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 임 사
‘이대부고’라는 같은 길에서 만나 아이들의 학업과 꿈을 위해 때로는 애면글면하면서, 동고동락의 긴 인생의 길을 함께 해온 선생님들을 마지막 뵙고 하직 인사를 올리고자 하니 알 수 없는 느꺼운 감정이 명치 끝으로 밀려옵니다. 그 동안 제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초등학교부터 23년간 학교를 다녔고, 그보다 긴 38년을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습니다. 거의 평생을 학교에서만 보낸 학교 바보인 셈이죠. 마을과 동떨어진 외딴 산마루 초원에서 소, 양들과 함께 평생 외롭게 생활하는 목자처럼, 저 역시 성스러운 공간인 학교에서, 때 묻지 않은 영혼들인 아이들과 여러분들과 함께 보낸 평생을 뜻깊게 생각합니다. “회상되는 모든 순간이 다 금쪽같은 시간들이었고, 떠오르는 사람들이 모두 노다지같은 사람들이었구나.”라는 깨달음에 새삼 행복해집니다. 왜 행복은 이렇게 나중에야 깨닫게 되는지요. 이대부고는 제 삶의 근거였고, 이대부고 교사는 현재의 제 삶의 유일한 정체성입니다.
하지만 퇴직을 앞두고 “이 학교는 너의 자랑이어듯, 너는 이 학교의 자랑이어라.”라는 제 가슴에 새겨진 격언처럼 과연 “나는 이대부고의 자랑이었나?”라는 물음이, 마치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심판처럼 엄습할 때마다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이대부고는 저의 자랑임이 분명하지만 저는 이 학교의 자랑이 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제 부족한 자질과 역량에, 나타와 무사안일까지 더해져서, 제 자신을 태워 아이들의 꿈을 밝히고, 동료 교사들과 따뜻하게 연대하며 준엄한 교사의 길을 가면서, 학교를 빛내는 촛불 같은 교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비유컨대, 차는 티콘데, 고속도로를 달린 셈입니다. 남들은 고속도로를 달리기에는 좀 못 미치는 티코가 고속도로를 완주한 자체만으로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부족한 티코로 장시간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일은 행복한 드라이브가 아닌 고행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교권은 점점 추락해 갔고, 대입 합격이 위주가 되는 교육 현실 속에서, 초등학교부터 입시 교육으로 찌든 학생들 대상으로 다시 좋은 대학 가자고 격려해야 하는 처지의 고등학교 교사로서 제가 제대로 된 학습 안내자와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교실에서는 점점 저를 향한 감탄의 얼굴과 존경의 눈빛은 사라져 갔습니다. 참된 지식의 전수와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을 위해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후배 교사들과 연대하여 교육 현실과 수업 방법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고, 사람이 다가가면 경계하듯 자리를 피하는 물가의 해오라기처럼 저만의 공간 속에서 자유롭지만 고독한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관리자로서, 연구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학교에 공헌하기를 기대하는 교장, 교감 선생님의 뜻도 충족시키지도 못했습니다. 남들은 교사가 편하고 쉬운 직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참된 교육자의 길은 너무도 어려운 길입니다, 이를 알면서, 편하게 가서는 안 되는 길을 평생 안이하게 살아가다 보니, 항상 목표의식과 실천의지 사이의 괴리감에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공헌감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기차표라는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이 이 시점에서 실감이 납니다. 제 코가 한 치만 더 높았더라면 진작 낙화처럼 이 길에서 떠났을 텐데, 이렇게 낙엽처럼 버티다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대부고에서 허락된 행복한 고행의 시간을 다 마치고 저는 떠나갑니다. 저는 제 ‘평생의 사랑“(Love of my life)인 이대부고를 떠납니다. 아니 제 ”평생의 사랑(Love of my life)“인 이대부고가 제 곁을 떠난다는 게 맞는 심정입니다. 이대부고는 영원히 제게 ‘퀸(QUEEN)’같은 존재로 남을 겁니다. 지금 본교가 어려움에 처해 있죠. 이대부고 역사의 새로운 큰 변곡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청포도가 햇빛을 받아 점점 검은 빛으로 익어 가는 때에 아쉽게도 본교는 큰 새로운 도전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십 년 전 자사고로의 전환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가를 이젠 우리는 압니다. 그 십 년 동안 이대부고라는 훌륭한 브랜드를 만들어간 주역들의 공헌을 잊지 마시고 그때처럼 다시 서로 합심해서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더 좋은 학교를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번 방학 때, 퇴직 기념 여행으로 ‘TMB(뚜르드 몽블랑) 트레킹’을 11일간 마치고 스위스 ‘몽뜨래’에 들러서 이틀 머물렀는데요. 거기서 뜻밖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을 만났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랍니다. 죽은 뒤에도 레만 호반에 세워진 그의 동상 앞에는 수많은 추모객들로 가득했구요, 그가 작업했다는 스튜디오 벽에는 수많은 이들의 헌정의 글들로 가득했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그때 이대부고 생각을 못해서 글을 남기지 못했습니다만 그는 이런 포즈로 서 있더군요. 저도 이런 포즈로 이대부고를 외쳐 보면서 퇴임사를 마치겠습니다. 고마운 분들, 고마운 일들 너무도 많아 일일이 거명하지 못하고 다만 제 가슴에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년퇴임 인사임.(2019.08,19) 상조회 모임에서(용산,마린칸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