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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한 성공철학아카데미>에서 발표 초고 입니다.
- 코로나19로 작은 모임 입니다. 대구에서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할 수 있습니다. ]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류종렬 2020 06, 26(금) 오후 7시. 대구, 계산문화관 501호. - 8차 <한 성공철학아카데미>
- 마실에서 천사흘밤: http://cafe.daum.net/milletune
*프랑스 철학의 특성.
개인이란 개념에서 인본주의자와 인성주의자가 다르다. 개인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여길 정도의 상품자유의자와 인격성을 함양하고 완성으로 나아가는 노력을 하는 인성자유주의자가 다르듯이 말이다.
프랑스 철학에서 수학-물리학에 기반한 형이상학과 생물학-심리학에 연관한 형이상학의 차히는 크다. 전자에서 현상 또는 표상은 개념으로 환원하여 추론을 할 수 있다. 후자에서는 창발과 증상으로 나타나는 설명(표현)을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내재성의 연속(지속)이라는 점이다. 셋째로 사회학은 공동체에서 드러나는 징후들에 대한 반성과 조정, 그리고 재배치에 의해 교정을 목표로 한다. 첫째에서 추론과 귀결에서 얻은 법칙이 둘째와 셋째에서도 적용된다는 보장도 없고, 확신도 없다. 게다라 이런 적용을 사회에까지 한다는 것은 착오이거나 착각이다. 이를 상층형이상학이라 부르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둘째에서 창발과 증상은 보편성과 일반성이 없다. 개별성과 특이성으로 등장하여 상식적으로 통용되기도 하거나, 어떤 계기(기회)에 변곡점을 이루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물론 변곡점을 이룰 때는 사회 공동체의 기반이 되기도 하고 활력이 되기도 하여 일반에게 공통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그런데 소멸된다고 해서 무화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망각 속에 자리잡고 있다가 파(결)가 퍼지는 과정이 달리 형성될 때 솟아오를(창발) 수도 있다. 역사와 과거를 다시 반성과 성찰하는 것은 망각으로 사라졌다고 여긴 사태(상태)를 반추하는데 있을 것이다.
문제는 셋째에서 이다.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원리와 법칙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지 않지만 삶에서 그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경우에 따라서서 거스르기도 하고 또는 저항하며 게다가 반대의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이런 삶의 평면은 언제나 다발과 같은 덩어리가 엉켜서 무엇이 등장하고 활동할 지는 그 시대의 상황(또는 환경milleu)에서 이다. 그래서 평온하던 공동체에서 어떤 징후가 등장하면 세세하게 살피고 또는 과거의 사례와 연결(연관)을 찾아보고, 그리고 현재에서 발생하여 표면으로 오르기 전에도 문제거리로 남아있었던 것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징후는 마치 잠수함의 토끼처럼 또는 ‘목마른 자 샘 파듯’이, 그 당사자가 발현하고 창안하는 것이다. 삶에서 징후의 발생 또는 출현은 새로운 위상의 창발이기도 하다.
벩송에 관한한, 벩송의 관념 또는 개념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개념주의나 주관주의와 별개이다. 이는 또한 주관주의의 심리학주의와 다르다. 말하자면 심리학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벩송의 개념은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외적 실체들의 사실로부터 끌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개념은 심리학주의와 다르다고 할 때, 심리(영혼)의 생산으로서 개념과 다르다. 왜냐하면 영혼의 생산으로 개념은 지성이 물질과 더불어 생성하고 발전하는 수학적 기하학적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생명의 생장과 확장으로서 생명력의 개념은 오루(Sylvain Auroux, 1947-)가 말하듯이, 자연처럼, 문화적 단위의 개념일 수 있다. “기억”은 생명력의 창발과 수렴의 함께 지닌 개념이기 때문이다. (53QLJ)
[개관]
창조적 진화(1907)의 제목에서, 우선 “창조적”이란 용어의 창조란 유일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벩송에게서 ‘자연의 자기 생성에 의한’ 창조란, 물질이 ‘생산하다(produire)’와 같지 않은 방식으로 생명이 ‘창조하다(créer)’를 의미이다. 이것은 내부에서 ‘솟아나다’, ‘분출하다’를 의미한다. 즉 창조로서 진화란 자연이 자기 안에서 자기에 의해 여러 양상으로 솟아나며, 그리고 그 창조들에 의해 종들의 변이를 확장하는 과정이 진화라 한다.
이 책(EC, 1907)은 그의 셋째 주저이다. 앞선 첫째 저술(DI, 1889)에서 자아의 내재성으로서 지속(시간)을, 둘째 저술(MM, 1896)에서 지속의 활동성으로서 기억을 구해내고, 여기서는 생명과의 내재적 연속을 제시한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도 지속과 기억을 긴 생명 역사에서 유전과 연관하여, 생명 진화의 실재적이고 실증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생명은 겉보기에 요소들의 조합에서 복잡성으로 또는 기능들의 발전에서 편리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생명 안에는 ‘작동하는 권능’이 있고, 그 권능의 추진력이 생명의 확장과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다. 개체 상으로 불연속적으로 보이지만 종의 차원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온 것은, 원초적으로 긍정적인 힘인 생명도약(l’élan vital)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생명체는 발산과 수렴을 선택하고 노력하는 단위이며 다발(une gerbe)이다.
자연은 통일성(l’unité)을 지니고 생성한다. 그 자연은 하나의 개념 또는 관념이 아니라 다발이며 눈덩이처럼 부풀어가는 과정이라 한다. 이 자연에는 두 가지 질서가, 즉 상향하는 질서와 하향하는 질서가 있다. 후자는 물체적이고 기하학적이라 지성의 능력에 속하다면 상향하는 질서는 생명적이고 확장적이라 직관의 권능에 속한다. 이 책의 별책과 같은 마지막 4장은 서양 존재론과 형이상학이 정지와 공간을 바탕으로 지성사가 전개되어 왔으나, 이제 철학은 내재성을 통하여 운동과 시간으로 사유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린다.
베르그송의 생애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은 폴란드계 유태인 아버지 미카엘 베르그송과 아일란드계 유태인 영국 출신 어머니 캐서린 레빈슨 사이에 4남 3여 중에 둘째이며 남자로서 맏아들이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이 나온 해 파리에서 태어나, 신정국가주의인 시오니즘에 빠지지 않고 공화주의자로서 프랑스인으로 살다가 이차 대전의 초기 독일 점령하의 파리에서 세상을 떴다.
