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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걷다
2009, 10, 10 토요일 (맑음)
제주올레 5코스 남원 포구 - 쇠소깍 15Km
방안 가득 들어온 햇살 에게도 '안녕' 하고 인사하고픈 한가하고 따스한 아침이다.
이런 아침을 맞은 지가 얼마만인가? 나를 옭아매고 있던 일상에서 탈출한 기쁨이 충만해
잠에서 깨고도 침대에서 미적거리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일어나 커튼을 여니 밤에 도착해서 보지 못했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아름다운 산책로와
정원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창문을 열며 탄성을 지르니 남편이 곁에 와 선다. 아침으로 가져간 누룽지를 끓여 먹고 커피까지 마셨다.
그릇 몇 개 설거지까지 남편이 해주어 여유로운 아침의 기쁨을 배가 시켜주었다.
지난해 모셔온 시어머님 봉양奉養과 금년부터 시작된 손녀 딸 양육으로 나의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평생을 시골에서 사신 시어머님은 청력을 잃으셔서 잘 듣지 못하시고,
이해력도 전무全無한 상태라 도통 대화가 되지 않는다. 혼자서는 집 밖에도 못 나가시고
남편이 "어머니는 당신 꼬리야"할 정도로 나만 바라보고 쫓아다니시는데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5남매나 되는 자식들은 큰 아들네 계시니까, 큰 아들이니까 당연히 모셔야지, 하는 것 같은 상황도
상당히 곤혹스럽고, 어머님 또한 '내가 있을 곳에 있어야지 어디를 간다냐?' 하시며 다른 자녀들 집엔 다니러
가지도 않으려 하셔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녀딸 양육 또한 만만치 않았다.
소중한 생명을 잘 양육해야 된다는 부담도 있었고, 아이와 함께 패키지로 따라온 많은 일들로 손이 마를 새가 없었다.
거기에다 나는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에 체력은 밑바닥이어서 감당할 만한 힘과 여유가 없었다.
나의 성향이 무시된 채 흘러가는 일상에서 가끔씩 "도망가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를 주문처럼 되뇌었다.
이런 나의 탈출을 도와준 것은 제주에서의 결혼식이었다.
주일날이 결혼식인데 토요일 비행기 표도 매진되었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조금 일찍 내려가서 올레 길을 걸어보자"
하고 금요일 저녁 비행기를 탔다. 요즘 인기 있는 국민항공은 우리를 가볍게 제주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서귀포의 사촌 형님 댁에 알리면 우리의 자유 시간을 뺏길 것 같아 남원읍에 있는 금호리조트로 조용히 숨어들었다.
이곳은 딸의 직장에서 직원 복지용으로 계약한 곳인데 3일 동안 딸 덕을 보게 되었다.
금호리조트는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인 '큰 엉 경승지'를 끼고 넓은 대지위에 아름다운 건축미까지 뽐내고
있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여장을 차리고 1층 로비에 내려와 안내 센터에 가까운 올레 길을 추천해 달래니
리조트의 정원격인 '큰 엉 경승지' 가 올레길 5코스라고 한다.
"와우! 자동차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겠네"하며 좋아서 벙글거렸다.
5코스는 일출봉이 아스라이 보이는 남원포구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인 '큰 엉 경승지'
산책길을 지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우리가 걷기 시작한 리조트의 정원에서 30분 정도는 반대로 가야 시작점인 남원인데 우리는 리조트와 연결되어
있는 '큰 엉 산책로'로 들어가 '쇠소깍'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산책로를 남편과 얘기하며 끝까지 가니 막다른 골목이었다.
지나가는 어르신께 물으니 노랑과 파랑을 따라가라고 하신다.
자세히 보니 나무에는 노랑색 리본이, 도로에는 파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가끔 있는데다 색깔도 퇴색되어 있어 처음엔 잘 보이질 않았다.
나무에 매달린 리본의 노란색은 귤을 의미하고 도로에 그려진 화살표의 파란색은 바다를 의미 한다고 하였다.
쇠소깍에서 남원까지, 역逆으로 오는 도로 표시는 주황색 화살표였다.
마을을 지나면서 도로에 서 계신 어르신께 '안녕하세요!' 하고 웃으며 인사하니 귤을 따 주마고 손짓하신다.
남편은 가슴 한 아름의 귤을 받고 인심 좋다며 싱글벙글 하더니 지나가는 젊은 부부를 불러 귤을 나눠준다.
이 부부는 결혼 1년 기념여행 왔다는데 금호리조트에서 묵고 아침산책 중이라고 했다.
아침공기처럼 상큼한 젊은 부부와 넷이 걷고 있는데 등산장비로 완전무장한 아저씨 한분이 숨을 헐떡이며
우리 뒤를 쫒아 오신다. 한참을 얘기하며 가다 왠지 이상하여 보니 코스를 이탈하여 마을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다시 돌아와 젊은 부부는 아직 아침식사 전이라며 리조트로 돌아가고 아저씨 와 셋이 마을올레를 벗어나
바당올레로 들어갔다.
우리와 같이 동행하게 된 아저씨는, 집은 일산이고 남편 보다 한 살 아래이며 지난해에 정년퇴직을 하셨다고 했다.
오늘이 5일째로 올레 1코스부터 시작하여 5코스를 걷고 있으며, 내일 6코스까지만 걷고 올라가서 내년에 유채꽃 필 때
다시 내려와 14코스까지 완주 할 거라고 하신다.
매일 코스 끝에서 숙식을 하신다며 배낭이 무거워 보였다. 이틀을 걷고 나니 발에 물집이 잡혔다는데,
3일째 3코스가 22Km나 되는데다 발까지 불편하여 가장 힘들었다고 하신다.
부인은 걷는 걸 싫어해서 테니스와 수영을 하고, 아저씨는 등산과 여행을 좋아 해서 따로 다닌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18개국을 여행하셨고 겨울에 터키, 그리스를 갈 계획이라고 하셨다.
우리 또한 여행을 좋아한데다 여름에 터키, 그리스를 다녀왔기에 대화가 잘 되었다.
앞으로의 여행 계획과 여행지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서 흥미로웠다. 내가 '영어를 잘 하시나 봐요?' 했더니
일산 아저씨 왈 "우리가 돈 쓰러 가는데 자기네가 우리말 알아들어야지 언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하시는데
그 말에 동감이 가면서 왠지 모를 당당함이 느껴졌다.
5코스는 해안도로로 유명한 곳인데 지나가는 해안가에 미역을 말리는 짭쪼롬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인심 좋은 남편은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마다 귤을 나누어 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귤을 안고 있던 가슴은 비어 있었다.
올레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큰소리로 '안녕 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을올레도 운치가 있었지만 바당올레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파도와 바람에 깎인 돌들의 아름다움과, 각양각색의 해안선의 어우러짐에 탄성을 지르다 보니 '신그물과 태웃게'에 도착했다. 신그물은 단물이 나와 물이 싱겁다는 뜻이며 '태웃게'는 바다를 향하고 만들어진 노천탕을 말한다.
