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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경_78. 사섭품(四攝品), 공, 법보시, 세간과 출세간, 유위와 무위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모든 법이 꿈과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지랑이와 같고, 환영과 같고 변화로 만들어진 것과 같아서, 실체가 있을 수 없고, 무소유의 성품이고, 자상이 공이라면, 어찌하여 이것은 선한 법이고 이것은 선하지 않은 법이며, 이것은 세간법이고 이것은 출세간법이며, 이것은 유루법이고 이것은 무루법이며, 이것은 유위법이고 이것은 무위법이라고 분별하는지요?
그리고 어찌하여 이 법이 능히,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를 얻고, 능히 벽지불도를 얻고,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는 꿈을 얻고 꿈꾸는 자를 얻고, 나아가 변화로 만들어진 것을 얻으며 변화로 만들어진 것을 보는 자를 얻느니라. 몸과 말과 뜻에서 선한 업과 선하지 않은 업과 무기의 업을 일으키고, 복업과 죄업을 일으키고 움직이지 않는 업을 짓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두 가지 공인 필경공(畢竟空)과 무시공(無始空) 가운데 머물러서,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되 이렇게 말하느니라.
‘모든 중생들이여, 이 물질은 공이고 무소유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공이고 무소유이고, 12처 또는 18계는 공이고 무소유이다.
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꿈이고, 12처와 18계는 꿈이다.
물질은 메아리이고 그림자고 아지랑이고 허깨비고 변화로 만들어진 것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이와 같다.
12처와 18계도 메아리고 그림자이고 아지랑이고 환영이고 변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가운데에 5중, 또는 12처, 또는 18계는 없고,
꿈도 없고 꿈꾸는 자도 없다.
메아리도 없고 메아리를 듣는 자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그림자를 보는 자도 없다.
아지랑이도 없고 아지랑이를 보는 자도 없고, 환영도 없고 환영을 보는 자도 없다.
변화로 만들어진 것도 없고 변화로 만들어진 것을 보는 자도 없고,
온갖 법은 근본적으로 진실한 성품이 무소유이다.
그대들은, 5중이 없는 속에서 5중이 있다고 보고, 12처가 없는 것에서 12처가 있다고 보고, 18계가 없는 것에서 18계가 있다고 본다. 이 온갖 법은 모두 인연이 화합하여 생하고 뒤바뀐 마음으로 일어나고 업의 과보에 속하느니라.
그대들은 무슨 까닭에, 모든 법이 공이고 근본적으로 없는 속에서, 근본적인 모양을 취하는 것인가?’
이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방편의 힘을 가지는 까닭에, 인색한 법으로부터 중생을 끄집어내고 구출해서는 단나바라밀을 행하게 하니, 이 보시의 공덕으로써 큰 복의 과보를 얻느니라.
큰 복의 과보로부터 끄집어내고 구출하여 계를 지니게 하니, 계를 지니는 공덕으로 천상의 존귀한 곳에 태어나느니라. 다시 끄집어내고 구출하여 초선에 머물게 하니, 초선의 공덕으로 범천처(梵天處)에 태어나며, 제2선ㆍ제3선ㆍ제4선ㆍ무변공처ㆍ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도 그와 같으니라.
중생이 행하는 보시 및 보시의 과보, 또는 지계 및 지계의 과보, 또는 선정 및 선정의 과보 등, 모든 인연으로부터 끄집어내고 구출하여, 무여열반 및 열반의 길 가운데 편안히 있게 하느니라.
이른바 4념처, 또는 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ㆍ공해탈문ㆍ무상해탈문ㆍ무작해탈문이니라.
그리고 8배사ㆍ9차제정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이니라.
중생을 안온하게 하며 성스럽고 무루인 법, 또는 물질이 없고 형태가 없고 걸림이 없는 법 가운데 머물게 하니,
수다원의 과위를 얻을 만한 자가 있으면, 안온하게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에 머물게 하고,
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를 얻을 만한 자는, 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에 머물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만한 자는, 안온하게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에 머물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매우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일을 합니다.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든 법의 무소유 성품과, 필경공과, 무시공에도 불구하고, 모든 법에 대해, 이것은 선함이고 이것은 선하지 않음이고, 이것은 유루이고 이것은 무루이고, 나아가 이것은 유위이고 이것은 무위라고 분별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모든 보살마하살은 매우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일을 하니, 능히 이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든 법의 무소유 성품과, 필경공과, 무시공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법에 대해 분별하느니라.
