편한 길이다.
이 지점까지, 광대한 농경지역을 관통하는 3.5km 이상의 직선 농로를 걸어온 직후라 더욱 편하고 안락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너무 짧은 거리인 것이 아쉽고 안타깝기는 했지만.
(순 방향 까미노 역시 긴 직선로 직전의 짧은 길이 아쉽기는 매한가지일 것)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물 없는 수도꼭지
동남쪽 N1-3(Estr. da Vala) 도로를 따라 800m.
지루한 남서진길(Estr. da Central)에서는 멀리 보이던 발전소와 변전소가 수로(rio Grane da Pipa) 건너
코앞으로 다가오는 지점.
수로를 경계로 하여 행정구역이 바뀐다.
지자체가 알렌케르에서 빌라 프랑까 지 시라(Vila Franca de Xira)로 바뀌고 프레게지아는 까헤가두(Car
regado)에서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에 까쇼에이라스(Castanheira do Ribatejo e Cachoeiras)로.
이 지점에서, 철길이 이 도로(N1-3)의 직잔을 가로막고 있다.
빌라 노바 다 하이냐 역에서 건넜던 아잠부자 노선 철로다.
잘 정비된 각종 도로와 철도가 태어나기 전에 친(親) 자연적으로 설정된 까미노를 현대의 도로들과 철도가
임의로 토막을 내고 우회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며, 여기는 바로 그 현장 중 하나다.
N1-3 도로를 이어가려면 마샤두 광장(Largo do Machado)으로 우회전해야 하는 지점의 좌측 노변.
잘 디자인된, 멋진 음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체질인데도 계속되는 직선로들이 갈증을 부추겼는가.
갈증을 느끼게 되는 참에 나타난 수도꼭지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파띠마 안내판과 파랑 화살표, 노랑 가리비와 노랑 화살표 등 순 역 까미노 마크들이 위에서 아래로 그려진
4각 기둥이 반가움을 배가시켜 주는 듯 했다.
그러나, 반가움은 순간이었을 뿐이다.
단수(斷水)로 인하여 무용지물로 전락한 수도꼭지에 너무 자주 실망하였기 때문인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신약 마태오21: 18, 19. 마르코11: 12, 13)가 퍼뜩 생각났다.
달랑 수도꼭지 하나가 달려 있을 뿐인 간이 음수대가 아니고 미적 감각이 포함된 상당한 규모의 음수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물심 양면의 부담이 적지 않았으련만 선하심 후하심인가.
뻬레그리노스는 물론 모든 길손을 위한 선행이라면 관리에도 지극 정성이어야 하련만.
입성한 예루살렘을 나와 성밖 베다니아에서 1박한 예수가 다시 입성하는 아침에 벌어진 일이다.
시장한 아침이 아니었다면(시장기가 없는 시간대였다면) 무화과나무를 찾아갔겠는가.
열매의 유무에 오뷸관언(吾不關焉)으로 일관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열매가 달리지 않았다 해서 저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므로 운수가 불길했던 이 나무에 동정 불금
이며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이 딱 맞는 사건이다.
무화과나무와 음수대.
물 없는 수도꼭지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다름 아니다.
얼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했던 예수가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무용지물, 수도꼭지를 보게 되었다면?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물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물이 필요하지 않은데 음수대에 관심이 가겠는가.
아마도, 무화과 나무와 달리 수수방관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까미노와 물은 불가분리의 관계다.
까미노 노변의 무수한 음수대가 이를 입증하며 열매가 없기 때문에 나무가 벌을 받았다면 물이 없기 때문에
수도꼭지, 곧 물 없는 까미노가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 해도,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보다 벌 받는 까미노는 한 순간이라도 상상마저도 하기 싫은 경우다.
Carregado(까헤가두)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는가
한데, 이 먹통 음수대에서 남서로 200m지점에 자리한 열차 역 이름이 '까헤가두'(Carregado-Alenquer)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뽀르뚜갈에서 최초로 개통한 철도 노선(37km)의 한쪽 끝(종착) 역 이름.
