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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수행의식에 관한 일고
--예불의식, 수계의식, 공양의식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불교는 석가모니의 敎學思想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다. 즉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은 진리와 그것에 근거한 교리사상과 신앙체계의 정립을 통해 성립한 종교다. 따라서 불교의 신앙체계와 이에 따른 종교의례는 절대적 권능을 가진 신에게 귀의할 것을 요구하는 다른 종교의 그것과 바탕부터가 다르다.
신을 중심으로 성립된 종교의 경우 인간은 신에 예속되는 지배와 복종의 二元的 관계에 놓인다. 이 때 인간은 신의 세계와 交通하기 위해 종교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有神宗敎의 종교의식이다. 이에 비해 불교의 경우는 처음부터 신을 상정하지 않고 '진리에 대한 자각'만을 강조한다. 따라서 유신종교와 같은 '신과 인간을 교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종교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 사상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오랜 역사동안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접촉하면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종교의례를 발전시켜 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의 종교의례는 석가모니 생존 당시 매우 소박한 형태로 시작해 점점 복잡한 형식과 절차가 부가되면서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2600년 동안 세계각국으로 전파된 불교는 각각의 민족적 문화적 특성에 따른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리랑카를 비롯해 미얀마, 타이, 라오스, 캄보디아로 전파된 남방불교는 上座部佛敎라는 사상체계와 이에 따른 종교의례를 확립해 갔다. 한편 중국 한국 월남 일본 등으로 전파된 이른바 大乘佛敎와 네팔, 티벳, 몽고 등에서 발전한 密敎 등도 지역적 문화적 특성에 따른 독특한 종교의
례를 성립시켰다. 이 중에는 불교의 종교적 본질에 적합한 의례가 있는가 하면 지역적 특성에 따라 민속과 습합된 의례도 발견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전래된 불교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 들어온 대승불교다. 대승불교는 1세기경 인도에서 발생한 새로운 불교이지만 그 융성은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나라 불교는 중국에서 발달한 대승불교를 도입했기 때문에 의례에서도 중국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불교의식이 중국의 그것과 형식이나 내용이 전적으로 유사한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우리 나라 불교의례는 민족적 문화적 특성과 同化 또는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 불교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면이 생겨났다. 여기서 '독특하다'는 것은 불교라는 종교적 본질을 벗어난 어떤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불교적 종교의례의 보편성에 바탕하되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제한적 의미로서다.
우리 나라 불교의례를 살펴보면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자기수행에 중점을 두는 自修儀禮이고 또 하나는 교화활동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化他儀禮가 그것이다. 자수의례에는 주로 스님들이 일상적 수행생활을 보다 절도 있고 경건하게 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석예불이라든가 포살과 자자, 수계의식과 공양의식 등이 꼽힌다. 이에 비해 화타의례는 교화활동의 방편으로 행하는 축원의례나 천도의례가 중심이 된다. 상단불공을 비롯한 각단불공은 축원의례에 속하고 영산재와 같은 재의식은 천도의례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이러한 우리 나라 불교의례 가운데 불교의 종교적 특성을 가장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수행의례(自修儀禮)를 현장조사와 문헌검토를 통해 정리하고자 한다.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은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의식인 예불과, 초기교단 이래 가장 엄숙한 의식인 수계의례, 그리고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양의례 등이다. 이들 수행의례는 일반대중의 접근이 어려워 지금까지 그 내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본고는 불교수행의례의 구성과 진행과정, 의미 등을 고찰함으로써 불교가 의식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종교적 목표가 어떤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2. 불교의례의 성립과 발전
불교는 원래 재래종교의 주술주의나 제례주의를 비판하면서 출발한 종교다. 브라흐만의 절대적 권능에 의탁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거나 주술을 행하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는 것이 부처님의 지적이다. 따라서 인간이 의지할 것은 초월적 신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다. 잡아함 제24권 <순타경>은 불교의 이러한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경은 부처님의 장로제자 사리불이 먼저 열반한 뒤에 아난다와의 대화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아난다야. 나도 머지 않아 입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다야. 너는 알아야 한다. 마땅히 너희들은 스스로를 의지하고 스스로를 피난처로 삼으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피난처로 삼으라."