수보리야, 너희들이 만일 이 보살마하살의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법을 안다면, 곧 그것은 성문이나 벽지불이 터득하지 못하는 것임을 잘 알 것이다. 하물며 어찌 나머지 사람이겠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법이어서,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일심으로 자세히 들어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과보로 얻는 6바라밀 가운데 머물고,
과보로 얻는 5신통 또는 37조도법에 머물고,
모든 다라니와 무애지에 머물러 시방국토에 도달하고,
보시로써 제도해야 할 자는 보시로 포섭하며,
지계로써 제도해야 할 자는 지계로 포섭하며,
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로써 제도해야 할 자는, 거기에 상응하는 바를 따라서 포섭하느니라.
초선으로 제도해야 할 자는 초선으로 포섭하고,
제2선ㆍ제3선ㆍ제4선ㆍ무변공처ㆍ무변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로써 제도해야 할 자는, 거기에 상응하는 바를 따라서 포섭하느니라.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으로써 제도해야 할 자는,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으로써 포섭하며,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ㆍ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로써 제도해야 할 자는, 거기에 상응하는 바를 따라서 포섭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보시로 중생을 풍요하고 이익되게 하는지요?”
“수보리야,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그 필요로 하는 바에 따라서 보시하되, 음식ㆍ의복ㆍ수레ㆍ향ㆍ꽃ㆍ영락 등 모든 생활필수품을 남김없이 제공하느니라.
그리고 공양할 때 부처님ㆍ벽지불ㆍ아라한ㆍ아나함ㆍ사다함ㆍ수다원 등과 같이 하여 다름이 없느니라.
또는 베풀 때에는 바른 도 가운데 들어가서, 사람 및 범인, 또는 아래로는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분별없이 평등하게 보시하느니라. 왜냐하면 일체법은 다르지 않고 분별이 없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다름이 없고 분별할 수가 없이 보시를 하고 나서, 분별이 없는 법의 과보인 이른바 일체종지를 얻느니라.
수보리야, 만일 보살마하살이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부처님은 복전인 까닭에 나는 공양해야 하지만, 짐승은 복전이 아니라 공양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보살의 법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켜서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 중생은 보시로써 풍요하고 이익되게 해야 하고, 이것은 이 중생에게 보시해서는 안 된다. 보시의 인연으로 큰 가문의 왕족ㆍ큰 가문의 바라문ㆍ큰 집의 거사로 태어나고, 나아가 이 보시의 인연으로 3승법에 의하여 이들을 제도하여 무여열반에 들게 한다.’
만일 중생이 찾아와서 보살에게 구걸할 때, 또한 다른 마음을 일으켜서,
‘이 사람에게는 주지 않아야 한다’고 분별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은 이 중생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니라. 만일 분별하고 간택하면, 곧 모든 부처님ㆍ보살ㆍ벽지불, 그리고 유학인(有學人)이나 무학인(無學人), 또는 일체 세간의 하늘 및 인간이 꾸짖는 곳에 떨어지고 마니,
‘모두가 그대에게 온갖 중생들을 구하고, 그대가 온갖 중생들의 집이 되고, 온갖 중생들의 구호처가 되고, 온갖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길 바라지만, 누가 주는 것과 주지 않는 것을 분별하여 간택하기를 바라겠는가’라고 꾸짖느니라.
또한 가령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사람이나 혹은 사람이 아닌 것이 찾아와서 보살의 몸 마디마디를 구걸하고자 할 때에, 준다거나 주지 않는다고 하는 두 가지 마음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해서 몸을 받았으니, 중생이 찾아와서 가지려 하는데 어찌 주지 않겠는가?
‘내가 중생을 풍요하고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이 몸을 받았으니, 중생이 구걸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것을 주어야 하거늘, 어찌 하물며 구걸하는데 주지 않겠는가’라고 해야 하니,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그와 같이 배워야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구걸하는 사람이 있음을 보면, 이러한 생각을 일으켜야 하느니라.
‘이 가운데 누가 주고 누가 받고 베푸는 바 물건이 무엇인가?
이 온갖 법의 자기 성품은 모두가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공의 모습으로서의 법은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필경공인 까닭이다. 필경공 또는 내공ㆍ외공ㆍ내외공인 까닭에 보시하되 단나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또는 대공ㆍ제일의공ㆍ자상공인 까닭에 모든 공에 머물러서 보시하니, 이때에 단나바라밀을 구족하느니라. 단나바라밀을 구족하는 까닭에 가령 안팎의 법을 끊을 때에는 생각하기를,
‘나를 끊는 자는 누구이고, 나를 베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佛眼)으로 동방에 있는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보살마하살을 보니, 큰 지옥에 들어가서 불을 없애고 끓는 물을 차게 하고 세 가지 사건으로써 교화하니,
첫째는 신통(神通)의 신변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두 다 아는 신변이요,
셋째는 설법(說法)의 신변이니라.
