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
베트남 나트랑에 대해 미리 들은 것은 UN이 선정한 청정 해양지구에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꼭 가봐야 할 휴양지라는 것이었다.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448㎞ 떨어진 '동양의 하와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유혹이 있었다. 이번 일정 중에 2008년 미스 유니버스대회가 열렸다는 환상적인 호텔리조트와 그 미스유니버스 미녀들이 묵었다는 방에서 잔다는 유혹. 솔직히 그 대목이 더 매력적이었다.나트랑이 있는 캄란 공항으로 가기 전 잠시 들른 호찌민의 전쟁기념관은 실내가 무척 더웠다. 에어컨이 있는데도 냉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월남전 당시를 느껴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월남전 당시의 여러 사진들을 보며 무덥고 답답한 열대우림에서 안타깝게 숨져갔을 우리나라 군인들을 생각하니 잠시 숙연해졌다. 호찌민 공항에서 캄란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40여분 정도 거리. 올라갔나 싶으면 내려야 하지만 나트랑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캄란공항으로 바로 가는 전세기 직항이 곧 생긴다고 하니 왕래가 훨씬 수월해질 듯하다.
- ▲ 나트랑 다이아몬드 베이 리조트의 프라이빗 비치. /롯데관광 제공
자전거를 탄 하늘하늘한 아오자이 차림의 여인들은 이미 수십년 전 사라진 지 오래고 대신 오토바이와 그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트랑 시내를 차로 30분쯤 달리자 마침내 광고 이미지에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나트랑 해변의 다이아몬드 베이 리조트가 나타난다. 별 네 개짜리 호텔인 다이아몬드 베이 리조트는 앞서 말한 미스유니버스대회를 치렀던 곳인 만큼 시설은 휴양지로서 손색이 없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미스 트리니다드토바고가 묵었다는 방. 댕그라니 벽에 붙은 미스 트리니다드토바고의 대형 사진이 웃고 있다. 욕실 크기가 무려 방만 했다. 하지만 그외엔 필요 이상의 화려함이나 호화로움이 없는 깔끔하고 단정한 방이었다. 그 나라를 대표한 미녀라고는 해도, 남자 혼자 자는 휑한 방의 침대 바로 옆에 큼지막한 사진이 내려다보고 있으니 솔직히 기쁨보다는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3박 5일의 '빡센' 일정 탓에 밤엔 곯아떨어져서 다행히 가위에 눌리진 않았다.
짐을 풀고 나오자 베트남 최고의 해변답게 넓고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침 도착한 날이 베트남의 한 화장품 회사가 단합대회를 온 날이라 해변은 캠프 파이어 같은 그들의 밤을 준비하느라 조금 분주했다. 이런 곳에서 직원들이 단합대회를 가진다면 저절로 단합이 될 법도 하다.
처음 겪는 베트남의 더위였지만 생각보다 습도가 심하지 않았는데 들어보니 베트남에선 가장 낮은 습도를 가진 곳이 이곳 나트랑이라 한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리조트를 베이스로 삼고 차로 4시간 거리의 달랏에 갈 수도 있다. 싱싱한 해산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베트남 최대 수산시장인 담 시장을 갈 수도 있겠고 스파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나트랑 시내의 탑 바 온천에서 천연 머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뭔가를 경험해야 한다는 여행의 강박증이 없다면, 리조트에서 차와 배로 한 시간 거리의 미니비치를 추천하고 싶다.
미니비치는 작지만 무척 아름다운 해변이다. 지중해에서나 볼 법한 에메랄드빛 바다와 파도에 깎인 보드랍고 하얀 산호가 백사장으로 깔려 있다.
선크림을 반드시 챙겨야 할 정도로 태양은 따갑고 뜨거워도 짙고 넓은 나무 그늘이 있어 시원한 그늘 아래에 누워 가져온 책을 읽거나 낮잠만 자도 그 자체가 그림이고 광고나 영화의 한 장면이다. 미니비치는 신혼여행으로 와서 아이들을 빚고, 나중에 그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오게 된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듯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인 9월에 접어들면 아름다운 바다의 색깔도 마치 흙탕처럼 어둡게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까지 그곳은 마치 천국같이 눈부신 하얀 백사장과 투명한 바다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몇 푼의 외국돈을 환전해 가지 못한 탓에 재래시장에서 딸에게 줄 베트남 전통삿갓(논·non) 하나 사지 못한 나는 객실에서 신고 나온 슬리퍼를 끌고 아름다운 나트랑의 밤 해변을 서성였다. 그래도 명색이 아빠의 해외여행인데 뭐든 하나라도 사가야 어린 딸아이에게 기쁨을 줄 텐데…. 그런 걱정을 하며 돌아와 침대 머리에 누워 두 장 빽빽하게 딸에게 편지를 썼다. 누군가가 여행지의 편지만큼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 없다기에 머리를 굴린 것. 편지를 다 쓰고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일어나 앉는 순간, 신고 있던 객실의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에잇, 이거라도…."
물론 그 슬리퍼를 훔쳐 오진 않았지만, 대신 미니비치 해변에서 주운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예쁜 돌 하나를 봉투에 넣었다.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면 파도 소리가 들리듯이, 돌멩이를 쥐고 자면 에메랄드빛 바다가 꿈에 보일 거라는 그럴듯한 거짓말과 함께.
◆여행수첩
나트랑(Nha Trang)의 베트남 표기와 발음은 '냐짱'이다. 'ㅉ'을 tr로 표기한 유럽인들이 자의적으로 '나트랑'이라고 소개한 까닭이다. 17세기까지는 참파왕국의 땅이었고, 19세기 들어 프랑스가 유럽인들을 위한 휴양지로 개발했다. 한국에서는 7월 24일 직항전세기가 첫 취항하며, 롯데관광(02-2075-3003) 등에서 패키지 상품을 취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