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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나무 이름이라는 태풍 chan hom이 북상하는 가운데 2015년 07월 12일 아산사 산행을 따라 나섰습니다. 비가 없었다면 천성산 화엄벌을 거쳐 새로 개방되었다는 천성산 제1봉 원효봉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태풍으로 말미암아 산행 장소를 통도사 암자 순례로 바꾸었습니다.
산꾼들은 일기를 탓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오는대로 눈이 오면 오는 대로 즐풍목우를 낙으로 삼습니다.
우산을 쓰고 빗길을 걷는 모습에서 산꾼다운 면모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이런 날 산에 오를 생각을 한 자체가 이미 산꾼의 자세라 생각됩니다.
통도사 뒤로 이런 목가적 풍경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에야 처음 알았습니다 늘 통도사가 목적이었으니까요. 영축산 등반을 할 때에도 한번도 백운암을 통해 올라오거나 내려간 적이 없었습니다 비가 내려 대지는 초록을 윤택하게 했고 마음을 적셔 心田을 개간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습니다.
풍경 속에 점점이 일행들을 배치시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는 後尾만이 누릴 수 있는 독특한 재미, 그 재미가 그림을 바라보듯 오묘합니다.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어내듯 말간 산하의 민낯입니다. 오랜 가뭄에 지쳤던 개울물들도 모처럼 일어난 신명으로 졸졸 소리를 내며 달립니다 길이 좋아서인지 차들의 왕래가 많다는 점 말고는 특별한 불만은 없습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걷기에 안성맞춤인 날씨네요.
민가 한 채 없는 공간입니다 생각해 보니 참 어마 어마하네요 이 넓은 공간이 다 통도사 살림살이라는 사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사찰이라는 느낌이 팍 듭니다 그 덕에 우리는 꾸밈없는 대자연의 혜택을 거침없이 누립니다만 영축산 아래 산재한 수많은 암자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쯤이야하는 생각도 듭니다.
구름이 내려 앉는 산록을 배경으로 개망초가 콘트라베이스의 음역처럼 나지막히 자라고 있습니다. 일제말 철도공사가 한창일 때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철도 침목을 따라 들어왔다는 개망초. 지금은 우리나라 산천 어디서나 극악하게 잘자라는 풀의 대명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망국의 오명을 쓰고 이름마저 개망초로 불리지만 그림을 그릴 때 멋을 살리는기 위해 살짝 쓰는 흰색처럼 초록 일색의 풍경 위에 조미료와 같은 생기를 줍니다.
세심교
眞心은 不垢不淨이라는데 무엇을 더 씻어야 할지....
노루오줌
극락암으로 가는 차들이 많습니다 절 입구에서 관리요원들이 차량의 진입을 막습니다 우란 분절 입제일이 가까와서일까 인가도 없는 이 산구석에 무슨 차가 이리 많이 다니는지 의아했습니다
멋진 소나무 사이길
극락암
2015.07.12(음 5월27일) 마침 이 날은 경봉스님께서 입적하신지 33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이 날 행사에 우리가 참석하게 된겁니다
"극락에 길이 없는데 어찌 여기까지 왔느냐" 경봉스님이 극락암으로 스님을 찾아 온 사람에게 자주 하신 말씀이랍니다. 문득 경봉스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한 걱정이네요.
경봉스님 참 큰 스님 아닙니까 서화에도 능하셔서 우리집에도 스님이 그리신 달마도가 걸려있습니다만 볼 때마다 그림 속 활활 살아있는 스님의 필력을 느낍니다. 암자에 걸려있는 편액의 글씨체 또한 여간 비범하지 않았습니다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암자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한창 행사 중이어서 구석 구석을 둘러 볼 수 없었습니다 부산에서 교통도 좋으니 맑은 가을날을 택해 다시 와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행사 준비로 분주하신 스님들
- 펌 -
그는 깨달음을 노래하며 삼소굴 뒤에 올라가 달밤에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다음날 법회에 온갖 아낙들이 모인 대웅전의 법좌에 앉아 화엄경을 설했다.
“일이삼사오륙칠. 대방광불화엄경.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한 입에 그 도리가 다 있다.”
그의 법문은 이미 경계를 초탈했다.
“이 도리는 좆에도 있고, 씹에도 있다.”
경봉은 갑자기 옷을 벗고 남근을 쥔 채, “이 도리를 아느냐”고 물었다.
마을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함께 참가한 신자들의 충격과 고함으로 극락암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참 재미있는 광경이 아닙니까!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 산골 절간에서 조주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이 해괴망측한 퍼포먼스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여간 신기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법을 설할 때에도 청중들의 근기에 맞게 설하셔야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날 경봉스님의 일탈(일탈이란 말을 쓰서는 안되지만)은 傳道에 대한 답답함의 극적인 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경봉스님은 벌건 대낮에 신도들의 눈앞에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며 道란 이런것이라고 육신으로 설파하셨습니다만 과연 그 자리에서 도를 깨닫은 이는 몇이나 될까요?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 자리에서 깨닫은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道에대한 답은 분명히 그기 있었다는 것입니다. 공안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진리는 여기 눈 앞에 당처(當處)!
사찰음식의 극치를 보는 느낌입니다.
음식이 지니는 맛이라는 본질을 떠나 오로지 멋있는 음식 사진을 올리는데 열중하는 요즘 세태를 비꼬아 음식 포르노라는 신조어가 다 만들어졌지만 오색 산뜻한 빛깔만으로도 충분히 사진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조주의 끽다거(찬 마시고 가라) 경봉의 염다래(차 다려 오느라)
선가의 차를 논할 때 근대 선차의 기풍을 일으킨 경봉스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승속을 불문하고 극락암 삼소굴을 방문한 사람은 경봉스님께서 선다일미를 권하셨다합니다
좀 빗나간 이야기지만 끽다거 염다래에대한 이해를 위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조사들께서는 불법에 대해 在日用處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재일용처란 다름아닌 자고 먹고 마시고하는 생활 전반이 다 불법이란 말씀입니다.
