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심사&해미읍성
마음이 열리는 절집, 천주교도 수난 당한 옛 성
개심사(開心寺)로 가려면 용현계곡에서 다시 618번 지방도를 타고 운산면으로 되돌아 나온 뒤 647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해미 방면으로 달리면 된다. 이 지방도는 이국적인 정취 물씬한 삼화목장을 끼고 이어진다. 부드러운 풍광에 마음도 편안해지는 목장지대를 지나 저수지를 끼고 돌면 개심사가 반긴다.
주차를 하고 일주문을 지나면 세심동(洗心洞). ‘마음 씻는 골짜기’의 돌계단은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게 적당히 낮고, 솔밭 사이의 굽잇길은 절묘하게도 태극선을 닮았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 보면 절에 다다르기도 전에 마음이 반쯤 열린다.
길 끝엔 경지(鏡池)가 있다. 풍수상 뒷산인 금북정맥의 상왕산 코끼리가 목말라 하니 물이 떨어지지 말라고 파놓은 비보(裨補) 연못이다. 기를 모으는 역할도 하지만 경치를 끌어들이는 인경(引景)도 돋보인다. 수면에 비친 정취가 제법이다. 이렇게 외나무다리를 건너 계단을 올라 좁다란 해탈문을 지날 때면 마음의 문은 거의 열린다. 그래서 개심사다.
개심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된 절집으로 1484년에 새로 지은 대웅전(보물 제143호)은 규모가 크진 않아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다. 다포계와 주심포계 양식을 함께 갖춘 건물로서 건축사적 가치도 높다. 또 그동안 제작연대가 정확하지 않아 막연히 조선시대 불상으로만 알려져 왔던 아미타삼존불상은 고려 후기인 1280년(충렬왕 6)에 조성됐음이 밝혀졌다.
개심사에 들렀다면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린 기둥이 아주 자연스런 심검당(尋劍堂) 감상을 빼놓을 수 없다. 마음껏 휜 나무의 곡선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돋보이게 살린 솜씨에서 대범함과 비범함을 동시에 느낀다. 굽은 나무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끔찍한 박해 현장을 지켜본 호야나무
개심사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의 성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에 이곳에 근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복원된 여러 건물들 덕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지만, 이곳에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끔직한 일들이 벌어졌다. 바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수난을 당했던 것이다.
당시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천주교 신자들은 1,000여 명. 주로 인근의 면천·덕산·예산
등 내포지방 신자들이 이곳으로 잡혀 왔다. 신자들을 매달고 고문했다는 600년 묵은 호야나무(회화나무의 충청도 사투리)엔 당시 고문할 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해미읍성 높이는 5m, 둘레는 1,160m. 성벽 위를 한 바퀴 도는 데 30~40분쯤 걸린다. 성벽 너머엔 내포 들판 풍경이 금북정맥을 배경으로 펼쳐지니 아무리 일정이 바쁘더라도 꼭 성벽을 거닐어보자.
별미>> 이름이 특이한 음식인 ‘게국지’는 게장을 담갔던 국물에 묵은 김치를 넣어 끓인 서산의 향토 음식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무를 게장 국물에 넣고 능쟁이·돌게·농게 등을 다져 넣거나 황석어젓·밴댕이젓 등을 넣어 삭힌다. 겟국지·게꾹지·깨꾹지 등으로 다양하게 발음된다. 서산 읍내동 진국집(041-665-7091)이 유명하다. 1인분 6,000원.
서산 ‘아라메길’
바다와 산, 문화유산이 잘 어우러진 ‘서산 올레’
이렇게 아름답고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서산에 걷는 길이 없을 수 없다. 최근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져나간 ‘길 신드롬’은 서산에도 불어 닥쳤다. 올해 ‘아라메길’을 내놓은 것이다. 아라메길은 바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아라’와 산의 순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바다와 산이 조화 이룬 서산의 자연을 상징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서산시는 2015년까지 서산의 문화유산을 포함해 산과 바다를 아우르는 17개 코스, 총 239km에 이르는 아라메길을 조성할 예정이다. 올해 처음 열린 아라메길 1코스는 운산면 여미리의 유기방 가옥~비자나무(0.1km)~여미리 미륵불(0.5km)~유상옥 가옥(0.8km)~운산교(운산 시내, 2.7km)~고풍터널(5.5km)~용현계곡 입구(6.8km)~마애삼존불(7.4km)~보원사지(8.9km)~용현자연휴양림(10km)~사잇고개(용현계곡 정상, 13.6km)~일락산~일락사(15.4km)~해미읍성(20.1km)까지 이어진다.
총 거리는 20.1km, 7시간 정도 걸린다.
또 ‘1코스 지선’은 운산버스정류소~황운사(8.7km), 마애삼존불~해미읍성(13.0km), 한서대~산수계곡(14.7km) 이렇게 3개 코스다. 여기에 해미읍성~미평교(21.6km) 구간은 ‘1-1코스’로 지정해 놓았다. 따라서 1코스만 해도 모두 5개로서 외지인에겐 조금 복잡한 편이다.