비슷한 가르침은 부처님이 열반에 들면서 남긴 유훈에서도 나타난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自歸依 法歸依)
자신을 등불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自燈明 法燈明)
이러한 교리는 곧 진리가 아니면 수행자가 머리를 숙이고 귀의하거나 의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는 선언에 다름아니다. 실제로 부처님은 계율을 통해서 출가수행자가 주술이나 제례를 집전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불교의 출가수행자들의 신분적 성격이 인간과 신 사이의 교통을 매개하는 司祭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날 불교가 세속화 타락화의 길을 걸으며 오히려 제례주의와 주술주의를 도입하고, 승려는 의식의 대행자로서 사제적 성격을 갖게된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제례주의를 엄격히 배제한 불교에서 최초로 의식이 생겨난 것은 기복적 주술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출가자들의 절도있는 수행생활을 위해서였다. 즉 불교가 종교로서 틀을 갖춰 나가면서 부처님과 진리에 귀의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최소한 입문하는 사람에게 절차와 의식을 치루도록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 입문의식은 나중에 출가교단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된다. 하지만 그 초기적 형태는 매우 소박한 것이었다.
<四分律>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대상으로 최초의 설법을 하자 이 가운데 카운디냐( 陳如)라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처님 곁에서 깨끗한 범행을 닦는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승락했다.
"잘 오너라. 비구야. 내가 가르친 진리 안에서 마음껏 범행을 닦아 괴로움의 근원을 없애라."
이같은 절차는 석가모니에게 직접 와서 제자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공식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사분율>의 수계건도에 나타나는 여러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소박한 입문절차는 교단이 발전하고 확대되는 과정에서 점차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이 형식은 나중에 다시 의례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사분율> 수계건도의 기사다. 이에 따르면 불교가 널리 퍼져나가자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外地에서 출가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들의 입문식에 부처님이 직접 임석하지 못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다짐을 받도록 했다.
"대중스님들은 들으시오. 나는 이제부터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도를 배우려 합니다. 세존은 나의 스승이며 여래이며 등정각자입니다."
일종의 신앙고백 성격을 갖는 이 다짐은 세 번을 되풀이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 소박한 신앙고백은 뒷날 불교의식의 가장 중요한 골간을 이루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그리고 가르침을 따르는 교단(僧)에 대한 귀의와 복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오랜 역사동안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수많은 불교의식이 생겨났지만 그 기본은 어디까지나 이 삼귀의에 있었다. 만약 불교의식 가운데 '삼귀의'라는 골격이 빠진다면 이는 불교의식이라 할 수 없을 정도다.
부처님 당시 초기교단은 이밖에도 안거 기간중에 보름에 한번씩 하는 포살과 안거가 끝나는 날 하는 자자와 같은 수행의식이 만들어졌다. 포살은 범어 uposadha를 옮긴 말로 수행자들이 보름에 한번씩 모여 부처님이 가르친 戒目을 외우는 수행의식이다. 이 의식은 지금도 우리나라의 큰 사찰에서는 안거기간중 보름에 한번씩 절차에 따라 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자자는 안거가 끝나는 날 대중들이 함께 모여 잘못을 고백하는 행사다. 이 때의 고백순서는 나이가 많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부터 대중 앞에 나오도록 되어 있다. 한 경전은 어느해 여름 녹자모강당에서 안거를 마친 부처님도 이 행사에 참석해 5백명의 제자 앞에서 당신에게 잘못이 있으면 지적해주기를 요청하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포살과 자자는 수행자들의 도덕적 청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된 의식이다. 신과 같은 존재에 의한 타율적 규제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자업자득의 인과론을 가르치는 불교로서는 일체의 행위를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장치를 가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초기불교는 이러한 제도와 수행의식을 통해 스스로를 정화하고 도덕적인 종교로 발전해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생각된다.
