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가 법회에 안 나와서 여러번 전화를 했다.
연락이 와서 못 나오는 이유를 물으니 당분간 일요일날 못 나온단다.
어디를 가느냐며 물었다
그러자 통도사에 예수제를 지내러 일요일날 일곱 번을 다녀야 한단다?
순간 말문이 막힌다.
이 일을 어찌할까,
단 중앙에다가 법호를 탄 양반인데 세상에 --힘이 쫙 빠진다.
우리 교도가 대종사님 제자가 천도에 대한 말씀을 얼마나 잘 밝혀 놓으셨는데..
더우기 교무가 천도품 강의까지 하고 있는데 하는 하는 생각에,
기가 막혀도 내 기분대로 얘기하다가 틀어지면 교당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가서 뭘 하나요 묻자
죽으면 사십구제 하듯이 생전에 내 갈길 닦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냈어요 하고 물으니 오만원을 냈단다.
오만원내면 내 길이 닦아진답디까? 묻자
웃기만 한다.
윤달에 이걸 하면 좋다고 하여 노인당에서 합동으로 가서 했단다.
오만원 절에 잘 보시했으니 부처님께 복 지었고
내 갈길은 누가 닦아 준대요 하니
또 웃는다.
일요일날 법회와서 그 공부하세요 하니 일곱 번을 가야 한다.
더 이상의 말이 안될 것 같아 알아서 하라며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교무로써 지금까지 무얼 했는가 회의가 오며 나의 부족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드는구나.
허탈한 마음이 들고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할까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또 나의 지도가 힘이 없음을 들킨 것 같은 좌절감이 있구나.
법회도 잘 빠지고 함께 하는 교당 행사도 빠지더니
정신이 다른 세상에 흐르기 쉬움을 말해주고 있구나.
다행히 내생 길을 이생에 닦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기회가 있다 하니 하고 싶은 생각이 났었구나.
그럼 그 방법이 서투르고 잘 모르는 것뿐인데 그 방법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 나의 할일 아닌가.
나의 그 전달하는 방법이 곧 나의 실력인데 내 실력부족은 모르고 교도만 원망했구나.
생전 예수제의 본뜻은 생전 미리 갈 길을 닦는다는 뜻으로 먼저 마음을 닦고 복을 지으라는 것인데,
지금 나는 무얼하고 있었나.
새로운 정신이 든다.
교도가 내 생각대로 하지 않았다고 무시하고 원망만 하는 마음으로 있다가
경계임을 알고 그 교도의 마음이 보이고 나의 실력이 보이니
앞으로 어떤 방향에서 지도 해야 하겠다는 지혜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고
모르고 간 교도가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다시 돌아오니
감사하고 고마워 내가 보답할 것은
더 열심히 연마하여 대종사님 가르침을 전해야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절에 예수제 지내려 간 교도를 통해 교무가 진짜 예수제를 공부했으니
교도가 교무가 되고 교무가 교도가 되어 서로서로 공부하는 우리 교당이 되어 평화를 생산해 가면 되겠구나!
** 그럼 생전 천도의 길이 무엇인가
다름 아닌 삶의 경계를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구나!
바로 생은 사의 근본이라 하듯이 삶을 통해 공부를 하면 사의 근본을 알게 되고
그럼 그것이 생전 천도이구나!
그렇다면 생전에 삶을 잘살게 하기 위한 기도가 바로 절에서 말하는 예수제가 아닐까?
예수제도 하나의 방편이구나!
우리의 예수제는 없는가?
바로 대제를 모시는 것이 육도 사생일체 생령들까지 기원하는 것으로 산자와 죽은자의 재가 아닌가?
그렇구나 그것을 느끼니 이제 더욱 정성스러워지는 재의식이 되어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