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자락에서의 망중한(忙中閑)
3월. 홍매화 소식이 섬진강 줄기 따라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듯 한데, 문득 천지를 뒤덮는 폭설이 쏟아진 후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세차게 이어지고있다. 작업실 한쪽 벽 하나를 다 차지한 대형 캔버스가 나를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다. 제주 성산포 일출봉을 항공촬영한 구도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그리고 있는데, 기존의 그림과 좀 다른 시도를 하고 있어서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고 있다. 화면 가득 온통 초록색 물감을 퍼부은 듯 바다 위에 떠 있는 일출봉이 청록색 물결로 출렁이고 있다.
어느덧 80 중반, 주변의 소멸해가는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반짝이는 나이, 곧 있을 미수전(米壽展)을 준비하고 있는 요즈음,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의 아이처럼 설레고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많은 「붉은산의 환타지」와 「신록의 인상」을 그려왔지만 지금 처럼 1000호 크기의 작품을 하려면 손이 닿지 않는 캔버스 위쪽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그려야 되니, 체력적인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고통스럽지만 또한 살아있음을 강렬히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28년 전 (캐나다)에서 돌아와 정착할 때, 집 뒤로 펼쳐 보이는 불곡산에 반해서 이곳에 깃들어 살기로 작정하였다. 불곡산은 설악산처럼 화려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시인이 말한 ‘대지(大地)의 아문 상처로서 상처의 크기만큼 존재감’을 드러내는 산도 아니다. 때로 고라니가 컹컹 울며 나타났다 사라지고 잡다한 나무 군락들과 그 속에 새끼를 낳고 살아가는 새들과 곤충과 벌레 꽃들의 삶이 있는 곳, 나도 그들과 함께 매일 그 숲속에 산다.
워낙 산을 좋아하여 평생 산을 모티브로 그려 왔지만 아직도 산은 내게 끝없는 영감을 주는 신화의 세계이다. 작업실에서 사계절 변해가는 불곡산을 바라보며 피곤한 눈과 마음을 쉬어가는게 나에게는 매우 큰 위안이다.
오늘처럼 그림이 나를 외면할 때는 미련없이 붓을 내던지고 저만치 앉아 멍하니 작업실에 깔리는 음악에 온몸을 열어놓는다. 음악 볼륨을 높인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흐른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럽풍으로 지은 붉은 벽돌집들 너머 비에 젖은 불곡산이 회보라빛 비안개에 쌓여 아득하다. 음악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불편하게 느껴지던 불협화음이 이젠 익숙하다. 최초 (파리)공연 때 분노한 청중들이 폭동을 일으킨 음악이 이젠 고전의 반열에 올라 불멸의 명성을 얻고 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 않은가. 인상파, 야수파도 처음에는 비평가의 조롱과 대중의 외면 속에서 새로운 사조가 시작되지 않았던가. (스트라빈스키)는 서양고전 음악의 정신을 따르지 않았다. 음악의 원시성을 추구했다. 오히려 음악의 원천으로 내려가려 했다. ‘원시주의적 색감’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세계 아닐까. 색채로 예술의 원천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음악과 미술은 세계 공통어인데. 음악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실내공기가 답답하다.
창문을 연다. 비에 젖어 번뜩이는 나뭇잎들. 깊은숨을 내쉬는 산. 푸른 산내음이 비의 비린내와 썩은 나뭇잎 냄새와 섞여 몰려온다. 겨울나무와 산이 내뿜는 위험한 원형의 향기가 허파 깊숙이 흘러들어 온다.
오후들어 비가 그쳤다. 창밖으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우울한 모습으로 지나간다. 전에는 그림그리기 위해 자발적 유배상태였다면, (팬데믹)이 오고나서는 완전 칩거 상태다. 작년 국제행사인 (키아프) (아트바젤)을 비롯해 (마니프) 구상대제전 등 굵직한 (아트페어) 지상전이 취소되고 (온라인)전으로 치러지는 등 공연계와 더불어 미술시장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시각예술인 그림은 현장에서 직접 보고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지를 못하니 미술계의 위기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위기는 곧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변화는 있었다. 젊은 작가들 중심으로 온라인 전시와 거래가 있었고 (SNS)를 통한 활동은 있어왔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그 시기가 3~5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가 아닌 컴퓨터와 담쌓고 작업에만 몰두해 온 중견, 원로작가들이다. 나도 딸의 도움을 받아 (인스타그램)을 개설하여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온라인) 전시는 그대로 활성화되어 (오프라인)전과 같이 가는 (하이브리드) 양상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많은 전시가 취소되고 있지만 한편에선 여전히 (갤러리)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오히려 지금같이 세계를 하나로 잇는 (네트워크) 시대는 작가들의 해외진출이 용이해보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BTS)가 (유튜브)로 유명해졌고 좁은 국내시장 보다는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개척하는것도 좋을듯하다.
역사는 전쟁, 전염병, 혁명등 인류 최대의 위기에서 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다. 흑사병이 중세 유럽문화를 무너뜨리고 인간중심의 (르네상스)를 앞당겼듯이, (코로나)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앞당겨지고 우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살아야 한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이 끝나가고 있다. 또 다른 혁명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