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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산행기 (설머치고개~감악산 유격장~임꺽정봉~감악산 정상~운계능선~약수터휴게소)
□ 산행일시/ 2012년 03월 03일 토요일 맑음
□ 참가인원/ 나 홀로
□ 산행진행상황
08시 35분 : 파주집 출발
08시 55분 : 금촌역 앞
09시 57분 : 적성터미널
10시 25분 : 설머치고개/ 산행출발
11시 25분 : 비포장 임도
11시 30분 : 감악산 유격장
12시 18분 : 540봉
12시 28분 : 장군봉(620m)
12시 40분 : 임꺽정봉(670m)
12시 57분 : 감악산 정상(675m)
13시 24분 : 까치봉(560m)
13시 58분 : 쌍소나무(440m)
13시 08분 : 안부(만남의 숲 갈림길)
14시 45분 : 감악산휴게소/ 산행종료
15시 20분 : 적성터미널
16시 22분 : 금촌역 앞
16시 40분 : 파주집 도착
(총 산행시간/ 4시간 20분)
□ 산행개요
감악산(紺岳山)
감악산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연천군 전곡읍, 양주시 남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이 산은 경기도의 화악산, 관악산, 운악산, 송악산과 더불어 경기5악에 속하는 명산이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팔방으로 탁 트인 시원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데...
북동쪽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임진강의 모습이 가까운 거리에 조망되고
서쪽방향으로 북한지역에 속한 개성의 송악산과 그 앞쪽으로 정상에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파평산과
동쪽으로는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분기한 감악지맥 산줄기의 마차산의 모습이
간패고개를 지나서 보이고 소요산과 경기 제1봉인 화악산의 모습등이 시원하게 조망이 되고
남쪽 방향으로는 불곡산과 도봉산, 북한산의 모습이 조망되고 있다.
감악산은 예로부터 남북교통 요충지로 삼국시대 이래로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감악산 아래 적성면 구읍3리 임진강변에 흙으로 쌓은 칠중성(七重城)이 길게 전개되어 있었다.
6.25 전쟁때에는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던 영군군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와
제170 경박격포대대가 1952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이 산자락 아래 설마리에서 전투를 벌여 거의 전멸되기 직전까지 이르른 곳으로 유명하다.
감악산 정상에는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한 모양의 파주시 향토유적 제8호인 비석이 설치되어있다.
세종신록질지에 설인귀 비석이라 기록하고있는 이 비석은 설인귀 옛빗돌(일명 비뜰대왕비)이다.
고려 현종5년(1014년) 거란군이 이르러 올려다 보이는 이 비석을 비롯한 신사(神祠) 건물과 깃발등을 보고
군사들이나 말이 움직이는 줄 알고 두려워 전진하지 못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특히 이 감악산 일대의 적성면과 연천군 일대는 젊은시절 논산 훈련소에서 6주간의 신병교육을 마치고
이곳 감악산과 마차산 사이의 어유지리에서 1년간, 전곡지역에서 1년간을 복무하고,
마지막으로 연천군 군남면 일대에서 1년간의 군 생활로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제2의 고향같은 지역이다.
□ 산행지도
감악산 산행지도/ (설머치고개~감악산유격장~임꺽정봉~감악산~까치봉~440봉~감악산 휴게소)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산행사진
오늘 산행의 출발지 설머치고개
오늘은 모처럼 파주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경기 5악중의 한 산인 감악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지난달 16일 금남기맥을 다녀오고 그동안 직장문제와 이런저런 머리아픈 가정사등으로 지방산행을 할 수가 없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산인 감악산을 그동안 자주 오르지 못하여 며칠전부터 오늘은 이 산을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젊은시절 군 복무를 이 감악산 근처에서 3년간을 하였기 때문에 적성면과 연천군 일대는 여러가지 추억이 서린곳이다.
오늘 산행할 감악산은 지난 2008년 10월 21일 한북 감악지맥 두번째 구간을 이곳 설머치고개에서
출발하여 감악산을 지나서 한탄강 유원지에서 감악지맥을 마치면서 지났던 산으로
그날 이 감악산을 오르고는 아직까지 밟지 못한 산으로 가깝고도 먼 산인 느낌이 드는 산이다.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감악산 유격장을 거쳐서 임꺽정봉으로 올라선 후
다시 감악산 정상까지 오르는 감악지맥 능선 산줄기로 감악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감악산 정상에서 서쪽 방향으로 까치봉을 거쳐 쌍소나무가 있는 440봉에서 계속 운계능선으로 이어가서
감악산 충혼탑이 서 있는 감악산 휴게소로 내려서서 산행을 마치기로 계획을 하고 출발하였다.
