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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칭아웃 브로슈어 첫 장에는 커다란 글씨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든 수공예품 선물”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브로슈어 겉면 어디에도 ‘장애인’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삼단으로 접혀 있는 브로슈어를 펴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아야만 리칭아웃이 장애인들의 사회적기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뷰를 위해 리칭아웃 매장을 방문했을 때, 가게 안에도 이들이 장애인임을 알리는 홍보 문구는 없었다.
레 응웬 빈 사장이 휠체어를 타고 매장 안이 다 환해지도록 밝은 미소를 띠며 들어왔을 때, 그의 눈빛은 푸른빛이 서릴 정도로 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맙>은 인터뷰를 통해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자괴감 대신 자존감을 찾은 사람들, 스스로를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
이라 말하는 리칭아웃을 만나 보았다.
의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소년의 성장기
구수정(이하 ‘수정’): 제가 호이안에 스무 번을 넘게 다녀갔고 아마도 리칭아웃이 있는 응웬타이홉 거리를 수십 번 지나쳤을 거예요. 그런데도 오늘에서야 리칭아웃을 만나게 되네요. 진즉 알았으면 막 소문을 냈을 텐데…. (웃음) 매장 인테리어가 참 근사하고 상품들에도 공이 많이 들어간 게 한눈에 들어오네요.
레 응웬 빈(이하 ‘빈’): 지난 10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상품의 디자인과 품질을 개선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지요. 지금은 매장 운영도 안정적인 편이고요. 만약 수정씨가 리칭아웃 창립 초기에 이곳을 방문했더라면 다르게 얘기했을지도 모르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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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편하지 않은 몸으로 리칭아웃이라는 사회적기업을 창립하고 10년 넘게 운영해 오신 게 참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리칭아웃을 설립하기까지, 살아오신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빈: 저는 열다섯 살 때 의료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장애인이 되었어요. 온갖 수를 다 써 봤지만 두 다리를 고칠 수가 없었지요. 큰 충격이었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죠. 학교에 갈 수도 없었고, 딱히 저를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 혼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저는 베트남 중남부 일대를 떠도는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 길에서 저는 장애인이 아닌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아주 간절한 저의 소망과 마주하게 되었어요. 결국 여행을 접고 호이안으로 돌아와 공부를 시작했죠. 낮에는 영어공부를 했고 밤에는 그동안 하지 못한 기초 과목 공부를 했어요. 열아홉 살 때였죠.
수정: 길 위를 떠도는 어린 소년 빈의 방황과 고민이 눈앞에 그려지네요. 그렇게 방황은 끝났을지 몰라도 어려움은 계속되었을 것 같은데요.
빈: 하나의 계기가 있었지요. 당시 우리 학교 선생님들 중 몇 분이 컴퓨터 교육을 받으러 다낭에 가곤 하셨는데, 그분들을 따라다니면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컴퓨터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면서 몸이 불편해도 컴퓨터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미국에 있는 친구와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하고 영어 책도 번역하면서 차근차근 제 지식과 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어요.
컴퓨터와의 만남이 제 인생의 변곡점이 되었죠. 나중에는 다낭에 컴퓨터 무상 교육 센터가 열렸고, 저도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장애인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쳤어요. 당시 컴퓨터를 쉽게 설명한 책이 없어서 제가 따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가르친 수백 명의 학생들이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여행자들이 준 뜻밖의 선물 ‘공정무역’
수정: 그런데 지금 하고 계신 리칭아웃은 컴퓨터와 그렇게 큰 연관은 없어 보이는데요? 아마도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빈: 컴퓨터가 장애인에게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 준 건 맞아요. 그런데 불현듯 컴퓨터가 모든 장애인에게 적합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가격이 비싸서 가난한 장애인들은 컴퓨터를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죠. 장애의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어렵고 복잡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었고요. 그러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호이안의 거리를 보고 선물가게를 차려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엔 모든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 (웃음) 오로지 제 아내 꾸인만이 리칭아웃의 투자자가 되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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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년 봄에 리칭아웃을 창립하셨는데 당시 반응이 어땠나요?
빈: 장애인으로 이루어진 기업이란 이야기를 듣고, 대부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며 차라리 비정부기구(NGO)를 만들라고 했죠. 하지만 저는 회사를 고집했어요. NGO는 재정적으로 다른 단체나 후원자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구성원들 스스로 수익 창출의 원동력이 되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고, 자립적이며 안정적인 운영을 항상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공정무역을 만나게 되었죠.
수정: 그렇다면 리칭아웃이 처음부터 공정무역을 했던 건 아니었군요?
빈: 그렇죠. 처음에는 기업 운영, 상품 디자인, 마케팅, 재정 관리 등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었어요. 당시 외국인 여행자들이 정말 많은 조언과 충고를 해주곤 했는데, 공정무역도 그렇게 알게 되었죠. 공정무역이란 단어를 처음 듣고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었을 때 ‘바로 이거다!’ 싶어 눈이 번쩍 뜨였어요. 공정무역의 원칙 하나 하나가 리칭아웃이 지향하고 있는 바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전 직원들이 함께 공정무역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공정무역에 관한 베트남어 책이 없어서 영어 원서를 읽어야 했지요. 영어를 아는 몇몇 친구들 도움으로, 공정무역의 원칙을 이해하고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실질적인 기업 운영에 그 원칙을 적용하고 실천하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리칭아웃만의 특징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고객들이 리칭아웃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져서 지속적인 매출 증가로 이어졌어요.