육조께서 설하시기를 법이란 在行住坐臥處 在喫茶喫飯處 재행주좌와처 재끽다끽반처
在語言相問處 在所作所爲處 재어언상문처 재소작소위처
즉 움직이고 기거하고 앉거나 눕는 자리 마시고 먹는것 말하고 대화하는 우리가 짓고 행하는 모든것이 다 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공안이 탄생합니다
도란 무엇입니까? 밥이나 먹었느냐?
도란 무엇입니까?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
듣고보면 교리라는거 참 단순하고 담백합니다. 덜어내어 담백해진삶이 승이라면 쌓아두고 모으려만 하는 삶은 속입니다.
경봉스님의 차 한잔 내 오거라란 말씀이나 조주의 차나 한잔 하고 가거라는 결국 다 같은 공안입니다.
- 펌 -
삼소굴(三笑窟)의 ‘삼’은 ‘우주의 극수’를 가리키며, ‘소’는 제 손에 염주를 두고도 온종일 찾아 헤매다 염주가 제 목에 걸려있었던 것을 뒤늦게 알고서 어처구니 없어하는 웃음이다. 주인공(깨달음 및 부처)을 찾아 수없이 줄행랑을 쳤던 경봉이 애초에 출발했던 그 자리에서 주인공을 찾았으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연못의 무지개 다리 위에 서서 물 위에 누운 비루한 육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는데 영축산 솔바람이 경봉의 ’할‘(외침)인 듯 다시 주인공을 부른다.
“보는 그 놈이 누구냐?”
-비로암-
비로암
자장암
통석을 깍아만든 문을 통과하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우리 궁궐에도 저런 문을 보았습니다.
자장암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기거하셨던 곳이라하는데 1963년 용복화상이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주위의 자연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마치 궁궐의 후원을 옮겨놓은듯한 함초롬한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지만 적송 너머로 보일 영축산의 장대한 스케일을 생각하면 자장암의 소재가 얼마나 잘 선택된 곳인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멋진 적송 뒤로 비구름을 한껏 머금은 영축산의 모습
엄마나 소담스런 절집의 배치인가! 비탈에 늘어선 자연스런 소나무의 흐름하며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하는 마애불의 위치까지.
1896년에 조성되었다는 마애불과 소박한 삼층석탑
이 마애불 뒤로 금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바위 구멍이 있습니다 사진촬영을 금해 뒤란의 모습은 담지 못했고 돌구멍 속에 산다는 금개구리도 보지 못했습니다.
억수같이 비는 퍼붓고 똑딱이 렌즈를 닦던 내 손수건 마저 흥건히 젖어 더 이상 똑딱이를 닦아 낼 수 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빗물든 카메라 수리 맞기는 일에 어지간히 이력이 난 편이지만 그 때마다 당할 힘없는 소비자의 화병은 부처님도 치유해 주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행들은 이미 다 떠나고 없습니다 주책맞게 개구리랑 씨름하다 시간 가는 줄을 몰랐나 봅니다 모진 비 속에도 추녀 끝 풍경은 고요하고 구름이 쓸고 있는 산그림자는 급히 떠나는 내 허전함을 채우듯 물끄럼하였습니다.
백운암으로 떠난 일행을 기다리느라 잠시 삼거리에서 머물렀습니다 떡을 파는 할머니의 푸념이 낚시 바늘처럼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반야심경 첫머리의 行深반야바라밀다時에 나오는 行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극락에 길이 없는데 어찌 여기까지 왔느냐는 경봉스님의 공안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금강경에서 이르길 實無往來라는데 극락으로 가는 길이 또한 따로 있을까요? 생사가 물결치는 現今當處가 바로 극락인것을!
知無生死 用無生死
생멸이 없는 곳을 극락이라고 합니다만 나는 아직 그 無生死의 용처를 모릅니다. 가르침의 끝이 이토록 모호하기에 스님은 대중 앞에 자신의 양물까지 흔들어 보였을것입니다. 이것이 경봉스님과 나훈아,승과 속의 차이일까요? 그러기에 매맞아 죽을 지언정 세상은 참 흥미롭습니다. 진리가 바로 눈 앞에 있다고 하니 내 코가 다 시큰합니다.
- 끝-
dream of Love & Fulfillment / Ralf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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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973년 극락암에서 경봉스님을 친견했읍니다.저희가 그당시 바라밀 불교학생회였으니.경봉스님께서 우리중 한사람에게 "피안은 어디 있나?"고 물은 기억이 납니다.
불교에 관심을 가지신지 참 오래되네요.
1973년 그때를 돌이켜보니 참 어마어마한 세월의 부피가 느껴집니다!
앞으로 입다물고 살겠습니다. _()_
제가 할 말이 없읍니다.좋은 글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슬비 내리는 아늑한 산사의 운치에 흠뻑 취해 한참 머물다 하산합니다.
무위자연을 노래하는 도반을 따라나서면 나도 자연인이 되어갑니다. 조금씩...
비오는 산사. 참아름답습니다. 야반삼경에 문빗장을 만져보거라든 스님의 일괄이 생각나는 글 들입니다.감사 드립니다
야반삼경과 문빗장
공인과 유연'
진심과 경계가 카멜레온의 혀처럼 짝 들어붙는 참 멋진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