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이징팡(水井坊ㆍ수정방)은 요즘 한국 애주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급 중국술이다. 흔히 '양주'로 통하는 위스키 뺨치게 비싸고, 위스키만큼이나 가짜도 많다. 수이징팡은 중국집에서 싸게 마시는 '배갈(중국어로 고량주를 뜻하는 바이간얼(白干兒)의 변형)'처럼 백주(白酒ㆍ증류주)로 분류된다. 똑같은 백주인데 수십 배 더 비싼 이유는 뭘까.
지난 19일 중국 쓰촨성 청두에 있는 수이징팡 본사 겸 박물관에서 백주 시음회가 열렸다. 양조전문가 가오페이(高飛ㆍ44)씨는 수이징팡을 포함한 백주 8가지를 시음용으로 가지고 나왔다. "좋은 백주는 맑고 깨끗하지만 동시에 달고 두텁고 부드럽고 매끄럽죠. 영어로 하면 크리미(creamy)하달까요. 삼킨 다음에도 풍미가 오랫동안 입안에 여운으로 남습니다."
근로자들이 발효가 끝난 곡물을 퍼내고 있다. 이걸 밑술로 만들고 증류해 숙성시킨다. ‘우물이 많은 길’이라는 뜻의 수이징팡은 조니워커 위스키를 생산하는 다국적 주류 기업 디아지오(Diageo)에 2013년 인수됐다. /수이징팡 제공
수이징팡이나 마오타이(茅台), 우량예(五粮液) 등 유명 백주는 가짜가 많다. 가오 씨는 "싸구려 백주나 위조품은 에탄올(화학적으로 만든 알코올)에 인공 첨가물을 섞거나 백주 원액에 에탄올을 더해 양을 늘리는 불ㆍ편법을 쓴다"면서 "향이 없고 첨가물 맛만 난다면 가짜라고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이징팡 만드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양조장에서는 인부 셋이 목욕탕만 한 구덩이에서 걸쭉해 보이는 혼합물을 퍼내고 있었다. 가오페이는 "발효가 끝난 곡물을 퍼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백주는 곡물을 발효해 만든 밑술을 증류해 만든다. 우리 소주와 같다. 수수ㆍ쌀ㆍ보리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곡물을 사용한다. 수이징팡은 수수를 주재료로 하되 쌀ㆍ찹쌀ㆍ옥수수ㆍ보리를 더해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한다. 여기에 쌀겨를 섞은 뒤 진흙으로 덮어 발효시킨다. 발효가 끝나면 곡물을 퍼내 증류해 밑술을 만들고, 이 밑술을 증류하면 백주가 된다. 갓 만든 백주는 독하고 매워서 마시기 힘들다. 주교(酒窖)라고 부르는 커다란 술독에 담아 숙성시켜야 한다.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백주는 맛과 향이 부드럽고 깊어진다. 술독은 오래된 것일수록, 연속적으로 사용된 것일수록 좋다고 알려졌다.
수이징팡은 중국 술 중에서 역사가 매우 짧다. 지난 2000년 처음 출시됐으니 14년에 불과하다. 1998년 당시 수이징팡의 모기업이던 취안싱(全興)은 양조장 보수를 위해 땅을 팠다가 800년 전인 원대(元代)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양조장 유적을 찾아냈다. 청나라 때까지 술을 생산하던 이 양조장 곡물 발효 구덩이에는 놀랍게도 효모균이 살아 있었다. 이 효모균을 연구실로 가져다가 배양해 만든 술이 수이징팡이다. 그때까지 유명 백주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취안싱이 역사와 스토리를 덧입혀 새로운 명주로 만들어 낸 '마케팅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