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흥에 대한 영분별-나와 새성교회와 사역들의 내일에 대한 꿈들을 해석하다 (37P) ♥
*3대 영분별을 하라-1.사람 분별, 2.돈 분별, 3.시대 분별
나는 지난 15년 간 성령의 길을 일심(一心)으로 걸어 온 이후, 항상 꿈 속에서 기도하고, 그 꿈들을 적고, 해석해 왔다.
그리고 그 예언성은 거의 적중해 왔었다.
아래 글들은 이제 이후 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예언적인 꿈들이다.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부흥을 꿈꾼다.
♥ 내가 갖가지 장애물을 기가 찬 과학적 방법으로 통과해 나간다.
기적처럼 지혜를 짜내면서,
몸의 체력을 총동원해 가면서...
여행을 갔다.
어제 미리 간 코스를 다시 가는데, 길이 달랐다.
긴 사막을 지나 방둑을 올라 가는데, 화산의 둑이었는데, 잘 올라 갔다.
마침내 멋진 탁 트인 조망을, 사진 찍으려 했다.
(이는 늘 같은 성령의 길을 걸어 가는 내 사역의 원숙성을 말한다.
성령의 과학적 독창성들이 가미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열찬 사역을 감당할 나의 체력이 보강됨을 말한다.
늘 가는 성령 사역의 길이 달라지고, 드디어 내가 정상의 둑에 올라 섬을 말한다.)
♥ 잘 아는 기도원에 갔다.
청주의 노00 원장처럼 생긴 여원장이 있는 기도원이었다.
화장실이 없어, 너무 더럽고 불편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화장실이 너무 더럽고 갈 수가 없어, 신발을 찾다가 맨발로 더러운 곳을 밟다가 다시 나와서, 밖의 들판에서 소변을 보려니, 또 여자들이 있어 난처했다.
설교 시간에, “이 놈의 기도원은 화장실도 없고, 어쩌고...” 하며 불평을 하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 때 이런 가책이 들었다.
네가 단돈 100만이라도 내놓고 화장실을 건축하게 하라고...
(이는 나의 사역의 자세이다.
사람을 대할 때에 저들이 성령을 받지 못하고, 성령으로 살지 못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방하고, 그들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지 않고, 그들 때문에 나도 더러워지고, 오염이 되며, 혼탁해지는 모습이다.
정리할 사람들은 정리하고, 내가 다시 돕고 일으킬 사람들은 다시 일으켜야 한다.
사람도, 사역도 이제는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 사역자가 오염되고, 정죄하는 자가 되어서는 절대 아니된다.
성령의 일에 앞장 서고, 주창하고, 기꺼이 동참하라.)
오늘 밤 잠을 무려 몇 번이나 설치고 잠이 깨었다.
♥ 2019.8.31.토. 이수옥 권사의 꿈 2가지
차를 타고 오는데, 이수옥 권사가 자기가 꾼 희한한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언제나 이수옥 권사의 꿈이 어김이 없는 예언성이 있기에, 항상 마음에 담고 기도한다.
바다에 큰 파도가 일어나, 해일을 막기 위하여 방둑을 쌓아야 했다. 그러면서 낡은 집을 새로 개축을 해야 했다.
집을 부수어 새로 정리를 하려고 묵은 집안을 싹 정리하는데, 숨어 있던 큰 쥐와 새끼 쥐 두 마리가 구석에서 튀어 나와, 이수옥 권사가 집게로 찍어 죽였다. 쥐들이 동작도 빠르지 아니하고, 도망도 아니 가고, 그냥 빌빌거렸었다.
그리고 집 앞의 바다에 던져 버렸더니,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어 버렸다.
(아아! 20여 일이 지난 지금 이제서야 확실하게 분별이 되는구나!
쥐 3마리는 이번에 떠나 간 권00 장로, 신00 집사, 윤00 권사이다. 이들은 오래된 새성교회의 캐캐 묵고 묵은 교인들이었다.
언제까지나 일군이 되지 아니하고, 언제나 목사의 목회를 지체하게 만드는, 교회 성장을 가로막고 역행하는 교인들이었다.
목사는 이런 사람들을 잘 구분하고, 격리시켜야 한다.)
♥ 큰 호수가 있는데, 이전에는 고기가 없었는데, 주인이 한약 약재를 뿌린 이후에, 온갖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고기들을 잡을 도구가 없었다.
돌을 던지면 고기들이 몰려 드는데,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잡아야 하는데...
(이는 새성교회 목회와 <성령의군대> 성령 사역의 모습이다.
지금 나의 목회와 성령 사역은 그 내용과 능력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것을 홍보하고 알리고 선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을 보충해야 한다.
주님! <성령의군대>를 조직화 하고, 인터넷과 유튜브 등으로 널리 홍보할 종을 붙여 주세요.
성령도, 능력도, 말씀도, 기도도, 찬양도 다 준비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군대>를 세상에 널리 알릴 종이 없습니다.
그 종을 배종부 지도목사에게 붙여 주세요.
사역자들을 지부장으로 세우게 해 주세요.
강력한 물권자를 붙여 주세요.
부디 우리의 부족함을 보완해 주세요.)
보라. 이번 산상기도 제목과 딱 맞지 아니한가?
겔47: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 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 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북한의 살인조가 엄청난 살인들을 자행하고, 귀가하는 길에 자기들끼리 보안을 위해 또 서로 살인하는 꿈을 꾼다.
잔혹하고, 잔혹하다.
왜 이런 나쁜 꿈들이 연속될까?
惡鬼(악귀) 羅刹(나찰) 같은 ‘여 살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는 ‘김정은’이다.
(아아! 이건 나라의 장래를 두고 꾼 무서운 꿈이다.
나의 이번에 일주일 간 행한 ‘시국’ 강의는 정말 예언성이 강하다.
앞으로 대한민국 나라가 이렇게 된다.
문재인 주사파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고, 나중에는 저들도 숙청 당한다는 예언이다.
주여! 이 일을 어찌 하오리이까?
우리를 살려 주소서.
예언은 그리 되지 말도록 기도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오호라. 주여! 주여.., 우리를 살려 주소서.
항상 꿈은 그 당시에는 분별을 하기 어려우나, 지나고 나면 저절로 해석이 된다.
내가 ‘문재인 주사파 간첩 정권 타도’ 강의를 할 줄은 나 스스로도 상상도 못한 일이다.
2019년 10월 3일 개천절 12시 서울 시청 앞 한국교회 기도의 날이다. 자유한국당이 합류한다. 다들 참석하기 바란다.
주님! 세상에...
2022.3.9.수. 대선에서 문재인 이재명은 드디어 폐배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되었습니다. 이제 이 나라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할렐루야!
♥ <총회서울부흥단> 단장인 ‘강승춘’ 목사 일행이랑 놀러 갔는데, 차를 못 빼어, 내가 지도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차 빼는 것을 봐 주는데, 잘 모르는 여자 목사 운전자는 앞 범퍼를 부딪치고, 박요한 장로를 먼저 짜장면을 먹게 하고, 식사할 아이 가족을 위해서도 음식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식탁을 돌려 주다, 잠이 깨었다.
항상 소변이 마려워서, 잠이 깬다.
(1.이는 상임부단장인 내가 ‘서울부흥단’을 인도해 가는 리더쉽의 모습이다.
2.‘박요한’ 장로를 항상 신임하고, 우대함을 말함이다.
3.앞으로 나의 목회가 깨달음을 얻어, 어린 성도들을 잘 돌본다는 뜻이다.)
♥ 하나님의 물갈이
확실하게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당신이 직접 청소하신다. 그 방법은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가 없다.
나 배종부 목사가 목회하는 새성교회는 지난 23년 간 부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비록 ‘성령님의 시종(侍從)’ 이 되고, ‘순명(殉命)의 사람’ 이 되어, 소위 성령 사역하는 사람으로 한국교회에 점점 그 이름이 알려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일개 개척교회 목사일 뿐이다.
나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절대 꿀리지 말고, 나처럼 당당하기를 바란다.
매월 수 백명의 사람들을 3층 하꼬방 교회로 불러 들여 회심(悔心)의 말씀으로 깨뜨리고, 각 교회들에서 부흥성회들을 인도하며 사자후(獅子吼)를 외치고, 매월 평균 6,000만의 하나님의 돈을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양심대로, 오직 성령의 주장대로 집행할 수 있는 영력 있고, 힘 있고, 당당한 목사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새성교회는 지난 23년 간의 내 목회 사전(史傳)에 양적으로 부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그럴 실력이 아예 없다.
그런데 올해 2019년에, 이 작은 교회 안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이 줄줄이 떠나 버렸다. 그것도 하나 같이 중진 교인들이...
그 이유는 어이가 없다.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떠나 갔다. 한 마디로 사탄의 장난에 저들이 말려 든 것이다.