바다와 붙어 있는데도 민물이 나와 예전엔 이곳에서 주민들이 노천 욕을 즐겼다고 하였다.
남탕과 여탕이 있는데 우리는 남탕이라 쓰인 곳에 모두 들어가 손도 씻고 발도 씻어 보았다.
바로 옆에는 짠물이 찰랑거리는데 시원한 민물이 솟아나고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제일 먼저 들어간 일산 아저씨는 손으로 물도 떠 마셔보고 양말을 벗고 씻기도 하면서 적극적인 체험을 하셨다.
그분의 성화에 남편도 마지못해 물가에 앉아 세수 하면서 시원하다며 싱글벙글 한다.
뒤따라오던 사람들도 내려오기 쉬운 남탕으로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어 '여자는 여탕으로 가세요!' 하며 같이 웃었다.
다시 시작된 마을올레 코스를 걷다보면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과거 이 일대에는 어른이
두 팔을 벌려도 못 안을 만큼 수령이 오래된 토종 동백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황무지를 옥토로 가꾼 한 할머니의 땀과 정성이 깃든 땅이다.
열일곱 살에 시집온 현맹순 할머니는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의 농토를 모진 바람으로 부터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씨앗 한 섬을 따다가 심어 기름진 땅과 울창한 동백 숲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동백나무 숲길은 숲 터널이 되어 땀 흘린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었다.
만사가 정확한 일산 아저씨에겐 따스함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의 동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가끔씩 서로 사진도 찍어주면서…….
이야기를 계속하며 걷는데 바닷가에 한눈에 시선을 잡아끄는 뾰족한 기암괴석 군이 나타났다.
'조배머들코지'라는 곳이다. 위미항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데 그 규모가 예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작아졌다고 한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한 풍수학자가 '큰 인물이 나올 곳'이므로
맥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 마을의 유력자인 김 아무개를 거짓으로 꾀었다고 한다.
바위가 김 씨 집안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형상이므로 저 바위를 치워야 집안에 우환이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김 씨는 집안을 지키려고 기암괴석을 파괴했고, 그 과정에서 이무기가 붉은 피를 흘리고 죽었다고 한다.
위미농협 마트에 들러 남편이 시원한 우유를 사서 일산 아저씨께 드렸는데 '자기가 사 먹을 건데 이러지 마시라' 며
역정을 내신다.
계속되는 바다길,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 햇살이 따가워 진다. 모두들 전문가답게 얇은 긴팔 등산복을 입었는데
나와 남편은 짧은 티에 긴 잠바를 준비한 터라 더워서 잠바는 입을 수도 없고 하루 동안 여름보다 더 까맣게 태웠다.
신발이라도 편하면 좋으련만 워킹 화를 준비해 신고 간 우리는 가뜩이나 낯선 길을 눈치까지 보며 걸어야 했다.
'넙빌레'라는 해안선이 아름다운 곳에 조망하기 좋은 넓은 잔디밭이 있어 처음으로 일산 아저씨 가방을 내리고 쉬었다.
일산 아저씨는 연거푸 담배 두 대를 피우시고 일본에서 사온 과자라며 생강 과자를 배낭에서 꺼내 주신다.
딸 결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연신 부인한테서 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하시다.
딸 장롱을 보러가서 자기 집 장롱을 바꾸겠다고 저런다며 허락해야지 반대한다고 듣습니까? 하신다.
따라다니지는 않으면서 혼자 오면 못미더워서 시간마다 전화 한다며 동행한 부부라고 보여 주겠다고 하여,
그 분 카메라 앞에 나와 남편이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해 주었다.
검은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공천 포에 도착하니 12시가 되었다. 먼저 일산 아저씨가 아침을 대충 때워서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하신다. 우리도 아침을 누룽지로 때운 터라 같이 먹자고 했다.
식당 입구에서 위미에서 우유 때문인 듯 '밥값은 각자 냅니다!' 하고 못을 박으시는 아저씨께 바늘구멍도 없는
정확함이 느껴졌다. 남 사주는 걸 즐기는 남편이 '땡'하고 얼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분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대충 헐렁한 나의 남편과 정 반대의 성격이었다.
물 회 전문식당인 '공천포 식당'은 한치물회 5천원, 소라물회 6천원이다.
일산아저씨와 나는 한치물회를 남편은 소라물회를 각자 지불하고 먹었다.
바로 옆 좌석에는 누가 값을 지불하는지는 모르지만 물 회에 막걸리에 술안주까지 상이 그득하다.
이 길을 아홉 번째 걷고 있다는 제주와 사랑에 빠진 서른 두 살의 목포총각은 성남에 살며 서울에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내가 목포에서 학교 다닐 때 자취했던 한동네에 바로 이웃집이 자기 집이라며 더욱 반가워한다.
조각같이 잘 생긴 총각이 외모가 개성 있는 여자와 겸상을 하고 있어 여자 친구냐고 물으니 여자 친구와는 여름에 왔었고
오늘 올레길 에서 만났다는데 막걸리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한시가 되어 다시 출발했다. 이제 한 시간 남짓 가면 5코스 종점인 쇠소깍 이라고 한다.
기행문을 쓰기 위해 계속 기록하는 내 모습을 보고 일산아저씨 자신은 여행할 때 매일
금전출납부만 기록한다며 나한테 대단하다고 하신다.
공천포를 지나서 망장 포구로 가는 바당올레는 5코스 중 가장 난 코스였다.
바닷가에 솟아있는 기암절벽(?)을 넘어가야 하는데 난 거의 기어서 올라가긴 했는데 내려가질 못해서
앞에선 남편이, 뒤에선 일산 아저씨가 잡아주어 두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겨우 내려왔다.
우리가 먼저 출발했는데 막걸리를 먹고 있던 목포총각 팀이 우리를 따라왔다. 일행은 다섯이 되었다.
올레 길의 달인이 된 목포총각의 해박한 지식은 우리를 즐겁게 했다.
성격까지 좋아서 얘기도 술술 잘해 딸 하나 더 있으면 사위 삼고 싶을 정도였다.
맛 집 정보며, 싸게 잘 수 있는 숙소, 콜택시 전화번호까지 올레에 관한한 모르는 게 없었다.
망장 포구를 지나면 마을올레길인데 오솔길과 숲속 길을 지나면 계속되는 귤 밭이다.
일하시는 분들께 인사만 하면 귤을 따서 안겨 주신다.
방금 딴 귤의 알갱이들이 입안에서 터지는 싱그러운 그 맛은 그냥 맛있다는 표현으론 왠지 부족할 것 같다.
쇠소깍이 다가오면서 길은 더욱 아름답다. 효돈 천위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다리 끝에 쇠소깍이 있다고 하였다.
이 예쁜 다리에 여름 방학 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줄을 서서 걸었다고 한다.
목포 총각은 오늘은 꼭 쇠소깍을 떠다니는 '태우'를 탈거라며 우리에게도 꼭 타라고 권한다.