그의 가족과 더불어, 4살부터 7살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내다가, 파리로 이사 온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변변찮은 수입으로 가난하게 지냈다. 그는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일찍이 국비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녔으며, 제네바의 랍비 베르트하이머 주선으로 기숙사에서도 쭉 장학생으로 지냈다. 쟝켈레비치 이외에 베르그송의 주석자들은 유태주의 영향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베르그송의 소년시기와 청년기에 유태인 기숙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랍비의 영향이 매우 컷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베르그송 사유가 유태 전통에서 보면 말씀의 논리보다 생명의 자기 생성 쪽이라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플로티노스 강의록(1899)」(2000년 출판)을 남겼고, 또한 그가 인용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스피노자의 중요개념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그에게는 세파라드 유태인의 전통이 내재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베르그송의 뛰어남은 전국 고교 학력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가 라틴어와 희랍어 경시대회에도 상을 탔으며, 특히 수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빠스칼의 ‘세 개의 원’에 관한 문제 풀이가 수학 전문지에 실릴 정도였다. 그가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철학과에 입학했을 때, 그의 고등학교 선생은 수학보다 철학을 택한 것을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는 수학을 “집에서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고 칠판 앞에서 풀기만 하면 되는” 것쯤으로 여기고, 철학에는 인간의 소중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철학을 택한 한 이유이다. 이 인간의 경험이 그의 새로운 철학의, 즉 경험의 형이상학의 기초가 될 것이다.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할 때, 쟝 죠레스 다음 3등으로 입학하였으나, 교수자격시험에서는 사회주의자가 될 죠레스 보다 앞서 2등이었다. 죠레스와 관계는 여러 일화가 있다. 교수는 수업 중에 유창한 언변을 구사하는 죠레스의 발표에 대해, 비판자로서 섬세하고 정확한 베르그송에게 반박하게 하곤 하였다. 둘 사이는 우정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태인 혈통의 프랑스인 베르그송이 드레퓌스사건에서 청원서에 서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데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베르그송은 이런 사건을 죠레스와 상의하라고 하였으며, 그는 직접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았다.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관례대로 고등학교 철학교수를 지낸다. 앙제의 고등학교에서 일년, 그리고 파스칼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는 클레르몽-페랑에서 5년을 보낸다. 이곳에서 대학의 수학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다른 한편 최면술사들의 모임에 참석한다. 이 관심은 파리에 가서도 지속되며 그의 두 번째 저술 『물질과 기억(MM, 1896)』과 첫 번째 논문집 『정신적 에너지(ES, 1919)』에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 지방에서 고등학교 철학교수로 지내는 동안에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파리로 올라와서도 여러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30세가 되던 1889년에 베르그송은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에 관한 시론(DI, 1889)』을 주논문으로 그리고 라틴어로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론』을 부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주논문에서 2장과 3장을 먼저 쓰고 1장을 썼다고 한다. 이 2장에서 지속의 개념을 창안한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3장의 칸트 비판에 관심을 표현하였다. 베르그송은 새로운 철학의 태동이 될 “시간”, “지속”을 주목해주지 않은 심사위원들에게 섭섭해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7년 뒤에, 첫 저술의 지속을 의식 내부로 옮겨서 다룬 둘째 저술 『물질과 기억』을 발표하였고, 인격성으로서 지속의 내용을 인격의 존재론적 근거로서 기억으로 풀어낸다. 이때부터 그는 프랑스 지성의 대표적 인물로서 명성을 얻는다. 이 시기에 한 가지 보탤 것은 그는 33살에 19세 유태인 여성 뇌베르제와 결혼하고, 그 결혼식에서 화동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였다. 결혼 다음 해에 베르그송의 평생에 유일하게 가슴 아픈 일로서, 선천적 벙어리로서 딸 쟌느가 태어났다.
그는 소르본 대학의 교수 임용에 1894년과 1898년 두 번이나 지원했으나 실패하고, 모교인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전임강사로서 지내다가 콜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로 되었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가정과 사회가 극한적 분열 상황에 빠진 “드레퓌스 사건”이 있었던 시기였다. 군부, 왕당파, 카톨릭 교회 등 소위 기득권이 유태인 드레퓌스를 반역죄로 몰 때, 우리가 보기에 유태계 베르그송이 사상검열을 받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영향권에 벗어날 수 없었으리라. 그 사건의 재판 진행 중인 시기에 그는 사회 심리적 관점에서 기득권자들의 경직되고 허구적인 착각에 대해 웃어넘길 수 있는 『웃음(RI, 1900)』을 한 잡지에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물질과 기억』이 출판된 후 철학계에 명성을 얻었으나, 추억들이라는 단편들을 모아서 기억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과, 기억의 총체에 대한 인식이 내재성의 직관이라는 것에 관한 비판에 대해, 1903년에 나온 「형이상학 입문」을 통해 인식의 두 종류를 설명한다. 하나는 “안에서부터”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부터”이다. “안에서”란 내재성을 의미하여, 이것은 다음 나올 진화의 기원적 충동(엘랑비딸)과 내재하는 직관의 인식에 연결된다.
그는 철학적 관심을 확장한다. 개인에서 심리학적으로 존재론적 근거를 찾은 것에 미흡함을 보충하고자, 생물학적 관점에서 『창조적 진화(EC, 1907)』를 발표했다. 개체의 지속을 우주의 생명현상 전반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생명 현상의 한 질서로서 인간도 생명현상의 인식 발생의 과정을 겪고 있으며, 다른 생명 종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적합한 방식을 생성하고 발전하는 중이다. 셋째 저술 발표 이후로 그의 명성은 프랑스를 넘어서 세계로 알려졌다. 1914년에 프랑스 학자로서 최고의 명성인 프랑스 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그해 유럽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전쟁의 철학을 싫어하는 그는 문화가 야만에게 짓밟힌 데 분노하며, 스페인과 아메리카를 방문하면서 협력을 위한 외교적 노력도 하였다. 전후에는 국제연맹의 「국제 지식인 협력 위원회」의장을 맡기도 하였다.
1925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의장을 그만 둘 때까지 많은 국제 사회적 활동을 하였고,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그의 문장의 아름다움으로, 1928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류마티즘의 지병으로 거의 은퇴하여 지내고 있었다. 사람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 지워지려 할 때, 그가 일흔셋의 나이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MR, 1932)』을 세상에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개인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실천할 행동지침과 같은 도덕론과 새로운 조직화에 대한 종교론을 다룬 이 저술은 그의 사유의 귀결이자 완성이다. 인간이 인격 존재로서 미래에는 각각이 신들이 되는 것처럼 살아보자는 낙관적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두 해 뒤에 출간한 둘째 논문집 『사유와 운동자(PM, 1934)』속에는 발표하지 않았던 그의 철학에 대한 ‘방법후설’ -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달리 - 두 편이 서문으로 실려 있다.
세계대전의 일어나고, 독일군이 파리와 지방의 일부를 점령하였을 때, 베르그송은 피점령지인 남서쪽의 보르도로 피난 갔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점령 당국은 그를 유태인으로서보다 세계적 학자로서 대우했다고 하나, 전시의 석탄 배급량이 매우 적어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중에, 다음해 1월 3일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의 마지막 말은 꼴레쥬 드 프랑스 강의를 마칠 때 하는 말로서 “여러분, 5시입니다. 강의가 끝났습니다.”이라 한다. 그의 장례식은 프랑스 학술원의 장례가 아니라 조촐하게 치러졌으며, 그의 죽음을 학술원에 알린 것은 장례에 참석한 당시 학술원 회원이며 시인인 뽈 발레리였다. 그가 죽고 난 뒤에 카톨릭 신부가 임종 미사를 했다고 전한다. 그는 유태인이 박해받고 있다는 명목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행복하게도 프랑스에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다가 좌파의 제3공화국 하에서 사상의 자유를 누리면서 자신의 고유한 종교성을 지니고 살았다.
창조적 진화
벩송은 자신의 사상의 전개에서 평생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창조적 진화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그의 작품들의 내적 흐름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살아서 4권의 주저와 4권의 논문집을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그의 주저에서 첫째 시기에는 의식의 무매개적인 자료들에 관한 시론과 물질과 기억이 나온다. 이 첫째 권에서는 의식의 측면에서 자아의 인격성이 단절 없는 연속성이라 하며 “지속”이란 개념을 창안하였다. 이 지속은 철학사적으로 보아 벩송 이전의 철학에서는 실재성을 공간화 된 개념으로 다루는데 비해 시간(지속)으로 다루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은 플라톤주의와 데카르트의 코기토에 대한 단절을 의미하며, 새로운 형이상학의 단초를 제공한다. 둘째 권에서는 추억들과 기억 사이에서 차이를 구별한다. 과거의 추억들만이 의식이 아니라, 인격의 의식은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기억을 포함하여 잠재적 내재성과 현실의 활동성을 포함하며 미래에 예상참여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기억은 두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격성에 내재하는 경험적 총체로써 자료들이라 한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지속하는 자아와 기억의 총체적 경험을 개인에서 생명전체로 확장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로서 새로운 형이상학은 경험의 형이상학으로 된다. 창조적 진화는 지속, 자아, 기억, 생명을 묶어서 자연(본성) 안에서 탐색한다. 자연은 자기 안에서 자기에 의한 자기 창조를 실행한다고 한다. 자연은 전통적으로 이성의 관념론과 종교적 독단론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자발성을 지니고 생성하고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다. 이런 사유는 2500년 지배해온 공간화 된 사고에 대한 반박이었다. 그리고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는 진화의 여러 가지들 중에서 한 가지의 끝을 차지한 인간이 있고, 인간은 스스로 만든 사회에서 자율성으로 도덕을 정립하고, 공동체에서 자기의 본성(la nature)을, 다시 말하면 자기 인격성의 완성이라 할 종교성을, 실현할 줄 아는 데에 이르렀다고 한다.