알렌케르 까헤가두는 이미 거쳐온 지역(지자체, 프레게지아)이고 이 지역의 지자체는 빌라 프랑까 지 시라,
프레게지아는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에 까쇼에이라스인데 왜 이럴까.
지자체 알렌케르 지역에 있어야 할 이름이 여기(지자체 빌라 프랑까 지 시라의 프레게지아인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에 까쇼에이라스에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 간에 또는 마을 간에 일기 쉬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
지명 외에도 터널과 교량 등 양측에 걸쳐 있는 시설들의 이름을 지을 때는 해당 위원회에서 충분히 토의한
후 결정하는데 이 역 이름도 그런 과정을 거쳤을까.
어떤 숨겨진 비밀이 있기에 이웃 교구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일까.
그 교구에서는 왜 잠잠하고 있을까.
히바떼주(Ribatejo)는 1936년에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가 40년 만인 1976년에 해체된 뽀르뚜갈의 중량급
쁘로빈시아(provincia/州)였다.
뽀르뚜갈에서 가장 기름진 농경지 중 일부가 포함되어 있고 리스보아(Distrito de Lisboa), 뽀르딸레그리
(Distrito de Portalegre)와 산따렝(Distrto de Santarem) 등 지역의 주요 지자체들을 거느렸던 주다.
당시에는 지자체와 소속 프레게지아의 개념이 오늘날처럼 세분화 되지 않고 주(州) 단위의 광역개념이었기
때문에 타(他) 지자체의 지명을 차용하는 일이 더러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본다.
순리에 어긋나는 까헤가두 역 이름도 그런 연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까미노는 자그마한 광장(Largo do Machado)을 지나 쳘도와 평행하는 이스따상길(R. da Estação) 200m
지점의 까헤가두 역(Carregado) 직전에서 고가 육교로 철길을 건넌 후 좌측의 N1-3 도로에 복귀한다.
아마도, 철도 때문에 단절된 N1-3 도로의 연결을 위한 우회 고가교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까헤가두 역은 1856년에 개통된 뽀르뚜갈 최초의 철도 구간의 한쪽 끝 역이다.
N1-3 도로(일명 Rua Prudêncio Duarte Correia)에 복귀한 까미노.
이 도로 따라 남동진하기 500m에서 90도로 우회전한 후, 까르발류 히베이루 에 페헤이라 길(R. Carvalho
Ribeiro e Ferreira) 500m를 서남행하여 들판의 로터리에 이른다.
허허한 농경지에 아베니다(avenida/대로)를 비롯해 여러 직선로와 로터리가 있음은 무얼 의미하는가.
당국자들만 알고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지대에 놀라운 개발이 미구에 올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허허벌판에 대형 신작로가 들어서면 일대의 지가(地價)가 수직 상승하지 않은가.
누누이 말해온대로 마을과 길의 관계가 완전히 전도된 상테다.
예전에는 취락의 형성이 우선이었다면 지금은 길이 우선이다.
사람이 모여들고 마을이 형성되면 생활의 편리성 위주의 길을 만들게 되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길을 보면
그 지역의 장래성을 알고 비전을 점칠수 있으니까.
로터리에서 에마우스 대로(Ave. do Emáus)를 따라 500m쯤 서남행을 계속하는 까미노.
조금 전에 건넜던 철로와 나란히 남서진하기 1.7km에 자리한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역(Castanheira
do Ribatejo)을 지나 철로(아잠부자 선) 좌측을 따라 철도와 병행을 계속한다.
까헤가두 역에서 2km(까미노는 2.7km)가 되는 이 역은 지자체 빌라 프랑까 지 시라의 여섯개 프레게지아
중 하나인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에 까쇼에이라스에 있는 역이다.