우리 모두도 탈거라고 했더니 전화를 걸어 오늘 '태우'가 운행을 하는지 점검하면서 바쁘게 걷는다.
쇠소깍은 알려진지 오래되지 않은 숨겨진 비경이다.
쇠소깍 앞 도로에 "태고의 신비! 에메랄드 빛 감동! 쇠소깍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쇠소깍이라는 이름은 제주도 방언이다. 쇠는 효돈 마을을 뜻하며, 소는 연못, 깍은 접미사로서 끝을 의미한다.
원래는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고 하여 '쇠둔'이라고 불렀다.
계곡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 뛰어난 비경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합수하면서 만들어낸
쇠소깍의 깊은 물에는 손으로 줄을 당겨 이동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교통수단인 '태우'가 떠다닌다.
40-50분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천천히 유람하는 '태우'의 이용요금은 5천원으로 마을 청년회에서 운영한다.
아름다운 경치에 탄성을 지르며, 목포총각이 잡아준 배경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으며 '태우'가 출발하는 곳에 도착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떠난 '태우'가 마지막 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 분도 못 타셨다며 울상이시고, 목포총각도 아홉 번째 시도했는데! 오면서 계속 전화로 확인했는데! 오늘은 꼭 탈줄 알았는데! 하며 아쉬워한다.
'태우'는 뗏목과 같은 배로 예전 의 고깃배 형상인데 바람이 조금만 일어도 운행을 하지 않는단다.
태우를 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헤어질 준비를 했다. 아침부터 동행한 일산 아저씨는 내일 6코스를 걷기위해
숙소를 알아보고 쉬어야 겠다며 가시고, 매일 두 코스씩을 걷고 있다는 목포 총각은 프린트해 온 올레길 정보
한 아름을 나에게 주고 오늘 6코스까지 걷겠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6코스는 쇠소깍에서 외돌 개 까지 14.4km라는데 젊음이 좋긴 좋다.
나와 남편은 쇠소깍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효돈천(孝敦川)길 1.3Km를 걸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로 나왔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서귀포시이고, 동쪽으로 가면 리조트가 있는 남원이다.
서귀포로 가서 형님 댁 식구들과 합류할까도 생각하다 오랜만에 얻은 자유를 구속받기 싫어서
남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리조트를 지나쳐 포구까지 갔다.
오후 4시, 리조트에는 고급 레스토랑만 한 개 있고 주변엔 식당이 없어서 이곳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들어가려고
남원포구 앞에서 내려 회집으로 들어갔다. 회덮밥 2인분과 전어 회 한 접시, 좁쌀 막걸리 한 병을 주문해서 상에 올렸다.
유산균이 요구르트의 다섯 배가 들어있다는 걸 어디에선가 본 후로 남편은 막걸리 예찬론자가 되었다.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한 종지 주는데 술 맛을 모르는 내 입에는 그저 독하기만 했다.
남편도 두 종지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반도 더 남은 막걸리를 옆 테이블에 선물했다.
배가 빵빵하게 저녁을 먹어서 운동도 할 겸 아침에 못 걸은 5코스 초입부분을 걸어서 리조트로 가기 위해
남원포구 앞 5코스 출발점을 찾았다.
갈대와 코스모스가 우거진 바닷가 길이었다. 하루해가 생명을 다하려는 붉은 기운이 천지를 아름답게 감싸고 있었다.
조금 걸으니 '큰 엉 경승지' 입구가 나왔다. 남원 바닷가 인근의 산책길인 '큰 엉 경승지'는 외돌 개 근처 돔베낭 길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로 꼽힌다.
높이가 15-20m에 이르는 기암절벽이 성곽처럼 둘러서있고 산책로 중간 즈음에 '큰 엉'이 있다.
'엉'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그늘(언덕)을 뜻하는 제주방언이다.
에메랄드 빛 바다는 여름에 가서 보았던 지중해나 에게 해보다 더 푸르고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다.
우리나라가 '금수강산錦繡江山' 이라는 말에 다시금 동감 하며 바닷가에 서서,
아침부터 가슴 따스하게 동행해주고 떠나는 햇살에 작별을 고했다.
제주, 또 걷다
2010. 3. 4 목요일(흐리고 비)
제주 올레 6코스 쇠소깍 - 외돌 개 14.4km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을 웅크리고 있었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미풍을 느끼며 난 벌써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난 여행을 싫어하고 한 곳에 정지해 있는 것을 좋아하는 정적인 사람인줄 알았는데
나에겐 나의 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풍류를 즐기시던 한량이셨고 늘 조끼까지 갖춘 정장을 입으시고 영국풍의 중절모와 지팡이 까지
들고 다니는 멋쟁이셨다. 새로운 것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으로 각종 박람회를 섭렵하시고
친구들과 전국여행을 다니며 자신만의 삶을 즐기셨다.
나의 아버지가 생전에 당신의 모습과 성품까지 빼 닮았다며 늘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는데 난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 나의 성향을 안 것은 불과 몇 년 전 이다.
이런 나의 성향을 일찌감치 알고 계신 나를 지으신 분은 딸에게 둘째 아이를 빨리 잉태케 하셔서 나의 아기보기는
13개월 만에 졸업 하게 되었다. 3월부터 딸이 둘째 출산 휴직에 들어가게 되어 나에게도 덩달아 휴가가 주어졌다.
지난해 10월 형님댁 결혼에 가서 올레 길의 맛을 본 나의 가슴 한편에 금년엔 제주올레를 완주하리라는 꿈이 생겼다.
'아기보기 졸업여행'을 제주올레로 정하고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저가 항공권과 숙박 등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통하면 마음에 길이 생기고 눈이 맞으면 눈길이 생긴다고 마음이 통한 친구 세 명이 나의 여행에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친구들과 맞추느라 6박 7일을 예정 했다가 2박 3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비수기에 저가항공,
우리의 제주여행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떠나기 전날 내일 전국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내일 제주에 비 온대!'하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3일내내 온대'하고 친구가 답을 보내왔다.
마음 한구석이 쿵 내려앉으며 덜컹 거렸다. '할 수 없지 뭐, 예약 해놓았으니 내려가 봐야지' 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심리학자 '애들러'는 "인간의 가장 놀라운 특성 가운데 하나는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힘이다"라고 했다.
아침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갔는데 공항 가까이 사는 내가 제일 늦었다.
친구들은 7시도 안되어 공항에 도착했다며 기다리고 있었다. 잔뜩 찌푸려 있는 구름을 뚫고 비행기가 하늘로 올랐다.
구름위에는 밝은 햇빛이 우리를 반기고 구름들의 군무는 수수한 듯 현란했다.
제주공항에서 5천원을 내고 리무진을 탔다. 서귀포 숙소인 서귀동의 크리스털 호텔에 도착해 가방을 맡기고
호텔에서 소개해준 근처 네거리식당에서 5천 원짜리 생선구이 정식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다.