창조적 진화는 4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진화론의 이론적 배경을 2장은 생명 발생에서 종차의 생장의 과정에서 본능과 지성의 분화, 3장은 지성의 발생과 인식론의 발전 및 두 질서에 관한 것이다. 4장은 지성을 통한 공간화된 사고의 난점을 지적한 철학사 개관이다.
제1장에서 벩송은 의식 일반의 지속을 바탕으로 한다. 의식의 표면에서는 개체에서 보이듯이 불연속적인 것 같지만, 세대를 이어가는 의식의 내면에서 변이는 연속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 연속성의 일반이 자연에 내재하며, 생명있는 존재들은 살아온 역사의 응축과 충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경향성이 총체적으로 생명체 속에 있으며, 각 개인에서도 순간들이 독창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에서 생명은 자기에 의한 자기창조(7쪽)이라 하고, 우주도 지속한다(11쪽)고 한다.
자연에서 생명은 지속하는 시간을 기록하는 등록부와 같다고 한다. 그 등록은 요즘 표현으로 유전자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의 유기체화 과정에서 변형과 진화에 대하여 과학자들 사이에 여러 견해들이 있다. 이들 견해들을 벩송은 우선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요약한다. 하나는 생물을 물리-화학과 연관하여 보는 기계론인데, 한마디로 부분들의 종합이 전체일수 없듯이, 요소들의 총합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전에는 새로운 활동성이 끊임없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기체화된 생명체가 삶에서 자기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예정된 일정표에 따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현상에는 어떠한 완성점도 목적성도 없이 열려있다. 이런 합목적성 사고에는 이미 모든 것이 주어져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서, 결과를 앞에 원인 앞에 두는 전도된 사고로서 기계론의 뒤집어 놓은 것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철학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 복잡성과 기능의 활성화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의미의 기계론과 내재적인 연속성에서 방향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내재적 목적성은 있을 수 있으나, 이런 작업 또는 새로운 창조의 힘은, 또 소박한 목적성을 유지하려는 의도와 동기는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벩송은 당대의 생명 진화에 관한 실증적 자료들을 검토한다. 먼저 여기서 소개하는 변형론이란 용어는 라마르크의 용어이며, 진화론은 다윈의 용어이다. 벩송은 먼저 초기 발상을 제기한 라마르크(Lamarck, 1744-1829)를 주목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기계론적으로 단순화된 것으로 라마르크의 진위를 왜곡한 것이다. 라마르크는 사변적이었지만 생명의 진화에서 새로운 형식 또는 새로운 형질로 전개는 내부적 노력이라는 점을 중요시했다. 외부와 연관에서 삶의 양식을 다양하게 만든 노력은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네오라마르크주의자들이 노력에 의한 획득형질까지도 유전된다고 주장한 것은 착오임이 밝혀졌다. 벩송은 다윈(Darwin, 1809-1882)의 자연선택과 환경의 최적 적응의 설명보다, 다윈의 미세변이에 대해 주목하였다. 그는 다윈에게서 형태와 구성에 의한 자연선택에서 기계론적 의미와 최적 적응의 목적론 의미가 가미되어 있으며, 부분의 변화가 유기체 전체를 변화시킨다는 역전된 사고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느낄 수 없을 정도의 미세변이의 축적에서 원형질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고, 그 안에서 분화하는 노력이 있으며, 그리고 총체적 조화를 위한 상보성과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새로운 유전에 대한 법칙의 발명자로서 드브리스(de Vries, 1848-1935)의 돌연변이설을 수용하였으나, 나중에 형태의 변화를 인정하는 돌연변이도 유전 법칙에 속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라마르크주의에 속하는 아이머(Eimer, 1843–1898)의 정향 진화설에서 방향이 정해진 것이라기보다 경향의 연속성이라고 받아들이면서, 벩송이 외부 환경이나 이물질에 의한 충격의 형질변이보다 여전히 내재적 형질변이로서 노력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벩송 사상의 영향과 의의에서 언급하겠지만 생명과학의 비약적인 발달에서 거의 잊혀졌다. 그러나 벩송이 급진적 기계론과 급진적 목적론을 비판한 것은 생명현상의 전개과정에서 자연의 내재적 힘이, 즉 생성과 발전에는 원초적 충력, 즉 엘랑비딸(생명도약)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적 사유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명의 다양성을 고려할 경우에, 생명의 여러 가지로 진화에는 근본적으로 내재하는 다양성(그의 표현으로 다발)이 있어야 한다. 이런 예로서 생명체들의 다양한 눈(目)의 형성과정들에 대한, 즉 내재하는 다양한 가능성의 발산에 대한 설명이 있다. 자연에는 다양성에 근원적으로 내재하는 원초적 도약(élan primitif, 80쪽), 시원적 도약(l'élan originel, 88쪽), 생명의 도약(l'élan vital) (88-97쪽)이 있으며, 진화의 과정에서 분화(dissociation)와 이중화(dédoublement)를 진행하며, 발산과 수렴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벩송의 창조적 진화란 의식의 확장(extention)이며 소박한 물질을 향한 작동하는 경향이며, 즉 세분화(différenciation)이다.
제2장에서는 앞에서 진화의 철학적 탐구에 필요한 생명도약과 이중화의 개념을 바탕으로 세분화되는 진화의 분화 또는 발산의 방향들에 대해 다룬다. 벩송은 분화와 발산의 비유로서 포탄이 터지고 그 조각이 또 터지고, 터진 조각이 또 터지는 연속적 포탄 폭발의 예를 든다. 이런 비유는 눈덩이의 비유와 회오리의 비유에서처럼, 생명체의 환경 적응이 이런 개념화 창안을 설명해주지 못하고, 또한 목적성의 원리에서 이미 전제된 방향으로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린다. 생명은 왜 발산하며 또한 여러 가지로 가지치기를 하는지에 대해, 생명체의 진화에서 지난한 장벽들이 있으며, 이를 넘어서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원초적으로 생명도약과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힘이 존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힘은 배후에서 처음부터 끊임없이 밀고 있다. 그런데 힘의 진행은 전진만이 아니라 제자리걸음도 후퇴하기도 한다. 그럼에서 생명체는 물질이라는 장애물을 넘어서려고 분할과 이중화를 통하여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생명의 자신 속에 원인이어야 한다고 한다. 그 생명의 경향은 본질적으로 다발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다발 안에서 서로 간에 분화와 보충이라는 양면성이 있다. 이로서 생명의 활동은 여러 갈래로 분기하는 방향으로 솟아나고 생장한다. 그러한 활동 경향이 생명 안에 죽 보존된 것은 원초적 충력의 덕분이다. 이 이중화와 분화의 경향은 생명체의 진화과정에서 크게 보아 세 가지 큰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장에서 벩송의 진화의 선은 너무 요약적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다시 일곱 단계로 사실의 선들을 통해 다시 설명하기도 한다(ES, 1장). 우선 식물과 동물의 갈림 길이다. 서로는 삶의 양식에서 상반된 활동에 있지만, 식물의 산소동화작용과 동물의 분해를 통한 이산화탄소 배출에서 서로 보충적이기도 하다. 이는 당대까지의 생물학의 실증적 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동물의 활동성에서 주요 방향의 가지치기로서 막시류 곤충과 척추동물의 끝에 있는 인간을 예시한다. 곤충의 사회성과 인류의 사회성에 대한 것은 벩송이 “도덕과종교의 두원천”에서 전개할 것이다. 여기서는 진화의 방향에서 삶의 양식과 인식의 방식에 대해서 주목한다. 생활양식 면에서 식물은 엽록소 기능으로 동물은 신경계의 발달을 분화하였지만, 진화에서 비례만 다를 뿐이며, 생명계에서 생명의 공통뿌리에서 보면 상보관계라 한다.
그런데 각종은 전문화의 길을 걸어서, 식물은 자기 영양을 확보하는 엽록소 작동으로 운동의 마비의 경향으로 갔는데 비해, 동물계는 영양섭취 때문에 자신의 활동을 넓히기 위하여 에너지를 폭발시켜 운동하는 경향으로 향했다. 그 폭발은 우연적이라 유기적 연관 속에서 보존하고 소비하는 체계로서 신경계를 필요로 했다. 결국 식물은 신경계를 마비시킨 방향으로 갔지만, 동물은 생존 가능한 형태로 분화하여 크게 보아 극피동물, 연체동물, 절족동물, 척추동물로 나아갔다. 동물계의 부단한 노력은 운동성에서 성공하여 감각-운동의 순환체계를 이루는 가지치기로 간다. 그 다음 운동기제의 발달로 곤충과 인간으로 분화되었다. 여기에서 각각은 본능과 지성을 발달시키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이런 방향은 목적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운동방식의 설명이다. 또한 벩송은 본능을 비하시키지 않고, 인식 능력의 중요한 한 방향으로 삼았다. 이런 분화와 이중화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동일한 경향의 세 가지 정도의 차이로 본 것에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이런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본성의 차이라 한다.