이렇게 총 5개로 이루어진 1코스 전체 중에서 ‘강추’ 구간은 ‘1코스 지선’의 마애삼존불~해미읍성(13.0km) 구간이다. 이 코스는 ‘백제의 미소’인 마애삼존불과 단아하고 조용한 절집 개심사를 만날 수 있다.
구간별 거리는 마애삼존불~방선암(0.2km)~보원사터 입구(1.5km)~개심사 입구(4.8km)~개심사(5.6km)~개심사주차장(6.1km)~임도 접경지역(7.9km)~오학리 입구(8.7km)~서해안고속도로 굴다리(10.1km)~오학리3거리(11.0km)~해미향교(11.6km)~해미읍성(13.0km)으로 약 2시간 걸린다. 그렇지만 이 코스를 걷는다면 일행 중 누군가 도착 지점인 해미읍성 앞으로 차량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041-660-2498, 아라메길 홈페이지 www.aramegil.kr
안면도
조선시대 운하 공사로 섬으로 바뀐 반도
해미읍성에서 안면도로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해미읍성~29번 국도~서산시내~649번 지방도~서산B지구방조제~77번 국도~안면도, 다른 하나는 해미읍성~29번 국도(홍성 방면)~갈산~서산A지구방조제~서산B지구방조제~77번 국도~안면도 코스다. 어느 코스를 선택해도 시간은 50여 분 정도로 비슷하게 걸린다.
전자를 따르면 서산 시내에서 서산의 향토음식인 게국지를 맛볼 수 있고, 천수만 간척지 전망이 좋은 부석사(浮石寺, 041-662-3824 www.busuksa.com)도 들를 수 있다. 후자는 김좌진생가·한용운생가·조류박물관·간월암 등을 지나게 되는데, 아무래도 전자를 선택하는 게 여행 동선이 덜 겹친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해가 지기 전엔 안면도에 도착해야 한다. 바로 꽃지해수욕장 일몰 감상 때문이다.
만약 안면도에 들어선 시간이 오후 4시30분이 넘었다면 곧바로 꽃지해수욕장으로 간다. 그래야 일몰 시간에 늦지 않는다. 오후 4시 이전이라면 안면도 서쪽의 해안도로를 타고 백사장항에 들렀다 해안 구경을 하며 꽃지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올해 12월 첫째 주말(4일)의 안면도 일몰 시간은 오후 5시17분, 크리스마스인 넷째 주말은 오후 5시23분, 2010년 마지막 날인 31일(금)의 일몰 시간은 오후 5시27분이다. 따라서 오후 4시30분 이전엔 꽃지해수욕장에 도착해야 할미·할아버지 바위까지 산책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안면도 입구의 연륙교인 안면교에서 꽃지해수욕장까지는 승용차로 20~30분 정도 걸린다.
안면도는 원래는 섬이 아닌 육지였다.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실은 배는 대부분 서해를 통해 보령 앞바다~태안 안흥량~당진 난지도를 경유했다. 그러나 태안반도 앞바다인 안흥량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빠른데다 암초가 많아 사고가 잦았다. 날씨가 나쁘면 사고는 더 빈번했다. 조정에선 운하(運河) 공사를 시도한다.
결국 1638년 안면도 북쪽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의 개미목을 파내고 운하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안면도는 섬이 되었다.
안면도 그 서쪽 해안을 따라 백사장·삼봉·샛별·기지포·안면·방포·샛별·장돌·바람아래 등 좋은 모래가 가득한 해안이 있어 어딜 가도 겨울바다를 실컷 거닐 수 있다. 백사장항은 안면대교를 건너자마자 만날 수 있는 첫 항구. 이곳은 꽃지해수욕장보다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부두 옆 어시장엔 횟집들이 줄지어 있어 도다리·간자미는 물론 각종 수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서해안 3대 낙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꽃지 일몰’
꽃지해수욕장은 백사장항에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에 있다. 안면도의 수많은 해안과 항구 중에서도 꽃지해수욕장의 낙조는 서해안 3대 낙조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최고의 낙조 포인트는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라 불리는 갯바위 앞이다.
신라 때 전쟁에 나간 지아비를 평생 기다리다 결국 바위가 되었다는 가슴 아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이 갯바위들은 꽃지 해안의 보물. 갯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일몰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천년 사랑에 얽힌 슬픈 전설은 노을에 정겨운 온기를 불어 넣어준다.
울창한 솔숲을 등지고 10리 가까이 길게 이어진 꽃지해수욕장은 거센 파도가 백사장을 거칠게 애무하는 광경만으로도 겨울바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지만, 아마도 꽃지해안에 ‘노부부의 사랑’이 없었다면 저녁노을과 여름 해당화가 아무리 곱다한들 이처럼 유명해지진 못했을 것이다.