6코스 출발하는 쇠소깍을 가기위해 버스정류장을 물었다. 지나가는 할머니께 여쭈니 귀가 어두우신지 대답을 못하신다.
나에겐 귀를 못 들으시는 두 분의 어머님이 계신 터라 그냥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젊은 남녀에게 물으니
'농협 앞에서 위미 행 동서교통 버스를 타세요.' 한다.
함께 걸어 농협 앞에 갔을 때 마침 오는 버스를 보며 '저 버스 맞아요. 저걸 타세요.
'시원하게 안내해 주고 둘이 다정히 껴안고 가는데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버스기사도 친절하여 운전하시면서 올레길 에 관한 정보를 안내 해주시고 내리는데 '좋은날 되세요.'
하고 덕담까지 해 주신다.
6코스는 쇠소깍을 출발하여 서귀포 시내를 통과, 이중섭거리와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거쳐 외돌 개까지 이어지는
해안-도심 복합올레다. 쇠소깍 입구에서 내려 효돈 천을 옆에 끼고 쇠소깍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비는 오지 않는데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다.
식당에서 며칠 동안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럽고 좋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신학기인데다 날씨까지 좋지 않아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쇠소깍은 거기 그대로 있는데 두 번째 보는 나의 마음이 변덕스러워 지난해 가을과 같은 감동은 없었다.
며칠간 온 비에 물빛은 흐리고 겨울을 지난 나무들도 스산했다. 6코스는 쇠소깍이 출발점이니 이제 출발인 셈이다.
시계는 1시를 가리킨다.
쇠소깍을 돌아나가면 넓은 바다와 만난다. 바람이 와! 하고 왁자지껄 하며 달려온다.
냄새를 맡으니 싱그러운 봄 냄새를 싣고 온 바람이다. 우리는 타이타닉호의 주인공들이 되어 양 팔을 벌려
바람을 안으며 소란스러운 만남을 가졌다. 하하 호호 히히 낄낄 깔깔, 60이 다 되어가는 네 명의 소녀들이 웃는 소리에
바람도 잠시 멈추어 빙긋이 웃으며 지나간다. 복잡한 도시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만난 자연은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하고 따스했다. 여태껏 마시던 공기와도 다르고 여태껏 봐왔던 경치와도 다르다.
상큼한 길을 걷다보면 이국적인 느낌을 팍팍 풍기는 야자수 나무들과, 제주의 트레이드마크인 돌담, 돌담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옛날 하효 항 포구 주변에 소금을 구웠던 막사가 설치되어 '소금막'이라고 부른다는 언덕을 오르니
물 허벅을 지고 가는 제주여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해안선과 무리지어 있는 각종 새떼들이 우리를 반긴다.
'놀멍, 쉬멍, 보멍 갑서'라는 효돈 동 주민 자치회에서 세워둔 표지판과 돼지를 안고 있는 돌하르방을 보며,
올레 길을 만들고 그 곳을 걸을 올레꾼들을 위해 볼거리와 쉴 곳을 마련한 주민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보목항 예쁜 마을길, 공기 좋고 한산해서 더욱 좋다. 비는 조금씩 오다가다 했지만 거의 오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제지기 오름 화살표를 무시하고 앞만 향해 걸었다. 다시 산등성이 길을 만나 구릉을 넘으니 눈앞에 펼쳐진
비닐하우스들이 흡사 바닷물이 출렁 거리는 듯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한다.
서귀포 칠십리 앞바다의 다섯 섬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섶섬을 정면에 세우고 벤치에 앉아 쉬었다.
몇 개의 보트와 작은 배들이 정답게 정박해 있는 구두미 포구이다.
모두 아침을 먹지 못 하고 올 거라 생각하고 내가 싸간 약밥을 이곳에서 먹었다.
다시 시작된 올레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지난해와 달리 올레 표시 리본은 노랑과 청색에 올레 로고가 새겨져 팔랑거리고, 바닥의 페인트도 색깔이 선명 한 게
한차례 손을 본 듯하다. 우리는 늘 사진이나 그림 속에서 보았던 풍경 속에 들어가 있었다.
등산복과 등산화를 갖추고 걷는 길은 지난해와는 느낌이 다르다.
드레스를 차려입고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러 가는 사람처럼 예의를 다 갖춘 느낌이랄까?
조금 걸으니 바닷가에 작은 국궁장이 있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1년에 몇 차례 전국대회가 열린대!'
안내판을 읽어본 친구의 말에 '주변 경치 덕이겠지!'하고 내가 응수했다.
화살표는 우리를 숲속으로 들어가란다. 조금 들어가 보니 길이 난코스다.
요즘 허리 몸살을 앓고 있는 미령이 이 길을 포기하고 위로 난 아스팔트길로 가겠단다.
수경이 미령과 동행하기 위해 아스팔트길로 되돌아가고 선영과 나는 비가 와서 곤죽이 된 숲속 길로 깊이 들어갔다.
안개가 옅게 머물러 있는 숲길이다. 등산화와 바지를 버릴 각오하고 편하게 걸으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 길에 노부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근처 동네 분들인가 하여 '이 길이 비만 오면 늘 이래요?'하고 물으니
모르겠다고 하신다. 우리처럼 타지에서 올레길 오신 모양이다.
앞서 가시라고 길을 비켜드리며 보니 남편이 자상하게 '이쪽으로 걸으라, 이 걸 밟으라'하며 아내에게 길 안내를 해준다.
뒤에서 바라보며 참 아름답게 사는 노부부라고 생각했다.
곤죽이 된 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높은 구릉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난다.
등산화가 흙투성이 되었지만 지저귀는 온갖 새소리와 아름다운 해변숲길에 빠진 나의 마음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정상에 오르니 정자가 나타났다. 정자를 보면 쉬어 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우리는 헤어진 미령과 수경을
만나야 해서 잠시 동안만 서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겹겹의 구릉이 흘러내리다가 바다로 들어갔다.
내 마음마저 일렁이다 흘러내렸다. 노부부가 정자에 올라가 바다를 향해 앉는다. 자연을 벗 삼아 늙어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간간히 혼자 걷는 사람을 만나고 반대편에서 역으로 걸어오는 사람도 만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하리라 다짐하지만 '멍' 하니 생각에 잠겨 걷다,
혹은 선영과 얘기 하느라 깜박 잊고 상대편에서 '안녕하세요!'하면 깜짝 놀라 '아! 네! 안녕하세요!' 하며 다급히
응수하며 웃는다. 언제쯤에나 나의 삶에서 생각과 행동이 박자를 맞추려나…….
머리에 있던 사랑이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70년이 걸렸다고 말씀한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났다.
생각 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절벽위의 길이 끝나고 숲을 빠져 나오니 바로 앞에 미령과 수경이 보인다. 검은여 지구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내린다.
칼 호텔로 인해 해안길이 끊기고 호텔을 끼고 뒤쪽으로 도는데 수확이 끝난 귤 밭이 나온다.