공통의 뿌리에서 나온 본능과 지성은 상호침투적이고, 생명체 안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즉 활동에서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경향들은 주지주의자들이 보듯이 이미 만들어진 사물이 아니며, 인간에도 다른 생명체에게도 서로 상반되는 특성으로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이로서 인간의 의식은 최초의 포탄의 폭발에서 여러 차례 폭발을 거쳐서 여러 가지들 중에 한 가지에 이르러, 겉보기에는 활동하는 지성이 핵심으로 보이지만, 지성은 여전히 본능의 너울 속에 있으면서 상보관계에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지위는 도구를 제작하며 편리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종의 측면에서 생명의 힘이 무매개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성이 발견할 수 없는 사물을 본능이 발견할 수 있으며, 지성이 불연속적 측면을 표상하는데 비해 본능은 유기체의 일치하는 행동을 취한다. 인간은 스스로 본성에 따라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또한 인격성의 완성을 위하여 본능과 지성의 이중성을 상보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벩송의 관심은 이 두 능력의 분화에서 한쪽을 강화한 지성적 사고의 오류를 벗어나서 생명과 일치하는 사유를 진작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본능을 이은 직관이 오래까지 지속하지 못한다(183쪽)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일단 자유로운 의식은 자신의 내부에 주름 잡히었다가(se replier), 아직 자신 속에 잠자고 있는 직관의 잠세력들(les virtualité) 각성하게 할 수 있다.(183)”
제3장은 인간의 인식에서 도구적 지성을 발달시키면서 함께 사는 공감의 직관도 역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지성을 기저로 하는 철학적 사고가 지배적이다. 왜 이런 방향으로 갔을까하는 철학적 주제로 돌아선다. 벩송은 생명의 문제와 인식의 문제 사이의 연관을 다루기에 앞서서 이 주제를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식의 문제는 생명의 바다에 한 부분임에도 정신의 뿌리깊은 습관에 의해 자연에는 하나의 통일성이 먼저 있다고 여기고, 나아가 이를 다룰 수 있는 것을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벩송은 자연이 단일한 통일성이라고 단정할 실증적 근거 없음에도 하나의 통일성을 전제하는 것이 표면상의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이고, 선천적 지성이 있어서 먼저 있어서 통일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실질적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라 한다. 이 두 오류에 대한 답으로, 인류 역사에서 물질성을 규정하는 인식과 지성의 기능이 동시적으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사실상 물질에 내재하는 공간화의 방식을 지성이 먼저 부여하여 인식하는 것인데, 지성이 사물 인식에 공간을 부여했다고 여긴다. 지성은 생명 안에 접근하지 못하고, 사물의 외부에서 공간화의 확실성(제한성)을 부여하는 데는 기하학적 질서를 검증없이 선천적으로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동시성을 지성이 다루는 기하학적 질서에서 드러난다. 공간에서부터 기하학이 나오고, 기하학으로부터 논리의 질서가 자동적으로 생기게 한다. 이것은 시간의 경과와 상태들도 공간화 하여 다루는 데서도 마찬가지였다. 경험적 인과의 귀결에서 체계의 완성으로 법칙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기하학의 질서가 스며든다. 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개별적 사실들에서 일정한 법칙이 성립하는 경우에도 수학적 공식으로 환원할 수 있는 법칙이 개입하는 것도 공간화의 방식이다. 이런 법칙화는 물질이 하강하여 평면을 이룰 수 있다는 가정이 들어있다. 이런 사고에서는 기하학적 질서가 없는 또는 물리적 법칙에 속하지 않는 경우들을 무질서라고 한다. 플라톤이 이데아가 모자라는 것을 아페이론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벩송의 경우에 생명의 상태와 생태는 논리, 기하학, 물리학의 질서와는 다른 질서로 생성하고 생장하며 확장한다. 그럼에도 오랜 지성의 관습에서 사물들에 류들의 집합이 있고, 물체들에는 법칙이 있다고 여긴다. 이런 관점에서 열역학 제2법칙을 역행하는 역(逆)엔트로피의 생명의 질서는 무질서인 것으로 여긴다. 분자 물리학에서 물질의 성질이 입자라 하는 쪽은 파동이라 하는 쪽을 무질서하다고 하며, 수학적으로 유클리드 기하학과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정도의 차이 또는 무질서의 다양체로 여긴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자아가 불변이라 여기는 동일성 질서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를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이질적인 정체성이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생명은 두 번 반복이 없이 이질성의 지속이며 생성이다. 따라서 벩송은 자연에는 두 가지 질서가 있으며, 하나는 끊임없이 분출하고 변화하며 상승하는 생명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하게 평준화하고 평면화하여 등질적으로 하강하는 물질 질서이다. 게다가 인간은 두 질서의 타협안(modus vivendi; EC 250)으로 살아간다. 지성은 후자의 사고방식에 맞추어서 발생한 것이지, 자연 총체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 게다가 자연을 하나의 방식으로 파악하는 것도 지성의 임의적 판단이지 총체적 인식이 아니다.
그러면 무질서라는 개념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이는 제4장에서 다루는 존재와 무에 연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질서란 인식론적으로, 생명질서와 물질질서 사이에서 한 질서를 인정하고 다른 질서를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사고방식이다. 벩송에게서는 물질 자체는 의식자체와 마찬가지로 유동하며 흐르는 실재성이다(PM, 제6장 형이상학 입문). 그런데 진화의 과정상 도구의 승리로 지성의 발달로만 치달아 온 인간은 물질을 공간화된 물체로, 요즘 표현으로 수리정보화로만 나가고 있다. 인간의 운명은 신체와 더불어 정신이 함께 불가분으로 살아가는 생명체에 있다. 벩송은 사는 것이 먼저다(PM 54쪽)라고 한다. 철학하는 지성은 그다음인 셈이다. 왜냐하면 하강하는 운동은 생명을 해체하는 길이며 상승하는 운동이야 말로 창조하는 작동이며, 다른 말로하면, 생태와 더불어 스스로 본성을 만들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생명은 진화 과정에서 원초적 도약에서부터 이중화와 세분화의 경향을 지니고 생명도약의 힘도 여전히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자유로운 도약의 노력도 진행 중이다. 벩송이 보기에 인간은 생명의 흐름 속에 있기에, 먼저 어떠한 기획이 있는 것도,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니라 한다.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지성과 직관의 두 상반된 운동이 있으며, 이제라도 지성의 발달(또는 수리정보의 기능)보다, 생명의 공감을 확장하는 직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를 생각하게 한다.
제4장에서 인간이 한쪽 방향의 질서에 익숙해진 이유와 지성의 방향으로 걸어온 철학사 전반에 대한 비판이다. 나로서는 인간이 지적 오만과 일방적으로 자연을 도구로 삼는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벩송은 자연을 다루는 기계론에도 개념화 작업에도 빠지지 않기 위해서, 지성적 사고의 근원적 착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하나는 현존이 아니라 무를 상정하는 착각이며, 둘째는 두 가지 질서가 아니라 무질서를 상정하고 기하적 공간적 질서만을 사고하는 착각이며, 모든 사물은 움직이고 운동자인데 명사, 형용사, 동사라는 개념주의에 익숙하여 불변하는 정지로 파악하는 착각이다. 생명이란 명사도 진행 중이고, 붉다라는 형용사도 변화중이며, 간다는 동사는 움직이는 중이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적 비판의 배경에는 여기서는 직접 언급이 없지만 DI에서도 지적한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의 부동적 사고, 그리고 제논의 운동 부정을 부정하며, 운동은 실재한다. 그리고 근대 과학에서 갈릴레이가 하늘의 운동을 지상으로 내려놓아 운동의 상대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를 1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사물 안으로 운동을 인정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했다. 그러한 철학사적 관점을 데카르트 관념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에서도 이중화를 인정하면서도 운동으로부터 시작에 이르지 못했다 하고, 칸트에서는 시간 지속을 선험적 형식화하면서 속좁은 이성이 형이상학의 부정에로 이르렀다. 게다가 스펜서(Spencer, 1820-1903)의 진화론은 부분들의 복잡화와 통일성으로 귀결 지어서, 진정한 진화 운동의 설명에 이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 벩송의 주장은 뒤집어보면 보인다. 즉 이런 비판의 이면에 남아있는 또는 아직도 다루지 않는 운동과 지속으로부터, 실재성의 내부로부터,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성과 운동, 시간과 지속을 실증적으로 다루는 것이 형이상학이며, “총체적 경험”(l‘expérience intégrale)이라 정의 내린다.