이 보살은 신통의 신변으로 큰 지옥의 불을 없애고 끓는 물을 차게 하느니라. 그리고 다른 자의 마음을 모두 다 아는 신변이 있으니,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에 입각해 뜻에 따라서 설법하느니라.
이 중생은 보살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고, 지옥에서 벗어나게 되고, 차츰 3승의 법으로 괴로움을 다하게 된다. 남ㆍ서ㆍ북 방과, 그 사이 네 방향과, 위ㆍ아래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으로 시방세계를 관찰하여,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국토에 있는 모든 보살을 보니, 모든 부처님을 위해서 받들어 섬기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느니라. 마음에 따라서 즐겨 사랑하고 존경하고, 혹은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남김없이 능히 받아 지니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결코 잃지 않느니라.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시방의 국토에 있는 모든 보살마하살을 보니, 축생을 위해서 그 수명을 버리고 몸을 절단하여 모든 곳에 흩느니라. 어떤 중생들로서 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육신을 먹는 자는 모두가 보살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사랑하고 존경함에 의하여 곧 축생의 길을 떠나게 되어 모든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설한 대로 수행하여 차츰, 성문ㆍ벽지불ㆍ불법의 3승으로 무여열반에 있어서 완전한 열반에 드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익되게 하는 바가 매우 많으니, 중생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설한 대로 수행하게 하고 나아가 무여열반에 있어서 반열반하게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시방의 국토에 있는 모든 보살마하살을 보니, 모든 아귀들의 목마른 괴로움을 없앤다. 이 모든 아귀들은 모두가 보살을 사랑하고 공경하니, 사랑하고 존경함에 의하여 아귀의 길을 떠나게 되어 모든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설한 대로 수행하여 차츰, 삼승인, 성문ㆍ벽지불ㆍ불법으로서 반열반하고 나아가 무여열반에 드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큰 슬픔의 마음을 행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으로 보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사천왕천 위에서 설법하고, 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자재천 위에서 설법하느니라. 모든 하늘들은 보살의 설법을 듣고서, 차츰 3승으로 깨달음을 얻느니라.
수보리야, 이 모든 하늘들 가운데 다섯 애욕의 대상에 빠진 자가 있으면, 이 보살은 불을 놓아 그 궁전이 불타는 것을 보이고, 그들을 위해 설법하되 이렇게 말하느니라.
‘모든 하늘들이여,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가 다 덧없는 것이니, 누가 항상 편안한 것을 얻겠는가?’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으로 시방세계를 관찰하여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국토 가운데를 보니, 모든 범천은 사견에 집착하고 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가르쳐서 사견을 멀리 떠나게 하기 위해 이렇게 말하느니라.
‘그대들은 어찌하여 허황되고 공인 모습의 모든 법에 대하여 사견을 내는가?’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대자(大慈)의 마음에 머물러서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모든 보살의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내가 불안으로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시방의 국토에 있는 모든 보살마하살을 관찰하니, 4섭법(攝法)으로써 중생을 포섭하느니라.
무엇을 넷이라고 하는가?
보시와, 사랑스런 말과, 도움이 되는 행동과, 협력하는 일이니라.
어떻게 보살은 보시로 중생을 포섭하는가?
수보리야, 보살은 두 가지 보시로 중생을 섭수하니, 재물 보시와 법 보시이니라.
어떠한 재물 보시로 중생을 포섭하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금ㆍ은ㆍ유리(琉璃)ㆍ파리(頗梨)ㆍ가패(珂貝)ㆍ산호(珊瑚) 등의 모든 보물로써 포섭하느니라.
혹은 음식ㆍ의복ㆍ침구ㆍ주택ㆍ등불ㆍ꽃ㆍ향 또는 영락ㆍ남자와 여자ㆍ소ㆍ양ㆍ코끼리ㆍ말ㆍ수레로써 포섭하느니라.
혹은 자기 몸을 중생에게 베풀어 주고 말하느니라.
‘그대들이 만일 필요한 것이 있다면, 모두가 와서 이것을 가져라. 자기의 물건을 갖는 것처럼 하여 어려워하지 말라.
이 보살은 보시하고 나서 3귀의를 가르치니, 부처님께 귀의하며 가르침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게 하느니라.
다섯 계율을 가르쳐서 받게 하고, 혹은 일일계를 가르쳐서 받게 하며, 혹은 초선을 가르치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선정을 가르치느니라.