담임목사인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지나고 보니,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물갈이’ 였었다. 나의 새로운 목회와 새로운 부흥과 새로운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이 과거의 사람들과 유물들과 내 곁에 있으면 안될 사람들을 정리해 버리신 것이었다.
♥ 성0순 부목사는 진정 충성된 종으로 지난 10년 이상을 나의 권사로 있다가, 전도사로 있다가, 목사가 되더니, 그만 방자해져서 가정교회를 세운다며, 담임목사인 나의 권고를 무시하고 떠나 가 버렸다.
난 출교(黜敎) 치리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숱한 글을 쓰면서 하나님 앞에 씨름하다, 그만 놓아 주었다.
♥ 이0순 권사는 20년이 다 되도록 그렇게 일생을 충성하더니, 시골로 간다면서 교회와 목사를 버리고 떠나 갔다.
알고 보니, 시골로 이사를 간 것이 아니라, 나를 떠나 간 것이었다.
그 착한 사람이 나에게 결정적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었다. 기도시간에 회개하라며 무섭게 후려친 것이 그 원인이었다.
♥ 이0미 집사, 김0희 집사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가치를 버리지 못하는 그 허튼 가시떨기 같은 마음들에 쏟아진, 강력한 나의 회심(悔心)의 말씀과 성령의 폭발적인 강한 말씀 앞에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떨어져 나갔다.
당연한 결과이다.
역시 출교의 치리를 장고(長考)했다.
그리고 그냥 끝냈다.
♥ 김0규 집사, 장0주 집사, 성0아 집사는 배후에서 담임목사의 재정과 목회 방향을 씹고, 말씀을 비방하고, 파당을 짓더니, 마침내 작당을 하고 떨어져 나갔다.
이 일의 선동자는 성0아 집사이다.
이들 역시 출교의 죄로 다스리려다가, 나의 사람들이 아님을 알고, 마음을 접었다. 이들은 6개월도 채 내 곁에 있지 않았었다.
다시 말하면 새성교회에 들어 와 한 바탕 휘저어 버리고, 냉큼 떠나 버린 것이다.
저들은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 김0철 목사, 윤0희 사모는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임하고 떠나 갔다.
아아! 윤0희 사모는 얼마나 훌륭한 사모이던가?
김0철 목사는 내게 너무 아픔이었다.
너무 사랑하고 아꼈는데, 너무 탁월한 은사들이 많았는데, 결국 나의 사람이 아니었고, 우리의 인연은 2년 정도로 짧게 끝났다.
♥ 최종적으로 권0기 장로, 신0화 집사, 윤0열 권사도 떠났다.
담임목사인 내가 “너희는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를 부인치 아니하며, 변화가 도무지 없으니 회개하라.” 꾸중하니, 그만 불순종하고 튀어 나가 버렸다.
23년을 가르친 장로가 마침내 담임목사를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튀어 나가 버린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목회의 현 주소이다.
나는 역시 권0기 장로를 출교, 신0화 집사를 추방의 치리로 결론 지으려 했다. ‘치리서’ 까지 다 작성했다.
교회 앞에 공포하려던 주일 아침, 그러나 다 부질 없는 일, 그만 놓아 버렸다.
떠나 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수 많은 밤을 지새며 눈물 흘리며 아파하며 기도한 글들이 아마 수천 Page는 족히 될 것이다.
그 피나는 사연들은 전부 나의 글 속에 다 묻어 버렸다.
세월은 가고, 사람은 떠나고, 상황은 종료되어도, 글은 남아 있다.
그 글 속에는 반드시 씻어야 할 영적 교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는 훗날 나의 감정이 다 정리된 후에, 이 글들로 장고의 책들을 시리즈로 쓰기 원한다.
나의 컴퓨터 속에는 “성령님의 시종(侍從) 배종부 목사를 배신한 자들 34명” 의 명단이 있고, 각 이름들 파일 속에는 그들의 죄악과 배신적 행위들이 글로 담겨져 있다.
그 마지막 이름이 23년 간 나를 섬긴 권0기 장로의 이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물갈이를 하신다. 그 마지막은 아픔과 쓰라림이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세월은 간다.
그 속에서 주의 종 담임목사는 울며 불며 목회를 한다.
계속하여 숱한 사람들이 스쳐 간다.
장로들이여! 당신의 목사를 배신하지 말라.
권사들이여! 똑바로 교회를 섬겨라.
부목사들이여! 당신의 처신과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 당신이 담임목회 할 때에 그대로 다 갚아야 한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하나님이 또 나를 연단하셨다.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셨다.
나는 간다. 계속 간다. 나의 길을 간다.
그리고 내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진정 당당하고 싶다.
“주님! 최선을 다 했으나, 이 모습입니다. 나로 인하여 상처 받고 실족한 저들도 다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배신한 34명의 목사들, 장로들, 권사들, 집사들이 다음 목사님과 교회들에서는 부디 잘 하기 바란다.
2019.9.25.
서울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 세기말 이단의 분별 기준 20가지 (2P)
기독교에서 ‘이단’ 이란 겉으로는 그리스도나 성경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들이 받은 계시나 신비 체험을 더 앞세워 참된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이나 집단입니다.
이러한 사람이나 집단은 전도 대상을 가족이나, 친척과의 모든 생활로부터 격리시킨 후, 말씀 공부 등의 명목으로 집중적인 설득과 세뇌작업을 벌입니다. 신천지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일단 이단 집단에 발을 들여 놓으면 개인적인 생활이나 생각을 할 수 없게 하고, 교리를 주입시켜 사소한 일까지도 다 고백하게 하여,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이탈할 경우 고백한 내용들을 협박하는 도구로 악용합니다.
이와 같은 이단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1) 성경의 권위를 가감, 또는 부정하고, 교주의 신비 체험이나, 교주의 설교를 더 믿게 만듭니다.
2) 교주 자신을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하여 권위를 강조하고, 신도들에게 복종을 강요합니다.
3) 세속 사회를 사탄의 세력으로 몰아 세우고, 관계 단절을 요구합니다.
4) 가족 간의 관계를 끊도록 가르치고, 가정을 등지도록 요구합니다.
5) 교주를 신격화 하여, 우상화 합니다.
6) 사회의 지도자들을 사탄이나 원수라고 교육 시킵니다.
7)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가르칩니다.
8) 교주들은 도덕 윤리나 세상 법과 상관 없이 생활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합니다.
9) 교주에게 절대 복종을 요구하며, 자기 집단에 속해야만 구원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10) 재산의 헌납과 물질적인 헌신 만을 강조합니다.
11) 자기 집단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적인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12) 자기 집단 사람 이외에는 배척하고, 다른 교리는 거부하도록 가르칩니다.
13) 신앙적인 홀로 서기를 못하게 하고, 인격적인 독립을 버리게 하므로, 교주의 결정에만 따르게 합니다.
14) 모든 행동을 통제하고, 교주의 생각대로 움직이도록 요구합니다.
1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교리를 복음이라고 전합니다.
16)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주로 전도합니다.
17)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이익과 지상 천국을 강조합니다.
18) 날짜를 지정하여 주님이 오신다고 하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거나, 절박한 종말론으로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합니다.
19) 교주나 교리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거나, 가르칩니다.
20)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부인하고, 교주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오늘날 이단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로 위장하고 있지만(고후11:13-15) 그들은 다른 예수(고후11:4)를 전하고, 다른 복음을 전파하며, 다른 영을 받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의 길로 빠져 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때에 우리 성도들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려 악한 영들을 분별할 수 있는 은사와 능력을 구하고, 늘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 ‘짐승의 표’란 무엇인가? (6P)
요한계시록 13장 1-18절
계13: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1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와 우리의 주목을 끌게 하였습니다.
"일본 통산성은 다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직접 회로(IC) 칩을 내장한 스마트카드를 내년 중 전 국민에게 발급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구상이 실현되면 의료보험증, 신분증, 현금카드 등을 따로 갖고 다닐 필요가 없이, 카드 한 장에 모든 기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통산성은 또 추가 기술 향상에 따라 통근 패스, 집이나 자동차의 열쇠, 여권, 운전 면허증의 기능 등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내용의 보도는 우리의 시대가 적그리스도의 시대로 향한 행보를 한 걸음 더 가까이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와 반면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욱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 오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AD 1세기 경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마지막 때에 관한 계시가 기록된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의 표’에 대한 말씀을 자세히 풀어서 여러분들이 알기 쉽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짐승의 표란 무엇인가?