의의 및 영향
벩송의 창조적 진화(1907)는 그의 명성을 프랑스를 넘어서 세계적 철학자로 만들었다. 그의 철학적 사유가 의식, 기억, 생명을 자연 속에서 자연에 의한 생산으로 자연의 자발성의 힘을 설파하였다. 이는 기존의 존재론이라 인식론의 틀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기도 하고 종교의 독단론에서 벗어나 인간의 지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런 반향에는 라마르크의 변형론과 다윈 진화론에 이어서, 유전법칙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등장한 것도 한몫을 하였다.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멘델(Mendel, 1822-1884) 사후 16년이 지나, 새로운 세기에 시작에 즈음하여 1900년에 독일의 식물학자 코렌스(Correns, 1864-1933), 오스트리아의 농학자 체르마크(Tschermak, 1871–1962), 네덜란드의 유전학자 드 브리스(de Vries, 1848-1935)가 서로 참조함이 없이 멘델의 유전법칙을 동시에 재발견하였던 것이다. 이 유전법칙에서 우여곡절 끝에 변형도 돌연변이도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생명체의 구조와 형태로부터 내부의 유전자 정보의 문제로 세포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유전정보의 구조에 대해 1953년에 왓슨(James Watson, 1928-)과 크릭(Francis Crick, 1916-2004),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가 DNA의 2중나선 구조를 발표하였다. 이로서 벩송의 기억-유전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보다, 생화학적 정보의 요소인 유전자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감으로서 벩송의 진화론에서 철학적 개념들, 생명 다발과 생명 도약이라는 개념들은 묻혀 졌다.
그럼에도 벩송의 운동과 지속의 사유가 제반과학에서 내면적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수학에서 위상학의 등장이라든지, 물리학에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등에서도 연관이 있었다. 생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생명계 45억년을 논하면서 장을 넓혔다. 심리학에서 무의식의 실재성이 프로이트에 의해 요소적으로 다루어졌다 하더라도, 기억의 내재하는 실재성은 여전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생명의 시원에 관한한, 생명의 발생의 논의는 오파린(Oparin 1894-1980)의 자연 생성의 가설이 무너져버렸다고 여길 때, 엉뚱하게 천문학자인 세이건(Sagan, 1934-1996)에 의해 자연 생성을 새롭게 제기되었고, 그의 부인이었던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와 더불어 일부분이지만 생명의 외계도래설도 받아들이는 편이다. 생명 기원의 문제에서 철학적으로 다시 논의 되었다. 하나의 뿌리가 아닌 다발의 뿌리의 가설은 여전히 의미 있다.
게다가 정보이론의 발달의 과정에서 모노(Monod, 1910-1976)는 자신의 저술 우연과 필연(Le Hasard et la Nécessité, 1970)에서, 데모크리토스의 견해들 수용하여 발생에서 요소의 결합을 통한 우연과 생명체의 진화의 필연을 설파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분자기계라는 생명체 견해에서, 그것의 활동성과 정체성의 지속에는 답을 하지 못한 셈이다. 여전히 벩송의 말 “철학은 과학의 역할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175쪽)”는 것은 유효하다. 이런 정보이론은 인공지능과 같은 수리정보이론과 맞물려 요소의 조합과 에너지의 순환으로서 설명할 수 있다고 하나, 생명의 활동성과 지속성은 여전히 생명체 안에 있으며 생명과 물질은 다른 질서라는 형이상학적 관점은 유효하다. 마치 물질이 물체와 유기체가 아니듯이.
진화의 과정에 관한 한, 네오 라마르크주의와 네오 다윈주의 여전히 논쟁 중이라 할 수 있다. 다윈주의에 속하는 윌슨의 통섭이론과는 다른 차원의 진화를 인정하는 굴드의 논쟁은 흥미롭다. 굴드는 “단속평형이론”(Punctuated equilibrium)과 스펜드럴(Spandrel, 삼각소간)의 개념을 창안했다. 그는 진화는 진보도 아니고, 사다리 오르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라 하며, 진화에서 우연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한다(풀하우스, 325-326), 벩송의 세분화로서 가지치기와 분산 연속 폭발론으로서 확장론도 여전히 맥을 이어가고 있다.
생명현상과 사회현상과의 관계에서 미토콘드리아의 DNA에 대한 발견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명의 진화에 관한 한, 레인(Nick Lane, 1967-)의 미토콘드리아(Power, Sex, Suicide: Mitochondria and the Meaning of Life, 2005)는 생명체의 분류와 진화에 새로운 논의 관점을 제시하였다. 원핵세포와 진핵세포의 구분에 이어서, 한 세포가 미토론드리아 세포를 받아들이면서 생명의 진화는 공생 또는 진화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 공진화는 또 한 번 벩송의 진화에서 “다발”의 개념을 연상하게 한다. 이런 공생 또는 공감의 효과는 생물학에서 보다 생태학적 관점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1976)의 저자인 신다윈주의자로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와 미토콘드리아의 공생을 수용한 공생주의자인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 사이의 견해차는 여러 학문에 파급되었다. 이는 마치 상층주의자와 심층주의자의 계열들의 영향과 같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생물행태학에서 침펜지 연구자 제인구달 (Jane Goodall, 1934-)와 보노보 연구자 프란스 데 발(Frans de Waal, 1948-)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벩송 식으로는 공간적 사고와 시간적 사유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다윈 아류의 전자의 학자들이 기계론과 목적론의 변형을 받아들여 답을 먼저 두고 해결하려는 주지주의에 머물었다면, 후자의 학자들은 생명을 통한 자연의 이해에서 확장론과 비결정론으로 인간의 본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철학은 자료(데이터)의 총체를 다루면서 인간이 자기 위상과 자연 속에서 지위를 스스로 형성하는 과정이다. 들뢰즈는 이런 온삶(une Vie)이 아직도 완전성에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그 욕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 있으며, 끊임없이 되기(le devenir) 중에 있다. 되기가 계속되는 것은, 벩송에게 있어서 생명 활동이 물질의 저항과 자기에게 내재한 힘 사이에 “경향들의 불안정한 균형(un équilibre instable)”(EC 99)에 기인한다고 한다. 들뢰즈는 시몽동에게서 빌려온 준안정적(metastable)과 닮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태에서도 삶이란 준안정 상태를 잘 유지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53P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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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1: 강도의 정치학: 시몽동과 들뢰즈에 있어서 가속의 몇몇 양상들(A Politics of Intensity: Some Aspects of Acceleration in Simondon and Deleuze) -
시몽동은 개별체들(individuals)보다 개체화(individuation)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개별체는 결코 안정적(stable)이지 않고, 오히려 준안정적(metastable)인 것, 즉 어떤 끊임없는 개체화의 과정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개체적인 것(the pre-individual) – 개체화에 의해 소진될 수 없는 잠재적인 것 - 을 함께 생각해 본다면, 개체화의 새로운 순환이, 어떤 결정적인 안정화 없이 영구적으로 발생된다.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 질료형상론은 형상(morphè)과 질료(hylè)를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직관적 모델로 고려하는 것이다(Simondon 2005).- Simondon, Gilbert (2005) L’Individuation à la lumière des notions de forme et d’information, Paris: Éditions Jérôme Millon.
