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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4년 8월 2일 금요일
[(녹)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베르첼리의 성 에우세비오 주교 또는
[백]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사제
말씀의 초대
예레미야 예언자는 유다의 온 백성에게, 주님께서 세우신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 도성이 폐허가 되리라고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26,1-9
1 유다 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의 집 뜰에 서서,
주님의 집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에게,
내가 너더러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모든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전하여라.
3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려는 재앙을 거두겠다.
4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너희 앞에 세워 둔 내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
5 또 내가 너희에게 잇달아 보낸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 사실 너희는 듣지 않았다. ─
6 나는 이 집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이 도성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7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은 주님의 집에서
예레미야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8 그리고 예레미야가 주님께서 온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두 마쳤을 때,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아 말하였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9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느냐?”
그러면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당신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예레 26,2) 전하라고 하시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처럼 되리라고 선포합니다. 실로에는 여호수아 시대와 판관 시대에 성소가 있었지만, 심판을 받아 버려졌습니다. 이제 예루살렘도 그렇게 멸망하고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라고 비난하며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에게 멸망을 선포하실 수는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잘못은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구원을 선포하실 뿐, 심판을 말씀하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유를, 하느님의 행동 범위를 인간이 제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상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만 움직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착각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그들의 착각이 깨지려면 성전이 무너져야 하였던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집인 그 성전을 무너지게 두셨습니다. 복음서의 나자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부모와 형제를 자신들이 다 알고 있는 그 평범한 사람, 목수의 아들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될 수 없다고 여깁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나에게 오는 통로를 내가 결정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명확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그것을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들으려 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어떤 경로로 말씀하시더라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아야 합니다.(안소근 실비아 수녀)
고향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마태오 복음사가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사람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못마땅하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아 불쾌하다.’ ‘기대, 희망,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거북하고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유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본격적인 공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셨던 예수님께서는 전국 방방곡곡을 두루 다니시며 하늘나라의 신비를 설명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십니다.
나자렛으로 향하던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설레었겠습니까? 어서 빨리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들, 동기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드뎌 안식일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으로 들어가셔서 고향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반응은 반반이었습니다. 예수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경탄할만한 말씀, 전무후무한 말씀에 완전히 빠져든 사람들, 마음 깊숙히 감명을 받고 그 자리에서 회개한 사람들, 결국 예수님을 구세주 하느님으로 고백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편의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마태 13, 54-56)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릇된 질문, 그릇된 의혹으로 인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먼저 던졌어야 할 질문은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가?’ 여야 했습니다. 일단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분 말씀의 진의(眞意)를 정확하게 파악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지만, 건성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심장으로, 영혼으로, 전력투구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들은 사실 예수님의 말씀에 귀와 마음을 닫아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나자렛 사람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개방성의 결여’였습니다. 삶의 진리, 신앙의 진리는 인간적인 눈과 마음으로는 이해하거나 수용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래서 신앙의 신비의 주인공이신 예수님 앞에 우선 마음과 영혼, 정신을 활짝 개방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일생일대의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에서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고향 마을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그곳에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인간 측의 활짝 열린 마음과 깊은 신앙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사람, 자신의 영혼을 완전히 개방한 사람에게는 놀라운 기적이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기적을 계승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나자렛 사람들의 실수와 불행은 우리를 심각한 자아 성찰로 초대합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살았으며,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나자렛 사람들이 그분으로부터 가장 멀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 가장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 교회 안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예수님과 가장 멀리 서 있는 존재로 전락하기는 너무나 쉽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지식이 끊기면 은총도 끊긴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사랑하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시자 사람들은 그분의 지혜와 기적의 능력에 놀랐습니다. 그들은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라고 묻습니다. 분명 그들이 아는 부모나 형제, 자신들에게서 그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해를 추구하거나 더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그 은혜의 근원인 대상과 그 은혜에 내가 합당한 자세가 있는지 알려고 해야 합니다.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인가?”라고 하며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이는 먼저 부모를 믿습니다. 그리고 알아갑니다. 그러나 어른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지적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려고 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은총이 주어집니다. 당신을 알려고 하루 5분도 투자하지 않는 이에게 그들이 청하는 은총을 주실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교만만 커져 하느님을 자신들의 종으로 여기게 됩니다.