이 역(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역)에서 0.8km인 이스뜨라다 두 뽈리고누 두스 알라무스(Estrada do Po
ligono dos Alamos) 고가로를 입체 교차한 후 100m 지점.
드디어, 1km 미만의 짧은 거리지만 순도 높은 까미노 앞이다.
들판의 토막난 수로, 심하지는 않아도 꾸불거리는 농로만으로도 오리지널(original)이 아님을 충분히 입증
하며 최초의 개발과정은 거쳤으나 소위 현대화에서 제외된 것만은 분명한 까미노다.
제외된 까닭은 알 길이 없으나, 그 때문에(낙후) 뻬레그리노스에게는 축복의 길로 남아있게 된 것아야 말로
아이러니(irony)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반도의 기수역과 이베리아 반도의 기수역
철로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병행하던 농로(1km)의 끝에서 프레게지아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에 까쇼
에이라스가 끝나고 지자체와 동명인 프레게지아 빌라 프랑까 지 시라(Vila Franca de Xira)가 시작된다.
지자체(Vila Franca de Xira) 전체의 면적이 318.19㎢인데 6개 중 1인 프레게지아(Vila Franca de Xira/
이하 VFX)의 면적이 212.86㎢다.
다른 5개 프레게지아를 합한 면적(105.33㎢)의 2배가 넘으며 전(全) 지자체의 3분의 2 이상이다.
인구는 지자체 전체가 137,659명인데 18,336명으로 13.32%에 불과하고.
지자체(6개 프레게지아 평균)의 인구밀도는 432.6명/㎢인데 이 단일 프레게지아는 86.14명/㎢로 전체 인구
밀도의 20% 미만(19.91%)이라 한가롭고 여유로우며 살기 좋은 소교구일 것이다.
주민 1인이 3.5평(11.6㎡)을 차지하고 있으니 부러울 수 밖에.
내가 살고 있는 북한산 자락, 우이동도 살기 좋은 곳으로 평가되고 있는 마을이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1,869명/㎢(면적 10.95㎢에 인구 20,465명)이다.
주민 1인당 0.16평으로 그 마을(VFX)의 4.57%에 불과하므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구밀도는 평균값이므로 다운타운의 사정은 다르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땅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늘 부러움
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6개 소교구(freguesias)로 구성된 지자체에서 동쪽 3분의 2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VFX(Freguesia)
에는 이베리아 반도 최장(1,038km)의 따구스 강이 북에서 남으로 풀(full) 관통하고 있다.
스페인의 중 북부에서 발원, 뽀르뚜갈의 대서양 하구인 리스보아 앞바다에 흘러듦으로서 지자체(Vila Fran
ca de Xira)와 주변 일대(옛 Ribatejo)에 기수역 염성 습원(汽水域鹽性濕原)이 형성되게 한 강이다.
이 지역 또한 유명 와인의 주산지임은 이미 언급하였거니와 특이한 경관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생산성이
높고 생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며 각광을 받게 되었단다.
우리나라에서도 강물이 바다에 흘러드는 곳, 민물이 짠물인 바닷물과 만나는 하구, 이른바 기수역(汽水域)
에서 생산되는 어종(長魚)의 인기가 높다.
이 지역(기수역)에서 자란 장어를 특히 풍천장어(風川長魚)라고 부른다.
장어 애호가들 간에 보통명사 풍천(風川)이 고유명사(지명)로 둔갑하여(豊川) 시비곡직을 가리느라 해프닝
(happening)이 벌어진 적도 있다.
'풍천'(風川)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인 기수역의 다른 호칭이며 '풍천장어'는 여기에서 자란 장어
일 뿐인데.
염성 습지가 한반도에서는 인기있는 건강식일 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도 한몫 톡톡히 하고 있는 어족의 주
서식지인데 반해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어족 보다 더 활성적인 고부가가치산업 지역이란다.