한편 초기불교 시절 만들어진 제도와 의례를 형식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오늘날처럼 복잡한 양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의식의 종류도 수계나 포살, 자자와 같은 몇가지 뿐이었고 그 성격은 모두 수행의식에 속하는 것이 전부였다. 부처님에 대한 공양을 뜻하는 '佛供'은 이 시기에 아직 의례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 오늘날 他行儀禮의 대종을 이루고 있는 축원의식이나 천도의식은 아직 단초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한 불교의식은 불교가 제도종교가 되어가면서 교단제도의 정비와 함께 점차 형식화 다양화의 길로 치닫게 된다. 佛滅後 스승인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은 여러 가지 의식을 만들어냈을 것은 상상이 어렵지 않다. 특히 불교가 각지에 전파되면서 다른 종교와 문화와의 교섭과정에서 생긴 변화는 초기교단의 불교의식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초기불교시대로부터 시간적 공간적 간격이 크면 클수록 교리와 사상은 변형과 왜곡이 생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상응해 각종 의례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불교의식의 변화와 발전이 불가피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儀式이란 불변의 어떤 모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心像을 표현하는 문화적 형식이라 할 때, 형식의 변화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새로운 형식 또는 양식에 담아내는 의식의 내용이 과연 불교의 종교적 진실을 담보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불교의 수행의식 구성과 진행과정을 검토하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3. 불교수행의례의 구성과 진행과정
1) 예불의식
예불은 우리 나라 불교의 대표적 수행의식으로 꼽힌다. 교조인 부처님에 대한 귀의와 경례를 표하는 이 의식은 모든 사찰에서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모든 승려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역사적으로 이 예불의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추측키로는 부처님이 입멸 뒤 재가불자들이 불탑을 참배하면서부터 예불의식이 시작되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불탑참배의 공덕을 강조한 <右 佛塔功德經>이 대승불교 초기에 찬술된 것으로 본다면 늦어도 불멸 350년경 이후부터는 '예불'이란 개념이 불교도들 사이에 정착돼가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이 의식은 불교가 전파된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행해져 왔다. 다만 나라마다 의식의 절차나 방법, 그리고 의식문의 내용과 구성은 사상적 문화적 차이를 반영해 약간씩 차이가 있다.
우리 나라의 예불의식은 대체로 도량송에서 시작해 종송과 타고명종, 예경과 발원, 반야심경으 순서로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은 절차가 언제부터 정착되었는가는 자세하게 상고할만한 자료가 없다. 의식절차를 집성해놓은 <梵音集>을 비롯한 몇몇 자료를 검토하면 현재의 의식은 대체로 조선중기 이후에 확립된 것으로 추측되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현행 예불의식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합천 해인사의 아침예불을 중심으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가) 道場誦---도량송은 도량을 청정케 하기 위한 의례다. 스님 한분이 새벽 4시경 먼저 일어나 목탁에 맞춰 도량송을 외우며 경내를 돈다. 목탁은 처음부터 크게 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로 시작해서 큰소리가 되도록 했다가 큰소리에서 작은 소리로 내려온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한 뒤 두글자에 한번씩 치는 '一字木鐸'으로 도량을 돈다.도량송은 우선 도량송을 외우는 사람의 입을 깨끗하게 하는 '淨口業眞言'을 한 뒤 '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과 '開法藏眞言'을 한다. 그 다음에는 다라니나 경을 외워 도량이 불보살의 위신력으로 깨끗하게 정화되기를 바라고 '四方讚'과 '道場讚'으로 도량이 정화되었음을 찬탄한다.
동쪽에 물을 뿌려 도량을 청결케 하고 (一灑東方潔道場)
남쪽에 물을 뿌려 청량함을 얻으며 (二灑南方得淸凉)
서쪽에 물을 뿌려 정토를 구족했고 (三灑西方俱淨土)
북쪽에 물을 뿌려 길이 편안하리라 (四灑北方永安康) <사방찬>
이 게송에서 보듯 도량송의 목적은 도량을 종교적인 힘으로 정화하는 것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라니나 경을 외우게 되는데 이는 사찰마다 각각 다르다. 어떤 절에서는 <四大呪>나 <千手陀羅尼>를 외우기도 하고 <法性偈>나 <般若心經> 또는 <華嚴經略讚偈>나 <發心修行章>을 외우기도 한다.
(나) 鍾誦---종송은 아침저녁 예불을 하기전에 작은 종을 치면서 하는 염불을 말한다. 아침 예불 때는 도량송이 끝난 뒤 진행되며 저녁에는 바로 종을 치면서 진행한다. 종송의 내용적 특성은 지옥중생의 구제에 있다.
