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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포로수용소
원제 : Stalag 17
1953년 미국영화
제작, 감독, 각본 : 빌리 와일더
출연 : 윌리암 홀덴, 피터 그레이브즈, 로버트 스트라우스
돈 테일러, 오토 프레밍거, 하비 렘벡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작
다뉴브 강 근처에 위치한 제17포로수용소는 모두 630명의 미군 중사들을 가둬놓은 독일군 포로수용소이다. 194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제4막사에 있던 두명의 포로들이 탈출을 기도하다가 그만 독일군들에 적발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당하고 만다. 비단 이 사건만이 아니라 제4막사에서 비밀리에 일어나는 ‘금지된’ 행동들은 모두가 독일군에 발견된다. 아무래도 이 막사에는 독일군쪽에 정보를 제공하는 끄나풀이 있는 게 틀림없다. 포로들은 세프턴(윌리엄 홀든)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세프턴이란 작자는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인물이기에 이건 정당한 의심이다. 그 의심이 ‘증거’에 의해 사실이 되었다고 여겨질 때 세프턴은 동료 포로들로부터 가혹한 린치를 당한다.
<제17포로수용소>는 우선 이어지는 코믹한 순간들이 보는 이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영화다. (1955)과 <뜨거운 것이 좋아>(1959) 같은 영화들에서 발휘되었던 빌리 와일더의 유머감각이 여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료들로부터 ‘애니멀’이라 불리는 인물(로버트 스트라우스)은 무엇보다도 관객에게 코믹한 순간들을 선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 캐릭터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완수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러시아 여군 포로들이 목욕하는 것을 보기 위해 건너편 포로수용소로 태연하게 걸어갈 때나 당대의 스타 베티 그레이블에 대한 간절한 사랑을 표현할 때, 영화는 보는 이들로부터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제17포로수용소>는 그 밖에도 다른 여러 인물들로부터도 코믹한 순간들을 빚어내는 흥미로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마냥 유쾌한 영화라고 간주하면 명백한 오해이다. 와일더의 작가적 인장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싸늘한 ‘냉소주의’를 꼽을 텐데, 그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17포로수용소>에서 그 대변인이 되는 인물이 세프턴이다. 그는 제17포로수용소의 유일한 경마 클럽(실은 쥐를 이용하지만)의 운영자인 동시에 증류주를 제공하는 바의 운영자이면서 건너편 러시아 포로들의 여체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그건 모두 자선행위가 아니라 영리활동들이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개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수용소에서 편하게 지내겠다고 말하며 그러기 위해 독일군과의 ‘더러운’ 거래도 서슴지 않는 세프턴은 세상보다는 자기 자신을 믿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이다.
당연히 그는 세상과 불화의 관계를 맺으며 그 잔인한 세상에 고독하게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제17포로수용소>는 포로수용소 영화의 틀을 빌린 필름누아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일더는 세프턴의 투쟁을 그리면서 그가 범상한 동료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함으로써 그와 그의 세계관을 옹호한다. 다른 동료들이 못했던 중요한 일을 결국 해내는 것이 세프턴이다. 막사 내의 끄나풀을 잡아내는 이도, 다른 누구도 감히 성공하지 못했던 탈출을 해내는 이도 바로 세프턴인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 일종의 ‘영웅적’인 행위를 수행해내지만 그건 통상적인 영웅이 그랬던 것과 달리 선의에 의한 행동은 결코 아니다.
세프턴이 독일쪽 정보원을 잡아낸 것은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함이었고 또 그가 장교와 함께 탈출한 것은 억압적인 독일군들로부터 자유를 찾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동료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세프턴의 불화의 태도는 탈출하기 전에 분명히 드러난다. 동료들을 향해 그는 나중에 길에서 마주칠 때가 오더라도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지나쳐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장교를 데리고 탈출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게 빈정대는 말을 던진다. <제17포로수용소>가 와일더의 최고작이라고 말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적절하게도 이것이 “개인주의를 위한 변명”이라고 썼다. 이걸 고쳐보자면 <제17포로수용소>는 개인주의를 위한 그저 변명만인 것이 아니라 필사적인 변명이라고 이야기해도 될 듯싶다.
'로라' '슬픔이여 안녕' '영광의 탈출' 등으로 알려진
오토 프레밍거 감독이 여기서는 배우로 직접 출연한다.
