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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축구대회
추석 명절 때에는 외지에 나가 살던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최대 명절이 아닌가.
우리 어릴때 추석 명절에는 축구가 빠질 수 없는 행사로 자리하고 있었다.
축구 행사는 대략 세가지가 기억된다.
첫째는, 경포국민학교에 모두 모여 동네별로 축구시합이 있었는데,
한밭/두루미/즈므가 한팀이 되고, 난곡/안현/저동, 죽헌/핸다리/원툉이, 지변/유천 등 지역별 대표들이 박터지게 치루는 경기가 있었는데,
이때는 총력전이라 장년층부터 젊은층까지 축구 잘하는 선수는 매년 고정출전하는 등 모든 경포 일대의 지역단결/청장년화합/뒷풀이 축제 모양이었다.
다음은 우리동네 축구 경기로, 아저씨/형님뻘 되는 동네 청년들이 양지말 골말로 나누어, 일찍 벼를 베어낸 논이나, 퉁퉁바우 모렝이 아래 냇가 모래밭에서 축구를 하는데, 커다란 고무공으로 축구를 하였다.
당시 정식 축구공은 가죽속에 주부를 넣고 공기를 넣은 다음 운동화 끈처럼 묶는 것인데, 원체 귀하고 비싼것이라, 보통때는 돼지 오줌통을 묶어서 차기도 했고, 짚으로 새끼를 꼬아 동그랗게 묶어서 차기도 하고, 가게에서 고무공을 사기도 하였는데,
고무공은 세 가지 크기가 있었다. 애들 주먹만 한 것부터 큰 나주 배만한 것, 그리고 가죽공보다 조금 작은 것이 있었는데, 추석날 경기는 그중에 큰 고무공으로 축구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축구공이 가로수에 맞아 가시가 박혔다. 그러니 가시를 빼면 바람이 빠진다고 가시를 그냥 박아놓고 잘라내고서 계속 차기도 하였다.
세번째 축구 경기는, 추석 다음날 통상 사천국민학교로 가서 사천 팀과 한밭(두루미) 팀이 축구 시합을 하는데, 사천 팀은 아마도 방골을 주축으로 하여 그 주변의 청년들이 모였을 것이다.
그때 사천 팀에 강릉농고 축구선수가 한명 있었는데(노랭이?), 그 선수가 중앙선에서부터 단독으로 사뿐사뿐 몰고 가서 골까지 넣는 묘기를 볼 수도 있었다.
아무튼 그때 그시절 추석 명절 축구는 간데없고, 한때는 고스톱으로 바뀌었다가 전자오락으로 바뀌고, 스마트폰 게임으로 바뀐 모양새가 되었으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고, 앞으로 추석 명절 풍습은 어떻게 바뀌어 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