원컨대 이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하여 (願此鍾聲遍法界)
철위산의 어둠이 다 밝아지기를. (鐵圍幽暗悉皆明)
악도에서 고통받는 중생 다 건져서 (三途離苦破刀山)
일체중생이 정각을 성취케 하리라. (一切衆生成正覺) <아침종송>
이 종소리 듣고 번뇌를 끊으시라. (聞鍾聲煩惱斷)
지혜를 길러 보리심을 발하시라. (智慧長菩提生)
지옥을 여의고 삼계에서 벗어나시라. (離地獄出三界)
성불하시고 중생을 제도하시라. (願成佛度衆生) <저녁종송>
아침종송은 시작하기 전에 도량석을 할 때처럼 작은 소리에서 시작해 큰 소리로 오르내림을 세 번 반복한 뒤 시작된다. '원차종성...'으로 시작한 아침종송은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찬탄하는 장엄염불로 이어진다. 이에 비해 저녁종송은 종송이 끝나면 바로 명고타종 순서로 넘어간다. 그런데 요즘 사찰에서 종송 뒤에 하는 장엄염불은 <釋門儀範>에 소개돼 있는 아침송주의 내용 그대로다. 그리고 도량송 때 하는 정구업진언과 다라니들은 저녁송주에 해당한다. 다시말해 아침송주와 저녁송주를 도량송과 종송에서 한꺼번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왜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 打鼓鳴鍾---종송이 끝나면 범종과 법고, 목어와 운판을 치는 순서가 이어진다. 이 때는 특별한 염불이 없다. 범종은 지옥중생, 법고는 축생, 목어는 수중중생, 운판은 날짐승들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자비가 사람뿐만이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미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물은 법고를 시작으로 목어 운판 범종 순으로 울린다. 법고를 칠 때는 넓은 鼓腹을 마음심(心)자를 쓰는 순서로 돌아가며 한다. 범종은 아침에 28번, 저녁에 33번 울린다.
(라) 禮敬---예불의식의 본체라 할 수 있는 예경은 모든 대중이 큰법당에 모여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을 합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경은 아침에는 다게례, 저녁에는 오분향례로 하는 것이 전통이다. 다게례는 차를 올리고 하는 의식이고 오분향례는 향을 피우고 하는 의식이다.
저희들이 이제 깨끗한 물로 (我今淸淨水)
감로의 차를 만들어 (變爲甘露茶)
불법승 삼보에 봉헌하오니 (奉獻三寶前)
원컨대 어여삐 받아 주소서 (願垂哀納受) <다게례>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것은 (戒香 定香 慧香)
부처님의 다섯가지 미묘향기 (解脫香 解脫知見香)
광명의 구름으로 법계를 채워서 (光明雲臺 周遍法界)
시방세계 삼보님께 공양합니다.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오분향례>
秉法僧이 다게(또는 오분향)를 외우고 나면 대중들은 '목숨을 다바쳐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리옵니다(至心歸命禮)'로 시작되는 예경문을 합창한다. 이 예불은 <석문의범>에 따르면 '香水海禮' '小禮懺禮' '大禮懺禮' '七處九會禮' '四聖禮' 등이 소개돼 있다. 이 중 향수해례나 칠처구회례는 화엄종이나 선종사찰에서 행하던 예불이고, 사성례는 정토종 계통에서 행하던 예불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종파에 따른 구분이 없고 '七頂禮'라 하여 일곱 번 절하며 삼보에 귀의하는 예불이 일반화 돼있다. 다만 이 때에도 해당사찰의 특색에 따라 통도사는 佛舍利, 해인사는 大藏經, 송광사는 16國師 등을 예경 대상으로 추가하기도 한다.
한편 조석예불 시간에는 사찰내에 있는 극락전, 팔상전, 약사전, 용화전과 같은 부속전각에 대한 예불도 진행된다. 예불의 순서는 아침에는 대웅전부터 먼저 하고 각전은 나중에 하며, 저녁에는 각전에 먼저하고 대웅전은 나중에 예불을 올린다.
(라) 發願---예경이 끝나면 발원을 한다. 대개는 병법승이 대중을 대표해서 怡山然禪師의 발원문이나 懶翁和尙의 발원문을 읽는다. 내용은 어제까지의 게으름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해탈을 성취할 것이며 마침내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것이다.
(마) 般若心經---축원이 끝나면 신중단을 향애 반야심경을 외운다. 원래는 신중단을 향한 예경문이 따로 있지만 神衆은 三寶를 외호하는 무리이므로 귀의의 대상이 아니라 濟度의 대상이란 의미에서 경전을 읽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는 수행의례에서 교리에 위반되는 요소가 있으면 바로잡아가는 모습의 한 전형이라 생각된다. 신중단에 반야심경을 읽는 관행은 1954년 불교정화운동 이후의 일로 알려지고 있다.