바다가 물러앉는 썰물이 되면 ‘노부부’에게 다가갈 수 있다. 들어서는 갯벌엔 주민들이 낙지·멍게·해삼 따위를 차려놓은 간이매점이 두엇 있다. 운전하지 않는다면 간단히 소주 한 잔 곁들이며 노을 감상하는 맛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잘 어울리는 ‘꽃지’라는 예쁜 이름은 모래밭에 붉은 해당화가 많다는 데서 유래했다.
솔향기 그윽한 안면자연휴양림 산책길
안면도는 꽃지해수욕장 일몰과 더불어 중부 서해안에서 가장 좋은 품종을 자랑하는 안면송(安眠松)으로도 유명하다. 일제강점기까지만 안면도는 섬 전체가 푸른 숲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소나무가 울창했다. 그래서 한때 “안면도에선 도끼 하나만 있어도 잘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지만, 광복 후 무자비한 남벌로 많이 훼손되었다. 이후 꾸준히 소나무 보호정책을 편 덕에 요즘엔 다시 예전처럼 안면송의 향긋한 솔향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태안의 해안 곳곳엔 헌칠한 자태의 소나무가 많지만 그래도 안면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소나무숲이 제일이다. 부드럽게 굽이도는 길을 따르다 보면 키 큰 소나무들의 열병식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불그스레한 몸에 늘씬하게 솟은 소나무들에선 귀족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솔향에 파묻혀 산책하는 가족이나 연인들의 표정도 사랑스럽다. 자연휴양림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어린이 400원. 주차료는 3,000원.
휴양림을 벗어나면 안면도 남쪽 끝의 영목항이 부른다. 도중에 샛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내 샛별·장삼·바람아래 같은 정겨운 해안들이 반긴다. 그렇게 보아온 해안인데도 조금도 질리지 않는다. 천수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엔 천상병 시인 고택이 있다.
의정부에 있던 고택이 2004년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안면도의 한 주민이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이어 고남면 소재지의 패총박물관(041-670-2337 http://museum.taean.go.kr)에서는 구조개 캐먹고 살았던 선사시대인들의 흔적을 살펴보고, 매년 여름마다 시인들이 모여들어 시를 읊는 시인학교를 지나면 안면도 최남단의 영목항.
바다 건너 동쪽은 장고도·고대도, 남쪽의 큰 섬은 원산도, 그 뒤쪽은 삽시도다. 77번 국도는 현재 여기서 끊긴다. 그러나 앞으로 원산도 거쳐 대천항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놓이면 안면도는 육지와 남과 북 양쪽으로 연결된다.
다시 77번 국도를 되돌아 안면도를 빠져나가기 전 안면도의 새끼섬인 황도(黃島)도 잠깐 들러보자. 안면도 가장 북쪽의 창기리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4km쯤 달리면 황도에 들어설 수 있다. 도로가 연결돼 있어 물때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승용차로도 항상 출입이 가능하다.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과 초사흘 사이에 열리는 붕기풍어제로 유명한 황도는 태안에서도 제법 부자 섬으로 손꼽힌다. 주민들은 섬이 풍수지리상으로 게를 닮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라 한다. 게의 머리 앞에 있는 자그마한 옥섬은 맛있는 먹잇감이다. 섬 한쪽에 솟은 당산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마을엔 제법 번듯한 교회가 들어서 있긴 하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마을의 안녕을 보장하고 부를 지켜주는 근원인 당나무를 잘 모시고 있다.
숙박>> 안면도엔 해수욕장이나 항구마다 민박, 펜션 등 숙박시설이 아주 많다. 가장 인기 있는 꽃지해수욕장 인근엔 페스티발(041-673-9255), 몽산포펜션(011-713-4640), 마린모텔(019-428-3136), 장밋빛인생(016-425-5865), 신데렐라(041-673-7611), 목신의오후(041-673-7703) 등이 있다. 리솜오션캐슬(041-671-7000, www.resom.co.kr)은 꽃지해수욕장의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하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대형 숙박시설이다.
꽃지해수욕장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안면자연휴양림(041-674-5019, www.anmyonhuyang.go.kr)은 안면송의 그윽한 솔향기를 맡을 수 있는 휴양시설. 숙박료는 3인실(16㎡) 2만6,000원, 4인실(23㎡) 4만1,000원, 5인실(39㎡) 5만6,000원, 5인실(49㎡) 7만8,000원, 8인실(50㎡) 7만8,000원, 10인실(62㎡) 7만8,000원.
별미>> 겨울엔 새조개·굴밥이 별미다. 새조개 요리로는 샤브샤브·찜·구이 등이 있는데, 대부분의 식당에선 샤브샤브를 차린다. 백사장항의 백사장수산물회센터(041-672-6782), 수성수산(019-673-4575), 온누리회타운(041-673-8966), 황해횟집(041-672-3177) 등에서 맛볼 수 있다. 1kg에 4만 원. 꽃지해수욕장 근처의 방포초등학교와 가까운 오복정(041-673-8001) 등에서는 굴밥을 맛볼 수 있다. 1인분에 8,000~1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