우리는 ‘내적 공명’이라는 말을 강도와 관련하여, 준안정적(metastable)으로 되기 이전, 다시 말해, 어떤 새로운 순환주기가 시작되기 전, 개체화의 변형 과정을 특성화하는 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시몽동은 여기서 세 가지 순환주기를 정의하는데, 이른바 ‘인간-언어’, ‘인간-종교’, 그리고 ‘인간-기술’이 그것이다. ‘인간-기술’ 순환주기에서, 시몽동은 새로운 대상적 구체화를 관찰하는데, 이는 더 이상 자연 언어나 종교적 의식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술적 개체들’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몽동 ([1958] 2012, 30)은 산업화가 연결된 개체들로 구성된 기술적 개체들과 기술적 체계 둘 모두를 생산해 왔으며, 이것은 인간을 배제한다고 논증한다.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업 이전의 기간에는 도구를 다루면서 일하는 인간이 어떤 연합된 환경(associated milieu)31을 창조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은유적으로나마 그들 스스로 기술적 개체들로 기능했다. - 30 Simondon, Gilbert [1958] (2012) 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 Paris: Aubier. / 31 ‘연합된 환경’은 시몽동이 기술적 개체를 특성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중요한 용어인데, 이것은 기술적 요소들 그리고 기술적 앙상블들과 구별된다. 기술적 개체들은 하나의 연합된 환경을 가지며, 이것은 그것들 스스로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연합된 환경은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의 피드백 논리와도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연합된 환경 개념은 단순히 대상 자체의 어떤 메커니즘이 아니라, 기술-지리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전-혁명적 단계의 전개(unfolding)를 촉진하기 위해서, 집단은 그 스스로를 부적응시키고, 그 자신이 반개체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준안정적 상태에 의해 야기되는 새로운 잠재력들을 증폭하고 통합하는 것과 같은 혁명적 해(solution)의 발명에 필요한 조건들 중 하나가 정확히 사회체의 한 가운데에서 오래된 결속들을 해체하는 것, 차이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Toscano 2012: 92–3). [lu, 53PMJK]
# 참조 2: 서양철학에 대하여
라틴계와 앵글로 색슨계로 나눈다(대륙합리론과 영미경험론은 일반적이다). 이런 분류는 지정학적으로 지증해 와 북해라는 구별에서보다, 문화사적으로 앵글로색슨의 모델은 로마화(romanizer)인데 비해 라틴계는 그리스화(hellénizer)라는 점이다. .
정치 사회상으로 보아 대의민주제와 상하원은 로마 제도에서 온 것이다. 루소가 주장하듯이 일반의지에 의해 직접민주제(담당자 제비뽑기)는 그리스에 있다. 로마는 권력지배로서 시저 이래로 아우구스투스(황제), 그리고 바울의 권세 지배를 세운 것이다. 이에 비해 그리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의가 있고, 그 시대 동방의 제국의 권력도 아니고 전통의 신화의 것도 아닌 새로운 창발을 실행한 인물이 소크라테스라는 점이다.
철학에서 존재론은 이데아가 아니라 아페이론이다. 물론 탈레스가 아르케를 물이라고 했을 때 자연(존재 본성)의 원리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라고 하는 점과 유태인이 신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한 심층에서 공유하는 의식이 있을 수 있다. 아페이론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을 탐구하는 길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벩송은 자연(본성)을 이해하는 두 질서가 있다. 플라톤주의의 길과 플로티노스의 길일 것이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공화국)편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을 대비하여 설명하는 선분의 분할은 유효하다. 사물 대 그림자와 대비에서 이데아와 추론이다. 이런 대비를 상층 이데아(원본)에서 심층의 그림자(아페이론)로 연결지어 설명하려는 티마이오스편은 대우주와 소유주(인간) 사이의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있다. 상층의 철인왕이 지도하는 세상으로 법률편을 쓰면서 세상을 제도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런데 세상은 그의 뜻과 달리 아테네는 소멸했다.
플로티노스는 엔네아데스(9는 완성을 의미한다)에서 하나의 중심체에서 단계를 거쳐서 지속하여 흘러나간다고 한다. 선분의 대비가 아닌 일체(다양체)의 결이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소멸로 나간다. 이 소멸을 니르바나로 읽으면 어떨까? 다시 시작하는 것은 니르바에서가 아니라 일체에서 이기에 영혼은 일체를 향하고 물질은 소멸로 향한다.
바울이 신을 죽이고 부활시키면서 만든 종교가 상층에서 지배하며, 속세의 권세를 누리는 방식을 조작했다. 그 종교는 인간에게 죽음과 심판이라는 공포를 심으면서 굴종과 예속을 정당화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죽음을 대상으로 삼는 사고는 사기라 한다. 스토아 학파는 죽음이후는 사유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을 대상으로 삼는 착각(하구)라고 한다. 이 두 학파의 기원이 소크라테스 제자 계열들 중의 퀴레니와 퀴니코스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상층론의 허구와 사기를 직시한 두 학파는 시뮬라크르(모방)론을 제시하면서, 상층론에 대해 심층론의 전복(le renversement)을 말한다.
개념을 통한 인식론은 개념이 사실들 또는 실재를 말한다고들 한다. 범주를 정하거나, 외연과 내포를 구별하는 이론은 인간의 지성이 발달하면 할수록 세계를 더 잘 이해한다고 여긴다. 칸트가 스스로 아니라고 했다. 자연은 상태이며 과정이다. 이 자연의 내재성으로서 강도를 이해하는 길은 전혀 다른 길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에서 시작하자고 하고, 벩송은 자 안에서부터 솟아나는 창발의 사유를, 들뢰즈는 상태와 과정을 창안하는 개념창조로서 철학 하자고 한다.
지도이념을 상부에 두는 것과 내재성의 발현으로 하는 정치사상은 다르다. 전자에서는 족보(filiation)같은 폴리스의 위계질서를 정립하며, 후자에는 연계(alliance)같은 노마드의 수평 배치가 중요하다. 지도자가 상부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은 위계의 방식이고, 인력을 연결하고 연합하는 배치에서 담지자를 내세우는 것은 수평의 방식이다. 크리스트교가 전자의 방식을 큰 수레 불교가 후자의 방식일 것이다. (53QME)
# 참조 3: 도(道)를 아십니까? *
철학은 지혜를 사랑한다(philo sophia)고 한다. 동양에서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불교에 열반(니르바나, 촛불이 꺼지다)에 든다고 한다. 서산대사는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 천가지 만가지 생각이),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 화로 위의 눈 한송이)이라 한다. 이 지혜, 도(道), 열반, 돈오 등은 영혼의 활성화의 욕망을 실현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 인성의 욕망(desir)을 자본주의 탐욕이나 관능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인문주의자(le humaniste)와 인성주의(le humanitaire), 상품자유주의자(liberaliste), 인성자유주의(le libertaire): 전자들에는 오만과 배제가 있고, 인간도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후자에는 배려와 헌신이 있다.
상층의 권력, 권세, 권위에서 눌려 죄수 또는 포로가 된 인민은 먼저 원한에 빠지고 그리고 자책으로 양심가책과 원죄라는 자기기만이 스며든다. 상층의 동정은 연민(la pitie)이 아니다.
이 상층의 절대에는 아이러니 닮은 이중 구속이 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둘이라는 이선택지가 아닌 다른 행동, 달리 말하기, 달리 살기를 하는 길이 있다. 이 길을 플라톤은 같잖은 생각(nothos logos)라고 했다. 같지 않은 생각, 같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아이러니 해소: 헤라클레스 또는 퀴니코스(안티스테네스)의 활동
[들뢰즈의 이중집게] 생성의 과정을 걷는다.
엔크라테이아(Enkrateia/ἐγκρατεία 자기조절, 자기지배)
오이케이오시스(Oïkéiosis/οἰκείωσις) (자기를 자기로 파악하는 것: 헌신)
철학 이전에 두 계열이 있다. 위계의 폴리스와 들판의 노마드가 있다. 폴리스는 어느 날 갑자기 지배자가 들어선다. 영웅 지배 신화는 서사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이집트의 세트, 인도의 비누슈, 중동의 모세, 동방의 치우, 그리스 제우스 등은 전쟁의 신화이다. 인간은 그리스든 중동이든 흙으로 빚어진 자연의 산물이다. 철학의 기원으로 자연이 도래할 것이다.
