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먹을게 있네 없네 해도 나도 월급쟁인지라 하릴없이 집에서 뒹구는 한이 있어도 ‘노는 것’이 좋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연휴 첫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하기, 빨래하기, 쓰레기 버리기, 목욕하기(우리 동네에도 남녀 혼탕 대중 사우나가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억지로라도 한번 가 보고 소감 올리마), 와이셔츠 다리기, 청소하기 등등 보람찬 가사들을 뚝딱 해 치우고 모처럼의 따뜻한 햇살 속에 나른한 오전을 보낸 다음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 계획했던 암스테르담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동네 경유 중앙역 직통의 5번 트렘이 선로공사로 서비스를 중단 하는 바람에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친절한 할머니, 영어는 좀 서툴러도 자상하기 이를 데 없고, 알고 보니 한국에서 입양하여 현재 36세 먹은 노처녀 딸을 두고 계신 더치 할머니 덕분에 불편 없이 도란 도란 첫 번째 목적지인 고호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종의 경전철이라고 할 수 있는 트렘 모습, 시내에서는 이 트렘과 자동차, 자전거,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서, 그러나 질서 있게 잘 돌아 간다)
빈센트 반 고호!! 좋아하는 서양화가 한 명을 꼽으라면 나는 고호를 들 것 같다. 식견도 짧고 거장이라 불리 우는 다른 천재화가들도 많이 있겠지만 거칠고 투박하며 강렬하면서도 서민적인 화풍에서 느껴지는 동질감 같은 것 때문인지, 아니면 평생 인정 받지 못하며 가난하고 고독하게 거친 삶을 살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 자기 가슴에 권총을 겨누어야 했던 팍팍한 일생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렇다.
공항 검색대 냄새가 나는 전시실 본관 출입통제가 다소 거스르긴 했지만 200여 개의 고호 작품들은 세월을 건너 느낌을 전달하기에 충분 하였고 그 중 ‘해바라기’니, ‘까마귀 나르는 밀밭’ 등 대표 작품 들 앞에는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궁핍으로 캔버스사기도 어려워서인지 대부분 작품사이즈가 작은데 놀랐고 특히 그나마 대작일 것으로 기대하였던 ‘까마귀..’도 예상보다 훨씬 작아서 오히려 안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기념으로 산 화집에서 찍은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더 이상의 감상후기는 생략. 다만 고호 그림을 보면 나는 왠지 제주출생으로 평생 불편한 몸을 끌며 제주의 거친 바람과 바다, 초가집과 말 등을 짙은 황토색의 강렬한 터치로 담아내는 변 시지 화백이 떠오른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제주지점 상담실에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어케 됐는지 모르겠다.(고호 자화상 확대 사진 앞에서 기념으로 한 장)
서비스로 고갱과 그의 동료들의 1885년 파리박람회 전시작품들을 보고 밖으로 나와 다음 목적지, 아마 성준이가 추억을 곰 씹을 중앙역 인근, 나로서도 호기심 만 땅인 문제의 그 장소로 향했다.(중앙역 앞 운하관광 유람선 선착장 모습)
중앙역에서 내려 대충 방향을 잡고 이 골목 저 골목 어슬렁 거리다 보니 갑자기 야리꾸리한 물건을 파는 가게와 ’커피숍’이라고 붙여 놓은. 대마초나 마리화나 정도의 가벼운 마약을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가게골목들을 지나니 마침내 아직 환 한 저녁시간이지만 빨간 등이 군데 군데 보이는 거리가 나타났다.
‘음, 여기가 거기란 말이지,’ 감개 무량하면서도 짐짓 무심한 척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기대했던 형형색색의 흥청거림도 없었고 겨우 스무 집에 한 집 정도만 부지런한 처자들이 쇼윈도에 앉아 있었다.