1) ‘666’ 이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계13:18)짐승의 표는 ’666’ 이라는 숫자입니다. 장차 적그리스도는 그의 시대에 이 표를 모든 사람이 받도록 강요 할 것입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계13:16,17)
2) 컴퓨터 바코드의 국제 부호이다.이것은 상품의 신원 확인을 위해 그 암호를 막대 부호로서 상품에 표시하는데, 막대 부호는 여러 가지 암호 숫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 바코드는 나라마다 여러 숫자로 표기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880이고, 미국의 경우는 110입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통용 부호로서는 666이 채택 되었습니다. 따라서 666은 바코드를 사용하는데 필수적으로 사용되며, 바코드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 부분의 가늘고 긴 두 줄의 막대 부호가 바로 암호숫자 6인 것입니다. (암호 해독은 컴퓨터 학자가 펴낸 책자에서 발췌됨)
3) 매매의 수단이며, 신분의 확인용이다."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계13:17,18)이 666 시스템은 바코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며, 모든 상품에는 이 표를 반드시 붙이게 되며, 이것은 상품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에 사용되며, 장차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신분증으로 사용하게 되고, 이것을 통해 전자 상거래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AD 1세기에 밧모섬에서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사건이 오늘날 현실로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666이 로마의 황제 네로의 이름 숫자라고도 했고, 666 마리의 짐승을 말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그러한 해석들은 논리에 맞지를 않았습니다. 어떻게 네로라는 이름을 오른손이나 이마에 붙이며 매매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적 그리스도 시대에 말입니다. 지금도 지구촌은 60억이 넘는데, 적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아마 100억이 넘는 세계 인구를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그 많은 인구의 신원을 순식간에 확인하며 매매와 거래를 감시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은 컴퓨터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시대입니다. 666이란 국제 부호가 들어 있는 바코드나 신분증을 사용한다면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신원이 확인되며, 매매와 모든 거래가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마련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따라서 지금에 와서는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짐승의 숫자 666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깨달아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666이란 컴퓨터 바코드의 국제 부호 숫자가 적 그리스도의 숫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2. 짐승의 표의 발달 과정
1) 첫 번째 단계 : 바코드 시대 - 상품에 붙임시작 초기인 70년대 후반부터 지금의 시대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바코드는 상품의 신원 확인을 위해 그 암호를 막대부호로 표시하는데, 막대부호에는 여러 가지 암호 숫자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 바코드는 국제 사회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기본적인 번호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 공통 숫자가 666입니다. 바코드는 모든 상품에 붙어 있어 그 상품의 국적과 신원을 확인하고, 상품 종류와 가격을 표시하고 있어, 이 바코드가 붙은 상품은 스케너가 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 단계 : 마그네틱 테이프 시대 - 통장에 붙임이것은 위의 바코드를 까만 자기 테이프에 삽입하여 은행 등에서 통장에 사용하고 있고, 전철의 카드와 신용카드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그네틱 테이프를 스케너에 넣으면 바코드가 판독되면서 상대방의 신원이 확인됩니다. 단점은 저장 용량이 작고, 자석에 의해 메모리가 모두 지워지는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3) 세 번째 단계 : 마이크로 칩 (IC) 시대 - 카드에 삽입이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를 뛰어 넘는 발전된 단계로써 바코드를 마이크로 칩에 삽입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저장 용량이 16절지 2,000장 분량의 내용을 이 칩 안에 저장할 수 있고, 마그네틱 테이프의 단점을 보완 하였기 때문에, 자석에 의해 자료가 사라질 염려도 없으며, 그 안의 내용을 자유롭게 수정 보완할 수 있고, 지울 수도 있습니다. 이 마이크로칩은 스마트 카드 속에 내장되며, 국민의 통합 전자 신분증에 사용될 전망입니다.일본에서는 내년부터 이 스마트 카드를 전자 신분증으로 사용하여 의료보험증, 여권,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등을 통합한 한 장의 카드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이 카드 한 장이면 고속도로를 통과하며 고속도로비가 계산되며, 모든 교통수단에 사용되고, 차량과 집안의 열쇠로도 사용이 된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발전 단계를 이루어 낸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4) 네 번째 단계 : 마이크로 폰다 (캡슐형 칩)시대 - 동물이나 인체의 몸 속에 삽입이것은 세 번째 단계를 더욱 발전시킨 첨단 과학의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 카드는 분실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분실시 발생하는 사회적인 큰 피해를 우려해 카드 속의 칩을 마이크로 폰다 라고 하는 캡슐 속에 넣어 인체에 삽입시키는 방법입니다.이 마이크로 폰다는 쌀알 만한 크기의 캡슐로 미국에서 지금 개발 되었는데, 그 속에 IC칩을 넣고 안테나를 부착하여 인공위성으로 감시와 추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개와 고양이 등 애완견에 마이크로 폰다 신분증을 삽입하여 애완견이나 애완동물들의 분실 피해를 막고 있답니다.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진도에서 진돗개 순종에게 이 캡슐형 칩을 삽입시켜 순종의 혈통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에게 신분증으로 삽입되게 될 것이고, 모든사람은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에 의해 감시, 지시, 통제, 속에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짐승의 표의 실체인 것입니다. 이것을 받지 않으면 아무도 세상 속에서 살아 갈 수 없는 시대가 곧 오게 될 것입니다.
3. 짐승의 표를 이용하는 적그리스도
"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13:16-18)
장차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들림 받는 인류 최대의 대사건 직후부터 자신의 정체를 드러 내고, 지상을 적그리스도의 나라로 만들어 일인 독재 체제로 단일 세계 정부를 구성하게 될 것입니다.그 때부터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짐승의 이름과 짐승을 상징하는 수인 666이 들어 간 신분증을 받도록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마이크로 폰다 신분증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왜냐하면 이것은 인공위성으로 인간들을 지휘, 통제, 제제, 감시를 하기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고도로 발달되어 가고 있는 최첨단 컴퓨터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컴퓨터 시스템이 발달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100억 가까운 인류를 단 한 사람이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세계를 지배하며 영혼들을 타락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장차 적그리스도가 사탄의 영을 받게 되고,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 받기를 강요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는 죽이며,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도 다 죽이게 될 것이라 예언 하셨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 13:15)
지금의 시대는 적그리스도를 위해 기반을 다지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이를 허락 하신 것은 사람들의 죄악이 하늘에 닿고 있기 때문이며, 진리를 믿지 않고 거짓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막는 자가 있어, 그것을 옮길 때까지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지체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지체하시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때가 가까움을 깨달으며 근신하여 깨어있는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4. 성도와 짐승의 표
우리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출현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다 공중으로 들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들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 땅에 남아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들어 간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절대로 짐승의 표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 14:9,10)
환란에 남아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들어 간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짐승의 표를 받게 되면 그대로 지옥에 들어 감을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시대를 바로 알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에 열심을 품고 서로 사랑하며, 영혼들을 구원하기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들림 받기 위해 신부 단장을 잘해야 합니다.
환란에 남게 되면, 절대로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의 우상에 절해도 안됩니다. 오직 순교와 숨어 지내며, 그 일들을 피해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지막 시대입니다. 세계의 경제가 무너져 가고 있고,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들이 높아져 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미 인터넷은 모든 세계의 국경을 철폐해 버렸습니다. 벌써 언어 번역기들은 각 나라의 언어를 자동으로 번역하여 채팅하도록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우리는 시대를 바로 보는 성서적인 눈을 가져야 되겠습니다.우리는 오늘날 매일 같이 급격히 발전해 가는 최첨단 컴퓨터 시대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컴퓨터 시스탬은 장차 우리를 감시하게 될 것이고, 우리를 통제하게 될 것이며, 우리를 죽이는 데 사용되게 될 것입니다.
편리하게 만들어진 전자신분증 역시 장차 적그리스도의 손에서 우리를 구속하는 도구로 전락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가 성서의 예언이 마지막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임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며,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며,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을 사는 지혜운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깨어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 드립니다.
♥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성령과 선교의 영성-시대를 분별하는 눈 ♥
*3대 영분별을 하라-1.사람 분별, 2.돈 분별, 3.시대 분별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
바코드> QR코드> 전자코드로 바뀌었다.
인공지능> 인간지능로봇> 전자인간으로 바뀌어 간다.
선교사 파송 순위:세계 2위?
중국 10만, 인도 8만, 미국 4만, 한국 27,000명
예수님이 오실 때 세계화가 고도로 확대 되었었다.
대로마 제국이었다.
무력으로 통일된 시대였다.
로마는 세계와 통합하려 했다.
로마를 강요했다.
황제 숭배, 절대 권력 추구였다.
유대는 종교 권력만 보장된다면, 로마 권력과의 타협을 얼마든지 용인했다.
이것이 세속 권력의 특색이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를 지키려는 전쟁이 치열하지만, 기독교는 전략이나 개념이 너무 없다.
세계적, 국가적인 ‘정치의 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를 못한다.
글로벌화 된 ‘경제의 영’에 그대로 놀아 나고 있다.
전 지구의 세계화가 다시 시작된다.
중국의 대대적 교회 핍박을 보라.
서구에서는 이미 기독교는 2%대로 소멸되었다.
‘반기독교’는 이미 세계적 추세이다.
그런데도 지금도 기독교 내의 부패한 기득권의 ‘종교 권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타락한 이들은 아무 생각들이 없다.
역사의 종말, 영원한 천국의 여명이 밝아 오는데, 이 종말의 시대에도 아무 개념들이 없다.
