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와‘바르도 퇴돌’
좀 낯선 발음이지만 ‘바르도 퇴돌’이라는 티베트의 경전이 있다. 세상에는 ‘티벳 사자의 서’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1927년 옥스퍼드 대학의 에반스 웬츠가 영어로 번역하여 책이 나오자 엄청난 반향이 일어났다.
흔히들 오해를 하는데 이 책은 단순히 장례식 절차나 사후 세계에 대한 설명서에 그치지 않는다. 삶의 밑바탕 진리를 아주 뚜렷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해 주는 티베트 불교 최고의 경전이다.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쯤 인도 나란타 대학 출신의 현자요 밀교의 대가인 ‘파드마삼바바’가 티베트에 가서 티베트 말로 쓴 것이다.
그는 백 권이 넘는 책을 썼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보고 티베트 여기저기에 숨겨 놓고는 몇몇 제자들이 뒷날 다시 태어나면 보물찾기 하듯 그 책들을 찾을 수 있도록 이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심어 주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65 권이 찾아졌는데 ‘바르도 퇴돌’은 그 책 중의 책이다.
‘바르도’란 ‘둘 사이’란 뜻으로 사람이 죽은 다음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머무르는 중간 상태를 이야기하는데 기간으로는 49일로 알려져 있다. ‘퇴돌’이란 ‘듣고 놓여나기’다. 그래서 이 경전은 ‘죽은 다음 중간 상태에서 듣기만 해도 영원히 자유로워지는 가르침’이라고 풀 수 있다.
책 선전을 하자는 게 아니라 이만큼 중요한 서물에 대해서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은 종교를 떠나서 참 아쉬운 일이다. 심리학자 칼 융도 이 책에 큰 영향을 받고 직접 해설서를 쓰기까지 했다. 우리의 49재가 티베트 불교에서 바로 유래한 것은 아니지만 구태여 재를 지내야 할지 어떨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확신이 없는 분들도 이 책에서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란다.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기복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을 진정으로 안심 시키고 안내해 드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티베트에서는 스님들이 주검이나 영정 앞에서 이 경전을 소리 내어 읽어 준다. 날짜가 지남에 따라 차례로 세 편을 읽는데 투명한 빛, 나타나는 환영들, 환생 직전의 사건 등이다. 한국식으로는 스님이 임종에 자리하거나 시신 옆에서 불경을 읊는 시다림이 있는데 이미 숨을 거두신 분인데도 그 때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더라고 확신하시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사실 살아온 전 생애보다도 죽는 마지막 순간과 그 다음 49일 동안 죽은 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더 결정 된다고 한다. 이 때 죽은 이에게 용기를 주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좋은 길잡이가 되는 것이 이 ‘바르도 퇴돌’이다.
하지만 이 경전의 대단한 점은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마음이 비춘 그림자임을 밝힌 점이다. 왜 누구에게는 연꽃 든 보살님이 나타나고 누구에게는 날개 달린 천사가 찾아오는가? 삶도 자기 자신이 만들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임을 ‘연꽃 위에서 태어난 자’는 이 ‘사자의 서’에서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9월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