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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물 되는 인생 - 放恣(방자)함이냐, 하나님 敬畏(경외)냐? (10P)
🔥 敬畏(경외) - 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가?
🔥 문득 靈感(영감)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성령님은 밤에 잠을 잘 때에도 끊임없이 나에게 靈感(영감)을 계속 부어주신다.
1>. 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敬畏(경외)하지 않는가?
2>. 왜 사람들은 교만하고 오만방자하여, 함부로 주의 종 牧師(목사)를 대하는가?
3>. 왜 사람들은 남을 尊重(존중)하지 아니하고, 無禮(무례)하는가?
4>. 왜 사람들은 자기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함부로 인생을 사는가?
5>. 왜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하며, 돈을 함부로 쓰며, 자기 잘난 체 하며, 남을 무시하는가?
그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 예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 성령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이다.
🔥 계2: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목사나 사모나,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 교회 중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이 전혀 없다.
나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단정한다.
2025년 3월 내 나이 68세!
인생을 살아보니,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모든 말씀은 그것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더 이상 성령 하나님을 숨겨놓고 없는 것처럼 살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분을 드러내놓고 그 분으로 살고자 함이다.
내 삶, 세상의 모든 일들!
다 성령 하나님 그 분의 섭리요 역사이다. 모든 일은 성령의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 분은 너무 억울하다. 아무도 그 분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다 하셨다.
그 분이 내 인생과 세상 역사의 주인공이시다.
나는 그 분을 널리 드러내고, 드높이 알리는 일에 남은 생애를 바칠 것이다.
나는 남을 존중한다. 어떤 사람도 정죄하지 않는다.
그는 나보다 더 의롭고,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위와 지식이 있고, 남을 가르치며 살아왔고, 하나님 가장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성경 말씀도 잘 안다. 하나님도 잘 안다...
모든 목사들이 그렇다.
그런데 목사들이 말씀을 안지킨다.
하나님이 무섭지 않다.
아니, 하나님을 발로 툭툭 찬다. 갖고 논다.
이런 목사들이 오늘날 한 둘인가?
진실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목사,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그러한 장로들이 교인들을 지옥 가는 자식들로 다 만든다.
교인 중에는 放恣(방자)한 자가 있고, 진실로 하나님을 敬畏(경외)하는 자가 있다.
마태복음 6:24절-“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로마서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2016년, 서울북노회에 들어 온지 21년 만에 상계시찰장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골방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 시찰장은 제 생애에 가장 높이 올라 가 본 명예직이다.
저는 무슨 숫자나, 서류나 행정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만 머리가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사람도, 돈도, 교회도, 세상도, 처신의 지혜도 모르고, 오직 하나 ‘하나님의 말씀 전하는 것’만 즐겁고 행복하다.
이런 나를 하나님이 한국교회 부흥사로 길을 여셔서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2016년 올해 20여개의 교회 부흥회 요청을 취소했다. 이유는 골방에 머물러 있고 싶어서이다. 올해 8월까지 30여 개 교회 부흥회를 인도했다.
♥ 1>.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영의 길, 육의 길을 동시에 걸을 수는 없다.
“재물” - “돈, 세상, 육체, 정욕, 마귀, 자기, 사랑하는 아내, 자식, 여자, 직장, 사업, 건강...”
♥ 2>. 방자한 자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의 차이가 무엇인가?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하나님 앞에 방자한 사람 두 종류의 맥이 죽 이어져 온다.
<1>. 아담과 하와:
말씀을 거역-모든 인간의 유전,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 앞에 너무 방자하다.
“말씀을 짓밟으라.
네가 짓밟은 그 말씀이 네 삶을 짓이겨 버릴 것이다.”
<2>. 아벨과 가인:
흉포함, 살인과 폭력의 원조 -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없음 – 정처없이 쫓기는 불안, 두려움의 형벌
오늘날 조현병으로 쫓기며, 추적망상으로 인하여,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살인하는 자들의 비극을 보라.
