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雨一晴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올해는 장마가 계속되면서 비가 많이 내렸다.
이제는 비 때문에 계획을 연기하거나 변경하지 않을 만큼 궂은 날씨에 면역이 된 듯하다.
친구들이 팔공산 동봉산행과 오후 은사님을 만나기 위하여 대구에 오는 날이다. 합천에 있는 이영성친구로부터
“오늘 진주 김병화친구와 함께 대구에 간다.”는 반가운 전화가 왔으며, 고속도로를 달려오는 친구들의 음성이 들리는듯 마음이 바빠진다. ‘바쁠수록 둘러가라’는 옛말을 잊고 허둥댔다. 울산친구들이 백안 삼거리에서, 부산친구
들이 동화사입구에 벌써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마음은 콩을 볶는다.
부산, 울산친구들이 먼저 도착하여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김덕숙, 이종찬 두 친구의 얼굴을
대하니 더 없이 반가웠다. 빠짐없이 참석하는 얼굴들은 믿음직스러우며 요즘은 당연이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친구로
매겨져 있다.김영환친구는 아직 산행하기는 무리 일 것이며, 구자연, 전수웅, 정대윤, 조광국, 친구등 여러친구들이
생각난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온 친구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에 쫓겨 산행과 은사님과의 만남에 대한 하루 일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산행을 시작하였다. 동봉 1,167m의 산이라면 높이도 제법 높은 편이며 골격도 갖출
만큼 갖춘 산이기 때문에 우리 나이에 쉽게 접근하기 힘든 산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산행은 원점회귀가
아닌 들머리를 케이블카전망대로 하고 날머리를 수태골주차장으로 하였다.
높은 산이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하는 의아심과 함께 걱정도 했다. 보슬비가 오다 마다를 반복한다. 험한 암산 구역은 안전을 위하여 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로프구간을 전원이 합격하고, 고개를 들어 늘어선 험준한 봉우리들 중
제일 높은 동봉을 가리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머리 좋은 4명은(강경랑 강종대 김덕숙 탁우광) 금복(이슬)
이가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믿음직한 경찰출신의 이광호친구에게 경호를 부탁하여 원점회귀 하산하였다. 하산하기
바쁘게 붙임개(파전) 시켜놓고 간단히 금복이(소주)몇 잔 돌렸단다.
11명은 정상을 향하였다. 젊은 혈기의 잘 다듬어진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느끼게 하는 암산이다. 능선을 따고 동봉
을 향한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발아래 쭉 늘어진 능선 위에 구름을 올려놓은 듯, 운무로 산을 덮어놓은 듯 이런
풍광은 쉽게 볼 수 없는 흐린 날씨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꾸준한 운동으로 몸 관리를 잘 하고 있는 산행대장 이종찬
친구는 선두그룹을 이끌고 있다. 정상 가까이 왔느냐고 보채(?)는 하병식친구,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용남이도 못 믿겠다”는 걸죽한 농담은 항상 정이 넘치며 듬직하다. 원래 산에 가면 정상은 가깝게 있다.
정상도착 오후 1시 비지땀을 흘리면서 올라왔으니 배는 등에 붙었다.
대구 김병지 친구가 지고 온 보따리를 동봉정상, 널찍한 암반 위에 풀었으며 뒤따라 올라와 함께 풀었다. 강경랑
친구 집에서 담은 막걸리는 단연 인기품목이었으며, 떡과 김밥은 허기진 배에는 꿀맛이었다. 배를 채우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양왕용친구의 유모어에 배를 잡는다. 무당이 없으면 굿판이 일지 않듯 부울대 는 이 친구없으면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조용암친구의 넉넉한 마음이 녹아있는 한마디 한마디는 분위기를 장악한다. 이인환 친구의
큰 풍채에서 우러나는 너그러움과 배려 깊은 심성은 언제나 한결같으며 너털웃음은 모두의 마음을 여유롭게 만든다. 옛 성인의 굵은 음성을 그대로 실천하는 이건영, 이걸, 전봉길 친구는 항상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있다.
