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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책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책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한번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노트가 요새와는 달리 세로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종이가 발명되지 전까지는 노트의 한 줄이 곧 저런 형태를 띠었죠. 저런 노트 한 줄은 곧 대나무나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것을 죽간(竹簡)이라 하였고 나무로 만든 것은 목독(木牘)이라 하였죠. 이를 줄여서 간독(簡牘)이라 하는데 지금도 서간이니 간찰, 서독이니 하여 글(주로 서찰)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간독은 하나를 만들려면 대나무나 나무를 자르고 진을 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로 살청(殺靑) 또는 한간(汗簡)이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글씨를 쓰기 좋게 표면을 닦아야 했고... 그러나 이런 간독은 보관하는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 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가로로 이어서 끈으로 묶었습니다. 그것을 위(韋)라고 하였습니다. 위는 보들보들하게 무두질한 가죽끈이란 뜻인데 원래의 의미는 길에서 발자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어긋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가죽끈을 가지고 서로 어긋나지 않게 묶는 데 썼기 때문에 의미가 확장되어 가죽끈에서 가죽이란 뜻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만년에 『주역』을 읽느라 가죽끈이 세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의 고사는 유명하죠. 그런데 요즈음 그렇게 많은 간독이 발굴되어도 간을 엮은 끈이 가죽으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위자는 아마 세로 위(緯: 원래는 베틀에서 세로 방향으로 짜이게끔 넣는 씨줄)자와 통용해서 썼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곧 위자는 간독을 엮은 방향이 가로가 아니라 세로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저렇게 하나하나 글자가 쓰인 간이나 독을 엮으면 위의 모양이 됩니다. 언뜻 보기에 간독에 쓰인 글씨가 무질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연구 결과 간독 1쪽에 쓰인 글씨는 보통 30~40자 정도가 쓰였고 최대 50자까지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간독마다 들쭉날쭉하게 쓴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일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 선장본의 한 칸이 바로 보통 18~23줄로 되어 있으니 그런 전통이 쭉 이어져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이 지금의 선장본과 아주 비슷한 모양이라는 것을 척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완성된 책은 위와 같은 모습을 하였습니다. 요즘 중국에 가면 관광지와 공항의 면세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죽간서적입니다. 죽간의 값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구요. 이렇게 완성된 책은 보관하는 것이 가장 문제였습니다. 가장 좋기는 위의 사진처럼 둘둘 말아서 보관하는 것이죠. 이것을 권(卷)이라 하였습니다. 일설에는 권은 책의 다른 재료인 비단을 말아놓은 것이라고도 하고 간독을 말아놓은 것은 편(篇: 대 竹부임에 주의)이라고 한답니다. 이렇게 말아서 보관을 하면 좋긴 좋은데 내용이 길면 문제가 됩니다.『노자』처럼 5000자 정도에 그치는 책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사기』 같이 52만6500자나 되는 책은 하나의 두루마리, 곧 1권으로 만들기에는 문제가 많겠죠. 그래서 편폭이 긴 책은 여러 권으로 나누어 만들게 되었는데 요즘과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종이가 발명되면서 책 1권에 여러 권이 들어가게 될 정도로 기술이 발달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사기』를 예로 들면 중화서국판의 경우 130권이 10권으로 나누어 들어가는데 이를 130권 10책이라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한 2000책만 가지고 있으면 만권당이라고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 퇴계는 도산서당에 1500책 내외의 책을 보관하고도 만권당이라고 자처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간독 하나의 두께는 2~3mm, 폭은 0.5~1cm 정도입니다. 평균적으로 폭을 0.75로 잡고 1판인 20을 곱하고, 다시 50을 곱하면 대략 권당 750cm 정도의 길이가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권당 적게는 10~30개 많으면 40~50개 정도의 간독을 엮어서 하나의 두루마리, 곧 1권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옛날의 1권은 선장본 1권과는 큰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장본을 기준으로 하면 1판(板)에 20간이 들어가는 셈이니 옛날 1권은 많아야(50簡) 선장본 2판 반 정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든 책들은 위와 같이 서가에 보관을 하였는데 이는 영화 <영웅>에 나오는 조나라의 도서관 장면을 보면 잘 나오죠. 거기서는 이런 서가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장작을 쌓듯 가로세로로 엇갈리게 쌓아놓았죠. 한 권만 있으면 제목을 쓰지 않아도 내용을 알 것이고, 단층으로만 있으면 말아놓은 권(卷)의 겉(그러니까 내용을 쓴 반대쪽)에다 책 제목을 써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저렇게 여러 겹으로 쌓아놓을 경우에는 책의 제목을 쓴 표식을 중심부에 실로 엮어 밖으로 드리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첨(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말로는 찌라고 하고 추첨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글자입니다. 