6.25 동란 당시 피난 중 물에 빠져 간신히 살아나 고아가 되어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다가 열일곱 나이에 미군 부대에서 세탁 같은 허드렛일을 하던 이철호씨가 있습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알아야 했습니다. 나에게 은총을 줄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는 미군들이 맡긴 옷가지들에서 때가 잘 빠지지 않으면 삶아 빨았습니다.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포격으로 파편을 맞아 그 수술 때문에 여차여차 노르웨이에서 살게 된 그는 남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다 배가 너무 고파 요리사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보통 요리를 배우려면 주방에서 2~3년씩 감자만 깎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요리의 종류에 따라 골라 쓸 수 있도록 감자를 여러 모양으로 깎아 놓았습니다. 나에게 은총을 줄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 6개월 후에 요리를 배울 수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요리 공부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공부와 일을 하고 대학은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어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현재 노르웨이 라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백만장자입니다.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거의 30년 만에 한국에 들어와 라면을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노르웨이에 라면을 팔아보기로 결심합니다. 물론 그들은 라면을 수세미라고 부르면서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직접 스프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서 농심에 자기 이름을 딴 라면 브랜드를 만들어 노르웨이에 팔았습니다. 우스운 모습으로 CF 광고에 직접 출연하고 요리사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라면 시식을 직접 해 주었습니다.
『세이노의 가르침』의 저자 세이노도 현재는 1,000억 대의 자산가이지만, 자신이 파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사람입니다. 미군 부대에 있는 대학을 다녔을 때 먹고살고자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화장품이나 식료품들을 가방에 넣어 갖고 부유층 아파트들을 돌아다니며 팔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그런 물건들은 아줌마들이 팔았고 나 같은 남자 대학생은 전혀 없었기에 경비실을 통과하기도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문을 열어 준 고객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였다. 우선 나는 모든 상품에 붙은 영문 라벨들을 사전을 찾아가며 모조리 외웠다. 바세린 연고 하나를 팔더라도 눈 화장을 지울 때 사용하면 좋다는 내용도 잊지 않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눈 화장을 지울 때는 면봉을 사용하라고 하였고 면봉도 함께 팔았습니다.
스팸 햄을 팔 때는 새로운 요리법들도 알려 주었습니다. 결국 한 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면 얼마 후 그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주었는데 정말 그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사전 주문도 생겨났습니다.
은총은 알려는 이에게 주어집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그의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더는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 주지 않았습니다. 알지 못하면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하.사.시.’를 읽게 된 계기가 현재 제가 받는 은총의 거의 모든 원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선입관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필립보의 권유로 예수님을 만나 사도까지 되었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이전의 내가 가진 지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지금 모습대로 살고 싶어 변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입니다. 은총을 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은총을 주시는 분을 알려고 하는 노력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이 있습니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들고 주인을 쫓아낸다는 뜻입니다. ‘굴러온 돌이 박혀있는 돌을 빼난다.’는 말도 비슷하고, ‘방귀뀐 사람이 오히려 성을 낸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 동생 아벨은 어디 있느냐?” 사실 카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치미를 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수산나를 욕보이려고 했던 노인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지자 오히려 수산나를 거짓으로 고발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그런 노인들의 거짓과 욕망을 들추어냈습니다. 40억년이 넘는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이 등장한 시간은 30만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긴 지구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아주 작은 시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적반하장으로 지구에 사는 많은 생명을 못 살게 하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시간 머물다 가면서 마치 주인처럼 지구의 생태계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적반하장의 인간을 기다려 주시고, 용서해 주시지만, 감정이 없는 자연은 임계점이 넘게 되면 무섭게 되갚아 줄 것입니다.
배은망덕(背恩亡德)이란 말도 있습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오히려 괴롭힌다는 뜻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달라고 한다.’는 말도 비슷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 맞는다.’는 말도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리려는 인간의 배은망덕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반석이라고 하시면서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 사도는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측은하게 여기셨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눈이 먼 사람은 뜨게 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는 걷게 해 주셨습니다. 나병환자는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랬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뜻을 찾는다면 그 역시 배은망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징과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문, 예수님의 학력, 예수님의 재산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위선을 비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시메온과 한나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매일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고,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주님의 말씀은 영원하시다. 바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오늘의 성인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Peter Julian Eymard)
활동년도 : 1811-1868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같은 이름 : 베드루스, 에마르, 율리아노, 율리아누스, 줄리앙,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율리아누스 예마르(Petrus Julianus Eymard)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의 라 뮈르 디제르 출신이다. 그의 부친은 칼 장수였으므로 18세 때까지 부친의 일을 거들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라틴어를 배웠기에 1831년에 그르노블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834년 7월 20일에 사제가 된 그는 5년 동안 샤트와 몽테나르 본당 사목자로 일하던 중 마리스타가 되기 위하여 주교의 허락을 청하였다. 1839년 ‘마리아의 작은 형제회’(마리스타 교육 수사회)에 입회하여 수련을 받은 후 그는 벨리 소신학교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1845년에는 리옹(Lyon) 수도원의 관구장이 되었다.