지금 시대는 예수님의 초림시대와 똑 같다.
‘시대의 때’는 분별하면서도, ‘영적 분별력’은 없다.
‘시대의 표적’도 있고, ‘종말의 표적’도 있다.
세계 지평과 역사, 미래에 대하여 통찰이 깊어야 한다.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다.
3대 과학자인 뉴턴, 아인스타인, 스티븐 호킹은 ‘기계로 인한 엄청난 위기’를 말한다.
2000년의 인간지능을 기계는 4주면 끝낸다.
인공지능은 2050년이면 IQ가 무려 ‘2만’이 된다.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류가 악마를 소환함이다.” 라고 ‘테슬러’가 말했다.
스티븐 호킹의 ‘빅뱅이론’은 갑자기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얘기이다.
시간은 시작점이 있고, 종말도 있다. 만물은 시간 속에서 늙어 간다.
주님은, “유한한 세상은 종말이 있다.”고 말씀한다.
종말은 어두움의 세계이다. 대환란의 세계이다. 적그리스도의 세계임은 자명하다.
글로벌화 현상은 매우 종말론적인 현상이다.
UN은 세계 통합의 노력이다.
WTO 세계무역기구도 그 일환이다.
‘세계가 하나 되어 가는 것’이 종말의 징조이다.
‘바벨탑 사건’은 지금도 계속 되는 현상이다.
‘글로벌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통찰해 보면,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뚜렷한 종말의 징조이다.
<1>.1995년 ‘WTO 세계무역기구’로 인해 세계 경제가 통일되어 가고 있다.
지금 정치 통합은 잘 안되지만, ‘세계 단일국가’는 반드시 생길 것이다.
경제에 있어서 이미 ‘세계 시장이 하나로 통일’ 되었다.
계 13장 16절-18절의 적그리스도의 경제 통합 정책이 나온다.
그것은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함이다.
이것이 666표이다.
666표가 경제 통제 수단이다.
IMF 때 다들 경험했다.
2022년 대한민국은 ‘방역 패스’ 로 다들 실감나게 경험했다.
2008년에 미국 발 금융 위기를 보라.
망할 때는 하루 아침에 다 망해 버린다.
한 순간에 한국의 대기업이 날아 가 버린다.
노르웨이의 경제의 심장이었던 ‘노키아’가 날아 가는 것 보라.
그래서 기업들이 기를 쓰고 돈을 쌓아 놓는 것이다.
계13: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1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12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14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오늘날 신자들도 순교로 목숨을 드린다면서, 망하는 것은 진짜 두려워 한다.
돈 앞에 벌벌 떤다.
경제 권력이 절대 권력이다.
돈 앞에 성도의 권세가 그냥 꺽여 버린다.
사탄의 ‘매매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주식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경제’는 주식에서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최고의 경제 천재들이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
컴퓨터가 움직이는 대로, 경제가 다 좌우된다.
이런 사실을 현실의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있나?
카드 없이는 버스도 못 탄다.
전자인간은 실제 인간보다 훨씬 강하다.
트럼프가 세계 시장경제를 깨려고 하나, 불가능 하다.
성경의 예언대로 세계 경제는 흘러 간다.
<2>.세계 사이버 시스템이 전부 하나로 통합된다.
종말의 가장 뚜렷한 전조는 ‘전 세계의 사이버 시스템의 통합’이다.
전부 컴퓨터로 통제된다.
모든 사람이 그 속에 있다.
인간의 모든 삶이 그 속에 있다.
이제는 사이버 시대 세계이다.
아무도 벗어 날 수 없다.
666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표는 사람의 수, 짐승의 수이다. 숫자이다. 컴퓨터는 수의 시스템이다. 기가 막힌다.
하나님은 실제의 세계와 영적 세계를 양분하셨다. 그런데 사탄은 사이버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인간이 만든 ‘사이버 인조 세계’가 이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파괴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 사이버 시스템을 깰 수 없다.
전산망이 무너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버린다.
‘사이버 세계’가 ‘실제 세계’를 다 지배한다.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를 다 지배한다.
가만히 돌아 보면 참 희한하지 않은가?
나의 청년 시대에, 컴퓨터를 사탄이라며, 처음에 부인하던 고신파 등의 보수파의 저항이, 이유가 있지 아니한가?
그 때에, “컴퓨터를 쓰면 사탄에게 매이게 되니, 쓰면 안된다.” 했다.
이제 정말 그대로 되었다.
‘짐승’ 인 컴퓨터가 모든 사람에게 ‘666 표’를 준다.
보라.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하나님 뿐이시다.
그런데 이제는 ‘짐승 인격’이 지배한다. 이제 우리의 인격은 컴퓨터 안에서만 존재한다. 컴퓨터의 안에 내가 다 들어 있다.
지난 20년 간 갑자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이건 진정 뚜렷한 종말론적인 현상이다.
우리는 곧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적그리스도가 도래할 모든 준비가 착착 갖추어지고 있다.
정권에 의한 무서운 컴퓨터 통제 시스템을 보라.
이제는 정권자에 마음에 따라, 부정 선거, 국가 경제의 조작, 경제 통제, 개 기업의 장악, 개개인의 확실한 통제... 모든 것이 가능하다.
중국은 코로나 확진자 한 명을 찾기 위해, 5만명을 대형 쇼핑몰에 그냥 가둔다. 자유란 없다. 지금 홍콩은 탈출 러시가 봇물처럼 터진다. 5만명이 빠져 나갔다. 이제 곧 홍콩의 자유는 사라진다.
대한민국은 이미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 폐쇄, 예배 폐쇄를 벌써 경험한 바이다. 비대면예배, 온라인예배를 강조한 목사들은 배교자임을 알고 회개하라. 이미 본인들이 쓰디 쓴 그 열매들을 현실적으로 맛보고 있다. 교인들의 이탈을 막을 길이 더 이상 없다.
목사들 자기 입으로 교회 나오지 말라 해 놓고서, 이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도대체 지금 어찌된 종말시대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성도들이 아무 분별이 없이, 이 시스템에 갇혀 오직 돈, 돈, 돈이다.
돈이 엄청난 힘으로 지배하니, 다들 돈, 돈, 돈이다.
돈은 무슨 돈이야!
장렬하게 굶어 죽어 버려...
시대 통찰은 정말 뛰어 나야 한다.
마24:3-14절
3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정말 실감나게, 똑똑하게, 시대와 종말을 분석하고 가르쳐라.
<3>.통합시스템인 글로벌 현상의 세번째 종말의 sign은 ‘적그리스도적인 사고 체계’의 일들이다.
‘세계 시장 경제 체제’가 얼마나 무서운가?
돈이 절대 지배적이다.
‘사이버 시스템’이 얼마나 무서운 시스템으로 가는가?
이는 급속도로 진행된다.
바둑에서 인공지능이 이세돌을 갖고 놀았다고, 연구자들이 1년 후에 발표했다.
‘적그리스도적인 사고 체계’는 사람의 생각 자체를 바꾸는 시스템이다.
‘글로벌 가치 시스템’이다. 적그리스도적 사고 체계적이다. 반기독교적 사고 체계이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집단 세뇌 지성에 끌려 간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의 합법화가 세계적으로 이미 끝났고, 이제 유럽을 이어, 미국, 한국으로 이어진다. 동성애자인 오바마가 2015년 6월 26일에, 동성애를 합법화 했다.
이 날자는 666의 상징이다.
‘911’은 미국의 비상전화이다. 날자 들은 의미가 있다.
테러일인 프랑스의 ‘1111’은 의미가 있다. 역시 비상 전화이다.
지금 한국의 대법원장, 헌법위원장 다 ‘동성애자’ 들이다. 이미 정부는 통과할 법적 작업을 다해 두었다.
오바마 시절 백악관에서는 매주 늘 동성 결혼식이 열렸었다. 한국이 동성애화 되고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 체계가 시행되는 것이다.
왜 동성애가 3-4%인데, 그렇게 난리 법썩인가?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대만’은 2010년 동성 결혼을 합법화 했다.
‘중국’은 2017년 3월 합법화 했다.
누가 이렇게 했나?
미국 오바마를 명령하고, 시진평을 명령하고, 문재인을 명령하는 세계적인 지성 그룹이 있다. 한국대학의 ‘교수 채용’ 시에는 ‘동성애 소양 교육’을 받아야 한다.
왜 그럴까?
이 감추어진 적그리스도적 세계의, 사고체계의 실체를 우리 일반인들은 도무지 모른다.
아래 단어들을 주목하라.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의 차이, 비밀 결사대, 비밀 조직,
세계를 움직이는 비밀의 손,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음모론,
프리메이슨은 에녹, 니므롯, 히람 등 성경의 오래 전 인물들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역사는 약 천년 전부터 시작한다.
