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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자사랑동우회 원문보기 글쓴이: 선조
하나 둘 셋 ...열의 뜻을 밝히는 [진본 천부경] 한배달 강의 3.
한배달 강의 1번에서는 하나 둘 셋 ...열이 하느님이 내리신 [진본 천부경]이고 치원의 81자는 왜 그 하나의 예찬시 인지를 12 가지 증거로 증명 했으며 한배달 강의 2 번에서는 대략 5 천년 전 그런 [진본 천부경] 과 같은 신지녹도문이 있었는지를 지금 언제라고 볼 수 있는 중국 섬서성 백수면 사관촌 창성조족서 비와 그와 똑같은 누루하지 후금 건국비로 증명 하였고 이번에는 글쓴이의 그 글자 해독이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검증 한다.
1. 글쓴이 신지녹도문 해독이 잘못되지 않았는가. 검증방법
1)[진본 천부경]인 신지녹도 문자를 해독하고 그 글자들의 해석이 틀리지 않았는가를 검증하기 위하여 평양 법수교 비문, 성예찬문, 창성 조적서 비문까지 해독해보고 네 개가 다 읽는 법이 같아야 한다.
2) 이 [진본 천부경]이 우리 숫자 '하나, 둘, 셋...열'이라 했는데, 이 숫자의 뜻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 즉 또 하나 글쓴이 졸저 [천부인 ㅇ ㅁ ㅿ의 비밀]에서 말 하는 ㄱ ㄴ ㄷ...ㅎ뜻과 [진본 천부경]을 해독한 그림의 뜻이 같아야 한다.
3) 우리 조상이 모자라는 글자를 보충하기 위하여 만든 금문(金文)의 뜻이 하나 둘 셋 ...열의 뜻과 같아야 한다.
4) 그 글자를 쓰던 사람들의 기록인 명마산 글씨 바위에서 그 기록을 찾아야 한다.
5) 최치원의 81자의 뜻이 왜 '하나, 둘, 셋... 열'의 해설서이며 '한'의 예찬서인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한다.
6) 우리가 툭하면 쉽게 말하여 심지어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며 교육법 제 1조에 들어있는 '홍익인간'의 뜻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부경, 즉 신지녹도문자 이외의 기록에는 없는데, 과연 어느 부분에 어떻게 무슨 뜻으로 말씀하셨는지를 역시 이 [진본 천부경] 하나, 둘, 셋... 열과 최치원의 81자에서 찾아내고, 그 말들이 일치되는가를 보아야 한다.
2. 한울글자 천부인과 한울소리 천부경은 한 쌍
우측 신지녹도문의 하나의 ‘하’는 해 이므로 ㅇ ㅁ ㅿ 중 하늘 천부인 ㅇ을 썻고 ‘나’ 는 누리, 즉 땅인 ㅁ이 분해되어 나온 글자니 ㅁ 부의 ㄴ 을 썼으며 ‘셋’은 사람 천부인 이니 ㅿ(ㅅ) 을 썼으므로 하늘 글자 와 한울소리는 씨줄과 날줄 같은 한 쌍이다.
3. 자 그러면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대략 5 천 년 전 원시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의식주 등 생활 여건과 성생활, 그리고 그들의 사고방식대로 생각하며 신지녹도문자를 하나하나 해독해본다.
그 무리들은 환한 햇살을 숭상하여 환한 무리라 했는데 기록에 따라서는 환한 나라, 즉 환국이라고도 하지만 그때는 아직 국가의 형태가 아닌 것으로 추정하여 여기서는 ‘환한 무리’ 라 한다. 그 무리의 지도자가 바로 '환한님'이었고 이 환한님이 '화나님 >하나님'이 되어 우리 애국가에 나오는 '하느님'이 되었으며, 그분이 바로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시는 분이다.
4. 진본천부경이 써진 경위
먼저도 말했지만 지금의 바이칼 호 부근에 몽골리언 일족인 원시 우리 조상 환한 무리들은 글자는 그만두고 말도 불과 20여 개 단어로 신선들처럼 소박한 삶을 살아갔다고 했고, 이는 우리 어근을 추적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재야학계에서는 논리적으로 신빙할 수 없는 기록을 인용하여 환인, 환웅 시대나 그로부터 몇 만 년 전부터 이미 일사불란한 국가 형태가 있어 어떤 통치 행위를 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조상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국수주의적 생각이고, 신석기 시대나 청동기 초에 부족 집단이 아닌 국가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으로 보나 논리에 맞지 않는다.