수정: 공정무역과 만나면서 리칭아웃이 점차 자리를 잡고 성장하기 시작했던 거군요?
빈: 네, 그렇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계기들도 있었어요. 창업한 지 1년이 지났을 즈음 리칭아웃엔 장애인 공예가들이 열 명 정도 일하고 있었어요. 우리에겐 더 큰 공간이 필요했는데 과감하게 호이안시 인민위원회에 건물 지원을 건의했고 지금의 매장을 얻게 되었지요. 그리고 2003-2004년에는 미국에 있는 국제 NGO ‘베트남 장애인 지원 단체’(VNAH: Viet-Nam Assistance for the Handicapped)의 후원을 받기도 했어요. 그리고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Japan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의 도움을 받아 ‘Yes You Can’이라는 리칭아웃 홍보 영상도 제작했고요.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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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젊은 장애인들이 리칭아웃에 오면 어떤 조건으로 일을 하게 되나요?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요. 리칭아웃 상품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빈: 리칭아웃에 고용되면 먼저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식사 수당을 지원받게 돼요. 처음 일을 배우는 시작 단계부터 소통 문제, 거동 문제, 도구를 다루고 기술의 노하우를 체득하는 문제 등 많은 어려움과 직면하게 되지요. 게다가 리칭아웃은 베트남 전통기술을 유지, 발전시키고 지방의 특색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을 갖추는 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의 결여입니다. 대부분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지 않아요. 리칭아웃은 이 친구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트레이닝 과정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장애인들을 훈련시키는 트레이너들은 친절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본보기가 되어 이끌어 주고 믿음을 심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이 리칭아웃의 숨은 일꾼들이죠.
수정: 장애인들이 리칭아웃에 와서 변화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느끼셨을 것 같아요.
빈: 현재 리칭아웃에는 모두 55명의 공예가들이 있고 이중 80%가 장애인이에요. 대부분 리칭아웃에 오기 전까지는 세상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고, 딱히 할 줄 아는 일도 없었지요. 리칭아웃에 와서 처음으로 공부도 하고 기술도 배우고 오토바이 타는 법도 익히고 친구도 사귀게 됩니다.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능동적인 삶을 살기 시작하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의지를 불태우고 스스로 자신을 바꿔 나가게 되지요. 작은 사회적기업 하나가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어요. 리칭아웃이 그 친구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게 되어 기쁘고요, 그걸 지켜보는 저 역시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지요.
노동자에게 몫이 돌아가는 ‘공정한 경쟁’ 원칙
수정: 호이안에 리칭아웃과 같은 수공예품 매장이 참 많잖아요. 그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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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당연히 리칭아웃도 경쟁을 합니다. 대신 ‘공정한 경쟁’을 하려고 노력하지요. 호이안에 있는 대부분 가게들이 여행사 가이드에게 커미션을 주고 관광객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지요. 그렇게 하지 않는 가게는 말 그대로 파리만 날리게 되고요. 그런데 이런 일들이 계속되면 판매 수익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죠. 우리들이 과열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챙겨 가는 거지요.
그래서 리칭아웃은 여행사 가이드와의 관계를 단호히 끊어 버리고 매장을 아주 투명하게 운영해왔어요. 먼저 손님들을 불편하게 하는 호객 행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또 물건마다 가격표를 부착해 정찰제를 시행했어요. 또, 고객들에게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을 개방했지요. 맹목적인 영리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경쟁, 스스로를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경쟁, 그것이 리칭아웃이 추구하는 공정한 경쟁입니다.
수정: 제가 일본에 갔을 때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한 사회적기업에 들른 적이 있어요. 빵을 굽는 회사였는데, 대부분 고객들이 자신이 먹는 빵이 장애인들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곳 사장의 이야기가 ‘우리가 추구하는 건 장애와 비장애라는 구분마저 사라진,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굳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리칭아웃은 어떤가요?
빈: 방금 말씀하신 이야기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기서는 장애인을 영어로 ‘the people with different ability’(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불러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이러한 시각은 우리에게 자존감을 갖게 해줘요. 스스로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품질의 상품을 생산해 시장에 공급하는 ‘노동자’로 인식하게 되지요. 우린 상품의 질과 서비스로 승부하고 싶지 장애인의 이미지를 팔아 동정심을 사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에게 장애가 있다 해도 우리가 만들어 낸 상품엔 그 어떤 장애도 없습니다.
수정: 마지막 말씀이 참 감동적이네요. 리칭아웃이 갖고 있는 계획이나 앞으로의 포부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빈: 현재 리칭아웃은 베트남 장애인들을 위한 지역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것을 좀 더 확대하고 싶습니다. 호이안을 찾은 여행자로부터 공정무역이라는 선물을 받았듯이, 앞으로도 고객들과 열린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진화하며 리칭아웃의 ‘다른 능력’을 키워 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더 좋은 수공예품, 마음이 담긴 공정무역 제품으로 그분들께 보답하고 싶고요.
* 기록 정리 : 권현우 (아맙 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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