역사 속 가장 비밀스런 조직,
장미 십자단,
일루미나티와 프리메이슨의 배후 예수회,
한국 가요계에 침투한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한국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 연예인,
일루미나티 트럼프,
일루미나티 영화,
일루미나티 카드,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조직,
비밀 결사,
바이에른 광명회, 또는 단순히 광명회는 과거와 현대 세계에서 주목 받는 몇 몇 집단의 명칭 가운데 하나이다.
"일루미나티"는 라틴어로 ‘계몽하다’ 혹은 ‘밝히다, 깨달은 이라는 뜻의 “illuminatus”의 복수형으로, 계몽주의 시대인 1776년 5월 1일에 설립된 비밀결사이다.
해골단,
어나니머스,
Order of the Eastern Star,
장미 십자회...
일루미나티, 세계단일정부론, 신부단장 이론을 깊이 연구해 보아야겠다.
문00 목사가 온통 여기에 빠져 있던데...
이건 정통 교단에서 불인정 하는 이단 사상인데...
성경에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했다.
종말이 올 것은 다들 예상하나,
어느 날 갑자기 오는데, 핍박이 바로 닥친다.
♥ 사르밧 과부의 순종의 믿음을 통해 깨닫는 은혜 (18P) ♥
*3대 영분별을 하라-1.사람 분별, 2.돈 분별, 3.시대 분별
돈의 기적을 창조하라
주님! 제가 어려운 주의 종들을 이번에도 그 절박한 돈의 압박 속에서도 1,000만 이상 도운 것을 기억하옵소서.
오늘 제 카드대금 510만 주옵소서.
카드의 현금써비스 340만을 빼지 않게 해 주소서.
권0기 장로에게 510만을 송금해야 합니다. 부디 도와 주소서.
4월 15일의 기도!
그리고 김0실 집사에게서 돈이 1,000만이 왔다.
500만, 500만!
김0천 원장이 내가 225만 모금 헌금을 전했을 때, 진정 감사함으로 받았으면 1,000만 다 받았을 것이다.
추호도 어김 없이 정확하신 하나님이 불평하는 자, 감사를 모르는 자 김0천 원장에게, 돈을 갚아야 할 임0진 권사에게,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제나 나누는 나에게 정확히 갚으시는구나.
아아! 내가 이제 분명히 깨달았다.
주님이 꼭 필요한 것은 반드시 주신다.
그러나 허튼 일, 주님이 원치 않는 일은 아예 구하지를 말아야 한다.
고0천 20만!
술에 취해 와서 눈물 흘리며 엎드려 빈다.
20장만...
살려 주세요.
김0천 원장 설립비 계속
성도들이여!
감사를 잊지 마세요.
절대 불평 불만 원망하지 마세요.
너무 힘들면 신음하며 울지언정,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지 마세요.
고난주간에 가능하면 인천 생명나무교회 부흥회에 참석하고, 금식도 계속하세요.
내일 목요일은 오후 6시,
금, 토요일은 새성교회에서 오후 4시에 고난주간 기도회가 계속됩니다.
목요일에 부목사님들은 수고가 많았으니 쉬시고, 오후 6시 기도회에 나오세요.
* 조별 토의-설교 나눔 후에, 나의 견해와 깨달음을 나누고 발표한다.
(왕상17:8)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臨)하여 가라사대, (9)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屬)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留)하라. 내가 그곳 과부(寡婦)에게 명(命)하여 너를 공궤(供饋)하게 하였느니라. (10)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城門)에 이를 때에 한 과부(寡婦)가 그 곳에서 나무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請)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11)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請)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 오라. (12)저가 가로되 당신(當身)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盟誓)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爲)하여 음식(飮食)을 만들어 먹고 그 후(後)에는 죽으리라. (13)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爲)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 오고, 그 후(後)에 너와 네 아들을 위(爲)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地面)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7)이 일 후(後)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女人)의 아들이 병(病)들어 증세(症勢)가 심(甚)히 위중(危重)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여인(女人)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當身)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相關)이 있기로 내 죄(罪)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女人)의 품에서 취(取)하여 안고 자기(自己)의 거처(居處)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自己) 침상(寢床)에 누이고, (20)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主)께서 또 내가 우거(寓居)하는 집 과부(寡婦)에게 재앙(災殃)을 내리사 그 아들로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그 아이 위에 몸을 세번(番)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願)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24)여인(女人)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當身)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當身)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眞實)한 줄 아노라 하니라.
말씀 요지:
성령 하나님께서 ‘믿음의 은사’를 훈련하려 하셨다. ‘믿음’에 대하여 두 편의 설교를 하고, 서로 ‘나눔의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믿음은 3가지가 있다.
1>.고백하는 믿음, 2>.순간적으로 능력을 행하는 믿음, 3>.삶으로 이루어 가는 믿음이 그것이다.
1>.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영접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목사님을 모시면 됩니다. 다른 목사는 또 다른 사르밧 과부가 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사님을 모시라고, 나의 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라고, 나를 이 교회에 보내신 것입니다.
내 교회, 내 목사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2>.이 여인은 하나님의 종의 ‘말’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주의 종을, 그 종의 ‘말’을 하나님처럼 믿은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는 강단에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 속에서 대화체로 “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목사의 ‘말씀’과 ‘말’을 구분합니다. 아니 강단에서 선포한 말씀도 분석하여 “말씀”과 버릴 “私設(사설)의 말”을 구분합니다.
한 마디로 그 심성이 못된 것입니다. 이미 은혜 받을 자의 반열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얘기해 봅시다.
우리는 설교들을 때 다 나의 선입견과 주관으로 설교를 듣지,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복종합니까?
우리가 얼마나 못 되어 먹었습니까?
3>.사르밧 과부는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 오고,](13절)
이 약속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는 말씀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환경이나 형편이 어떠하든지 어느 시대, 어느 장소가 되었든지 ‘먼저’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적이 왜 일어 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조금 있는 양식이 ‘먼저’ 하나님께 드려질 때 넘치도록 풍성해진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함으로,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4>.기꺼이 드리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이 여인이 엘리야에게 행한 대접은 하나님께 향한 그 여인의 마음의 표현이었으며, 이 헌납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수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까워하지 않았고, 관습으로 하지 않았으며, 마지 못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순수한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헌금, 예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헌금을 심어야 물질 축복의 열매를 거둡니다. 예배를 심어야 존귀해집니다. 기도를 심어야 기적이 창조됩니다. 헌신과 충성을 심어야 당신의 자녀가 위대한 인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 권0기 장로님의 딸 조0영이 8년을 이 개척 새성교회에서 무보수로 반주하며 섬기더니, 목숨 바쳐 사랑하는 의사 남편을 만나, 3자녀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믿음 없던 남편이 교회에서 키타를 치며 주일오전예배를 인도합니다.
5>.영적 훈련하라.
무릇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일이란 없다. 길고 긴 세월 속에서 주님의 뜻은 하나 하나 이루어진다.
성령 하나님의 시종, 殉命의 사람 배종부 목사가 인도하는 <성령의군대> 연합기적기도대성회
<1>.2004.4.4일 주일저녁부터 <365성령집회> 시작:2016.5.23일 현재 12년 차
“오늘, 2004.4.4일 주일저녁부터 시작되는 <365성령집회>에 성령의 기적들이 일어 나고, 은사가 터지고, 병이 고쳐지고, 하나님의 성령의 살아 계신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이 집회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못하지만,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인도해 주옵소서.”
<2>.2007.11.17.토 <성령의군대> 연합기적기도대성회 새성교회당에서 시작:2016.5.23일 현재 8년 반
대지 만평의 땅에 영주 임마누엘찬양원 일일부흥성회를 인도하고 왔다. 권태성 장로와 부인 황 권사가 32년 간을 찬양으로 인도해 온 선교단의 역사가 600교회 공연, 16개국 공연의 대기록을 낳고, 100여 명의 현악기 위주의 찬양단원과 총 300여명의 찬양단을 양성하여 전국적으로 4개 처소에서 매주 집회를 갖고 있었다.
일개 장로와 권사도 저렇게 사역하는데, 목사요, ‘성령님의 시종’이요, ‘순명의 사람’이라는 나는 얼마나 부끄럽고, 도전을 받았는지...
이후에는, 2016년 6월부터는 매주 금토 <초교파연합회복성회>로, 2019년 2월부터는 금토 <성령사관학교>로 점점 발전해 왔다.
영적 성장은 단순히 영적 지식을 알고 은혜 받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으로 된다. 이것이 진정한 제자훈련이다.