설머치고개에서 비탈진 절개지를 막 올라서니 지난 2008년 10월 21일날 이곳을 지나며
감악지맥 두번째 구간 산행중에 걸어논 빛 바랜 코팅된 옛 무원마을의 표지기가
아직도 건재하여 주인을 반기고 있어서 그 옆에 새 표지기를 하나 추가로 걸어놓고 출발하였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서 뒤 돌아본 설머치고개와 뒤로 저 멀리 보이는 파평산의 모습
앞쪽으로 나무가지 사이로 특이한 형상의 바위암봉인 임꺽정봉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설머치고개에서 감악산의 제일 긴 능선답게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줄기
비포장 임도삼거리의 넓은 안부에 도착하고...
임도 안부삼거리에서 바라본 감악산 장군봉과 우측의 임꺽봉의 멋진 모습
비포장 임도로 잠시 이어가고...
감악산 유격장 가스실
군 복무시절 이곳 유격장에서 두번의 유격훈련을 받으며 추억의 저 가스실에
두번을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게나는 곳인데 전에는 검은색 페인트가 칠해져있었는데 색갈이 바뀌었다.
가스실에 들어가기전에 이 언덕 고개에서 낮은포복 높은포복을 하던 기억이...
540봉으로 오르기 직전의 검은 바위 가운데 흰 차돌이 박힌 특이한 모습
앞쪽으로 바위 골산의 모양을 잘 보여주는 장군봉의 모습
설머치고개에서 이어져온 감악지맥 산줄기의 모습
540봉에서 바라본 장군봉의 모습과 좌측의 감악산 정상부에 설치되어있는 통신탑이 보인다.
540봉에서 다시한번 뒤 돌아 바라본 지나온 감악지맥의 산줄기의 모습
감악지맥 능선 좌측에 신암저수지의 모습이 보인다.
540봉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저 멀리 정상에 공군부대가 주둔하고있는 파평산의 모습
앞쪽으로 장군봉 가기전 얼굴바위의 모습
감악산에는 최근에 설치한 예쁜 이정목이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잘 설치가 되어있다.
장군봉 오르기 직전에 감악산 통천문을 지나고...
뒤 돌아본 방금 지나온 540봉의 모습으로 두 번째 바라본 사진에는 적성면 소재지의 모습이 잘 보인다.
장군봉을 오르며 뒤 돌아 바라본 설머치고개에서 지나온 산줄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앞쪽으로 가야할 임꺽정봉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2008년도에 이곳을 지날때 저 나무계단이 없었는데 그 뒤로 설치한듯하다.
정상표지목과 감악산 등산안내도가 설치되어있는 해발고도 620m의 장군봉 정상
감악산 장군봉 정상에서 서쪽방향으로 바라본 저 멀리 파평산의 모습
장군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임꺽정봉의 모습
임꺽정(林巨正) 봉우리
임꺽정봉은 양주의 불곡산 아래에 임꺽정 생가(生家) 바로 위의 봉우리도 임꺽정봉인데
이곳 감악산의 임꺽정봉도 불곡산의 임꺽정봉과 형상이 비슷하다.
이번에 산행기를 작성하면서 임꺽정에 관하여 인터넷에서 아래와 같이 조사를 하여 보았다.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의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을 하였다.
태어난 시기는 알수없고 1562년 명종17년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조선중기의 의적(義賊)이다.
뜻을 같이하는 농민 수십명과 그 가족으로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도적활동을 하였다.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지혜로웠던 그는 1559년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혀서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 토호의 집을 습격하여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을 빼앗았다.
서울, 평양간 도로등 주요 교통로를 장악하여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토지세, 공물, 진상물등을 탈취하였다.
관군의 방비와 토벌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를 확장하면서,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 지배층이 여러차례 관군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하였으나,
임꺽정은 이를 번번히 물리치고 1559년에는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을 잡아죽였다.
1560년 가을에는 봉산, 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하였으나,
그 해 11월에 참모인 서림이 체포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체포한 서림에게서 활동의 계획과 비밀을 알아내고 선전관 정수익과 봉산, 평산의 관군으로 하여금
토벌하도록 하였으나 뛰어난 전투력과 농민, 이서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 세력을 보존하였다.
당시 농민, 이서의 도움은 임꺽정의 부대가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어 출몰을 예측할 수 없어 잡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1561년에 들어서 황해도, 경기도 북부, 평안도, 강원도 지역에 출몰하여 활동하였으나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어져서 임꺽정의 형인 가도치가 체포되는 등 세력이 점차 위축되었다.
토포사 남치근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으로부터 도망을 하던 중
마침내 1562년 1월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 당하여 15일 만에 죽임을 당하였다.
임꺽정의 의적활동은 연산군 이 후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체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의 일환이며 그 집약점이었다.
