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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꼬리를 내리는 자리에 따스한 기운이 살포시 스며들고 있다. 부는 바람이 그리 매섭지 않은 건 아마도 봄이 보내는 신호일 테니까. 올 겨울은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 철들지 못한 엄마 탓에 먼저 철이 들어버린 아이가 고맙고 안쓰럽고 미안하고 늘 죄인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만난 것 같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 마음의 짐을 만들어 혼자 버거워하고 아이가 아이처럼 나를 대할 때는 그 당연함을 감당하지 못해 늘 힘들었다. 특히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성장하느라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나를 대할 때마다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게 되었다. 가끔은 건성건성 이해하는 척 하면서 좋은 부모가 되고자 가면을 쓰기도 했다. 아이는 물론 나의 가면을 금방 알아챘지만 말이다. 처음 이 책을 소개받을 때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후다닥 구입했다.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내가 나의 가족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해 줬다. 여름 쯤, 아이와 언성을 높이며 며칠 간 냉전을 치른 적이 있었다. 언쟁의 주제는 잊어버렸다. 하지만 아이가 내게 했던 말 중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엄마가 언제 나를 위해 내가 다니는 학교에 온 적이 있어? 내가 몇 반인지 제대로 기억한 적이 있어?” 없었다. 대꾸할 말도 없었다. 아이에게 무엇인가 충고를 하고 언쟁을 해결하면서 부모의 권위를 지키려 했지만 아이가 울면서 한 그 말들이 입을 다물게 하였다. 늘 씩씩했지만 늘 외로웠던 것 같다. 말하지 않았어도 엄마가 가끔은 먼저 알고 달려와 주길 바랐을 텐데 나는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것으로 그 날의 언쟁은 끝이 났고 며칠 후 우리는 어색한 화해를 하고 다시 며칠이 흘러 아무 일 없듯 웃고 장난치며 얼굴을 마주본 적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날이 다시 생각나면서 나의 행동을 반성했다. 언쟁의 주제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마음 깊이 간직한 그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네가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 버린 것이다. 아마 아이는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았을 것이고 언제가 또 다른 언쟁이 생기면 다시 생채기가 될 것이다. 그 때는 지난 일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언쟁을 해야겠다. 이 글은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와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바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감정은 다 받아주고 행동은 잘 고쳐 주라.’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대한 핵심이다. 같은 감정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서로의 눈높이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정서적 토대가 형성돼야 원만한 타협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행동은 잘 고쳐 주라는 말처럼 자녀와 정서적 공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정서적 공감을 바탕으로 부모의 권위를 이용하여 도덕적 한계 내에서 행동의 허용 범위를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핵심을 터득하기 위한 단계별 전략은 부모와 자녀, 부부, 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에 폭넓게 적용할 수 있다. 조금 더 일찍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아이가 더 행복했을까하는 자문을 해 보았다. 아닐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내린 답이다.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은 그 날의 언쟁으로 아이와 진심으로 함께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나에게 던져준 해답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 나는 이제 엄마가 될 준비가 됐는지 모른다.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이 벌써 14년, 아이의 행복한 기억 속에 내가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반성한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엄마와 딸, 친구, 동지, 동료로 함께 할 시간이 더욱 많아질 테니까. 엄마가 준비될 때까지 많이 참아준 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딸, 사랑해.” 덧붙여 저의 딸을 지금까지 키워주시고 보듬어주신 조성순 님께 진심을 다해 큰 절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