모든 생명이 소생하는 봄이지만 철지난 귤 밭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모든 것엔 자기들만의 때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정방연로를 향해 걷다가 미끄러운 내리막길에서 수경이 넘어져 주저앉았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우리는 관절이 안 좋을 나이라서 하루 종일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 또 조심했다.
잘 정돈된 길과 가로수, 가는 곳마다 반기는 동백꽃, 아름다운 길의 연속이다.
우산 속에서 만난 올레꾼들이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하며 지나간다.
소정방폭포는 이름대로 아담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정방폭포에서 동쪽으로 500m떨어진 곳에 위치한 5m높이의 물줄기다.
여름철에는 물맞이 장소로도 성황을 이룬단다. 소정방폭포위에서 바라본 칼 호텔 앞 해안선의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언덕을 오르니 제주올레 사무국이 자리하고 있다. 제주올레 로고가 '조랑말' 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인지認知하고
길을 나서니 바로 옆에 정방폭포가 있다. 정방폭포로 들어가지 않고 화살표를 따라 윗길로 걸었다.
아름다운 공원을 걷다 처음 보는 가로수가 있어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고 '아저씨 저 나무가 뭔 나무예요?'하니
'먼 나무'라고 하신다. 겨울동안만 열매를 맺는다는 나무인데 새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서 꽃처럼 아름다웠다.
서귀포 70리 음식 특화 거리라고 부조된 곳의 앞동산에 올랐다.
아침을 못 먹고 올 거라 생각하고 선영이 싸온 찰밥 도시락을 이곳에서 풀었다. 5시가 다 되어 가는데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이걸 메고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겠다. 동산 꼭대기 정자에서 먹는데 서귀포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의 만찬을 시샘하며 달려들어 손에 든 김을 빼앗아간다.
내려오는 길, 칠십 리 시화 전시 단 에서 제주를 대표하는 서귀포 출신 한 기팔 시인의 주옥같은 시어들을 만난다.
물결은 달려오다 무너지며/ 섬 하나를 밀어 올린다/ 하얀 근심이 이는/ 날 저문 바다.
칠십 리길 사진 전시대에서 서귀포의 옛날 모습도 눈에 담는다. 올레길 을 생각한 서명숙씨가 졸업한 서귀포 초등학교
운동장이 올레길 6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학교 운동장을 빠져 나오니 화살표는 시내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천재화가 이중섭 화백이 살던 집을 살리고 그 옆에 미술관을 지었단다.
1951년 이곳에 피난 와서 살았다는 작은 방 하나를 들여다보고 미술관은 들리지 않았다.
날이 이미 저물고 있었기에 마음이 바빴다. 어느 방향으로 갈까 하고 헤매다가 화살표를 찾았을 때의 안도감과
재미가 쏠쏠하다.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며 아열대성, 난대성 상록수가 우거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천지연 기정 길을 지나 '천지연 생태공원'에 들어갔다.
호수와 시내와 아름답게 조성된 '칠십 리 시공원'도 함께 있다.
흐르는 냇물에 엎드려 선영과 나는 흙투성이 된 등산화를 닦았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이생진 시인의 시 한편을 베꼈다.
제목 : 그리운 바다, 성산포. 부제 : 설교하는 바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산다.
6코스 종점인 외돌 개를 향해 가는 길, 마지막 코스 일 것 같은 삼매 봉을 향해 걸었다.
삼매봉 입구에서 5분만 걸으면 외돌 개 일 것 같은데 우리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줄 알고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오후6시 30분이 지났다.
중간쯤 오르니 갈림길이 나오고 분홍빛 벚꽃 나무가 우리를 막고 서있다.
금년 들어 처음 보는 벚꽃에 환호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삼매봉 정상에 오르니 서귀포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만 넘으면 외돌 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올랐는데
화살표는 들어갔던 입구로 다시 나오게 한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 개짓는 소리 들리고 이상한 아저씨 한분이 왔다 갔다 한다.
외등이 있고 네 명이 걷는데도 섬뜩한 소름이 올라온다. 올레길 을 혼자 오려고 했었는데 혼자보다
함께가 좋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삼매 봉을 내려오니 오후 7시, 6시간을 걸었다. 외돌 개를 지척에 두고 종점에 발을 찍는 걸 포기했다.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어젯밤 잠도 설치고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는지라 우리는 지쳐있었다.
호텔에 전화를 걸어 콜택시를 보내 달라고 했다. 15분 정도 걸어오면 된다고 하였지만 깜깜한 밤에 길도 서툴고
걸어갈 기력이 없었다. 택시를 불러서 할증이 붙으려나? 했는데 기본요금 2,200원으로 해결되었다.
차를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혼자서 올레길 을 왔다는 부산 아가씨가 숙소를 알아본다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지나가는 아가씨 뒤에 대고 '조심해서 다니라'며 엄마 같은 당부를 잊지 않았다.
2010. 3. 5. 금요일 (흐리다가 맑다가)
제주올레 8코스 월평포구 - 대평포구 17.6km,
천지동에 있는 크리스털 호텔은 1급 호텔인데 네 명이 자는 온돌방을 6만원에 내주셨다.
제주에 가면 올레꾼들에게 특별 할인이란 게 많다. 리모델링을 잘 해서 깨끗하고 더울 정도로 난방이 빵빵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네 명이 차례로 치장을 하고 7시 30분 호텔 지하 식당에서 5천 원짜리 뷔페로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8코스를 걸을 예정이다. 조금 더 길고 멀리 있는 8코스를 오늘 걷고 짧은 7코스는 내일 걷기로 했다.
내일 오후 6시 비행기를 여유 있게 타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다.
8코스 시작점인 월평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을 찾았다. 아침시간이라 학생들이 잘 알려준다.
시내버스 요금은 1인당 950원이다. 가까운 거리면 택시가 유리하지만 월평까진 8천 원 정도 나올 거라고 하여
버스를 타기로 했다. 중앙로 제주은행 앞에서 8시 40분에 버스에 올랐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옆자리 제주 원주민 아줌마와 얘기 하고 있는데 우리 일행이 시끄러웠던지 버스기사가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다. '서울이요'했더니 '서울은 시내버스에서 그렇게 잡담하고 떠들어도 됩니까?' 한다.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져서 '네 죄송합니다.' 하고 옆자리 원주민 아주머니께 '여기는 버스에서 얘기하면 안 되나요?'하고
귓속말을 하니 '아니에요. 저 아저씨가 좀 그러네요!' 한다.
어제 쇠소깍 갈 때 기사분과는 많이 다른 분이시다. 20분만인 9시에 8코스 시작점 월평 알 동네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8코스 시작점이 3개월 전에 바뀌었다고 입구를 찾느라 왔다 갔다 했다. 화살표나 리본을 찾으면 여기야! 여기! 하며 환호한다.
8코스는 포구에서 시작해서 포구에서 끝나는 전형적인 바당 올레 코스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도 없고 햇빛도 쨍쨍 나지 않은,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나의 남편은 전화 할 때마다 비 안 오냐고 묻고, 친구들의 남편도 '비는 안 오느냐? 아프진 않냐?'하며 걱정하신단다.