이 시기 농민의 저항은, 당시의 사관이 말하기를
"백성들이 도적이 되는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품과 추위로 그런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 라고 기록한 바와같이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되어
지배층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임꺽정 집단의 오랜 활동은
정부, 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피지배층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지배층은 그를 흉악 무도한 도적이라고 하였고,
민중들은 의적으로 영웅시 하였고 그 뒤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소설로 그려졌다.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조금전에 지나온 장군봉과 장군봉 뒤로 적성면 일대와 서쪽 저멀리 파평산의 모습이 보인다.
감악산 정상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감악산 정상 가기전 100m 지점에 세워진 이정목
고릴라 바위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이고...
방금 지나온 임꺽정봉을 잠시 뒤 돌아보고...
오늘 출발점인 설머치고개에서 이어져온 한북 감악지맥의 산줄기가
좌측의 감악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간패고개를 지나서 마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시원한 모습이 보인다.
감악산(紺岳山)
감악산은 예로부터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하여 감악,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리었다.
파주시 적성면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지만
일단 정상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면 암봉과 낭떠러지가 도처에 널려있다.
가평의 화악산(1468m), 포천의 운악산(935.7m), 과천의 관악산(629m), 그리고 개성의 송악산과
더불어 이 적성의 감악산(675m)이 경기 5악의 한 산으로 손꼽혀 왔다.
감악산은 서울과 개성의 중간지점에 솟아있으며 맑은날에는 개성의 송악산과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 양주의 불곡산, 동두천의 소요산이 조망된다.
정상에는 향토유적 8호로 지정된 삼국시대 높이 170cm인 고비(古碑)가 서 있는데
일명 "빗돌대왕비" 또는 "설인귀비"라고도 한다.
이 비석의 글자는 마멸되어 보이지 않는데 그 생김새가 북한산의 진흥왕순수비와 비슷하여
감악산의 고비도 진흥왕순수비라는 설도있고,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설인귀비라는 설도있다.
임꺽봉 바로 아래에는 의적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다는 임꺽정굴도 있다.
6.25전쟁때의 치열한 격전지로서 설마계곡 입구에 영국군 참전기념비가 서 있을 정도로
전쟁의 아픔이 서린곳으로서 1980년대 초 까지도 등반이 금지되었었다.
감악산 정상에서 동쪽방향으로 이어지는 한북 감악지맥의 마차산이 건너편에 보인다.
감악산 정상에서 운계능선쪽으로 내려서려는데 흑염소 두 마리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이곳에 보인다.
감악산에서 운계능선쪽으로 막 내려서면 모습이 보이는 팔각정자
감악산 정상의 상징물같이 보이는 통신탑
감악산휴게소로 내려서는 운계능선 산줄기의 모습으로 앞쪽에 소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는 까치봉이 보인다.
해발고도 560m의 까치봉이 가까이 다가오고...
까치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운계능선의 산줄기
중앙지점이 쌍소나무가있는 440봉인데 이곳에서 우측능선은 선고개로 향하는 선고개능선이고
좌측의 운계능선으로 조금 내려서면 안부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은 법륜사로 내려서는 법류사계곡이고
직진을 하면 계속 운계능선으로 이어져서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 좌측의 약수터휴게소와 우측의 감악산 휴게소로 방향이 갈라진다.
운계능선상의 서낭당의 모습이 보이고, 이정목도 보이고...
능선이 좌, 우로 갈라지는 440봉의 쌍소나무
이 쌍소나무가 낙동정맥의 12지소나무같이 특이한 모양인가 하고 잔뜩 기대를 하였더니
실제 쌍소나무는 별로 표지목까지 세울정도는 아닌듯싶다.
119구급함이 능선상에 보이고...
쌍소나무에서 잠시 내려온 임도삼거리
좌측으로 내려서면 법륜사 계곡 방향이고, 직진은 운계능선으로 감악산 휴게소 방향이다.
운계능선이 그 맥을 다 하고 있어서 감악산 휴게소 가까움을 알려주는 이정목
앞쪽에 도로확장공사로 산을 절개하여 우회하라는 안내문
적성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2차선 349번 지방도로가 4차선 정도의 고가도로로 확장되는것 같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종착지 감악산 휴게소에 도착하고...
감악산 충혼탑
감악산휴게소에서 적성터미널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이곳에 아래의 충혼탑이 서 있었다.
충혼탑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여기는 감악산 결사대 순국영령 삼십팔위의 충혼이 서린곳
붉은 괴뢰의 무리들이 아름다운 이 강산 조국을 짓밟고
우리들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을 받던 육이오때 민주 한국을 지키고자 떨쳐나선
이 고장 많은 우국 청장년들과
일부 잔류 장병이 영봉 감악을 중심으로 함께 뭉쳐 죽엄을 맹세하고
피흘려 반공 유격전으로 구국활동 펼치다 젊음을 바쳤으니
아! 그 고귀한 희생 거룩한 정신
빛나는 이름
이 나라와 함께 저 뫼와 함께 영원히 푸르리라
무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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