1>.예배훈련 (예배를 가능한 한 많이 드려라, 신령과 진정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를 삶의 축으로 삼으라, 365성령집회 하라, 혼자서 예배하라. 정식으로 예물까지 드리며...),
2>.기도훈련 (기도자리에 오래 머물러라, 기도하고 간구하라, 방언기도, 금식기도, 골방의 삶, 쉬지않는, 작정기도, 중보기도, 신음하는 기도...),
3>.묵상훈련 (말씀훈련-정독, 다독, 요약, 묵상 Q.T, 개론 총론 공부, 설교 듣기, 설교 읽기, 영적독서...),
4>.단순화훈련 (기쁨, 감사, 행복, 평안, 만족, 누림, 섬김과 나눔, 해방, 자유...),
5>.헌금훈련 (네 돈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 물질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은 공허한 구호...),
6>.성령훈련 (기도, 열매, 동행, 은사, 축사, 영적 무장, 영적 무기...),
7>.헌신과 충성훈련 (자기부인, 섬김과 나눔, 드림, 욕심과 인색함 버리기, 주의 종 동역, 희생, 충성>헌신>산순교>순교...)
8>.대인관계훈련
9>.사회생활훈련
10>.선교와 전도훈련
6>.최근에 깨달은 진리 하나이다.
돈 한 푼 잘못 쓰는 것도,
부당하게 쓰는 것도,
내 뜻대로 쓰는 것도 다 죄다.
예를 들어,
성도가 피 흘리며 헌금한 돈을 잘못 사용하여,
줘서는 안될 사람에게 주면,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함께 주님께 고통 당한다.
돈을 더 줘서도 아니되고, 덜 줘서도 아니된다.
돈의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일들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면 주님은 정확하게 갚으신다.
우리는 단지 깨닫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틀린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항상 반듯해야 한다.
의로워야 한다.
주님이 보시기에 기뻐야 한다.
내가 절대 기준이 아니다.
자행자지(自行紫芝) 하지 말라.
바로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허튼 삶을 살지 말라.
내 마음대로 살지 말라.
불의한 삶을 살지 말라.
내게 닥치는 어려움들을 지긋이 견디며,
주님의 뜻을 준행하라.
주님이 주시는 일들,
당신이 행하시는 일들이 가장 정확하다.
오직 주님 뜻대로...
오늘도 주님의 인도하시는 그 뜻을 준행하며,
순종합니다.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살겠습니다.
제가 추호라도 잘못하거든 즉시 징계하셔서
바로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편하게, 누리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주님 뜻대로 바로 살기를 원합니다.
내 삶이,
내 숨결이,
나의 사람을 대함 대함이,
나의 모든 목사의 일들이
주님 앞에 오직 예물 되기를 원하나이다.
저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심히 어리석고 우준(愚蠢)한 자입니다.
2019.3.16일 새벽 잠이 깨면서...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1.서론:
1-1>.한국교회를 조망하다
사람에게는 밝은 면, 아름다운 면과 어두운 면, 추한 면이 있다. 전자는 남에게 보이는 면, 후자는 남에게 감추는 면이다. 굳이 남의 어두운 모습, 추한 모습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곧 내 속에 숨어 있는, 감추고자 하는 모습과 같기 때문이다.
남의 허물을 들추려 하지 말라. 남의 죄악을 궁금해 하지 말라. 배목사의 사모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난 “길게 안식년을 갖고 있다.”고 대답한다.
각자가 은밀하게 지고 가야 할 사람의 “감추고 싶은 추한 이면(裏面)”이란 무엇인가?
1>.사역의 초라함-허명(虛名)을 날림, 사람들이 아는 성령사역자, 부흥사 배종부 목사는 실상 허명(虛名)의 사람이 아닌가?
새성교회 건물의 초라함...
2>.목회의 비애-6,000명 출석교회 목사의 사례가 200만이다.
3,000명 출석 교회 목사의 사례가 300만이다.
목회 활동비랄 것도 없다. 교인 일인당 월 1만의 목회 활동비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해야 선물 하나라도 사 들고 심방을 가고, 아는 사람 만나 밥이라도 한 끼 사 먹지...
자녀 교육비도 없다. 장로들의 횡포 때문이다.
3>.경제적 가난-빛 좋은 개살구의 모습
4>.목표와 비전의 고통-분명히 하나님께 받았고, 그 길을 가고 있는데, 순적한 형통의 길이 잘 열리지 아니함,
스스로 위로 받는 면이 있다.
총리대신이 된 요셉의 삶,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된 모세의 삶, 왕이 된 다윗의 삶, 주님께 드려진 베드로와 스데반과 사도 바울의 계속되는 고난...
우리는 큰 면에서 다 같다.
5>.죄악의 문제-
못된 성질과 성격의 문제-가는 데 마다 발을 붙이지 못하고 쫓겨 난다.
이수옥 권사는 초6년 때 봉재하는 가정에 가서 재봉틀을 돌리며 결혼하고, 평생을 살았다. 월급을 많이 주든 적게 주든 상관치 않았다, 고생 고생하며 살았다.
자기 삶의 성실성과 진실성의 문제,
돈 사용의 문제,
특정 악습과 죄악의 문제-낭비벽, 술 담배, 음란과 간음성...
6>.대인관계의 부정성(否定性)과 그로 인한 고통
면목동의 교회 건축한 목사와 회계 집사 부부의 아들 교통사고 죽음,
목사를 쫓아 내는 악한 장로가 있는 어느 교회 목사의 눈이 멀어 버림과 회복,
장로 때문에 불행한 목사들 얘기,
한 지붕 아래 별거하는 부부들의 왜곡된 대인관계의 문제 등등...
사람들이 그 속에서 몸부림치며 오늘도 또 살아 가는 것이다.
다 만족한 삶이란 게 어디에 있나?
각자의 짐을 지고, 하나의 잠간의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아 가는 것이다.
1-2>.이제 교회 부흥관을 바꾸어야 한다
1>.그릇된 교회 부흥관과 자본주의 논리
일반적으로 교회 부흥이란 개척하여, 또는 한 목사가 부임하여 교세가 늘어나고, 교회당을 신축하고, 땅을 사고, 부대시설로 기도원, 수양관, 복지 센타 등을 짓고, 해외에 교회를 몇 개 짓고, 선교사역을 활발하게 하고, 대내외적인 폭넓은 사역의 장을 넓히면 교회 부흥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어야 하고, 목사와 장로들은 이러한 교회 부흥을 여전히 꿈꾼다.
그러면 우리 시대에 교회는 늘어 가고, 목사는 늘어 가고, 매년 교인은 5% 가량 줄어 가는 이 한국교회의 쇠퇴시대에 이러한 부흥관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한국 장로교의 통계:합동 285만, 11593교회, 통합 281만, 8592교회, 고신 47만, 1853개, 기장 29만, 1656교회, 합신 15만, 899교회...
2>.부자와 한국교회의 예
한국사회에 근면한 삶과 정상적 부를 형성하여 부자가 된 사람이 몇 명인가?
없지는 않다.
그 숫자는 5% 미만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부흥, 성장한 교회들이 정상적으로 불신자를 전도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논리로 아름답게 부흥 성장한 교회가 그 비율로 볼 때 얼마나 될까?
‘한국교회의 부흥’이란 한 마디로 남의 교회 교인을 빼앗아 온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란 남을 죽이고 내가 사는 사회이다. 국가가 할 일은 이것을 적당히 조절해 주는 일이다. 부자가 너무 많이 갖지 않도록, 가난한 자가 너무 열 받지 않도록...
한국 정부는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얼마나 간단한가? 그런 짓을 한 자들이 모든 기득권을 다 쥐고 있음으로...
부자교회, 대형교회와 가난한 교회, 작은 교회, 개척교회들과의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상생(相生)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비극이다.
3>.대기업과 한국교회의 예
소위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이다.
한국교회는 대기업 논리를 철저히 신봉한다. 수단, 방법, 윤리는 필요 없다. 교회가 부흥 성장하고 대형교회가 되면 하나님의 뜻이고, 그 목사는 성령 충만하고, 천당의 맨꼭대기에 올라 가는 목사이고, 개척교회, 작은교회 목회하면 그는 불충한 목사이고, 능력이 없는 목사이고, 숨은 죄가 있는 목사이고, 사명을 감당치 못한 목사임으로 지옥 가야 마땅한 죄인인 시대가 우리 시대의 한국교회의 자화상이다.
그러나 불신 한국사회에 언제나 먹칠을 하는 것은 대형교회 목사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은 교회 목사들은 드러 나지도, 소리를 낼 수도 없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이다.
4>.우리 시대의 올바른 교회 부흥관
한 개인의 “거룩한 내적 회심”이다. 한 담임목사의 거룩한 내적 회심이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하나 하나의 성령의 진정한 거듭남의 역사가 진정한 교회 부흥이다.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살면 모든 영역이 하나 하나 새롭게 거듭나기 시작한다. 나에게서 가족에게로, 교회로, 동역자에게로, 지역사회로, 국가로, 세계로...