또 이것은 밝달임금(檀君)이 세웠다는 '앗선(朝鮮)'이라는 국명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즉, 앗선 개국 당시는 한자는 그만두고 그림글자 금문과 이것을 근간으로 만든 신지녹도문 이외 은허갑골문도 없었을 때이니 나라 이름을 우리말로 무엇이라 했을까?
이것을 대략 2500년후 지금 쓰는 한자가 만들지니 첫 도읍지가 '아사달(阿斯達)'이고 국가 명이 '조선(朝鮮)'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앗달에 세운 앗선(朝鮮)은 우리가 세운 최초의 국가가 된다 했다. 그런데 朝鮮은 위에서 말 했듯이 그 후 한자가 만들어지자 한자 이두로 기록된 이름이다.
이것을 대략 2500년후 지금 쓰는 한자가 만들지니 첫 도읍지가 '아사달(阿斯達)'이고 국가 명이 '조선(朝鮮)'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앗달에 세운 앗선(조선)은 우리가 세운 최초의 국가가 된다 했다. 그런데 朝鮮은 위에서 말 했듯이 그 후 한자가 만들어지자 한자 이두로 기록된 이름이다.
5. [진본 천부경]이 만들어 지기 전 쓰던 그림글자 금문.
우선 신지녹도문과 금문은 같이 쓰던 글자인데 이 금문 해독을 해독하기 전 금문이 만들어진 경위와 제자 원리, 그리고 당시 말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부터 알아본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위 그림에서 착하다는 선(善) 자의 금문은 양의 머리를 그려놓았다. 즉, 양이란 동물은 호랑이 등 다른 동물과 달리 착하기만 하니 아마 착한 동물을 대표적으로 그려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다음 진짜 양의 금문을 보자.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이 금문 역시 양의 머리이다. 즉 이것으로 보아 당시 말이나 글자는 몇 마디 되지도 않아 같은 그림을 여러 방향으로 응용했다는 말이 되고, 또 처음 금문이란 어떤 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지금 교통 표지판처럼 뜻만 있었던 것을 중국인들이 들여다가 자기네 말에 맞추어 음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따라서 신지녹도문자도 처음에는 뜻만 있었던 것이 나중에 음을 붙였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신지녹도문을 해독할 때 먼저 우리말의 뿌리와 최치원 81자로 참고하며 풀었었는데, 후에 이 금문 책을 구하러 일부러 중국에 가서 30 여권 금문에 대한 책을 사 가지고 왔다. 그러나 다 모든 금문, 갑골문 책의 내용도 다 같고 그간 쓴 글쓴이의 해독이 정확했다. 단 글쓴이가 자주 인용하는 이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은 그 정리가 잘 되었기 때문에 글쓴이는 이를 자주 인용할 뿐이다.
6. 日자 금문만 봐도 금문이 갑골문보다 먼저 나왔음을 안다.
원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는 물어볼 것도 없이 해 였을 것이다. 이 해라는 日자의 변천과정을 통하여 과연 중국인들의 주장대로 갑골문이 먼저 만들어 졌는지 금문이 먼저 만들어 졌는지 분석해 본다.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
이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은 중국인들이 자기네들 상식으로 작성된 것이니 여기 그린 그림은 볼 것도 없고 우리 조상이 만든 금문이나, 그래도 중국인들의 때가 묻었을망정 금문의 뜻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갑골문을 보시라.
다음 그 해설서 역시 중국인들의 상식이다.