구전에서 문헌으로 변화 시기에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을 그리고 아낙시메네스는 숨결을 말하고, 에스겔은 구전을 두루마리고 만든다. 공자는 주역을 정리하고, 싯달다는 수트라를 설법한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하나는 동방의 제국이라는 권력에 복속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신화에 대한 맹목성에 빠지지 않는 사유이다(들뢰즈).
소크라테스는 이런 생각으로 젊은이들에게 생각의 활성화를, 사회에는 새로운 양심(다이모니아)를 심으려 했다. 부타는 브라만의 범아일체와 달리 자아에 탐욕에서 벗어나는 욕망이 지혜의 체득(體得) 또는 심득(心得)라고 했다. 왜 이런 체득은 계속되지 않았던가.
평화통일은 지성만으로 안된다. 무의식의 직관(본성, 본능, 연민, 자애)가 필요하다. 빌게이츠와 이명박은 기증은 무상보시가 아니다. 빌 게이츠의 자식과 트럼프의 자식은 백신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백신을 투자한다.
공동체의 주제: 자애, 자비, 무상보시 - 주다(donner, le don) 베풀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포틀래치 – 모스, 사르트르, 블랑쇼
공산주의: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자기 필요에 따라:
스토아 아카페(αγάπη); 동양서 자애(慈愛), 인도서 <마이트레야> <카르나> 자비(慈悲)
가진 것이 있다는 것을 베풀 수 있다. 가지는 것은 자기 소유라고 여기는 것은 로크 이래로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것이다. 준다. 다 준다. 그러면 없으면 받으면 된다(각자에게는 자기 필요에 따라) 어린이나 노인처럼 능력이 없을 경우에 받으면 된다.
세상을 지도하는 두 길이 있다. 자연의 이중성과 신의 이중성에 있듯이.
자연은 자기 생성이다. 자연의 신의 도구이다.
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은 모습을 드러냈다(죽었다 부활한다: 이것은 사기다)
상층 형이상학(nomos) 대 심층 형이상학(아페이론)
이데아론과 주지주의 자연주의와 지속주의
지성이 먼저 지각(직관)이 먼저
단일성(통일성) 다발(뭉치)
이데아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특이성을 발휘하고 창발하려는 방식이다. (53QME)
*참조4: 인도자와 아제인간
3인 또는 5인이 모여서 접주로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이 다시 5인이 모이는 곳에서 주제자가 있고(25인), 이들이 다시 다섯 그룹의 5인의 지도자가 있고(125인), 그리고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인도자(625인)들이 있고, 그리고 총괄해서 발산과 수렴을 하는 창안자(영도자)(3125인)이 있을 수 있다. 그의 5인 지도자는 창안들을 기록, 정리, 기억하며 세분화하여 확장하는 파(공명자, 공생자)가 있을 수 있다(15625). 기억의 축적에서 길어 올린 미래인간(아제인간)의 짐은 가볍고 세상의 삶은 주사위 놀이처럼 이루어 갈 것이다.
접주의 기본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각 접 또는 주가 되어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아제 인간의 삶을 방기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개별접과 개별주는 자치와 자주가 기본이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연대하여 지역 또는 사회를 이끈다는 생각을 하는 자들은 마름과 같다. 마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찾는다. 이에 비해 접주는 포틀래치에서 출발한다.
마름(주구), 조폭의 똘만이, 제국의 마름들은 자기의 작은 이익(떡고물)을 챙기고자 권력, 권세, 권위에 아첨하고 굴종하여, 이민의 삶을 제국의 노예로 만든다. 그 마름은 인민들 위에 군림하면서 인민을 개돼지처럼 취급하기 일 수 있다. 인민들이 제국은 미국이고 일본이었다. 과거 일제의 군국주의의 주구였고, 이제는 미제의 군산업체의 주구 노릇하면서 남쪽에서 지위를 누리는 것을 자랑 또는 행복으로 여기는 부일/숭일파와 숭미/종미파가 오래 집권하였다. 이 집권에 TK가 앞장섰다. 그 여파로 대구와 강남이 같은 사고에 젖어있다. 이 상층론의 사고에서 나온 언어는 소통이라 말하지만, 아래로 명령이다. 이 명령은 자기를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행을 퍼뜨린다. 자기를 넣으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면, 명령과 억압을 하지 않을 것인데 자기를 빼기 때문에 그런 사고에 익숙하다. 다른 사유는 인민들 사이에 연대와 동맹이다. 서로가 삶에서 소통하는 산보와 여행이 필수적이다. 이 소통은 공감과 공명으로 이루어져, 산보와 여행에서 그 지역과 그 삶에 필요한 것을, 주기(le don)를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볼턴, 아베, 나베, 무쫄은 제국의 이익에 종사한 마름들이다. 제국의 대표는 트럼프와 군산복합체이다. 우리나라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지배하는 집단으로 한미워킹그룹이었다. 이들에게 가서 재가를 받았던 숭미 또는 종미주의자들이 70년을 지배해왔다. 이들 상층론자들에는 국가, 자본(재벌), 교회가 있다 이들은 상층에서 표면으로 자신들의 모방체들을 만들고 지배한다. 스스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방체를 “빨갱이”로 몬다. 이들은 두가지를 선가정한다. 하나는 자연을 지배하는 신같은 것이 있다. 다른 하나는 신같은 것을 아는 이성이 있는 위대한 인간이 있다. 그리고 덧붙여서 자연지배와 이성의 인간이 아닌 자들은 빨갱이, 유물론론자, 공산주의자로 배제하거나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 배척과 배재에는 배중율을 사용하고 자신들은 동일율에 있다고 착각한다.
이들의 잘못을 받아들이 일제의 철학, 그리고 앵글로색슨의 철학의 피해가 언어의 지배이다. 시중에 간판과 아파트 이름을 보라, 미 제국의 똘만이가 되었다. 게다가 상층의 허구에서 정합성과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조작과 거짓 소식(허구, 우화, 신화)을 만든다. 편집증 환자를 만든다.
이에 인민의 모방을 각성하게 하는 것이 자연의 자발성, 자연 속에서 자치성, 자연과 더불어 자주성, 그리고 인간의 자유가 이루어지리라. [만디를 전자서]
상층론은 마치 여섯 살짜리처럼 조작과 우화를 먹고 자란다. - "1983 버마", “1983 대구 미문화 폭파” “1987 김현희”, “2010 천안함”에서 봇듯이 - 여섯살 꼬마는 “애기를 황새가 물어 왔다” “산타클로스 할배가 현존한다”고 믿는다. 그가 학교를 다니면서도 믿으면, 그는 편집증환자가 된다. 자기 이야기를 믿지 않은 자를 분열증 환자 취급한다. 광주의 항쟁이후 전두환의 말을 믿는 지만원이 파라노이아의 전형이며, 인민들 중에는 판단을 먼저 할 수 없어서 전두환을 선전했던 지상파방송과 광주항쟁의 뜻을 기리는 유투브 방송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여 스키조를 겪고 있다.
파라노이아는 당연히 자기 쪽이 선량하고 스키조쪽을 미친놈, 빨갱이, 나쁜놈이라 한다. 그러나 무지랭인 인민은 스스로를 착하다고 여기고, 사실을 속이고 조작하고 강요하는 상층자야 말로 사악하고, 악마같은 나쁜 놈이라 한다. 세계사에서 이런 사악한 짓을 한 집단과 인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 니체에 의하면 그 중에서 가장 나쁜 자가 바울이다. 한 인간을 신으로 만들려고, 신을 죽이고 신을 부활하게 하는 그런 이야기를 믿게 했다. 이 사악한 인간을 도운 것은 “묵시록”이다. 로렌스가 말하기를 인민에게 공포를 심어서 마름(신부 목사)들의 말을 듣게 만든 문헌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악하고 사악하다.
인민은 착하고 착하다는 것을 싯달다의 그 많은 설법에서 알 수 있다. 인민에는 불성이 있어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일제 60년 미제 60년에서 인민이 스스로 착하다고 느낀 것은 세월호 사건(2014)이었다. 이 사건 이전에 어느 하나 인민이 말을 걸거나 착하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상층은 김현희와 천안함처럼 만들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군사와 남북관계도 아니며, 희생자가 꽃다운 방년의 단원고등학생들이었다. 누가 이에 대해 음모와 군사비밀이라고 설레발치면서 입을 막을 수 있었겠는가! 상층의 미제와 일제 앞잡이들에게 균열을 일으킨 것은, 게다가 그렇게 잘 써먹은 음모론에 반기를 든 것은, 이 고등학생들이었다.
