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제3년 3월 12일 요한복음 2장 찬송가 91장(새찬송가 91장)
0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0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0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0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0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0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0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0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0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가나에서의 첫 번째 표적과 성전 정화”
1장에서 서론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선언적 증거들이 제시된 데 이어 2장부터 12장에서는 그러한 예수님의 정체를 입증하는 여러 사건과 자료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들로서는 예수님과 만난 사람들의 증언과 예수님 자신이 행한 표적들이 제시됩니다.
그런 가운데 본 장에서는 본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일곱 표적 중 첫 번째 표적으로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이적이 소개되고 있으며, 이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사건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첫 번째 표적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장차 이 땅에 도래할 천국 잔치의 주인이심을 보여 주셨다면, 성전 정결과 관련해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이루심에 있어서 장차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통하여 그 때가 오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서로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표적(1-12절)
【1-4절】이 이적 사건은 예수님께서 아직 1차 갈릴리 사역을 개시하기 전의 일로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의 신성을 공개적으로 입증해 보이신 첫 번째 표적입니다. 여기서 ‘사흘 되던 날’이란 앞 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 때로부터 계산된 날짜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사흘’이라는 말은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은 생명력을 상실한 유대교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능력이 필요함을 알고 그것을 해결해 주시기를 구하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하신 것은 낮추어 말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때’는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해서 흐르는 주제로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서 그 정점에 달하게 됩니다(7:30; 8:20; 12:23, 27; 13:1; 17:1 참고). 그래서 아직 그 때는 멀었으나 마리아의 청을 받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적을 행하심으로써 예수님이 이루시는 구원사역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십니다.
【5-12절】예수님께서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부어 포도주를 만드시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돌 항아리’와 ‘6’이라는 숫자도 유대교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즉 결례의 항아리는 사람들에게 아무 기쁨과 생명도 제공하지 못하는 유대교의 의식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으며, ‘6’은 인간의 숫자이며 불완전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불완전함에서 구원의 기쁨, 즉 포도주를 만드십니다. 이 이적은 예수님이 천국 잔치의 주인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으로서,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심(13-22절)
【13-22절】유월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의 사역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주 유대의 절기를 언급하고 나서 새로운 사건과 자신의 논의를 진행해 나가는데(5:1; 6:4; 7:2; 10:22; 11:55), 이것은 유대인들이 지키던 모든 절기들이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보여주기 위한 그림자였음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시는데, 공관복음서에서는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에 일어났던 성전 청결이 이처럼 본서에서는 처음에 기록된 것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일이 실제로 두 차례에 걸쳐 있었던 일인지, 한 차례였는데 요한이 의도적으로 이 사건을 앞으로 가져와 기록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요한은 당시 부패한 유대교의 중심지인 성전에서의 종교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예배자로 설 수 없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서, 이런 사실이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1절과 같이 여기에도 ‘사흘’이란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과 이 성전 청결 사건을 연결시켜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진정한 구원의 기쁨과 참된 예배를 회복하실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절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신 것은 원래 예수님 자신이 그 안에 하나님이 충만하게 거하시는 성전의 실체로서, 이제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시면 그로 말미암아 세워질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진정한 성전으로 삼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사역(23-25절)
【23-25절】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도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표적들이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본서에는 일곱 개의 표적이 선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일곱 표적들이 예수님의 정체를 보여주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7’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기 위한 장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적들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에 진정성이 없음을 아셨으므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이 아닌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언제든지 실패하거나 사라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 묵상을 돕기 위한 질문
1.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표적입니까?
2. 예수님께서는 왜 그 몸을 사람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습니까?
◈오늘의 기도◈
“우리의 교회와 가정들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생명이 넘치게 하소서!”
◈믿음의 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음”
예수님께서 물로 만드신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이 한 말, 즉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고 한 말은 진정한 기독교와 세상에 속한 것들의 차이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그럴 듯한 것을 주는 듯 하다가 나중에는 시들해지고 가짜를 주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고, 거짓된 종교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기쁨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또 인간관계에서도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사람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고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인간관계도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삶 자체도 주님이 일으키시는 기적의 손길로 말미암아 나중이 더 기쁘고 좋은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