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에 제자들과 가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과, 이어지는 예수님의 설교가 담겨있습니다.
성 만찬에 대한 이야기는 공관복음서에도 다 나와 있는데, 공관복음서의 기록과 요한복음이 기록이 매우 다릅니다.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데, 요한복음에는 빵과 포도주 얘기는 등장하지 않고 대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0절을 보겠습니다.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의 아들인 가룟 사람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집어 넣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기 시작하셨다.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셨을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내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 본문은 오래 동안 알레고리적 상징행위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알레고리란 우리말로는 풍유라고 하는데,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빗대어 표현하는 비유법의 일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상징행위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구약성서의 문서 예언자 에스겔이 주로 썼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어주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의미를 모르고 거절의 뜻을 나타냈을 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몸까지 씻어달라는 베드로의 요청에 대해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기에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신 말씀은, 한 번 회개하고 하나님께 귀의한 사람은 죄인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기에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고, 발만 씻으면 된다는 말씀은 일상생활에서 매일 더러워진 발을 씻듯이 구원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또 죄를 지을 수는 있는 것이기에 그때마다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정화하는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의 저자가 그런 의도를 담은 흔적이 본문에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본문이 말하는 중심 메시지는 아닙니다. 14~15절을 보겠습니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이 본문의 중심 메시지는 구원의 의미를 알려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이렇게 섬겼듯이 너희도 서로 섬기라’는 것임을 본문 자체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가룟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이야기 사이에, 짧은 설교가 담겨있습니다. 34~35절을 보겠습니다.
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본문은 조건 없는 이웃사랑을 독려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강단에서 자주 설교되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 본문으로 여러 차례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전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자기들의 삶의 공간에서 온전히 실천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 말씀은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우주적 이웃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요한공동체 사람들, 넓게 적용해도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받는 1세기 후반의 교회공동체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