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 공원의 이단아
일주일에 두세 번 집에서 가까운 독립문 공원에 새벽 운동 삼아 걷기를 하고 있다.
무악재 고개를 넘어 10분이면 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공원 둘레 산책길 따라 다섯 바퀴쯤 돌면 그의 만보정도 걸을 수 있다.
붉은 벽돌 높은 담벼락 끼고 잘 조성된 산책길로 들어서면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중간 중간 이 나라의 굴곡진 역사의 잔해물들이 빨간 벽돌담 그대로, 높이 솟아 있기도 하고, 잣나무, 상수리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또 이름 모르는 수목들이 공원 둘레를 감싸 안아 아늑한 휴식처로 이미 독립문 공원의 명물이 되어있다.
새벽 5시쯤에 시작하여 7시쯤까지 다 걷고 나면 숲속 벤취에 앉아 물도 마시고 쉬어간다.
꼭 그때쯤에 한 청년이 나타난다.
거기는 공원 매점이 있고, 그 옆에 매점에서 나온 쓰레기통이 있다.
청년은 공원입구에서 바로 직진하여 뒤도 옆도 안돌아 보고 빠른 걸음으로 와서는 그 쓰레기통을 뒤져서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찾아 그 옆 돌난간에 앉아 허겁지겁 먹는다.
언제나 그 시간쯤에 그 장소에서 똑 같은 행동이다.
아마도 이 한 날의 아침 식사를 그렇게 때우는 것 같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며 자세히 보지 않고 그냥 예사롭게 봤을 때는 등까지 내려온 긴 머리와 수염까지 길러, 시커멓고 지저분한 노숙자의 모습이였는데,
우연히 오늘 아침에는 바로 앞을 지나가다 얼굴이 서로 마주쳤는데 너무 깜짝 놀랐다.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보니, 머리와 수염이 윤기가 나도록 새까맣고 안면은 깔끔하고 이목구비가 또렷하여 세련된 귀공자같이 잘 생겼다.
순간 나도 모르게 어머나!. 하는 감탄사가 새어나오고, 어리둥절 놀랐다.
같이 걷던 친구에게 호들갑을 떨며 저 사람 얼굴 봤어?
너무 깨끗하고 잘 생겼어!. 그랬더니
“저사람 원래 옷도 깨끗하게 빨아 입고 다니고 그래 ”
어쩌다 저 청년 온전한 정신세곌랑 잃어버리고 딴 세상의 환상에 빠져 살게 되었을까?
저렇게 맑은 눈과 선한 표정으로, 아니 아주 편안하고 여유로운 무표정으로,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겹쳐 보인다.
알랙산드대왕이 그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아무 것도 필요 없고 내 앞에 햇볕을 가리지 말아 달라 ”
고 했다는 그 순수한 자유인....
저이도 거추장스런 세상의 문화와 질서의 굴레들을 여기 붉은 벽돌담 너머에 던져 버리고, 온전한 자유의 정신세계로 활보하고 다니는지도 모르지!..
매일 땀을 뻘뻘 흘리며, 이 공원을 열심히 걷고 있을 우리 모두를 보고, 그는 도리어 어떤 차원으로 우릴 바라볼까?
혹시라도
“왜 저토록 야단법석을 떨며 살아갈까?’
하면서 속으로 행여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반대로 극히 정상인임을 자처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그를 바라보면서, 한갓 정신을 놓아버린 불쌍한 이세상의 이단아로 오해? 하면서 그 냥 지나쳐 버리고 말겠지?...
산책을 마치고 무악재고개를 터덜터덜 넘어오면서, 주제 넓게 그의 존재 그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졌다.
<독립문 공원의 이단아> 자유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