이렇게 간독을 끈으로 엮어서 책을 만든 한자가 「책 책」(冊)자인데 고문자에서는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책 책」(冊)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에서는 간독의 길이가 들쭉날쭉한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전에 와서는 좀 더 정제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쓰다가 틀렸거나 아니면 쓰여진 책에서 글자가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지워야 할 텐데 요즘처럼 좋은 종이에 지우개나 수정액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경우에는 해당 글자를 간독에서 깎아내어야 했습니다. 아래처럼 생긴 칼로 말입니다. 이 칼이 바로 서도(書刀)라고 하는 것인데 서기에 해당하는 말단 관리들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서도나 붓 같은 문방구를 늘 지니고 다니는 말단 관리들을 도필리(刀筆吏)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가로로 긴 헝겊 같은 데다가 붓과 간독, 서도 등을 함께 넣고 둘둘 말아서 휴대하였습니다. 이렇게 간독에서 절못된 글자를 깎아내는 형태의 글자가 다음의 「깎을 산」(刪)자입니다. 「깎을 산」(刪)자의 금문대전-소전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더이상 간독을 깎아내어 수정을 할 일이 없게 되면서 「깎을 산」(刪)자는 꼭 간독의 글자를 깎아내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고 어떤 사물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버린다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습니다. 산삭(刪削), 산거(刪去) 등과 같이 말입니다. 책 가운데는 중요도가 상당히 높은 책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요즘도 1회성으로 읽는 소설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곁에 두고 두고두고 참고를 하여야 할 책 같은 것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책들은 아주 소중해 다루어야 했죠. 두 손으로 공손하게 다루어야 했는데 바로 아래의 그림과 같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다음과 같겠죠? 아니면 일반 책들과 함께 서가에 꽂아놓지 않고 특별히 서안이나 받침대 같은 것을 만들어 늘 비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중요한 책을 한자로는 전(典)이라고 하였습니다. 훈은 「법」이라고 하는데법으로 여겨질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이렇듯 중요한 책들에는 모두 전(典)자를 써서 격을 높여 부르게 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예로는 경전(經典)이나 법전(法典), 고전(古典)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중요시한 유가의 경전(經典)에는 바로 13경(經)이 있지요. 「법 전」(典)자의 옛 자형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습니다. 「법 전」(典)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갑골문에서는 두 손이 간독을 엮은 책의 양 옆에 있는 형태입니다. 그러다가 금문부터는 손이 책의 밑으로 와서 책을 떠받치는 모양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책과 손 사이에는 받침대 같은 것도 표현이 되어 있고요. 그러다가 소전에 오면 책을 손으로 받치고 있다기보다는 궤안에 올려놓은 듯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典)자와 많이 가까워졌는데 갑골문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북경 신화서점 1층 입구에서 竹簡 을 300 위안 쯤에 팔고 있더군요.
고맙습니다.
여기는 일본 동경입니다. 동경에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기분이 좀 색다르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평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요. 1권은 늘어놓으면 보통 길이가 어느정도 될까요? 혹 아시는 자료가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장본으로 치면 한 권이 보통 50판 내외가 됩니다. 1판은 옛날 간(簡)으로 치면 20개가 들어가니 약 1000개 정도의 간이 되겠죠. 간 1쪽의 너비를 1cm 정도로 잡으면 10m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끈으로 묶으며 발생하는 조그만 틈새까지 생각한다면 10m+가 되지 않을까요?
빠른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tapas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두께는 2
3mm, 폭은 0.5
1cm 정도, 보통 한 개 당 30
40개의 문자를 썼으며 50개를 쓸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폭을 0.75로 잡고 1판인 20을 곱하고, 다시 50을 곱하면 
권당 750cm 정도의 길이가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적게는 10
30개 많으면 40
50개 정도(위의 두루마리도 헤아려보니 50개 정도네요)의 간독을 엮어서 하나의 두루마리, 곧 1권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옛날의 1권은 나중에 선장본 1권과는 큰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장본을 기준으로 하면 1판(板)에 20간이 들어가는 셈이니 옛날 1권은 많아야(50簡) 선장본 2판 반 정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잘 읽고 보았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세번째 화보를 보면 내용은 '손자병법'인데 '乾隆御書`라 새겨져 있으니
1)건륭제 때 제작된 것인지요
2)淸代에도 병서를 목간으로 제작하였나요
청대에도 제작을 한 것인지 건륭제가 직접 쓴 것인 지는 모르겠지만(아마 그럴 가능성은 0%쪽으로 훨씬 가깝겠지만) 이건 관광용품으로 제작 판매하는 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공항 면세점에 가도 유명 경서 등은 이렇게 죽간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이 많습니다.
네


이왕이면 책으로 출간하시면 어떨까요
@에코 잠재적 소비자 5~6명을 확보해둔 셈이네요. 부지런히 자료 모으고 계속 올려서 어느 정도 양이 쌓이도록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