현대 물질문명의 혜택으로 사람들은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로움 속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은 옛날보다 점점 완악해지고 있습니다. 그 특징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적어졌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보아도 감사 보다는 원망이 많고, 가정에서도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매일 생활에서 감사할 것은 물론, 절기를 정해서 의무적으로 감사제를 지킬 것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오늘은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감사의 행위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되며, 그러한 감사는 어떠한 역사를 일으키는가에 대해서 말씀 드림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본론:
2-1>. 그 당시의 환경
엘리야와 엘리사와 연관된 중요한 두 여인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와 수넴의 귀한 한 여인입니다. 두 여인의 기사는 놀라운 말씀의 은혜를 줍니다. 오늘은 사르밧 과부의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사르밧 과부의 생활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당시의 환경부터 살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당시 아합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이 아합왕은 하나님의 택한 민족의 치리자로서 하나님을 섬겨야 됨에도 불구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아합 왕은 이방의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 이세벨이 들여 온 바알과 아세라신을 온 백성들에게 숭배토록 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3년 6개월 동안 극심한 가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뭄은 주위의 이웃 나라에까지 임해서 같은 고난을 겪게 하였습니다. 그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하늘에서는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았으며, 모든 산천초목은 말라 죽고, 짐승은 물론 사람까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연속적으로 사고가 터졌습니다. 저는 그 때 하나님의 진노인 것을 즉각 깨달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300여 명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죄악으로 바닷물 속에 수장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 마디로 “너희를 이렇게 바닷물 속에 처넣어 버리고 싶다”는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이후로도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박근혜를 버리신 하나님의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어떠한 사고도 없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명박은 초기에 광우병 파동으로 일년 반 동안 하나님 앞에 근신의 몸 가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말이 많지만, 영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더 인정합니다.
그 때 아합 왕은 이 가뭄의 원인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서 비롯된 자신의 잘못임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엘리야를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내 탓이냐, 너의 탓이냐?”이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금 여당, 야당이 하는 짓이 바로 이 짓입니다. 여당과 정부가 너무 밉지만, 그래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목사와 장로, 성도들이 서로 남 탓 합니다.
그래서 아합왕은 엘리야를 잡기 위해 이스라엘 전 지역에 현상 수배까지 내걸었습니다. 이 때 엘리야는 아합의 낯을 피해 그릿시냇가에 숨어 지내다가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으리라](9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르밧으로 내려 갔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 나뭇가지를 줍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사르밧과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어려울 때에, 느닷없이 만나게 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 여인에게 처음에는 물을, 그 후 물과 함께 떡을 얻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먹고 죽을 가루 한 웅큼과 기름 조금 밖에 없었지만, 떡을 만들어 믿음으로 먼저 하나님의 선지자를 대접함으로, 그 기근 중에도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나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기적의 사건이 있음을 분명히 간증합니다.
바로 우리교회 0 권사입니다. 0권사는 죽도록 헌금을 합니다. 온 몸을 다 바쳐 교회와 목사에게 헌신 충성합니다. 어느 날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빚이 늘어나 2,000만원이 되었는데, 돈이 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딸 아름이가 워십을 하다가 무릎이 깨어졌는데, 보상금이 2,200만원이나 나온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녀는 목사를 버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에게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고난,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 설교를 듣고서 “배목사가 자기를 떠나면 다 역적이다 라는 식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나는 올바른 순종의 자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밥을 굶는 주의 종을 공궤하는 종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현장을 찾으려면 개척교회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볼 수 있는 개척교회 현장으로는 절대 가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너무나 쉬운데...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을 찾아 가면 되는데...
이 시대에는 기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성도들과 목사들이 기적의 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분명하게 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날 개척교회에 다니지 아니하고, 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천당을 못갈지 모른다.”는 지적입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개척교회를 다녀야, 진정으로 축복이 있다.”고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2-2>. 기적은 어떻게 일어 났을까?
엘리야가 오기 전까지 사르밧 과부에게는 땔 나무도 없었고, 먹을 양식이라고는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15,16절에 보니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대놓고 비웃습니다.
웃긴다고 말해 버립니다.
그러나, 사르밧과부는 주의 종의 말대로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이 말씀한 대로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굶어 죽지 않은 본문의 기적입니다. 한 끼의 양식도 채 되지 않았던 가루와 기름이 적어도 2년 반 동안이나 먹을 수 있게 되었다니, 이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5초에 한 명이 굶어 죽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1분에 6명이 태어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죽습니다.
“아아! 굶어 죽는다. 태어나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아무 감각이 없습니다. 강건너 불구경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 시대,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인 “무정하며...”의 현상인 것입니다.
(딤후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末世)에 고통(苦痛)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自己)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自矜)하며 교만(驕慢)하며 훼방(毁謗)하며 부모(父母)를 거역(拒逆)하며 감사(感謝)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無情)하며 원통(寃痛)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讖訴)하며 절제(節制)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善)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背叛)하여 팔며 조급(躁急)하며 자고(自高)하며 쾌락(快樂)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敬虔)의 모양(貌樣)은 있으나 경건(敬虔)의 능력(能力)은 부인(否認)하는 자(者)니 이 같은 자(者)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어느 교회로 가야 하겠습니까?
당신이 사는 동네의 가장 가난한 개척교회로 가십시오. 그리고 밥을 굶는 목사를 먹여 살리십시오. 큰 교회는 갈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당신이 <성령의군대> 성령사관학교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복 받을 일을 한번 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사건과 같은 이런 종류의 말씀 앞에 오늘날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아십니까?
1>.말씀 자체를 믿지 않고, 동화나 무슨 신화로 여깁니다.
2>.성경시대와 현재의 간격을 둡니다.‘그 때는 그랬으나, 지금은 과학시대’라는 논리입니다.
3>.주의 종을 섬기라는 말에 아예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신앙생활의 복을 받는 가장 쉬운 비결이 나의 목사님을 잘 섬기는 것인데, 사람들이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4>.기적 자체를 아예 불신합니다. 우리 시대의 과학주의, 현실주의, 이기주의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1>.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의 목사님을 모시면 됩니다. 다른 목사는 또 다른 사르밧 과부가 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사님을 모시라고, 나를 이 교회에 보내신 것입니다.
세상이 모두 기근이 들어 먹고 살기가 어려운 형편에, 아니 목숨이 절박한 이 시간에 알지 못하는 손님 한 분을 모신다는 것은 큰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아예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여인은 극심한 가난에다, 기근으로 인한 고난의 풀무 가운데 죽음에 임박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엘리야를 공궤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부담이요 불가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없이, 다른 이견없이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거절하지 아니하고 영접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자기가 죽어도 주의 종을 먼저 살렸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의 자녀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영접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 사건은 훗날을 위한 하나님의 안배였습니다. 주의 종이 죽은 자기 아들을 살릴 사람이기에, 이 일을 위하여 주님이 먼저 그 가정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 일은 작은 것을 먼저 요구하시고, 믿음으로 순종으로 응답하자 더 큰 3년 기근에 생명을 연장하게 하시고, 마침내 죽어버린 아들까지 살리는 기적의 서막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이 사르밧과부가 말씀 앞에 순종함으로 믿음을 보인데서 출발합니다.
여인은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순종합니다. 목숨을 걸고 순종합니다.
(13)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爲)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 오고, 그 후(後)에 너와 네 아들을 위(爲)하여 만들라. (14)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地面)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믿음이란 나의 연약함 때문에 두려워 떨면서도, 내 삶의 마지막 벼랑 끝에서 뛰어 내려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하나님의 종인 내가 만난 것은 하나님의 길고 긴 섭리의 과정에 서막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위대한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는 영적인 비전을 제시하시고, 이 어려운 현실속에서 여러분의 헌신과 충성, 사랑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내일의 기적을 예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믿음과 순종, 주의 종을 사랑하는 동역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보세요. 누가 있습니까?
교인들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주의 종과 삶과 마음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로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동역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큰 교회에 가서 안일하게 하루 하루 거지처럼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위대한 개척교회 목사를 크게 들어 쓰시고 싶은데, 그를 통하여 세상을 바꾸고 싶은데, <성령의군대>가 온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기를 소원하시는데, 동역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개척교회 목사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말라 죽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목사님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자꾸만 지연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종을 보내 세상을 바꾸려 하시는데, 동역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골방에서 기도하다가, 굶어 죽습니다. 하나님이 또 다른 종을 보냅니다. 그도 굶어 죽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상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환경이 좋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어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법칙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전 지역에 현상금이 붙은 사람입니다. 그 상황에서 엘리야를 영접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엘리야를 영접했고, 그 결과 그와 같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어렵고, 고통스럽고, 믿고 순종할 수 없는 환경에서 주님을 믿고, 주님이 보내신 사자를 영접하고 삶을 함께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와 환경과 공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2>.이 여인은 하나님의 종의 말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주의 종을, 그 종의 말을 하나님처럼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 내 목사님을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
문제는 사람을 믿지 않는데, 어찌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성도들은 목사를 믿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의 말씀도 믿지 않습니다. 콧방귀를 뀝니다.