제 17 포로수용소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대체로 이런 영화들이 '탈출'이라는 것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는 반면 이 영화는 수용소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위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탈출'이라는 소재가 활용되지만
주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스탈락 17'이라고 불리우는 독일군이 관리하는 포로수용소, 총 600여명의 포로들이 함께 생활하는
이곳의 한 막사에는 매우 수완이 좋은 미국인 선임하사 세프톤(윌리암 홀덴)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적십사에서 보내주는 구호물품을 잘 활용하여 수용소내에서 일종의 '사업'을 벌여서 쏠쏠하게
재산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내기에도 능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담배를 이용하여 독일인을 매수하여
얻기도 합니다. 세프톤이 있는 막사에서 포로 2명이 탈출하다 독일군에게 사살된 사건이 발생하고
막사내에 '스파이'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포로들은 독일군을 잘 매수하는 세프톤이
범인을 것이라고 의심하여 그를 구타하고 왕따시켜버립니다. 세프톤은 무고함을 강변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습니다. 결국 세프톤은 스스로 범인을 찾아나서게 됩니다.
스파이와 독일군의 접선 수단인 전등의 신호와
장기판 말을 통한 전달
영화속에서 포로들의 흠모의 대상인 배우 베티 그레이블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지명도가 없는 편이지만
핀업걸의 대명사같은 여배우이며 실제로 전시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배우였다.
40-50년대 헐리웃을 대표하는 재능있는 영화인 빌리 와일더가 제작과 감독을 함께 했고 공동각본까지
겸하고 있는데 연출, 시나리오, 연기 모든 면에서 빈틈이 없는 영화입니다. 포로수용소 라는 세계를
아주 흥미롭게 다루고 있고, 그곳에서의 포로들의 삶과 독일군과의 신경전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연 스파이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과정은 일종의 '추리극'을 방불케 합니다. 전쟁과 군인을
소재로 하였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함과 경쾌함을 함께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애니멀'
역을 연기한 로버트 스트라우스가 영화를 유쾌하고 코믹하게 이끄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로라' '슬픔이여 안녕' '영광의 탈출'등을 연출한 명감독 오토 프레밍거가 독일군 사령관으로 직접
출연하고 있습니다. 대위로 출연한 돈 테일러 역시 '오멘2' '혹성탈출 3편'등을 연출한 감독으로 더
유명한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윌리암 홀덴은 적역을 맡아서 유감없이 연기를 펼치고 있는데 냉소적이면서 예리한 주인공역을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상술만 뛰어난 야비하고 이기적인 인물로 보여지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머리가 좋고 냉정하면서 용맹스런 역할로 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의심하는데 앞장섰던 동료가
사과하려는데 '잊어버리게'라고 용서하는 쿨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고, 마지막에 대위를 구해서 탈출하는
역할까지 합니다. 비호감같이 등장하여 영웅으로 끝나는 역할입니다.
스파이의 단서가 될 전등의 역할을
발견하는 윌리암 홀덴
같은 해 제작된 걸작 전쟁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대부분의 아카데미상을 가져갔는데 '남우주연상'은
제 17 포로수용소의 윌리암 홀덴이 가져가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항간에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버트 랭커스터와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표가 분산되어 어부지리로 윌리암 홀덴이 수상했다고도 하지만
영화의 직적 수준이나 완성도, 그리고 배역의 중요도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상의 자격이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대부분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으로서 연출가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로서
더 큰 재능을 보였던 인물인데 '잃어버린 주말'과 '아파트의 열쇠를 빌려줍니다'에서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본상을 함께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작성한 빈틈없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빼어난 연출감각을
발휘하여 영화를 만드는 그는 '선셋대로' '사브리나'에서도 윌리암 홀덴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습니다.
좋은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면 소재가 무엇이든 재미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거기에
일급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이 따라주었으니 제 17 포로수용소는 아주 근사한 영화로 뽑혀져
나온 작품입니다. 두시간동안의 시간이 지루할틈이 없이 물흐르듯 흘러가는 작품으로 50년대
헐리웃 영화의 장점을 느낄 수 있는 추억의 고전입니다. 완성도가 높고 재미도 매우 뛰어난 걸작으로
전쟁소재 영화중에서는 가장 부담없이 술술 넘겨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영화에 관심을
갖는 분들은 한 번은 꼭 볼만한 작품으로 추천하기에 손색이 전혀 없는 영화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포와로나 셜록 홈즈가 범인을 밝히듯이
내부 스파이를 밝히는 장면
윌리암 홀덴은 수완좋고 머리좋은 포로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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