2) 수계의식
수계의례는 불교교단이 종교로서의 제도를 갖춰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확립한 의식이다. 수계의례는 이미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출가자가 교단에 입문을 할 때 삼보에 귀의하는 입문식이었다. 즉 최초에는 부처님이 출가하려는 사람에게 '善來比丘야' 라고 부르면서 제자되기를 허락하면 그것으로 입문의 절차는 끝났다. 그러나 교단이 확장되면서 外地에서 부처님을 보지 못한 채 출가를 하려는 사람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가 있어야 했다. 이를 '三歸依戒'라 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간단하던 출가의식이 점점 복잡하게 제도화 형식화된 것은 불멸후 계율문제를 다룬 律藏을 정비하면서 부터였다고 생각된다. 불교의 계율은 부파불교시대 각부파들이 傳持해온 律藏에 따라 조금식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남성출가자인 비구는 250가지, 여성출가자인 비구니는 350가지가 있다. 이를 다 지키면 출가수행자의 자격을 구족한다고 해서 일명 '구족계'라고도 한다. 계율의 종류는 이밖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20세 이전의 미성년의 출가자가 지켜야 하는 사미(니)계, 비구니가 되기 전에 받는 식차마나니계, 그리고 모든 출가자가 모든 계율을 받기 전에 공통으로 받는 삼귀오계 등이 있다.
이러한 계율들은 교단제도가 정비되면서 엄숙한 '수계의식'으로 정착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계의식은 대체로 12개의 단락으로 구성돼 있다.
즉 擧香讚-請聖-請師-開導-辭謝君親-剃髮-懺悔-問難-歸依-宣說戒相-授着法衣-勸誡回向이 그것이다. 이를 조계종 계단위원회에서 발간한 <受戒儀範>과 1997년 가을 김천 직지사에서 있은 單一戒壇 수계식을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擧香讚---금강계단을 꾸미고 향화등촉을 공양한 뒤 수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법의와 발우를 들고 도열해 선다. 그런뒤 維那僧이 梵聲으로 '부처님은 서역에서 나셨고 교법은 동쪽으로 흘러왔네(佛生西域 敎法東流)'라고 거향찬을 한다.
(나) 請聖---청성은 글자 그대로 삼보에 해당하는 모든 성자를 초청하는 의식이다. 유나승이 수계자들을 대신해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일체제불과 대소승의 율장을 비롯한 모든 경전의 가르침, 그리고 계율을 전지해준 우파리존자를 비롯한 모든 율사와 선지식을 거명한다. 이 때 수계자들은 불보 법보 승보에 각각 3배씩 9배를 한다.
(다) 請師---수계자가 계를 설해줄 계사를 청하는 의식이다. 전계화상이 등단을 하면 수게자들은 먼저 3배를 한 뒤 長 合掌을 하고 이렇게 아뢴다.
"대덕스님께서는 일심으로 저희제자 아무개를 생각해주소서. 이제 대덕스님을 모시오니 원컨대 큰스님은 受戒本師가 되어주소서. 저희들은 큰스님을 의지해 계를 받기 원하옵니다. 慈愍故 慈愍故 大慈愍故"
(라) 開導---전계화상은 수계자들의 청을 받아들여 수계본사가 되어줄 것을 허락하는 순서다. 전계화상은 장궤합장을 한 수계자들에게 출가의 거룩함에 대해 말한 뒤 이로부터 모든 수계식을 주관한다.
(마) 辭謝君親---출가자는 三界의 스승이 되므로 수계를 하면 국왕이나 부모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 법도다. 따라서 수계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국왕과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각각 이별의 3배를 올린다. 이어서 삼보에 대해서도 출가를 허락해줄 것을 원하는 3배를 올린다.
(바) 剃髮---머리를 깎는 순서다. 깨끗한 물과 削刀를 계사에게 올리면 계사는 淨水를 수계자의 머리에 세 번 뿌리고 이렇게 읊는다.
보전의 주인공이 꿈만 꾸더니 (寶殿主人曾作夢)
무명초는 몇해를 무성랬던고 (無明草茂幾多年)
이제 금강보검으로 깍아버리니 (今向金剛鋒下落)
무한광명이 온세상을 비추네 (無限光明照大千)
(사) 懺悔---참회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물론이고 수많은 과거세 동안 지어온 모등 죄업을 참회하는 의식이다. 특히 이 순서에서는 수게자들이 참회의 뜻으로 燃臂를 한다. 연비는 기름먹인 무명심지를 팔뚝에 올려놓고 불을 붙여 태우는 의식이다. 수게의식이 감정으로는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계자는 연비하는 동안 '南無普賢菩薩'이나 참회진언을 외운다.
(아) 難問---계를 설하기 전에 다시한번 자격을 따져서 묻는 순서다. 즉 수게를 할 수 없는 13가지 중요한 과실을 범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16가지 가벼운 조건을 구비했는가 등이다. 13가지 조건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죽인 적이 있는가, 절에서 쫒겨날 만한 죄를 지은 적은 없는가 등이다. 이 질문에서 한가지 항목만이라도 해당되면 수계자격은 취소된다. 16가지 가벼운 조건은 법복과 발우는 준비했는가, 스승을 정하고 법명은 받았는가 등을 묻는 것이다.
