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말없이 물이 담긴 소가죽 주머니를 건네 주었다. 살란이 가늘고 얇은 손으로 주머니를 받아 들고 마개를 따서 마셨다. 긴장해서 몰랐을 뿐이지, 마침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 깨끗한 물이 들어오자 정신이 맑아지며, 살란은 억눌렀던 숨을 후, 크게 내쉬었다. 그 모든 모습을 남자는 시선 떼는 법 없이 샅샅이 살폈다.
물주머니가 가벼워지자 남자는 그것을 가져갔다. 그리곤 마른 고기를 내밀었다. 마치 수발을 드는 모양새라 살란은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
가만히 내려다보자 고기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거절은 아니었다. 사실 고기보다는 그것을 쥔 손이 더 눈에 들어와 정신이 샌 것이다.
남자의 손목은 굵고 기골 자체가 케의 땅의 것이 아니다. 잔 흉터들 아래 굵고 큰 손가락. 농사만 짓던 케의 땅 사람이 보니, 얼마나 우직한 힘을 낼지 소처럼 땅을 갈고 힘들이는 것 없이 볏단 옮겨놓을 짐작이 되자 실하게 보이기도 했다.
'참 우습다.'
실없는 생각을 흐트러 뜨리며, 살란은 손을 내밀었다.
거칠고 마른 표면과 다르게 침이 닿자 고기는 금세 연해졌다. 턱이 아플 것도 없이 곱게 씹혀서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고기를 우물거리며 다 먹어 치우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무슨 표정인지 모르겠다. 남자의 눈은 까맣고 눈썹과 눈매는 일자에 가까웠으며,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다.
시선이 오래 마주칠수록 색이 더 진하게 보였다.
밤처럼 고요하고 짙은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 남자가 먼저 눈을 피했다. 마치 덫을 피하는 날짐승처럼 말이다.
'뭐지?'
살란은 의아했지만 무엇도 묻지 못했다. 무의 땅 남자들은 직접 무력을 쓰지 않긴 했지만, 힘을 과시하여 자의를 꺾은 채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고 있다. 호의적으로 보인다고는 해도 아직 먼저 말을 붙이거나 물어도 될 만큼 그들의 취급이 동등한지 알 수 없었다.
"…"
남자가 걸었다. 무얼 하나 살란은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따라오는 걸음이 없자 남자가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따라오라는 뜻이었구나. 말수 적은,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한 남자는 너무 어렵다.
살란은 아직 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여태 이름 하나 묻지 않은 그도 그렇겠지만.
"이쪽으로."
결국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남자였다. 살란은 고분고분 그의 뒤를 따라갔다.
*
남녀가 한쌍씩 맺어있는 광경은, 비록 끌고 온 입장과 끌려온 입장으로 대비된다 하더라도, 우습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하였다. 살란은 무의 땅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짐작했던 내용이 더 확실해져 감을 깨달았다.
무의 땅은 여자가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후손을 잇기 위하여.
그 멀고 험한 길을 건너서 굳이 케의 땅까지 와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 정도의 절박함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케의 땅 여자들은 각 남자들의 짝이 될 것이었다.
울기만 하던 여자들 중 꽤 많은 수가 이제는 눈치를 챈 것 같았고, 애초에 살란처럼 담담하게 있는 여자들은 처음부터 짐작을 했으리라.
남자가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여태껏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살피던 살란은 발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그는 나무 밑동에 기대어 앉으며 자신의 옆을 툭툭 손으로 턴다. 작은 돌부리들을 걷어내어 평평하게 작업을 해놓고는 살란을 멀뚱히 쳐다본다.
앉으라는 뜻인 거 같긴 한데…, 살란은 고민했다.
못 알아 듣는 척을 좀 해볼까? 언제까지 말 없이 지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가장하며 가만히 서 있자, 남자는 그제야 아무런 말이나 손짓조차 없으면 살란은 알아들을 수 없으리란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옆 바닥을 툭툭 쳤다.
그제야 살란은 몸을 움직여 남자의 옆에 앉았다.
어깨가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만큼의 거리에 앉자 남자가 몸을 움찔거리며 살란을 보았다.
"…?"
거리가 너무 가까웠던가.
그녀가 눈치를 보며 슬쩍 옆으로 거리를 벌리자 남자의 당황한 기색이 그제야 사라졌다.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