-자공(子貢) 이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란 말보다 앞서 행동을 하고, 그 다음에 그에 따라 말을한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다. 우리 모두를 보살피는 이병옥친구의 곰살맞은 성격은 부울대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렇게 한 사람 한사람의 특성들이 잘 아우러져 더 힘차며 정이 넘치는 모임으로 발전해 가는 듯하다.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계곡의 아름다움과 계류의 흐름으로 산행의 피곤을 풀기 위하여 계곡을 하산 길로 택하였다.
높은 산은 아름다운 계곡을 갖고 있다. 잦은 장맛비는 계류에 힘을 실어주었으며, 아래로 내려올수록 양은 더욱 불어난다. 한여름에는 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계곡의 양옆으로 텐트가 빽빽하다. 숙식을 하면서 회사 출퇴근을 하는 젊은
이들도 있다. 요 며칠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인적이 드물다. 그래도 시원하게 흐르는 계류를 그냥 보고만 걸을 수 없어 청량한 옥수[玉水] 같은 계류 속에 잠겨보는 김병지친구, 불심으로 가득한 팔공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으니 맑고 정결해 보인다.
이 계곡은 조선조 24대 헌종이 아버지 익종의 묘에 사용할 목탄을 생산하기 위하여 입산을 통제하였다는 경고문 (綏陵封山界) 을 보면서 그 당시의 울창한 산세를 상상해 본다. 그뿐만 아니라 이 부근에서 생산되는 콩으로 조포
(두부)를 만들어 임금님 수라상에 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팔공산 들머리 백운삼거리의 두부전문 식당은 자리 잡기 힘들 정도로 손님이 붐빈다.
수태골 주차장에 도착 오후 2시20분이다. 은사님과 약속시간 2시 30분이 얼마 남지 않았다. 4대에 분승하여 은사님 댁을 향하여가는 길에 이영성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은사님식당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김병화 이영성두친구가 함께 한 것에 대하여 ‘고향을 지키는 큰집 식구들이 객지의 작은집 길흉사에 참석하는 제살
붙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지나 은사님의 냉면집에 도착하였다. 50년 만에 만나는데 우리들 얼굴을 보면서 기억하시지는 못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부산으로 가시기 전에 3학년5반 담임을 하셨다는 기억에 양왕용친구의 담임이었다 는 이야기에 더욱 반겼다. 체구가 큰 이인한친구를 보시면서 혹시 양동근인가(?)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조금 늦게 도착한 전봉길 친구는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 큰절을 올리면서 우리들을 이렇게 올곧게 이끌어주신 은혜에 감사의 정을 표하였다.
우리들은 식사 전에 큰소리로 여기 모인 9-33친구들의 건강은 물론이며, 가정의 화평을 기원함과 아울러 곳곳에 살고 있는 9-33친구들의 건강과 가정의 화평을 위하는 마음을 모아 잔을 들어 건배 하였다.식사를 마친 후 다시 올라오신 은사님은 우리들의 질문에 장시간 꼼꼼하게 답을 해 주셨으며, 영어를 전공으로 선택하신 이유와 대구에 오시게 된 사연을 들으면서 살아온 과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주경야독이라든지 요즘도 하루에 6시간 이상 책을 읽으신다는 말씀은 훈시처럼 들렸으며, 김동길 교수님의 홈페이지인 Freedom Watch(www.kimdonggill.com)에 일요일 날 집필자로 선정되어 8월21일(일요일)부터 글을 올리신다면서 친구들의 많은 애독을 권고 하셨습니다.
시간은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이야기 하고 싶고 옛날의 추억을 되 뇌이고 싶었으나 이렇게
50년이 지난 지금 스승과 제자가 다시 만났다는 것에 깊은 뜻을 새기기로 하고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작별인사를 하면서 다함께 사진을 찍고 아쉬움의 손을 잡았습니다. 친구들과 은사님의 만남을 마련해 드릴 수 있었든 것은 늦었지만 대구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헤어지는 아쉬운 우리들 마음 을 나타내는 듯 이슬비는 계속 보슬보슬 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