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3년 전 임경묵 교사(47)가 전근해 오면서 시작된다.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뒤 광고기획사 등에서 일했던 그는 1992년 교원임용시험을 통해 교사가 됐다. 2006년 초, 이 학교에 온 그는 그림에 대한 소질과 열정이 있는 학생 상당수가 학원 다닐 형편이 안 돼 포기하는 광경을 보게 됐다. 안타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터였다. 임 교사는 포기 대신 확신을 갖고 이곳 저곳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난관이 생기면 해결책을 찾으려 사방으로 뛰는 기업 때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방과후 수업으로 실기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하지만 입시 미술에서 고도의 노하우를 지닌 학원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임 교사는 경쟁자에게 배우기로 했다. 홍대앞 학원가로 달려가 입구에 내걸린 그림의 수준이 높아 보이는 미술 학원을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
- ▲ 이화미디어고 미술반의 작은 기적을 만든 것은 학원을 이기겠다는 교사들의 열정이었다. 임경묵 교사(왼쪽 세번째 검은색 상의)와 송상미 강사(아래쪽 파란색 상의), 미대에 합격한 3학년생들이 20개월간 밤마다 땀과 눈물로 그린 실습 그림들에 파묻혀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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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 희생하고 합류한 선생님들
그의 "도와달라"는 말에 학원측 반응은 냉랭했다. 그는 "우리 학생들은 어차피 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 된다. 그러니 조금만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끈질기게 늘어지자 결국 학원 세곳이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주었다. 임 교사는 학원에게서 세 가지를 배웠다고 했다.
첫째, 학원들은 실기 시험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티칭(teaching) 강사와 대학의 시험 경향 등을 연구하는 연구 강사로 이원화돼 있었다. 담당 교사들이 '1인2역'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둘째, 미술실기 강사들 간 정보교류 길목인 인터넷 카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미술반 교사들도 모두 회원으로 가입했다.
셋째, 매일 똑같은 교사가 가르치고 평가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한계였다. 명문 학원들은 몇 군데가 연합해 채점도 서로 바꿔 하는 식으로 평가 시각을 다양화하고 있었다. 임 교사는 인근 호원고(의정부시)·중산고(일산) 등 4~5개 고교 미술반과 연합을 해서 흉내 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이화 미디어고의 방과후 미술반이 2007년 5월 닻을 올렸다. 임 교사는 미술반에 참여해줄 교사 규합에 나섰다. 교사들로선 많은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다. 방과 후에 남아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가르쳐야 했다. 입시 시즌이 다가오면 야간 수업 시간은 더 늘어나고, 방학도 상당 부분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동료 미술 교사 3명이 기꺼이 참여해주었다.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이틀씩 미술반을 맡기로 했다. 부족한 인력은 외부 강사 2명으로 충원했고, 학생에겐 외부강사 비용으로 1인당 월 10만원 안팎의 부담만 지웠다.
외부강사들 활약도 중요했다. 미술 입시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교사들의 열정이나 어깨너머로 배운 노하우만으로는 학원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난해 7월부터 합류한 강사 송상미(여·28)씨는 홍대 앞 학원가에서 9년간 활동한 베테랑이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준비하려 학원을 떠난 송씨는 학생들 열정에 감복해 대학원 한 학기를 포기하면서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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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는 학생들학원이라면 서로의 경쟁의식만 가득했을 텐데, 미술반 학생들에게는 옆자리 동료가 든든한 동지였다. 작년 10월 초 미술반 중 처음으로 대학(삼육대 미대)에 합격한 김경은양은 합격 후에도 매일 학교에 나와 친구들 뒷바라지를 했다. 임수현·황혜수양 등 동료보다 한발 앞서 합격 통지서를 받은 친구들도 학교에 나와 연필을 깎아주고, 물감도 개어주면서 도와주었다. 수줍음이 많아 남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황혜수양은 "미술반이 없었다면 내 인생에 미술을 전공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격생들의 릴레이 자원봉사는 마지막 합격생이 나온 지난달 설 연휴 전까지 이어졌다. 임 교사는 "가정 형편이 좋아 모든 게 갖춰진 '부모님 프로그램'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학원을 다녀도 힘든데 학교에서 배워 과연 미대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시선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임 교사는 "학원에 안 가면 이동시간만도 1시간을 아낄 수 있다"며 학생들을 다독거렸다. 미심쩍어하는 학부모의 신뢰도 얻어야 했다. 일년에 두 차례 학부모들을 '이화 디자인 스튜디오'라고 이름 붙인 실습실로 불렀다. 중랑구청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아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실습실이었다. 밤늦도록 실기 연습에 몰두하는 자녀들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부모도 있었다. 선배들이 떠난 실습실에는 지금도 '작은 기적'을 이어갈 1·2학년 후배들과 이들을 돕는 교사들과 강사들의 열정으로 후끈하다. 이들을 바라보며 임 교사가 말했다.
"학교가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학원을 못 다녀 미술을 포기했다는 얘기가 사라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