수경의 남편은 날씨 좋다고 했더니 '복 받은 여인들이구만!' 하셨단다. 마을올레는 잘 자란 마늘밭들이 지천이다.
수확이 끝난 귤 밭만 보다가 탐스런 귤들이 달려있는 귤 밭을 만났다. 주인이 있으면 사먹고 싶은데 아무도 보이지 않고
용감하게 들어가 귤4개를 서리해왔다. 돈을 놓고 올까도 했지만 어디 놓을만한데도 없고 까먹어보니 그 맛이 기가 막히다.
다시 들어가서 몇 개 더 따올까 했지만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입맛을 다시며 한 개로 만족해야했다. 그리고 귤 밭주인은 아마 지나는 객들을 위해서 따지 않고 놔두었을 거라며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니 계곡 길로 내려가라는 표시가 있다. 미령이 평탄한 윗길로 걷겠다고 하여 수경이 동행하고
선영과 난 계곡을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바위 위를 걷는 코스다.
서울에서 혼자 왔다는 아가씨와 이 길에서 만났다. 오늘이 11일째 1코스부터 빼놓지 않고 걸었단다.
새로 개척된 15코스까지 완주하고 올라갈 예정인데, 18일을 잡고 내려왔다고 한다.
완주할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선 부럽기 짝이 없었다. 3, 4일째가 가장 힘들었단다.
3코스가 22Km, 4코스가23Km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바다가 있고 징검다리를 건너
숲길로 오른다. 아침부터 각종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걷는 숲길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절벽위에서 바라본 바다의 풍경은 우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가슴이 탁 트이는 멋들어진 풍경, 정말 좋다.
숲길을 지나 나오니 아름다운 해안선에 눈을 박고 서있는 미령과 수경이 보인다.
대포 항을 지나 주상절리가 다가오면서 기암절벽 군들이 나타난다. 용암이 흐르다 바다와 만나면서 굳을 때
육각기둥모양으로 굳어져 생긴 지형을 주상절리(柱狀節理)라고 한다.
친구들에게 이곳의 물빛을 표현해 보라고 하니 다양한 색깔들이 나오는데 에메랄드 빛이 단연 압권이다.
주상절리도 입장권을 끊어야 해서 뒷길로 걸었다.
그곳에서 화살표와 리본을 따라가면 씨에스호텔이 나온다. 이 호텔 정원이 올레길 에 포함되어 있다.
아름다운 정원을 통과하는데 정원에서 담소하던 투숙객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질문을 던진다.
이제 올레 꾼이 다 된 선영이 전문가처럼 지도까지 펴들고 설명을 해주고 있다.
호텔을 나와 화살표를 따라가니 베릿내 오름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번엔 미령과 선영이 오름을 포기하고
공원으로 내려가고 수경과 나만 올랐다. 오르는 길에 씨에스 호텔이 있는 쪽을 돌아보니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외국의 어느 유명 휴양지를 보는 것 같다.
목책 데스크시설이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오르는데 길 양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유채꽃과 동백꽃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뛰어 오르고 꽃들도 덩달아 뛴다. 자연의 고동소리 조용한 듯 왁자하여 자꾸만 뒤 돌아보고 괜스레 귀 기울여 보고
무심코 한 눈 팔지 않을 재간이 없다. 정상에 오르니 전망대를 만들면서 중앙에 그대로 둔 소나무 두 그루가 형제처럼
우뚝 서서 올라오느라 수고했다며 우리를 반긴다.
전망대에서 보면 멀리 마라도와 범 섬, 형제 섬, 컨벤션 센터 등 서귀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베릿내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미령과 선영은 계곡 넘어 자연생태공원인
베릿내 공원 정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릿내 공원은 천제연 계곡 울창한 숲 사이에 제주시가 67억이나 투자해서 조성한 공원이라 아주 아늑하고 조용하다.
또한 한, 아세안 특별 정상 회담 때 산책코스 및 야외 오찬장으로 사용되어 의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시 네 명이 만나 공원 너머에 있는 베릿내 포구를 지나 퍼시픽 랜드(돌고래 쇼 장) 쪽으로 걸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식당이 마린 뷔페 하나밖에 없다. 다른 걸 먹으려면 밖으로 나가 여미지 식물원
부근에서 식당을 찾아야 한단다. 들어가 보니 1인당 7천원인데 메뉴가 시원치 않아 그냥 나왔다.
저마다 싸온 주전부리를 들고 다니며 먹은 터라 배도 고프지 않았고 먹을 만한 메뉴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심을 굶고 저녁에 서귀포의 유명한 횟집에 가서 회를 먹기로 했다. 귤을 사서 까먹으며 중문 해수욕장
모래밭으로 내려갔다. 출렁거리며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음악소리로 들으며 모래에 푹푹 빠지며 걷는다.
햇빛에 반짝이는 태평양의 물빛이 눈이 시리게 아름답다. 해수욕장 끝에 하얏트호텔에서 만들어놓은 산책로가 나온다.
참 아름다운 길이다. '여기가 제주 맞아?' 하고 질문을 던진다. 감성이 풍성한 선영이 '천국의 정원이다'고 표현한다.
하얏트 호텔에선 올레꾼들을 위해 화장실까지 개방한다고 안내 되어 있다.
하얏트 호텔 정원을 통과해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다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풍경이 눈앞을 가로 막는다.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겨울에도 일광욕을 할 수 있다는 천혜의 존 모살 해수욕장이다.
존 모살 해수욕장을 지나면 갯깍 주상절리대가 나오고 그곳에 해식동굴인 들렁궤가 있다.
이곳은 해녀들만 다니던 울퉁불퉁한 바윗길이었는데 해병대 장병 90여명이 꼬박 3일 동안 동글동글한 돌들을
하나하나 날라다 '평탄화 작업'을 해서 '해병대길'이라 명명 된 곳이다.
해병대길 끝에 있는 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면 '논짓물' 지구 '여래 생태마을' 이다. 쉼터가 있어 화장실을 들르고
공동경비의 회계를 맡은 선영이 그 곳에서 파는 제주의 특산품이라는 '올레 꿀 빵' 4개를 샀다.
탁자위에 볼레낭(보리수열매)이라는 처음 보는 열매가 있었다. 작고 둥그스름한 게 붉은 빛을 가지고 있었다.
맛을 보니 어린 시절 들과 산으로 다니면서 따 먹었던 열매 중 하나의 맛이었다.
쉼터 뒤쪽에서 무를 씻고 있는 것을 목격한 선영이 커다란 무 하나를 얻었다.
쉼터 남자 사장님께 칼 좀 빌려 달래니 없다고 한다. 내가 기행문을 쓴다고 노트와 펜을 늘 들고 다녔는데,
선영이 '얘가 작가인데 책을 쓸 거다. 올레 꿀 빵 맛있다고 써 주겠다!'고 하니 없다는 칼이 생기고 무를 자기가
깎아 주겠다고 하며 예쁘게 깎아서 먹기 좋게 4등분까지 해준다.