오호라! 이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돌보아야 할 것인가?
<3>. 야곱과 에서:
망령됨, 자기가 주인됨, 방자함, 남자다움, 교만함
<4>. 모세와 고라, 다단, 아비람:
반역함, 당을 지음
<5>. 사무엘과 엘리:
무능함, 현실에 안주함, 타협하고 넘어 감
현대판 ‘엘리’의 전형이 조0기 목사
한국교회의 치부들을 보라.
금란교회 김0도 목사 재판 사건,
감리교 김0도 목사 감독 사건,
길0연 목사의 한기총 사건, 총신대 사건,
경향교회 석0태 목사 부자 거액 사례 사건,
부목사에게 폭행당한 김0철 목사 사건,
사랑의교회 오0현 목사 표절, 사생활 사건,
삼일교회 전0욱 목사 간음 사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교단마다 돌아가며, 대형교회 목사마다 돌아가며 사건을 터뜨리는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였다.
<6>. 다윗과 사울왕:
회개의 차이
<7>. 다윗과 골리앗: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의분과 그로 인한 용기와 골리앗의 신성 모독의 대결
다윗의 물맷돌 5개는 골리앗 형제 5명을 다 죽이려는 계획이었다.
<8>. 베드로와 가룟 유다:
회개와 자기의 이데올로기 주장
이데올로기는 현대판 지성인의 가장 큰 우상,
대한민국은 극우, 극좌의 무한 극한 대립사회
<9>. 스데반과 사울:
스데반의 하나님 경외신앙은 눈물이 난다.
그러나 저 사울의 포학함을 보라. 그를 회심시켜 사도 바울로 만드신 주님의 은혜를 보라.
골고다 십자가 한편의 강도, 사도 바울 외에 회심한 사람이 또 있는가?
사람은 안변한다. 씨가 따로 있다. 내 평생 목회하며 배운 게 있는데,
목사들이여! 사람 바꾸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좋은 사람 보내 주셔서 목회하도록’늘 기도하라.
<10>. 빌립 집사와 니골라 집사:
계2:6-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당을 지으면 안된다. 교회에서 반대 편에 서면 아니된다. 모든 세상에는 야당이 있으나, 교회에는 야당이 있으면 아니된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반열에 서라.
아론과 훌의 반열에 서라.
<11>. 누가와 데마:
딤후4:10절-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주님과 세상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칠 것인가?
<12>. 데메드리오와 디오드레베:
요삼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요삼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삶이 다르다.
주님 앞에서 각자 자기 ‘삶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최근의 두 교회 부흥성회:
믿음과 헌신이 없는 교회 - 회심시켜, 2,400만원 헌금이 쏟아졌다.
목사와 교회에 식상해 있는 교회, 도무지 헌신하고 싶지 않은 교회 - 회심시켜, 4,600만이 쏟아졌다. 중진들이 대거 불참했다. 말씀을 증거하는데 다들 냉담했다.
“100배 축복을 받기 위하여 피눈물로 헌금을 하라.”고 설교하니, 다들 인색하기 그지 없었다. 목사와 성도들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고 있었다.
목포의 한 교회는 지난 3년 간 연속 적자로 교회 빚이 8,000만원에 육박했다. 부흥회를 했더니, 헌금이 8,500만원이 나왔다. 그리고 교회의 근심이 해결되었다.
눌렸던 목사님이 너무 기뻐했다.
<2>.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예배가 다르다.
신령(in Spirit)과 진정(in Truth)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NIV 요3:5 Jesus answered, “Very truly I tell you,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they are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육체는 육체로 태어나게 하고, 영은 영으로 태어나게 한다.)
육적인 신앙생활이 있고, 영적인 신앙생활이 있다.
육적인 신앙생활은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상식적으로, 상황적으로 예수 믿는 것이다.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이다. 율법적인 예수 생활이다.