위 중국인이 쓴 글 번역
" 日" 은 태양이고 갑골문, 금문, 소전의 日자는 다만 사작(寫作)한 것이 많다. 한편으로 알기는 日자를 기록할 때 갑골문은 혹 모가 진형으로 사작 했는데 이는 칼로 새길때 불편함 때문이고 금문에 혹 원 고리(圓環)가 있는 것은 밖에서 방사되어 가까이 오는 빛을 더하다보니 진실을 왜곡한 것이 흔한데 달리 부수를 짓기는 불리하고 그런고로 본 마루도 아니고 흐름도 약하게 사용된다. 기타 글자의 모양은 혹 중국의 모퉁이(지방)의 것이나, 혹 원 가운데 점 인듯 하며 학자들은 이를 가르켜 둥근 고리 안의 한 점, 혹은 하나의 횡선은 태양의 흑점을 가리키는 것 이라 한다. 결과의 진실이 이와 같고 옛 사람이 태양을 대 할때 인정하고 기록한 것이니 당연히 십분 먼저 전진시킨 것이며 많은 학자들도 인정하니 당연히 가운데이 점이나 혹 횡선은 어떤 부호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빛을 가르침은 최고로 밝은 점이 동심원을 구별 짖는 것이므로 예서(漢(( 서협송)) 에는 해를 사작(寫作)해서 모진 모양으로 한 것이며 중간에 사용한 " 一" 은 양쪽의 입구를 막은 것이니 완전히 형상을 벗어난 글자이고 지금도 이는 털끝만치도 변하지 않는다. "日" 자는 여러 곳에 차용되고 쓰이나 작살처럼 떨어져 다른 해석으로 쓰인다.
위 이 해석은 우리민족의 상식, 우리말을 모르는 중국인의 상식으로는 왜 이 日자가 원형과 달리 사용되는지 잘 모른다. 여기서 동그라미(ㅇ)를 칼로 새길 때 불편해서 모가 지게 새겼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 왜 동그라미를 칼로 새길 수 없는가? 먼저 말 했듯이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마천의 사오본기]에서는 둥근것을 '전욱(顓頊)'이라 했는데 顓 자는 '오로지'란 뜻이고, 頊은 '멍청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이는 '멍청한 사람'을 뜻하는 글자 라 한다. 이는 아마 지나인들은 사람은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즉 'ㅁ'과 같이 모가 져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가 없이 둥그니 멍청한 사람으로 본 것 같다. 따라서 한자에는 ㅇ 자 같이 둥근 글자가 없다. 이와 같이 중국인들이 우리 조상이 만든 금문을 창힐이 변질시킨 갑골문 이후의 글자에서 사람의 머리를 ㅁ으로 해놓은 것 등 수많은 증거가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둥근 것은 원만한 것이고 ㅁ 처럼 모가 진 것은 모지다, 못쓴다와 같이 아직 수양이 덜된 것으로 본다.
다음 빈 하늘인 ㅇ 속에 그 주인인 점을 찍어 놓은 해를 중국인들 해석으로 흑점이라 한다는 것도 원시조상의 상식이나 우리의 상식이 아닌데 특히 기가 막힌 것은 " 글자의 모양은 혹 중국의 모퉁이(지방)의 것이나,.." 등이다. 즉 중국학자들은 우리가 중원대륙의 거의를 차지했던 첫 조선의 영토나 중국역사 보다 최소한 2 천년이 빠른 하느님, 환숫, 밝달임금을 중국의 모퉁이 지방 소수민족으로 보고 있으니 이는 또 하나의 동북공정이란 말이다.
그러나 중국학자들도 "지금 쓰는 日자는 그 뜻이 잘못됐다" 하는 것만은 옳다. 그렇다면 위 [圖釋古漢字 能國榮著 濟魯書社刊]에서 도해한 우리 조상이 그린 금문부터 중국인 상식이 아닌 우리 상식으로 해독해본다.
따라서 우리말 어근으로 볼 때 말이라곤 불과 30 단어도 안 되는, 말이 시작될 무렵에서는 하늘이나 하늘의 주인인 해나 해의 작용인 햇빛이 실은 같은 神 이었다 이 우리 금문이 대약 천년 후 중국인등에 의해 한자의 시초인 갑골문이 되는데 이 근거는 아래 은나라 은허갑골문에서 처음 나타나며 이때부터 둥근 하늘이 차츰 모가 진다.
또 아래 石鼓文, 說文古文 특히 小篆, 隸書에서는 완전 日자로 둔갑되었다.
즉 우리 금문(金文)이 중국인들의 손때가 묻어 갑골문(甲骨文) 이 되고 갑골문은 진시황때 대전(大篆), 소전(小篆)이 되며 그후 예서(隸書), 해서(楷書)가 되고 지금의 한자 모양이 된 것은 우리 삼국중엽 이며 고려 때 가서야 지금 한자로 정착된다고 먼저 말 했다. 따라서 위 日자만 보더라도 금문과 갑골문중 어느 것이 먼저 나왔는지를 알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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