음모론이 먹히는 것은 사실에 대해 반복하고 순서를 가역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세월호는 실시간으로 전개된 과정을 인민이 보았고 느꼈다. 누가 뭔가를 속이고 감추고 있다고. 인민은 선하고, 상층은 사악하다.
인민은 스스로 균열을 낼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안다. 셋 또는 다섯이 모여 실시간의 사실의 선들을 만들고, 이항 선형이든 다항 선형이든 연대와 연합을 만들고, 그 연결의 파를 넓혀서 지도선을 만들면서 선도의 인도선을 만들어가는 것이 행동하는 길이고, 노마드의 파장에서 지도자 인도자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실재적 장에서 출발하여 선형으로서 지도선을 공감하고 선도하는 인도선에 공명하며 확장할 때, 이 선도하는 선들이 전쟁기계이다. 이 전쟁기계는, 기존의 강압 국가, 재벌이 지배하는 자본, 그리고 국가와 재벌을 옹호하고 기생하며 인민에게 빨대를 들이대는 성직자와 학문자, 이들을 파열시키고 새로운 장과 터전을 만들어 공화국을 이룩하리라. 다음인간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되기, 새로운 행하기, 새로운 말하기, 새로운 쓰기가 생성되리라.
인류사는 과거의 관습적 두께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창안과 발명의 역사였다. 데카르트, 갈릴레이, 뉴턴, 라마르크, 다윈, 멘델, 파스퇴르 등이 있었듯이, 이런 실증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은 다른 소리(nothos logos, 같잖은 논리)도 끊임없이 나온다. 이 이질반복의 지도와 인도를 넘어서 세분화와 공명의 파를 확장하는 생성의 온삶(une Vie)이 있다. 이런 삶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욕망이다. 욕망은 탐욕도 관능도 이기심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노력을 하는 이는 역사상으로도 드물다. 그런데 싯달다에서 보면 저 산골짜기 곳곳에서 사는 이들은 가뭄에 굶어죽는 한이 있어더로 다음 곡식을 베고 죽지, 먹고 죽지 않는다. 이런 삶이 아제인간의 삶이다. (53QMF)
참고 문헌
*창조적 진화에 관하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황수영 역, 아카넷, 2005
박홍규,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 강독, 박홍규전집 5, 민음사, 2007
류종렬,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적’관점들, in 박홍규의 형이상학의 세계, 2015 [이 논문은 창조적 진화 3장과 4장에 걸친 내용으로 주지주의의 세 가지 착각에 관한 비판이다.]
* 베르그송 전반에 관하여
바를텔미-마돌, 처음 읽은 베르그송, 류종렬 역, 동녘, 2016.
쟝켈레비치, 깊이 읽는 베르그송, 류종렬 역, 갈무리, 2018
류종렬, 달리 읽는 베르그송, 갈무리, 2020 예정.
* 물질과 생명, 진화에 관하여
최종덕, 생물철학: 생명의 역사를 관통하는 변화의 철학, 생각의힘, 2014, 554쪽
스티븐 굴드, 풀 하우스(Full house: The Spread of Excellence From Plato to Darwin 1996), 이명희, 사이언스북스, 2002.
닉 레인(Nick Lane, 1967-), 미토콘드리아, 김정은 역, 뿌리와이파리, 2009, P.536.
짐머(Carl Zimmer 1966-), 진화(Evolution: The Triumph of an Idea, 2001), 이창희 역, 세종서적, 웅진지식하우스, 2018 (이 책은 굴드의 기획으로 쓰여졌고, 굴드가 서문을 썼고, 다음해 세상을 떴다.)
* 철학 학력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위한 입문서
마리-크리스틴 모렐, 생명의 기원은 무엇인가?(2003), 김희경, 민음IN 12, 2006
프랑수아즈 발리바르 외 2인, 물질이란 무엇인가(2005), 박수현, 알마, 2009,
샤를 오프레, 유전자란 무엇인가(2004), 김희경, 민음IN 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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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 1895) 프랑스 생화학자, 로베르트 코흐와 함께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분자의 광학 이성질체를 발견했으며, 저온 살균법, 광견병, 닭 콜레라의 백신을 발명했다.
1822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 식물실험자. - 완두콩을 이용한 7년의 실험을 정리하여 1865년에서 1866년 사이에 유전학 법칙을 발표. 1900년 유럽의 식물학자 (독일) 칼 에리히 코렌스(Carl Erich Correns 1864-1933), (오스트리아) 에리히 체르마크-세이세네크(Erich von Tschermak-Seysenegg 1871-1962), (네델란드)휴고 드 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 등이 각각 멘델과 비슷한 결과를 얻어내고 34년 전에 발표된 실험결과와 개괄적인 원리를 문헌에서 찾아냄으로써 그는 죽은 뒤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48 드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 네덜란드의 식물학자․유전학자. 유전학에서 돌연변이(la mutation) 개념 창안. 식물생리학에서는 호흡작용․팽압․원형질 분리 등을 주로 연구하였고, 유전학에서는 식물의 잡종에 관한 연구를 하여 유전현상에 대해서 세포 내 팡겐설(Pangen)을 제창하였다. / Intracellular Pangenesis (1889)
1864 카를 코렌스(Carl Erich Correns, 1864-1933) 독일 식물학자, 유전학자. 1897년 식물의 교잡으로 F1의 형질이 어미식물의 몸에 즉시 나타나는 크세니아 현상을 발견, 1900년 4월 네덜란드의 H.드 브리스, 오스트리아의 E.체르마크
1871 체르마크(Erich Tschermak, Edler von Seysenegg 1871–1962) 오스트리아 농학자, 유전법칙 재발견자들 중 한사람.
1894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 미국 수학자, 철학자.
1900 H. 드 브리스․K.E. 코렌스․S.E. 체르마크 등이 각각 독립적으로 멘델법칙을 재발견
[1884년에 멘델이 사망한 후 16년이 지난 1900년에 코렌스(Carl Erich Correns, 1864-1933), 체르마크(Erich Tschermak, 1871–1962), 드 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라는 세 명의 과학자가 같은 시기에 멘델의 연구를 다시 발견하여 멘델의 업적은 세상에 알려졌다.]
1901년 12월 드브리스의 돌연변이 발견은 식물학자의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달맞이꽃(Oenothera)(Une espèce qu'il nomme Oenothera lamarckiana, mais qui devait être, en réalité, Oenothera glazioviana Micheli)변형이 되었다.
1924 질베르 시몽동 (Gilbert Simondon, 1924-1989), 프랑스 철학자, 파리5대학 심리학부 교수. 주논문인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와 부논문인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1941 스티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 미국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동갑으로 굴드가 6개월 어리다.)와 대척점에 서 있던 학자.
1951 B. 매클린톡(1902-1992), 움직이는 유전자좌 발견
[1952년 허시(A. Hershey)와 그 제자 체이스(M. Chase)가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를 이용한 실험을 하여 유전자의 본체가 DNA라는 사실을 거의 확정적으로 만들게 된다]
1952 비히(Michael J. Behe (/ˈbiːhiː) 1952-) 미국 생화학자.
1953 영국의 화학자 크릭(Fancis Crick)과 미국의 젊은 천재 왓슨(James D. Watson)의 DNA 나선 구조 발견. 생명은 화학 물질이었고, 유전의 물질적 기초는 DNA였다.
1961년 F. Jacob와 J. Monod가 Escherichia coli로 부터 락토스 오페론을 처음으로 발견해 내었으며, 1965년 F. Jacob와 J. Monod는 이를 발견한 공로로 A. M. Lwoff와 함께 생리의학부문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1966 짐머(Carl Zimmer 1966-), 미국 과학 작가, 기자. 진화(Evolution: The Triumph of an Idea, 2001)
1977 토스카노(Alberto Toscano, 1977-) 이탈리아 문예비평가, 사회이론가, 철학자, 번역가(알랭 바디우 전문가)
창진 해재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