한번은 그가 주님의 성체 축일에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나의 영혼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그분의 현존을 전하겠습니다.” 1851년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신부는 노트르담 드 푸르비에르를 순례한 후 ‘성체 사제회’ 설립을 구체화시켰다. 1856년 마리스타 총장의 승인을 받은 그는 12일 동안이나 파리(Paris)의 대주교를 설득하여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1857년 1월 6일 이 위대한 수도회가 빛을 보게 되었다. 1858년 그는 또 ‘성체 시녀회’를 설립하였고, 1895년에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Maria Vianney, 8월 4일) 신부도 그를 일컬어 ‘성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참으로 위대한 성인이었다. 그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2년 12월 9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베드로 파브르(Peter Faber)
활동년도 : 1506–1546년
신분 : 신부
지역 :
같은 이름 : 베드루스, 파버, 파베르, 페드로, 페이버, 페트루스, 피터
교황 프란치스코는 지난해 12월 17일, 성 이냐시오의 첫 번째 동지였던 복자 베드로 파브르를 성인품에 올렸다.
베드로 파브르는 1506년 4월 13일 사부아 지방의 촌락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적에는 양치기를 하였는데 1516년에 시골의 본당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머리가 총명하여 금방 기초 과정을 마치고 다음 해에는 라 로쉬에 있는 학교로 전학하여, 1525년에 명문 파리대학에 입학하기까지 거기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파리의 기숙사에서 평생 동지이자 예수회의 공동 창립자가 되는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만났다. 파브르는 15세 연상이었던 이냐시오에게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개인 교수하였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이냐시오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게 되었다. 마음의 갈등과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번민하던 파브르는 이냐시오의 지도를 받으면서 사제직에 대한 성소를 굳히게 된다.
파브르는 1534년 5월 30일, 사제서품을 받기 한 달 전에 이냐시오로부터 영신수련을 받았다. 1534년은 이냐시오와 6명의 동지들이 파리 몽마르트의 성당에서 개인적인 서원을 한 해이기도 한데(8월 15일) 그때 파브르는 사제로서 동지들을 위해서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 서원의 하나는 예루살렘에 가서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일생을 봉헌한다는 것이었다.
1536년 이냐시오는 자신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스페인으로 잠시 귀국하게 되는데, 그때 자신을 대신해서 파브르에게 동지들을 통솔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들은 다음 해 1월에 베니스에서 이냐시오와 재회하였다. 다시 모인 동지들은 성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교황의 특별한 축복을 받기 위해 파브르를 대표로 로마에 파견하였다. 교황은 축복을 하면서 터키인들의 방해가 심해 예루살렘까지 도착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예고를 하였다. 결국 교황의 예고대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자 그들은 예루살렘 대신에 로마로 향하였다. 교황의 원의에 자신들을 온전히 복종시키기 위해서였다.
로마에서 파브르는 사피엔치아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었다. 1539년에는 라이네스 신부와 함께 파르마로 파견되어 사제들의 양성에 힘썼다. 1540년 여름에는 독일의 보름스에서 개최되고 있던 종교회의에 파견되었다. 루터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보름스에서 파브르는 설교와 토론 등을 통해 가톨릭의 입장을 변호하였다. 또한 보름스의 주교, 사제, 왕족들에게 영신수련을 지도하여 그들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다.
루터파와의 종교회의가 결렬되자 파브르는 스페인으로 가서 새로 창설된 예수회의 설립기반을 다졌다. 1542년에는 독일의 스파이어에서 개최된 종교회의에 참가하여 가톨릭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그 지역의 성직자들이나 귀족들에게 영신수련을 지도하였다. 베드로 카니시오가 파브르로부터 영신수련을 받은 것도 그때의 일이었다.
1544년 7월, 파브르는 죠안 3세의 요청을 받고 포르투갈로 파견되었다. 1546년 봄에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신학 고문으로써 트리엔트로 파견받았다. 도중에 로마에 들러 7년 만에 이냐시오와 재회하였다. 그런데 로마에서 지병이던 열병이 도져 8월 1일 그곳에서 선종하였으니 그의 나이 40세였다. 파브르의 유해는 길 위의 성모 성당(현 제수 성당)에 안장되었다.
1872년 9월 5일 교황 비오 9세는 그의 고향인 사부아에서 파브르를 복자품에 올렸다. 그리고 2013년 12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하여 성인품에 올랐다.
예수회 총장인 니콜라스 신부는 성 파브르를 ‘조용한 성자’로 칭송하였다. 또한 성 이냐시오는 파브르를 칭하여 ‘자신보다 영신수련을 더 잘 지도할 수 있는 영적지도자’라고 칭송하였다. 기념일은 8월 2일.
[이냐시오의 벗들, 2014년 2월호, 구정모 마르코 신부(일본 상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