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사랑으로 절대 권력에 맞서다
『쿠오 바디스』1,2, 헨릭 시엔키에비츠 지음, 최성은 옮김, 민음사, 2005년.
『쿠오 바디스』(Quo Vadis)는 근대 폴란드의 대표적 소설가 헨릭 시엔키에비츠(1846∼1916)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1895년 3월 바르샤바의 한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또한 1900년에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작가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래가 유망한 젊은 장군 비니키우스는 우연한 기회에 퇴역한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 장군이 딸처럼 키운 리디아라는 아름답고 순결한 여인을 알게 되어 깊은 사랑에 빠진다. 리디아가 땅에 그린 물고기 그림의 의미를 모르는 그는 네로의 심복으로써 왕의 총애를 받는 외삼촌 패트로니우스에게 청하여 리디아를 강제로 아울루스의 집에서 빼내어 황제의 연회에 참석하게 한다. 왕으로부터 정치적 포로인 리디아를 하사받으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사치와 향락이 계속되는 황제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 리디아는 틈을 타서 자신을 호위하는 거인 우르수스와 함께 비니키우스의 손에서 벗어난다.
비니키우스는 리디아를 향한 연정으로 괴로워하며 그녀를 찾아 헤매고, 킬로 킬로니데스라는 한 사기꾼을 통해 그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비밀집회 장소를 알아내고는 밤에 그곳을 찾아간다. 리디아의 뒤를 밟다가 우르수스의 괴력에 부상을 당한 비니키우스는 적의에 찬 자신과 킬로를 향한 리디아와 그리스도인들의 친절한 보살핌과 용서에 놀라게 된다. 그 결과 기독교에 대한 그동안의 편견과 리디아에 대한 잘못된 사랑도 변화되어 간다. 리디아는 비니키우스의 사랑에 연민과 사랑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신앙적 순결이 더렵혀지는 것 같은 느낌에 혼란스러워한다
한편 네로의 방화로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한동안 헤어졌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 약혼을 하고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교도가 된다. 네로는 로마의 화재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교도에게 뒤집어씌워 대학살을 시작한다. 리기아도 원형광장에 끌려나와 물소의 먹이가 될 위험에 처하지만,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이어 병사들의 반란으로 네로는 자살하고 비니키우스와 리기아는 시칠리아의 한 섬에서 행복한 생활을 시작한다.
이 고전적 역사소설은 고대의 이교적 세계관 ‘헬레니즘’과 기독교적 신앙과의 투쟁을 그리고 있는데 후자가 승리하는 필연성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궁극적 목적은 당시 정치적 독립을 빼앗기고 열강의 압제로 괴로움을 겪던 동족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의 작가적 재능은 과거를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훌륭히 회화적인 필치로 재현하는 힘과 뛰어난 구성력, 그리고 문헌학자로서의 어학력과 통찰력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타키투스의 『연대기』를 자세히 읽었고 기원 1세기에 관한 장서를 거의 전부 다시 읽었다고 한다.
‘네로시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주후 60년대 네로 치세의 후반기 로마에서 소재를 취한 역사소설이다. 『쿠오 바디스』에 등장하는 인물은 거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며, 다만 리기아와 비니키우스 두 사람은 작가의 공상적 인물이다. 『쿠오 바디스』는 1900년에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되자 4개월 만에 12만부가 판매되었으며, 이후 35개국어로 번역 출간되고(아랍어, 일본어로도 번역) 영화화되자 전 세계를 휩쓸었다.
이 소설은 당시의 로마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풍속 습관 신앙 종교의식 오락 등에서부터 가옥구조 집기 의복 보석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 작품이 갖는 뛰어난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 “올바른 자는 무력을 쓰지 않아도 꼭 이긴다”, “사악한 권력은 그 사악 자체에 의해서 반드시 멸망한다”는 낙천적인 신념을 담고 있다. 제목 『쿠오 바디스』는 라틴어인데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물은 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쿠오 바디스 도미네? Quo Vadis Domine)에서 따온 것이다. 시엔키에비츠는 1916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세계적인 고전 역사소설인 『쿠오 바디스』는 박해받는 폴란드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고 세계인의 가슴에 정의와 진리의 승리를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남아 있다.
조국에 독립 정신을 심어준 헨릭 시엔키에비츠
헨릭 시엔키에비츠(Henryk Sienkiewicz, 1846∼1916)는 지동설의 주창자 코페르니쿠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을 배출한 폴란드 출신의 문인이다. 그는 1846년 폴란드의 볼라 오크세이스카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작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폴란드의 역사 소설가로서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해외로 망명하여 투쟁한 독립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습작에 몰두하여 1872년 첫 장편소설 『공허』(In Vain)를 <왕관>지에 게재한 후 단편소설 <늙은 하인>과 <하냐>, 그리고 중편소설 <목탄화> 등을 발표했다.
시엔키에비츠는 30세 때인 1876년에 바르샤바의 신문 <가제타 폴스카>지의 해외 특파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여행에서의 편지>를 써서 <가제타 폴스카>Gazeta Polska (the Polish Gazette)에 게재하였으며, 2년 후에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를 돌아 많은 견문을 쌓고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여 <음악가 얀코>, <등대지기>, <정복자 바르테크> 등의 중편과 단편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그는 폴란드 역사를 소재로 한 3부작 장편 역사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해 1883년에 <불과 검(劍)으로(With Fire and Sword)>, 1884년에 <대홍수(The Deluge)>, <판 보워디요후스키 씨> 등의 대표작을 발표하여 폴란드 국민들에게 독립 정신을 심어주었다.
시엔키에비츠는 1895년 49세 때 <농민의 아들>을 발표한 후 그의 생애 최대의 야심작이자 걸작인 『쿠오 바디스』를 3월 26일부터 <가제타 폴스카>지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다음 해인 1896년에 끝맺었으며, 이 해에 바르샤바의 게베트네르 사가 전 3권으로 간행하였다.
시엔키에비츠는 1916년 11월 15일 조국 폴란드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70세를 일기로 스위스의 베베이(Vevey)에서 눈을 감았으며, 2년 후 그의 유해는 광복된 조국 폴란드로 옮겨져 바르샤바의 성 요한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발췌]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늙은 사도가 흐느끼는 소리로 말했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나자리우스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나, 베드로의 귀에는 온화하면서도 슬픈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내 어린 양들을 버렸으니,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로마로 간다.”
사도는 꼼짝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그대로 땅에 엎드려있었다. (제70장 중에서)
<더 읽어볼 책>
『기독교문학고전의 이해』, 최종수 지음, 현대지성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