이 지역(Freguesia VFX)은 염성 습지식물 외에도 뽀르뚜갈 '또레이우'(toureio/鬪牛)의 생산 공급원이며
빠른 반사신경과 기동성으로 유명한 루지따누(Lusitano/競走馬)의 번식지로도 유명하고.
양측이 일치되는 것은 관광자원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는 점이라 할까.
선선히 길을 터줄까
까미노는 철로와 밀착했다가 약간 멀어지는 비포장 1.1km 후에 "가이베우스" 대로(Av."Gaibéus")에 진입,
N10 고가로(Pte. Mal Carmona)와 입체 교차하기 까지 다시 1.1km를 남하한다.
철로에서 멀어지다가 다가가는 가이베우스 대로에 이은 조세 마리우 쎄레주 길(Rua José Mário Cerejo)
을 남남서진하여 도착한 곳이 빌라 프랑까 지 시라 역(Estação Ferroviária de Vila Franca de Xira)이다.
까헤가두 역 ~ 까스따녜이라 두 히바떼주 역(2km)~ 빌라 프랑까 지 시라 역(4km)의 철도 거리는 6km지만
까미노 뽀르뚜게스는 7.3km다.
아잠부자선 철도와 따구스 강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빌라 프랑까 지 시라 역을 경유하는 까미노 뽀르뚜게스.
좌측의 따구스 강과 우측의 프레게지아 빌라 프랑까 지 시라의 다운타운 사이로 난 길임을 의미한다.
지자체와 프레게지아가 동명인 다운타운에 관심이 없다면 강안길을 따라서 한동안 서남행을 계속하면 되지
만 역을 중심으로 북동에서 남서로 이어지는 강안(江岸)이 선선히 길을 터줄까.
따구스 강안 일대(Praça Constantino Palha)가 심상하지 않은 정경이며 분위기다.
강안의 북에서 남으로 설치되어 있는 시설들(아래에 열거한)에서 원근의 관광객과 위락객을 불러 모을 만한
인력(引力)이 뿜어나오고 있다 할까.
빠르케 인판띨 II(Parque Infantil II/park).
꼬레뚜(Coreto/stage).
전 세계 도시의 빈 땅, 옥상, 버려진 건물을 번성하는 정원으로 바꾼 유명한 도시 정원사 알렉산드로 비딸레
(Alessandro Vitale/ italia의 건축가, 도시설계사, 녹색기업가/1991 ~ )의 도시정원(Urban Garden).
떼조시라(Tejoxira/boat rental service).
지아나 까쁘뚜레(Diana Capture/photographer).
자르징 무니시빨 꼰스딴띠누 빨랴(Jardim Municipal Constantino Palha/Garden) 등등 시설이이.
이에 더하여 이미 살펴본 대로 프레게지아 VFX는 지자체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다.
수도(Lisboa)권 지자체의 역사와 지리, 기후가 미치는 영향의 대부분이 담겨 있는 VFX를 모르쇠로 지나치
기가 용이한 일이 아닌데도 어번 가든(Urban Garden)의 햄버거(hamburger) 1개로 끝냈다.
입소문이 허인이 아닌데다 공복 상태로 20여km를 걸은 후라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맛 좋은 햄버거였
으며 시장기와 인력(引力)을 한꺼번에 쫓아내버린 듯 했다.
노회(老獪)한 뻬레그리노임을 과시했다 할까.
순역 방향 가릴 것 없이 뻬레그리노스가 이 비법을 공유하고 싶다면 적극 도와줄 것이다.
까미노에서 뻬레그리노스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문제들은 악마의 유혹으로 치부하면 해결의 길이 보인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예수의 대응(신약 마태오4:1~11)을 따르면 되니까.
"사탄아 물러가라.(Vete, Satanas(Spa./ Vai-te embora, Satanás(Port./ Get thee hence, Satan(Eng.)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하시지 않았느냐."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은 것 처럼 악마에게 여러 유형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대처하신 대로 하면.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