(자) 歸依竭磨---삼보에 귀의하고 수계자의 스승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밝히는 순서다. 수계자는 다음과 같은 귀의의 다짐을 세 번 반복한다.
"저는 이 몸이 다하도록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희는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아무개스님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여래이시며 등정각이신 부처님께서는 저의 세존이십니다."
(차) 宣說戒相---본격적으로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를 설하는 순서다. 계사는 사미에게는 사미계를, 비구에게는 비구계의 계목을 하나하나 일러주고 '이 계를 목숨이 다하도록 지키겠느냐 말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수계자들은 '能持(능히 받아 지키겠습니다)'라는 말로 다짐
과 약속을 한다.
(카) 授着法衣---수계약속이 끝나면 계사가 수계자들을 일으켜 세워 다시 3배를 시킨 뒤 출가자의 옷인 가사를 입도록 허락한다. 수계자들은 가사를 입기전에 그것을 머리에 받들어 이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는다.
참 좋구나 해탈의 옷이여 (善哉解脫服)
위없이 훌륭한 나의 가사를 (無上 五衣)
내 머리위에 올려 놓으니 (我今頂戴受)
세세생생 버리지 않으리라 (世世佛捨離)
(타) 勸誡回向---드디어 수계에 관한 모든 절차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전계화상이 수계자들에게 당부를 하는 순서다. 당부의 내용은 이른바 '五德十數'라 하여 출가자가 갖추어야 할 다섯가지 덕과 열가지 닦아야 할 항목을 하나하나 일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전계사가 '이로부터 청정한 신심을 배증하고 몸과 마음을 게을리 말지니 능히 이와같이 의교봉행하겠느냐.'라고 묻는다. 수계자들은 합장하고 '依敎奉行(가르침에 의지해 받들어 봉행하겠습니다)'이라고 대답한다. 이로써 불교의식 가운데 가장 엄숙한 수계식은 끝난다.
3) 공양의식
供養이란 말을 사전적으로 풀면 '음식물이나 의복을 삼보나 부모 또는 스승에게 공급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범어의 pujana를 번역한 이 말은 원래 공급자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말이었지만 나중에는 공여된 물건, 그중에서도 특히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하여 요즘은 공양이라 하면 바로 식사를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불교에서 '먹는 일'을 식사라 하지 않고 굳이 공양이라 하는 것은 음식을 먹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만든 사람, 공급하는 사람의 입장과 공덕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수행자들이 음식에 대해 유난히 특별한 관념을 갖는 것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매우 깊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초기교단시대부터 의식주 문제를 재가자의 보시에 의지해 해결했다. 세속적 경제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 수행자들로서는 '걸식'이라는 방법을 통해 생계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수행자들의 걸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행위여서는 안된다. 그 자체가 수행과 깨달음을 위한 행위여야 한다. 이를 위해 교단은 계율로서 엄격한 절차와 법식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바로 불교수행자들이 공양 즉 식사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를 말해 준다.
불교의 공양의식은 이러한 정신적 배경 아래 이루어졌다. 따라서 식사예절의 엄격함은 '가장 먹기 힘든 한끼의 식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실제로 지구상의 어떤 식사법도 불교의 발우공양과 같은 엄격한 식사법은 없다. 더욱이 식사행위를 하나의 의식절차로 규정하고 있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다. 이 점은 불교의 공양의식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불교의 공양의식은 4개의 발우에 음식을 담아 먹기 때문에 '鉢盂供養'이라고도 하는데 이 공양법은 하루 세끼 모든 식사 때 다 적용된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점심공양이다. 이 식사에 참예하는 사람은 의식복인 가사장삼을 입어야 하고 의식절차에 따라 식사를 해야 한다. 아침저녁 공양도 발우를 이용해 절차에 따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점심 때처럼 '의식'으로서의 식사는 아니다. 발우공양의 절차는 대체로 下鉢과 展鉢, 進旨와 捧鉢, 供養과 洗鉢, 收鉢과 上鉢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청도 운문사에서 행하고 있는 공양의례를 중심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下鉢---종이나 목탁을 공양시간을 알리면 사찰내에 있는 모든 대중들이 큰방에 들어와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죽비일성이 울리면 下鉢偈를 외우고 선반 위에 보관해 두었던 발우를 내려 자리에서 한뼘쯤 되는 앞에 놓는다. 발우를 내릴 때는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는 보조한다.