지금 엘리야는 강단에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속에서 대화체로 “말”을 한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목사의 말씀과 말”을 구분합니다. “강단에서 설교한 것은 말씀이고, 사석에서 한 말은 그냥 말”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강단에서 선포한 말씀도 분석하여 “말씀”과 버릴 “말, 사설(私設)”을 구분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그 심성이 못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은혜 받을 자의 반열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얘기해 봅시다. 우리는 설교들을 때 다 나의 선입견과 주관으로 설교를 듣지, 진정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복종하는 자세로 말씀을 받습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마지막 떡 하나 밖에는 만들 수 없는 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나를 위하여 떡을 만들어 오라. 그리하면 기근이 지나기까지 그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겠다."라고 했을 때, 이러한 약속은 절망에 처해 있는 그 여인에게 극도의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아니, 이런 환경에 처하면 사람들은 쉽게 이성을 잃게 되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여인이 믿은 것은 전적으로 여인을 살리려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열왕기하 6장 24절 이후에 보면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아람의 벤하닷이 많은 군대를 모아 사마리아성을 에워싸자 그 성이 여러 날 동안 포위되어 크게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 굶주림이 얼마나 심한지 경제는 폭등하고, 민심은 날로 흉용해져만 갔습니다. 사람들의 송사가 들어왔는데, 자식을 삶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너무나 기가 막혀 그 자리에서 옷을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기 자식까지도 잡아먹을 정도로 비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때에 엘리야는 여인에게 마지막으로 아들과 먹고 죽을 떡을 가져 오라고 했으니, 그걸 누가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첫째는 이 가뭄에 주의 종이 아니라 양식을 뺏어 먹으려는 사기꾼으로 의심할 수도 있었고, 둘째는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가난한 과부에게 와서 요청할 것이 없지 않은가 하고 그 말씀을 믿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믿겠나이다" 라고 했듯이 이 여인도 바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선지자 엘리야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고, 우리는 그 약속을 받고 나갈 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시대가 변했어요. 이제는 아무나 믿으면 안돼요. 어떤 세상인데... 먼저 보여 주옵소서." 라고 하는데,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안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신자라는 사람들은 사실 믿지 않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당 갈 사람이 희귀한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
믿음의 선진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3>.말씀대로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 오고,](13절)
이 약속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는 말씀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여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선으로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환경이나 형편이 어떠하든지 어느 시대, 어느 장소가 되었든지 '먼저'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과 동역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적이 왜 일어 나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순서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칙은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조금 있는 양식이 '먼저' 하나님께 드려질 때 넘치도록 풍성해진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함으로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경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만 아까워하여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자신이 드리는 적은 것에 비해 하나님이 주시는 넘치는 축복을 바라보고 가슴 벅찬 기대와 감사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00 장로님은 30년 전, 남의 빚으로 인하여 항상 쪼들리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누님(김00 목사님)과 두 분이 공무원으로 부지런히 벌어도 생활은 언제나 적자였습니다. 그러던 중 십일조를 하면 가난의 저주가 물러가고 물질의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을 듣고 담대하게 십일조를 시작하셨습니다.
"둘이 벌어서 알뜰하게 살아도 못사는데 하나님 앞에 드리자. 사람한테 빚질지언정 하나님께는 빚지지 말자." 라는 결단을 내리고 믿음으로 십일조를 실천하자 참으로 신기한 일이 그 가정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환난의 거센 바람이 멈추고 재난이 물러가더니, 물질의 쓰임새가 막아지고 적자였던 재정이 점점 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쌓을 곳이 없도록 복 받은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만약 그 당시, "내가 먹어도 부족한데 이걸 하나님께 드리다니?" 하고 안드렸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적자 인생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것 가지고는 못산다, 하나님 것으로 살자!" 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먼저 드림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믿음에는 항상 선택이 따릅니다. "하나님이냐? 사람이냐? 영적으로 살 것인가? 육적으로 살 것인가?" 이럴 때 선택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래 말씀을 명심하십시오.
(계3:14)라오디게아 교회(敎會)의 사자(使者)에게 편지(便紙)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忠誠)되고 참된 증인(證人)이시요 하나님의 창조(創造)의 근본(根本)이신 이가 가라사대 (15)내가 네 행위(行爲)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願)하노라. (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富者)라 부요(富饒)하여 부족(不足)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困苦)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내가 너를 권(勸)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鍊鍛)한 금(金)을 사서 부요(富饒)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羞恥)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者)를 책망(責望)하여 징계(懲戒)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悔改)하라. (20)볼지어다. 내가 문(門)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音聲)을 듣고 문(門)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 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寶座)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寶座)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귀 있는 자(者)는 성령(聖靈)이 교회(敎會)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또한 하나님의 요구는 그 강도가 강해집니다. 엘리야가 처음에는 물 한 그릇을 요구했으나, 다음에는 떡까지 요구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적은 것부터 요구하며 차츰 차츰 우리의 믿음을 키워 나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온전한 헌신을 요구하심으로 거기서 하나님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있는 줄 아십니까?
순종하는 자세가 그래서 중요하고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 같아도 순종을 보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큰소리 치지 말고, 순종하십시오. 주의 종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와 함께 하십시오, 그를 돕고, 그를 살리십시오, 주의 종은 정말 중요합니다. 나의 축복의 시금석이요 시험의 시금석이 나의 목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시험에 걸려 넘어져 축복을 유산하고 맙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함으로 그와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주의 종이 곧 하나님이었습니다. 주의 종의 말도 안되는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성도들이여! 주의 종 앞에서 감히 말씀이니, 아니니 판단하지도 마세요.
4>.기꺼이 드리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이 여인이 엘리야에게 행한 대접은 하나님께 향한 그 여인의 마음의 표현이었으며 이 헌납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수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까워하지 않았고, 관습으로 하지 않았으며, 마지 못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순수한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헌금, 예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헌금의 제일 정신은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헌금을 심어야 물질 축복의 열매를 거둡니다. 예배를 심어야 존귀해집니다. 기도를 심어야 기적이 창조됩니다. 헌신과 충성을 심어야 당신의 자녀가 위대한 인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번에 부흥성회를 다녀 온 교회는 성도들이 헌금을 할 줄 몰랐습니다. 담임목사가 교회를 건축하면서도 헌금 하나 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건축 빚이 3억 이상 있었습니다. 부흥성회를 인도해 보니, 헌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강사에게 헌금 강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헌금을 위한 개인기도도 금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하나의 큰 시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떡은 자기의 생명과 같은 마지막 양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큰 시험이요, 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가 따져보면 환경이 그래서 그렇지 떡 한 조각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극히 작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그것이 그렇게 많아 보일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떡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적은 것을 하나님과 함께 나눔으로 많은 양식을 얻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끼 밖에 먹지 못할 것을 가지고 세 사람 이상이 몇 년을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으로 살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것으로 살면 하나님의 풍성함 속에서 그와 같이 부요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떡을 만들어 먼저 엘리야에게 드림으로 그 여러 식구가 먹었으나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수 많은 과부들이 이스라엘에도, 이방에도 많았는데 왜 하필이면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보냄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그녀를 살리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천하 만곳에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가난하고, 불쌍하고, 자신의 자녀도 돌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순종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축복하시고, 그 아들을 살리시는가를 깨닫고, 그 길을 나도 걸어가라고 주님이 말씀하시기 위하여 본문을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기적, 특별한 축복을 받길 원하지만,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기적을 창조할 특별한 순종의 믿음을 얻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그것을 받을 만한 특별한 순종의 믿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환경이 좋아서, 특별한 사람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사르밧 여인은 최악의 상태였지만, 특별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최선의 상태가 된 것입니다.
본 설교의 요지는 단순히 주의 종 목사를 잘 대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순종함으로 받을 수 있는 영적 자세를 지금부터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를 찾아 온 주의 종을 선대함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훗날에 죽을 아들을 결코 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에 사르밧 과부가 불순종하여 주의 종을 박대했다면, 주의 종 엘리야는 누군가 복을 받을 다른 하나님의 종이 선대했을 것이며, 사르밧 과부는 역사에 그 이름이 남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의 아들은 결코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순종함으로, 일개 동네 아낙네에서 역사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제가 사르밧 과부의 얘기를 주제로, “동네 아줌마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비결”이란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룻도, 라합도, 브리스길라도, 다비다도 다 그런 여인들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은 주의 종에게 밥 한끼를 먹이라고, 사르밧 과부를 쓰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러, 미리 주의 종을 보낸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그 복을 누린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의 한 자락속에서 순종을 훈련하십시오. 언제나 순종하는 영성을 기르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신 거대한 계획을, 순종함으로 성취해 가는 믿음을 보이십시오.
우리는 앞날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순종의 삶을 살아 내면, 내일은 그 아름다운 열매를 먹을 것입니다. 반대로 오늘 불순종하면 내일은 그 쓰디 쓴 열매를 맛볼 것입니다.
나는 오늘이라는 나날에 오직 순종의 삶을 살기를 원하나이다.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하나이다.
주여! 오늘이라는 나날에 나에게 순종의 삶을 주옵소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특별한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순종의 영성을 훈련하십시오. 그 순종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와 사업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사명에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