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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기에 수록되어 있는 족보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아주 독특하고도 짧은 이야기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전기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아주 짤막한 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9-10]
본문 말씀은 족보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영롱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눈이 번쩍 떠지게 하는 대목입니다.
도대체 야베스 라는 사람은 누구란 말입니까?
그다지 유명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돌연히 이름이 나타나더니 그의 일생이 잘 다듬어진 조각품처럼
족보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끔 족보 중간 중간에
어떤 인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첨가되기는 하지만[2:32-35,4:21-23]
야베스 라는 낯선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참 극적이고도 독특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사람의 삶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서 감동을 받고자 하는데
먼저 주목할 것은
야베스가 ‘그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소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귀중한 자’란 ‘출세하여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의미도 있고
‘존경받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때문에 ‘야베스의 삶이
형제들 중에서 어떤 면으로든 탁월하여 존경받았다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추측입니다.
뭔가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그런 자랑할만한 업적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엉뚱하게도 고달팠던 인생을 반영하는 듯한
그의 ‘이름’에 대한 설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지어준 것인데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수고로이’라는 번역은 뉘앙스가 약한 번역입니다.
차라리 ‘죽을 고생을 해서 낳았다’고 해야 보다 더 적절합니다.
왜 그런가하면 야베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고통’을 의미하는
“야차브”라는 명사를 조금 변행시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야베스 라는 이름과 연관해서
‘죽을 고생을 해서 낳았다’고 해야 보다 더 적절한 표현입니다.
이름이 가진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수고와 고통을 의미하는
야베스 라는 이름은 그다지 좋은 이름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대로라면 그의 어머니는 물론
야베스도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평생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괴로운 환경과 조건 속에서 태어난
야베스가 어떻게 귀중한 자가 될 수 있었를까’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귀중한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이 바로 그가 드린 기도 속에 숨어 있습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고통의 수렁에서 건져 올리고
귀중한 자의 자리에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본문에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는데,
야베스는 대체 하나님께 어떤 기도를 드린 것입니까?
1.야베스는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베스는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설명을 드리면 이 문장은 조건절로 끝나버리는,
여운을 남긴 불완전한 문장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강력하게 떼쓰지 못하는
왜소한 야베스의 모습이 이 말속에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찌들고 찌든 처절한 모습으로 처연하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만큼 야베스의 삶은 처절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복’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복이란
‘사람의 힘으로는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하늘의 은혜’를 말합니다.
‘육신과 영혼이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생명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야베스의 마음은
‘하나님이 나에게 큰 복을 주시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으로,
그러면서도 끝까지 말을 잇지도 못할 만큼
절실한 바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처절하고 간절한 심정, 그 처지가 이해가 갑니까.
지금 야베스는 처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놀랍고도 무조건적인 은혜에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을 철저하게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야베스처럼 선함과 인자하심이 풍성한
하나님의 본성에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맡기시기 바랍니다.
‘복 달라’는 기도는 결코 천박한 기도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이라는 가치관으로
그 의미를 왜곡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자신의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생명력이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했습니다.
이런 것, 이렇게 되기를 구하는 것이 진짜 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2.야베스는 하나님께 나의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복을 구한 야베스는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나의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합니다.
‘지역’이란 말은 ‘영토’를 말하기도 하고
어떤 ‘한계’ 나 ‘영역’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야베스가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은
한계나 장애를 없애달라고 한 것입니다.
야베스가 활동을 하는데
여러 가지 장애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랬기 때문에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보았고,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에 의지하여
자기에게 부여된 한계를 극복하려고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이 불편해서,
또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너무 심한 어려움울 겪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정 문제나 이웃과의 문제로 인해
늘 난관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내 지역을 넓혀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소망이 충분히 뻗어나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잘 안 된다고 한탄만 하지 마시고 더 많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야베스처럼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의 손으로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매우 시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기도입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넘어진 자를 일으키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성경에서 ‘주의 손’
즉 ‘하나님의 손’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행11:21]
하나님의 손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기적의 손입니다.
초대교회는 실패한 자들의 모임이지만 주의 능력의 손이 함께 하자.
굉장한 파워를 뿜어내는 공동체로 변모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야베스는 힘들고 지친 상황 속에서
주의 능력의 손이 자기를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기를 구하는 것은
복된 삶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니 미련한 우리와는 달리 야베스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대하16:9]
하나님께서는
다정스러운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지러 할 때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
그 ‘주의 손’으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야베스는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환난’은 재난이나 나쁜 일을 말합니다.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것은
재난으로부터 구원하시고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야베스는 지금 현재 화난과 근심 가운데 있습니다.
이름으로 보아도 야베스는 고통 가운데 태어나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화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되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베스뿐만 아니라
시편에 등장하는 많은 경건한 시인들도 환난과 우환 속에 처한 자들이었고,
그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깊은 수렁 속에서 건져주실 것을
간구했다는 사실입니다.[시6:4,7:1, 119:153]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사정사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만 도와주실 것을 간구 했습니다.
왜? 환난 속에서 건져 평강으로 인도하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었기에 하나같이 하나님만 모시고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여러분이 이 비밀을 알기 원합니다.
본문의 주인공 야베스도 이 비밀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자만이 하나님께 모든 환난을 벗어나
근심없이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맏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원어상으로 볼 때
야베스의 기도는 불완전한 조건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내게 복을 주시고 내 지역을 넓혀주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주시기만한다면..”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간절함이 숨어 있는 그런 기도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에 대한 결론이 어떠했습니까?
본문은 이렇게 끝납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들을 다 이루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실현시켜 주셨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구하는 자는 인간이고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고,
결단코 그 형제들 중 가장 귀한 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야베스처럼 기도하여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하나님께 이처럼 멋진 기도를 몇 번 드린 것입니까?
또 구한 것을 응답 받는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본문에는 야베스의 기도가 단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도를 한번만 드렸을 리는 없습니다.
셀 수 없는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 바쳤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야베스에 대한 사람들이 내린 평가입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
후세 사람들은 인생의 승리자로 평가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어렵더라도
혹 어렵고 힘든 현실에 부닥칠지라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야베스처럼 기도의 사람이 되어 야베스의 기적을
내 삶 속에 일으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 구하고 얻고 누리게 하실 은혜...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 하나님~ 그 편에 기대어 손잡아 이끄실 은혜를 구합니다. 아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