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조상으로 대접받는 바리공주
바리공주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속신화이며, 모든 무당이 조상으로 대접하는 ‘무조신(巫祖神)’의 내력이 담긴 이야기이다. 바리공주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 안에 지내는 사령제(死靈祭)인 ‘진오기굿’에서 구연이 되고,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에 전승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이본들이 채록되어 있으며, 이본마다 세부적인 차이는 보이나 일관성 있는 서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바리공주의 이름은 ‘버려진 공주’라는 뜻으로 바리데기, 버리데기, 베리데기 등으로 다양하다.
버려진 바리공주가 부모님을 구하다
어느 나라의 임금이 장가갈 나이가 지나도록 짝을 찾지 못하다가 칠대부인과 혼인하게 되었다. 이때 점쟁이가 올해 결혼하면 흉하고 내년에 하면 흥할 것이라고 했지만, 임금은 그 말을 무시하고 결혼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여섯 번째까지 모두 딸을 낳았다. 다시 일곱 번째 아이를 가졌고, 부부는 아들을 바랐으나 또 딸을 낳았다. 또 딸이라는 소식에 임금은 노하여 ‘바리공주’라 이름을 지어주고, 내다 버리라고 했다. 버려진 공주는 비럭할미와 비럭할아버지에게 구원받아 키워졌다.
시간이 흘러 바리공주의 부모가 죽을병에 걸렸지만,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대왕이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 하니, “바리공주를 버린 죄 때문에 그러니, 빨리 바리공주를 찾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대왕과 왕비는 바리공주를 찾으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는데, 부처님이 나타나 바리공주가 사는 곳을 알려주어 찾을 수 있었다. 대왕은 공주 일곱을 불러 놓고, “누가 무상신의 약려수를 구하러 떠날 것이냐?”라고 했다. 여섯 명의 공주가 망설이고 있을 때 바리공주가 자신이 구해오겠다고 했다.
바리공주는 남자 행색을 하고 무쇠 두루마기와 신발, 지팡이를 들고 약을 구하러 떠났다. 부처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무상신의 집에 도착했다. 무상신에게 약려수를 달라고 부탁하니, “약려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물 값, 나무 값, 불 값을 치러야 한다. 이 값을 치를 돈이 있느냐?”라고 했다. 바리공주가 돈이 없다고 하자 삼 년 동안 일을 하라고 했다. 무상신의 집에서 삼 년간 일을 하고 나니 다음에는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여자 같은데, 나랑 결혼하여 칠 형제를 낳아주면 약을 주겠다.” 라고 했다. 바리공주가 어쩔 수 없이 무상신과 결혼하여 칠 형제를 낳았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바리공주
그러던 어느 날, 바리공주가 꿈을 꾸었는데, 꿈이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이제 부모님께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바리공주는 무상신과 함께 일곱 아들을 데리고,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과 약려수를 갖고 집으로 향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하였는데, 상여 행렬이 보였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나라님 장례라 하였다. 바리공주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하자 사람들이 놀라 그 이유를 물었다. 바리공주가 “나는 나라님의 일곱번째 딸입니다. 무상신의 약려수를 구해왔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군요."하니 사람들이 놀라 상여를 내리고 관을 열었다.
바리공주가 꽃과 약려수를 이용하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에서 깬 듯이 일어났다. 대왕과 왕비는 바리공주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대궐로 돌아갔다. 온 나라가 기뻐하였고, 바리공주와 무상신, 그리고 일곱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훗날, 바리공주는 영혼의 신이 되어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무상신은 저승가는 혼령한테 제사를 받으며, 일곱 아들은 칠성이 되어 칠월 칠석 맞이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이야기
바리공주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이야기기로 한국 서사무가의 전통적인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신화이다. 이 설화는 온갖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되는 바리공주의 일생이 영웅서사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바리공주의 삶을 통해 남존여비 사상과 가부장적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또한, 죽은 부모를 살리는 바리공주를 통해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민중의 바람과 초월적 세계에 대한 염원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