영적 신앙생활은 예수 믿고 살아가는 어느 날,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분을 주목, 동행, 복종, 충만하며 살아간다. 그는 언제나 자기를 부인하며, 오직 성령을 따라가는 영적 생활을 한다.
그의 영혼은 풍성하다. 그의 삶에는 늘 성령으로부터 오는 기적의 삶이 있다. 간증이 넘치는 삶이 비로소 전개된다. 비로소 그의 사역은 영적 사역이 된다.
로마서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3>.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헌금생활이 다르다.
100배 축복을 받기 위하여 피눈물로 헌금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부흥성회를 하려는 개척교회 정00 목사와의 대화 : 50만을 헌금함
“헌금을 강조하는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기 두렵다. 연약한 성도들이 시험 들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헌금을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심지 않은 것을 회개했다. 그 때문에 내가 일생을 가난했던 것을 깨달았다.”
<4>.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기도가 다르다.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언제나 골방에 머물러 있다. 오직 골방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5>.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선교하는 자세가 다르다.
내 기도와 피나는 나의 돈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저는 오늘 주님 앞에 계신 목사님, 장로님들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100배의 축복을 들고 왔다. 저의 말씀을 듣고 “100배의 축복”을 받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축복한다.
나는 태어나 일평생을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내 나이 55세가 될 때까지...
내 나이 6세 때에 하루는 일을 나간 엄마가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동생을 낳았다...
나의 어린시절, 학창시절, 결혼생활, 목회의 길... 행복이 없었다.
길고 긴 13년 간의 고난의 세월을 지나, 은혜받고 성령받은 나에게, “50세부터 저를 써주세요.” 했더니, 정확하게 호적 나이 55세부터 성령 하나님이 저를 불같이, 바람같이, 생수같이, 폭포같이, 정금같이 쓰시며, 영혼육의 축복의 문을 여셨다.
후에 알고 나니, 내 호적 나이대로 쓰셨다.
나는 호적이 5년이 늦다.
우리교회 박요한 장로님의 얘기이다.
장로들이 해외 여행을 가면, 70만원짜리 모피 외투를 가족 숫자대로 사 가지고 들어 온단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교회는 새벽기도 가기 싫어, 교회에서 멀리 이사를 가고, 헌금도 하지 않는단다.
이것이 방자함이다.
♥ 3>. 방자함이냐, 하나님 경외냐?
교회의 리더들인 목사, 장로들이여!
돌아보라.
왜 방자해지는지 아느냐?
왜 하나님 경외가 없는지 아느냐?
오직 하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경외신앙은 절로 나온다.
1.삶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2.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3.100배 축복을 받기 위하여, 피눈물로 헌금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4.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5.내 기도와 돈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방자함이냐, 하나님 경외냐?
오늘날, 성령 없이도 목사들은 목회 잘 하고, 성도들은 예수 잘 믿는다.
사실상 한국교회에 성령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수많은 예수 믿는다는 목사들과 신자들이 지옥 갈 것이다.
나는 그 비율을 무려 전체 신자의 95% 이상이라고 본다. 성령 받은 사람은 5% 미만이기 때문이다. 제가 속한 장로교 통합 교단의 성령 받은 목사는 5% 미만에 불과하다.
나는 수많은 목사들이 성령 없이도, 경영이나 개인 수완이나 지식이나 세상 지혜나 인간관계나 배경... 만으로도 능히 목회 잘 하는 것을 본다.
성령은 말로만 인용하는 약방의 감초일 뿐이다. 오히려 성령 없는 저들이 기고만장하여 자기가 하나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가장 신령하며,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뛰어난 스승으로 착각하며, 하는 짓마다 성령을 대적하는 것을 본다.
그래도 성령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다.