선영의 번뜩이는 지혜에 감탄하며 시원하고 달콤한 무를 먹으며 열리 해안 길로 접어들었다.
뇌물을 먹어서가 아니라 올레 꿀 빵 맛은 많이 달지 않고 한 개 정도는 먹을 만 했다.
열리 해안 길은 걸어가는 오른쪽은 가지런히 쌓은 검은색 돌담길이 운치를 더하고 돌담 사이사이엔 유채꽃을 비롯한
각종 꽃들과 철지난 갈대가 팔랑거린다. 왼쪽은 완만한 곡선의 해안선에 검은색 바위들과 새들이 무리지어 놀고 있다.
섬 하나 없는 태평양의 바다가 시원히 뚫려있는 그곳에 만조 때가 되어 밀물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예포구를 지나 종점인 대평 포구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길 양쪽에 활짝핀 유채꽃들이 한들거린다.
서울에서부터 허리가 아파 많이 망설이다 내려온 미령이 잘 걸어주어서 우리는 '예쁘다'는 말을 연발한다.
종점인 대평리는 자연과 어우러진 여유로움이 가득한 마을이다.
안덕 계곡 끝자락에 바다가 멀리 뻗어나간 넓은 들(드르)이라 하여 ‘난드르’라고도 불리는 마을이다.
마을을 품고 있는 '군산'의 풍경 또한 아름답다. 종점에 있는 횟집에서 버스 정류장을 물으니
저 언덕길로 10분쯤 걸어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오후 4시, 오늘 7시간을 걸었다. 어제에 이어 총 13시간을 걸은 셈이다. 저마다 아픈 곳이 늘어난다.
발바닥, 무릎, 허리, 다리. 어기적어기적 걷느라 남들이 10분 걸린다 하면 우리는 20분 잡는다.
대평리 마을 중앙 길을 통과하는데 20분이 걸렸다. 나와 선영이 앞서 걸어 담을 돌아 나가니 지금 막 떠나는 버스
뒤꽁무니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다. 뛰지는 못하겠고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르며 손짓을 했건만 야속한 버스는
멈춰주지 않는다. 에고 아까워라! 30분 동안 다음차를 기다렸다.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30분 후에 오신 기사님은 모르쇠? 기사님이다. '서귀포 재래시장 가나요? 해도 '몰라요' 중앙로 농협 앞은요? '몰라요'다.
관광도시 제주에서 '몰라요'만 하며 담배 피우는데 열중인 기사님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다른 버스가 없으니 일단 타고 서귀포로 나갔다. 중앙로 로터리를 지나 미령이 서귀포 재래시장을 보았다며 내리잔다.
지난해 결혼식에 와서 결혼식 끝나고 형님 댁 식구들과 갔던 횟집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으니 가까이에 있어 쉽게 찾았다.
1인분에 2만원인 쌍둥이 횟집은 값에 비해 풍성하다는 소문이 나서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곳이다.
우리는 미리 예약을 했었다. 생선 초밥은 무한리필이다. 배가 빵빵하게 먹고 나와서 호텔 방향을 물어 걸었다.
깜깜한 밤, 우산을 쓰고 걷는데도 길눈이 밝은 수경은 길을 척척 찾아낸다. 날은 어두어도 우리의 길은 계속된다.
2010년 3월 6일 토요일 (맑다가 흐리다가 비 오다가)
제주올레 7코스 외돌 개 - 월평포구 16.4Km
자고 나니 어제 아픈 다리가 말짱해졌다.
미령이 등산양말 속에 면양말을 하나 더 신으라는 정보를 얻어온 게 우리를 살렸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밤새 내리던 비가 날만 새면 멈춘다는 것이다. 미령이 오늘은 가지 않고 혼자 남아 있겠단다.
오후 6시 비행기를 타려면 빨리 걸어야 되는데 무릎과 허리가 아파서 빨리 걸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진 전문가인 미령은 멋진 풍광을 놓치지 않으려 늘 맨 뒤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다녔다.
6시에 기상해서 어제 밤 회집에서 싸준 찹쌀떡과 오는 길에 사온 한라봉과 우유로 아침을 때웠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빨리 끝내고 오려는 심사였다. 우리는 진정한 올레꾼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올레꾼은 시간에 상관없이 자연을 느껴야 할 터인데 우리는 시간을 정해놓고 움직인다.
호텔을 나서 택시를 탔는데 5분 만에 7코스 시작점인 외돌 개에 도착했다.
7시 30분, 걷기를 시작한다.
7코스는 외돌 개를 출발하여 법환 포구를 경유해 월평포구까지 이어지는 해안올레다.
이른 시간이라 아침운동을 나온 분들이 눈에 뛴다. 외돌 개는 바다 가운데 외롭게 서 있는 바위에 붙여진 이름인데,
높이는 20m이며 우리가 첫날 어두울 때까지 헤매고 다녔던 삼매 봉 남쪽 기슭에 있다.
약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섬의 모습을 바꿔 놓을 때 생성되었다고 한다. 주변 물빛과 솔숲은
서귀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대장 금을 촬영했다는 언덕에 서서 비온 후 상쾌한 풍경과 물빛을 보며
감탄했다. 이곳의 물빛을 표현한 결론은 비취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길에 속한다는 돔베낭 길로 들어갔다.
이곳은 관광으로 온 분들도 올레길 체험 장소로 많이 걷는 아름다운 해안길이다.
돔베낭 길을 지나 마을 쪽으로 올라가는데 아침 산책 나온 부부와 만났다. 경주에 사신다는 60대로 보이는 부부는
아들이 예약해준 이곳 펜션에서 주무셨단다. 자신들도 걸을 거라며 '이게 보약입니다! 보약!' 하시는데 거의 외치신다.
마을올레로 걸어 들어가면서 친구가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비올까봐 미리서 걱정했네!' 한다.
'인간이 걱정하는 것의 90%는 쓸데없는 걱정이래.' 하고 내가 대답했다.
다시 시작된 바당 올레길, 까마귀, 까치, 동박새 목소리 돋워 정답게 합창하는 오감이 극대 되는 길이다.
구름다리 넘어 울창한 야자수가 무리지어 있는 속골을 지나는데 장사 채비하시는 할머니가'커피 한잔 500원'
'먹고 가세요.' 한다. 밤이면 비가 쏟아지는 터라 흙탕길이 곳곳에 나타난다.
구름다리 건너 통나무를 심어 만든 계단을 지나 돌로 만든 계단을 오른다. 오르는 길 주변은 소철 군락지이다.
길이 끊긴 이곳에 염소가 다니는 길을 보고 '수봉' 이라는 분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
'수봉 로路'라 명명 된 곳이다. 수봉 로를 따라 산에 오르니 또 다른 새로운 해안선이 펼쳐져 감탄케 한다.