(앞에서는 사진 못 찍는 다고 해서 멀찍이서 거리 풍경만 찍어 보았다. 그림이 영 안나와서 성준아, 미안하이…)
그러다 ‘에로틱 박물관’이라고 적힌 한 가게에 들어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전시품들을 보며 시간을 죽이다 다시 거리로 나서니 아까 보다는 제법 처자들이 많이 보인다. 어느 가게 앞을 지나 가는데 한 처자가 내게 손을 흔들며 ‘방가, 방가, 외로워 보이는 동양 아저씨, 부끄러워하지 말고 어서 들어 오삼’ 하는 표정으로 환한 미소를 보내왔다. ‘잘못 보았네 이 사람아, 난, 아닐세’ 하는 표정으로 나도 손을 흔들며 썩소를 날려 주고 서둘러 그 거리를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웬고 하니, 원래는 천천히 구경도 하고 시간이 나면 근처 다른 박물관이나 ‘안네의 일기’ 그 집도 구경 하려고 했으나 집에서 나올 때는 목적지만 생각했지 다시 돌아 가려면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 지까지는 생각을 안하고 나왔기 때문에 가급적 밝을 때 들어가서 동네 풍경보고 잽싸게 내리기 위함이었다. 서울서 남대문 구경하고 분당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 자신이 사는 곳이 야탑역 근방인지 정자동인지도 모르고 나온 형국이라고나 할까.
결국 스코틀랜드 지방을 여행중인 차장에게 전화를 걸고 어찌 어찌 버스까지 타가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날은 고객과 골프 약속이 있었고 그 다음 날은 부활절이라 교회에서(여기서는 나의 생활범죄?율, 특히 심야음주 후 발생 가능한 강력?범죄율이 매우 낮아 반성할 일도 별로 없지만) 모처럼 한식부페로 포식을 하고 오후에는 혼자 라운딩을 했다.
내가 회원(법인)으로 있는 골프장은 예약 없이 아무 때나 가서 혼자든 둘이던 말만하고 그냥 치면 된다는 것이 장점이고 경쟁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오늘은 비교적 공도 잘 맞는 편이다.
연휴 마지막 날, 차를 몰고 집에서 한시간 반 정도에 위치한, 약 33km에 이른다는 제방을 보러 갔다.
요즘이야 토목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이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그 옛날 오로지 삽질하나로 거친 북해와 싸우며 일구어 냈고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면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사람이 만들었다’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땀의 산물이었으나 젠장, 중간에 반환점을 놓친 건지 없는 건지 본의 아니게 거의 끝까지 갈 수 밖에 없어 유감이었다.(제방 중간 전망대 위에서)
제방 끝에는 제법 운치 있는 마을도 나타났다(사진 왼 쪽이 제방, 오른 쪽이 바다보다 낮게 위치한 마을이다)
역시 신교국가 답게 마을 마다 교회도 꼭 있고 한가롭게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왠지 삼겹살 같은 고기가 땡겨 한국 식당에 들렀건만 문을 닫는 바람에 아쉬움을 삶은 계란으로 달래고 연휴를 마감하였다.
To be continued…
From 몽
첫댓글 어제 우연히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다 혼자 치는 골프에 관한 얘기가 나왔는데, 홀로 치니 좀 씁쓸하다고 하던데 재미있던가? 캐슬렉스 퍼블릭에서는 종종 혼자 즐기는 사람도 보이기는 하던데.
몽작가께서 또 글을 올리셨군....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야.... 이 글들 잘 모아뒀다가 귀국후 유럽 여행기 한권 출판하심이....
정말..철몽이를 다시 보게된다'' 대단허이...재미있고~~
작가는 무신..이러다가 나중에 그림까지 그려서 올리면 큰일 나겠네..어쨋든 재미있게 읽어 줘서 고맙다. 아직 집에 컴퓨터가 없어 사무실에서 글과 사진올리는데 은근히 눈치보이고 신경도 쓰인다. 어쩌면 이 카페가 내가 그리운 고향 제주와 정다운 친구들과 의 유일한 통로라고 생각되서 그런지 애착이 간다. 앞으로도 시간이 되고 사소하지만 이벤트가 있는한 계속 글을 올리도록 하마. 가급적 사진도 곁들여서..성준아, 나도 혼자 치는 골프가 그리 재미있기만 하겠는가 마는 노느니, 공짜니까, 연습한다셈 치고 친다.
요즘에는 썸머타임에 해도 길어져서 업무끝나고 9홀 정도는 가능하다. 실제로 그저께는 시도 해 보았고 북반구라 한여름에는 11시까지 밝아서 서두르면 18홀도 가능하단다. 어쨋든 골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여긴 거의 천국이고 골프가 빠지면 고객과도 대화가 안되니 그저 열심히 치는 것도 업무에 도움되다는 핑계로 틈만나면 치려고 하고 있다. 그럼......
제주를 골프 천국이라고들 하던데 네델란드는 그 이상... 골프 극락이라고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