목사들이 문제이다. 정말 문제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 없이도 교회를 잘 섬기고, 세상살이 하는 데에 아무 문제 없음을 본다. 저들은 일생 동안 성령에 대하여 수없이 설교를 들으나, 단 한번도 그 분을 만난 적이 없고, 그 분과 정면으로 대면해 본 적이 없다.
성령이 없이 자기가 예수 믿고 살아감으로 변화되지 않으며, 그의 신앙은 언제까지나 성숙하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 같다. 가짜 예수, 가짜 신앙인 것이다.
성령 하나님은 밖으로 나타나는 법이 없다. 우리의 하나님이신 그 분은, 우리가 오직 주목하지 않는 한 나타나지도 않으시며, 알 수도 없다.
그 분은 바람과 같이 흔적이 없다.
우리의 개인적인 삶, 안전한 하루 하루의 일상, 사랑하는 사람들, 만가지 축복, 우리의 교회와 신앙의 모든 일들이 다 그 분의 보이지 않은 인도하심과 지키심의 역사인데, 우리는 까마득히 모른다.
다 내가 잘 나서 살아가는 줄 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다.
오호라! 개탄한지고...
기독교는 곧 성령 하나님 그 분의 종교이며, 사실은 그 분이 친히 이끌어 가시는데, 그 분 없이도 다들 잘도 예수 믿고 살아간다니...
실상 그 분이 필요 없다니...
수많은 목사들과 신자들이 그 분을 만나지도 못하고 살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하다니...
이러한 말도 안되는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나는 어느 교회 부흥성회를 잊을 수가 없다.
사전에 담임목사에게 성령과 성령 사역을 충분히 설명하고 첫 한 시간을 성령설교 하고, 사역을 시작했다.
거부 반응이 역력했다.
담임목사가 단 중앙에 떡 버티고 앉아서, 삐딱한 자세로 설교를 냉랭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자연히 교인들이 냉랭해질 수 밖에...
나의 부흥성회의 성령 사역은 참담했다.
사역의 과정마다 담임목사는 일일이 성령을 대적했다.
너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부흥집회가 끝난 후에 하나님께 영분별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 교회를 제게 보여 주옵소서.”
살찐 쥐들 6-7마리가 먼지가 가득 쌓인 교회당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살이 쪘는지 꼬리가 내 새끼 손가락만 했다.
아아! 장로가 하나님이었다. 목사는 장로에게 빌붙어 아양 떠는 설교를 하면서 10여 년 간 잘도 목회하고 있었다.
원로장로가 영성의 대가란다.
자기는 오로지 그 분을 섬긴단다.
지옥 갈 장로를...
오호라! 불쌍한 목사, 아니, 못된 목사!
나는 영으로 분별할 때, 스스로의 뿌린 육신적 목회의 잘못으로 그가 쫓겨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이미 하나님이 버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대부분 이 모양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성령 하나님이신데, 그 분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다.
온통 인간들 판이다. 전부 심판의 대상인 것이다.
교회에서 종교의 영을 몰아내는데, 일생을 다 싸워도 안된다.
나는 고교 2년 18세에 소명 받아, 20세에 신학대학에 갔다. 그리고 일생을 목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성령을 몰랐다.
성령을 태연히 설교하면서도, 성령을 만나지도 못한 것이다. 마치 비유하면 애도 낳아 보지 않은 처녀가 출산을 말하고, 아이 양육을 말하는 꼴이다.
예전에 우리 교회를 떠난 한 여집사가 한 말이 귀에 쟁쟁하다.
“배목사님! 배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으면 방언이 생생히 손에 잡히는데, 지금 우리교회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으면, 아아! 방언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방언에 대하여 말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예수를 말해야지, 예수에 대하여 말하면 안된다.
내가 받은 은혜를, 성령을, 기도를, 사랑을, 믿음을... 말해야지, 은혜에 대하여, 성령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죽은 소리를 하고 있으면 안된다.
교인들이 다 안다.
목사 체면 때문에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성령의 사람이 되자.
성령 신앙에 서자.
진실로 방자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