(나) 展鉢---죽비 소리가 한번 나면 합장을 하고 佛恩想起偈를 외운다. 그리고 다시 죽비일성이 울리면 展鉢偈를 외운 뒤 발우를 편다.
부처님은 카필라에서 탄생하셔서 (佛生迦毘羅)
마가다의 보리수아래서 성도하셨네 (成道摩竭陀)
베나레스에서 최초설법을 하셨고 (說法波羅那)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셨네. (入滅拘尸羅) <불은상기게>
부처님의 밥그릇을 (如來應量器)
내이제 받아 펴오니 (我今得敷展)
원컨대 일체중생은 (願共一切衆)
삼륜공적에 오르기를. (等三輪空寂) <전발게>
발우를 펴는 방법은 먼저 발우닦는 수건(鉢巾)을 접어 오른쪽 무릎앞에 놓고 발우보를 푼다. 다음은 무릎수건(膝巾)을 펴서 무릎을 덮고, 수저집을 들어 발건 위에 놓는다. 다음은 발우를 들어 앞으로 내놓고 깔판(鉢單)을 들어 수저집 위에 놓은 뒤 발우보를 접어 오른쪽 무릎위에 놓는다. 그런 뒤 내놓았던 발단을 다시 집어서 깔고 그 왼쪽하단에 발우를 놓는다.
발우는 양쪽 엄지를 이용해 작은 것부터 꺼내어서 왼쪽상단에 놓고 그 다음 오른쪽 상단. 다음은 오른쪽 하단에 놓는다. 다음은 수저집에서 생반저를 꺼내 발우 가운데 놓고 수저를 꺼내 우측상단 발우에 걸어놓는다. 그런 뒤 수저집을 발우보 위에 놓고 그 위에 다시 발건을 올려놓는다.
전발이 끝나면 죽비일성에 대중은 합장하고 淸淨法身毘盧遮那佛을 비롯한 열분의 불보살 명호를 염하는 '十念'을 한다.
(다) 進旨---십념이 끝나고 다시 죽비일성 울리면 음식을 올리는 진지를 한다. 진지를 하기전에 먼저 천수물을 돌려 발루을 헹구게 한다. 이어 배식을 하는데 순서는 상좌부터다. 진지가 끝나 밥이 모자라거나 남으면 대중들이 加飯이나 減飯을 할 수 있도록 그릇을 한차례 돌린다. 밥에 이어 국을 배식하고 반찬은 찬상에서 본인이 직접 먹을 만큼 덜어 놓은다. 음식은 죄측하단 제1발우에 밥을 담고, 우측하단 제2발우에 국을 담고, 우측상단 제3발우에는 그릇을 씻을 물우과 수저를 담고, 죄측상단 제4발우에는 반찬을 담는다.
(라) 봉발---진지가 끝나면 다시 죽비일성으로 봉발을 알린다. 봉발은 밥그릇을 두손에 바쳐 눈섭위까지 올리고 捧鉢偈를 합송한다.
이 음식을 받아들고 모든 중생에게 진실로 바라노니 (若受施食 當願衆生)
수행의 기쁨을 음식을 삼아 법희로써 배가 부르기를. (禪悅爲食 法喜充滿) <봉발게>
발우를 내려 놓으면 다시 죽비일성이 울린다. 대중들은 합장을 하고 五觀想念偈를 외운다. 흔히 '오관게'라고도 하는 이 게송은 공양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 음식에 깃든 공덕을 생각하면 (計功多少量彼來處)
덕행이 부족한 나는 받기가 송구하네 (忖己德行全缺應供)
욕심껏 맛잇는 것만 먹으려 하지 않고 (防心離過貪等爲宗)
오직 최소한의 건강을 지켜냄으로써 (正思良藥爲療形枯)
마침내 도를 얻기 위해 음식을 먹노라 (爲成道業應受此食) <오관게>
(마) 生飯---공양을 시작하기 전에 배고픈 축생과 귀신에게도 음식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순서다. 중생을 먹인다 하여 이를 生飯이라 하는데 법식은 생반저에 밥알 몇 개 떼어놓는 것이다. 생반을 끝내면 죽비일성에 生飯偈를 읊는다. 생반게가 끝나면 상죄로부터 헌식기를 돌려 생반을 모은다.
(사) 供養---다시 죽비삼성이 울리면 합장반배를 하고 공양을 시작한다. 공양을 할 때는 말을 해서는 안되며 음식 씹는 소리가 나서도 안된다. 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발우를 들고 먹어야 한다.