'공물해안'을 지나 '막숙' 올레쉼터에 도착하니 아침9시, 막 문을 여는 아가씨에게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느냐고
하니 문을 열어준다. 꽃과 화분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화장실이다.
앞에 있는 섬 이름들을 물으니 섶섬, 문섬, 범섬하고 손가락을 가리키며 설명해준다.
'법환포구'에 풀장 같은 것이 있어서 궁금했는데 가까이 가서보니 '해녀 체험장' 이라는 간판이 있었다.
'법환포구'가 끝나고 '두머니물'에 접어드니 길이, 길이 아니다. 7코스에는 각종 기암괴석 군이 자리 잡은 가파른 길이 많다.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들을 넘고 또 넘는다. 등산화를 신지 않으면 발이 아플 것 같다.
미령을 혼자 두고 오는 것에 마음이 짠했는데 미령이 오지 않길 잘했다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
'만 조 시에 절벽 밑을 건널 수 없을시 나무계단을 이용하세요.'라는 팻말을 만났다.
만 조 시에는 가파르게 난 계단을 올라 큰 바위를 넘어가야하지만 우리는 물이 들어오지 않아 좁은 돌길을 지났다.
올레 7코스에 이렇게 험한 길이 있을 줄 몰랐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는 것은 관계자들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스 개척당시 미처 지날 수 없었던 '두머니물 - 서건도' 해안 구간이 2009년 2월
제주올레에 의해 '일강정 바당올레'로 다시 태어났단다.
험하디 험한 바위 밭을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고 옮기는 작업을 통해서 만들어진 감동이 가득한 길이다.
두머니물 끝에 작은 내川를 건너면 썩은 섬(서건도)이 있다. 섬의 토질이 죽은 흙이라고 썩은 섬이라 부르는데,
이 섬에서는 하루에 두 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간조 때마다 뭍에서 섬으로 가는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다.
우리 앞에 기적이 일어나 있었지만 섬으로 건너가지는 않았다. 또 시간이 길을 재촉한다.
7코스 내내 이 길을 나서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궁금하고 설레었다. 억새 길을 지나 다시 바닷길로 나가니
'악근천' 이고 계단을 오르면 '풍림리조트'다. 입구에 '올레 베이스캠프' 라는 간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풍림 리조트로 들어가니 오른쪽에 '등산화. 목욕하다'. 라는 안내문과 수도에 솔까지 매달아 둔 곳이 있어
셋이 차례로 신발을 닦았다.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섬세하게 배려해 놓은 리조트에 감사했다.
풍림 리조트는 양쪽에 계곡을 끼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있는 천혜의 요새 같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카페에 들러 오뎅과 쿠키를 사먹고 다시 길을 찾았다. 풍림 리조트를 나오면서 강정 천을 끼고 걷는다.
강정천은 은어 서식지로 유명한 하천河川이다. 제주도의 일반 하천과 달리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이 흐른다.
여름에도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서 서귀포 시민들이 여름더위를 식히는 피서지로 즐겨 찾는단다.
강정포구에 가까워지면서 '해군기지 반대'라는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항의하는 주민들의 텐트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름다운 제주에도 개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강정포구 앞에서니 시원한 해풍이 목덜미에 와서 감기고 갈매기 떼가 반가워한다.
강정포구를 벗어나 걷는데 까만 바위를 덮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갈매기 떼와 하늘거리는 너른 갈대밭이 발목을 놓지 않는다. 알 강정을 지나 종점인 월평포구까지 가는 길도 잘 닦여져 그 길 위로 싱그러운 바람이 몰려온다.
월평포구가 다가오면서 우리의 길은 여기서 끝난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월평 알 동네 정류소에 도착하니 12시30분, 오늘 5시간 걸었다.
3일 동안 총 49Km, 놀멍, 쉬멍, 걸으멍 18시간을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보슬비가 내린다. 기가 막혔다. 날씨가 우리를 위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듯 했다.
어제에 이어, 끝나고 버스를 기다릴 때 비가 오다니! 우리와 동행해 주신 분께 연신 감사를 날렸다.
버스에 앉아 미령에게 전화를 걸어 첫날 점심을 먹었던 네거리식당에서 갈치 국을 먹자고 했다.
버스가 어느 쪽으로 들어가도 서귀포 시내에 익숙해진 우리는 내려야 될 곳에서 잘 내렸다.
식당에 도착하니 미령이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다. 미령은 오전 10시쯤 호텔에서 나와
천지연폭포 앞에 지난해 새로 생긴 새연 교와 새 섬을 다녀오고 서귀포 재래시장을 두 번 다녀왔다고 하였다.
첫날 먹어보고 싶었던 갈치국은 비린내도 나지 않고 칼칼하며 담백하고 맛있었다.
갈치 4토막, 데친 얼갈이배추에 청량고추를 넣고 단 호박도 들어있는 게 푸짐했다. 8천원이다.
오후3시, 호텔에 들러 맡겨놓은 가방을 찾아 리무진을 타고 제주 공항으로 향했다.
'Olle!' Olle!!.' 제주 거리는 가는 곳마다 물결쳤다. 상술이라도 상관없다. 그 길! 죽여준다. 내 가슴도 파도쳐 몰려온다.
"떠날까 말까 고민되면 일단 떠나라. 살까 말까 고민되면 절대 사지 마라.
쇼핑은 늘 후회 하지만 여행은 후회하는 일이 없다". 한비야 씨의 얘기다.
오후 6시 제주의 하늘, 비가 쏟아지는데 비행기는 힘차게 솟아올랐다.
제주 올레!! 꼼짝 말고 기다리거라. 내 너를 만나러 다시 올테니!
하늘을 오르니 내 어린 영혼을 살찌웠던 나의 고향 해남海南, 내 꿈을 묻은 나의 바다가 지척咫尺이다.
첫댓글 파일로 가져다 놓은게 너무 흉하여 복사해서 옮겼습니다.^^제가 pdf로 굽는 방법을 몰라요^^ㅋㅋ 본의 아니게 오이기 선배님 댓글까지 삭제해서 죄송합니다.^^ 보시고 감상문은 숙제입니다.^^ㅎㅎ
표현력이 대단합니다.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터치하면서 감상을 함께 덧칠해가는 솜씨가 감칠납니다. 서귀포에 15회 배순홍동창이 감귤농사를 하면서 살고 있고 법환포구가 집인 지인(쌍둥이횟집사장과 동창)이 있어 서귀포에 자주 다니는편이라서 그쪽 부분글을 보니 감회가 더 새롭네요. 다음 글도 부탁합니다.
선배님^^ 1등 하셨네요 ㅋㅋ요즘은 긴 글은 재미없어서 작가들도 안 쓴다는데^^ㅎㅎ 길고 지루한 글 잃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1등 당첨 기념으로 100회 가입 선물 주시면 반은 나눠 드릴께요^^다음 글은 올리기 부담 스럽게 긴 글들이라서^^ 이 글의 6-7배는 긴 글들이라^^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