공양이 어지간히 진행되면 죽비일성이 울려 숭늉을 돌리게 한다. 발우를 두손에 감싸쥐고 가슴높이로 올려 숭늉을 받되 먹을만큼 되면 그릇을 살짝 흔들어 그만 따르게 한다. 입으로 '그만'이라고 하면 안된다. 숭늉으로는 발우에 남은 음식찌꺼기를 모두 씻어 마신다.
다시 죽비일성이 울리면 찬상을 내간다. 공양이 끝나면 밥을 담았던 제1발우부터 처음에 받아두었던 천수물로 씻는다. 수저는 제2발우에서 씻는다. 다 씻은 발우는 鉢巾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아) 折鉢水---죽비일성이 울리면 발우닦은 물(洗鉢水)을 걷는다. 세발수는 하좌에서부터 상좌로 걷어 올라간다. 이 때 세발수에 음식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천수통에 붓지 않고 남겼다가 자기가 마신다. 이어 죽비일성이 울리면 折水想念偈를 외운다.
내가 이제 발우를 씻은 물은 (我此洗鉢水)
마치 하늘의 감로수와 같다. (如天甘露味)
이를 너희 아귀에게 주노니 (施與餓鬼衆)
배를 불려 굶주림을 잊으라 (皆令得飽滿) <절수상념게>
(자) 收鉢---절수가 끝나면 슬건으로 발우를 닦은 뒤 발우를 펼 때의 역순으로 발우를 걷고 다시 이를 발우보에 싼다. 그리고 맨 위에 발우수건을 덮어 처음 공양을 시작하기 전과 같은 곳에 놓는다. 모든 대중이 발우를 무릎 앞에 내놓은 것이 확인되면 또 죽비일성이 울린다. 대중은 합장하고 食畢想念偈를 외운다.
공양을 마치니 새로운 힘이 솟구쳐 (飯食已訖色力充)
시방삼세를 진동시킬 영웅처럼되었네 (威振十方三世雄)
인과의 회전은 생각에 있지 않으니 (回因轉果不在念)
일체중생은 신통을 얻게 되리라. (一切衆生獲神通) <식필상념게>
다시 죽비일성이 울리면 발우를 들고 일어나 선반에 올려 놓는다. 이어 죽비삼성이 울리면 앞사람과 마주보고 합장인사를 한다. 이 인사로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발우공양 의식절차가 모두 끝난다.
4. 맺는 말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지만 또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 말을 종교의식에 비유하여 말하면 '意識이 儀式을 규정하고, 儀式이 意識을 규정한다'는 말로 환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불교의식에 관한 한 이러한 전제는 진실이고 또한 사실이다. 이는 불교의식이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아울러 그 성격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한번 정리해보면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불교의 수행의식은 기본적으로 수행자들의 종교적 경건성과 절도있는 수행생활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는 다른 종교의 의식이 절대자와 교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를 반영해서 초기불교의 수행의식은 엄숙하되 소박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앞에서 살펴본 요즘의 복잡한 수계의식도 처음에는 부처님이 "어서 오라. 나의 제자여.' 라는 한마디로 다 끝났다. 예불의식도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부처님에 대한 귀의나 존경이 불멸후에 儀式化한 것이다.
수행의식의 변화와 발전은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종교지도자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수행자들이 종교적 경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필요는 교단제도가 정비되면서 더욱 강화되었고 그 절차와 형식도 더욱 세밀하고 복잡하게 발전하게 된 것이다.
둘째 불교의 수행의식을 내용면으로 살펴보면 어디까지나 불교적 인격완성에 최후적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의식의 목적을 담보하는 내용문을 검토해보면 이 점은 보다 명확해진다. 즉 절대자에 의지해 무엇을 어떻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과 결의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즉 자기완성과 아울러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다짐을 강조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를 차지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불교의 수행의식은 자기완성이라는 불교의 종교적 목적에 충실하기 위한 방법으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즉 불교의 수행의례는 단순히 의식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意識을 바꾸는데 목적을 둔 儀式으로서 그 순수한 종교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불교의례의 가치는 종교적 목적에 충실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래도 남는 문제는 불교의 수행의식에 부분적으로 보이고 있는 몇 가지 비불교적 요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만약 그런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요소를 가려내서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기교단의 불교의식이 그랬듯이 교화의 방편이기는 하되 본래적 의도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할 때 그 참뜻이 더욱 크게 살아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불교의식의 불교의식다운 특장을 최대한 지키고 살려가는 길이 될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사자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