자ㆍ비ㆍ희ㆍ사를 가르치고,
부처님을 억념하는 것ㆍ법을 억념하는 것ㆍ승단을 억념하는 것ㆍ계율을 억념하는 것ㆍ보시를 억념하는 것ㆍ하늘을 억념하는 것을 가르치느니라.
부정함을 관찰하는 수행을 가르치고,
호흡의 출입에 대한 관찰과 모습과 촉감을 가르치느니라.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을 가르치느니라.
공해탈문ㆍ무상해탈문ㆍ무작해탈문ㆍ8배사ㆍ9차제정을 가르치느니라.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대자와 대비ㆍ32상ㆍ80수형호를 가르치느니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를 가르치고,
벽지불도를 가르치고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가르치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방편의 힘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재물 보시를 하느니라. 그런 뒤 다시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가르쳐서 얻게 하니,
수보리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어떠한 법보시로 중생을 섭수하는가?
수보리야, 법보시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세간이요, 둘째는 출세간이다.
어떠한 것을 세간의 법보시라고 하는가?
세간의 법을 부연하여 나타내 보인 것이니, 이른바 부정하다고 관찰하는 수행 또는 호흡의 출입을 억념하는 수행이 그것이니라.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 등의 이와 같은 세간의 법 및, 나머지 모든 범부와 함께 행하는 법들을 베푸는 것을, 세간의 법보시라고 부르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은 세간의 법을 보시하고 나서, 모든 인연으로 교화하여 세간의 법을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세간의 법을 멀리 떠나게 하고 나서, 방편의 힘으로 성스럽고 무루인 법 및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를 얻게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이라 하고, 어떠한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라고 하는가?
성스럽고 무루인 법이란 37조도법과 삼해탈문이고,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란 수다원의 과위 내지 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성스럽고 무루인 법은, 수다원의 과위 가운데의 지혜 내지, 아라한의 과위의 지혜ㆍ벽지불 가운데의 지혜, 37조도법 가운데의 지혜, 6바라밀 가운데의 지혜 내지, 대자와 대비 가운데의 지혜 등이니라.
그리고 그와 같은 온갖 법 중, 세간 혹은 출세간의 지혜, 유루이거나 무루인 것, 유위이거나 무위인 것 등 이러한 법 가운데의 일체종지를, 보살마하살의 성스럽고 무루인 법이라고 부르느니라.
어떠한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라고 하는가?
일체 번뇌의 습기의 상속을 끊는 것을, 성스럽고 무루인 법의 결과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를 얻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일체종지를 얻느니라.”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보살과 부처님은 어떠한 다름이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름이 있다. 보살마하살의 일체종지를 얻게 될 때, 이것을 일컬어 부처님이라고 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의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은 다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이 일체종지 가운데 머물러서, 온갖 법에 대하여 밝게 비추지 않은 데가 없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세간의 법보시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세간의 법보시에 인연하여 출세간의 법보시를 얻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가르쳐서 세간의 법을 얻게 하고, 방편의 힘을 가진 까닭에 가르쳐서 출세간의 법보시를 얻게 하느니라.
수보리야, 어떠한 것을 보살의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이라고 하는가?
범부의 법과 함께하지 않느니라. 이른바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성도분ㆍ3해탈문ㆍ8배사ㆍ9차제정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32상ㆍ80수형호ㆍ5백 다라니문을 출세간의 법이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4념처(念處)라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몸의 안쪽에 있어서 그것에 수순하여 몸을 관찰하며,
몸의 바깥쪽에 있어서 그것에 수순하여 몸을 관찰하고,
몸의 안팎에 있어서 그것에 수순하여 몸을 관찰하되, 정진에 힘쓰고 일심의 지혜로 관찰하느니라.
몸에 있어 인연이 모여서 생한 것을 관찰하고,
몸이 멸하는 것을 관찰하고,
몸의 모임과 생하고 멸하는 것을 관찰하되,
이 도를 행할 때에 세간에서 의지할 바가 없어야 하고, 집착하는 것이 없어야 하느니라. 또한 느낌ㆍ마음ㆍ법념처도 이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4정근(正勤)이라고 하는가?
아직 생하지 않은,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은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느니라.
이미 생한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은 끊기 위해서,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느니라.
아직 생하지 않은 선한 법은 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고,
이미 생한 모든 선한 법은 더욱 늘리고 닦아 구족하기 위하여, 의욕을 내어 힘써 정진하느니라.
이것을 4정근이라고 부르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4여의족(如意足)이라고 하는가?
의욕의 삼매로 단절하고 결합하여, 처음의 여의족을 성취하고,
정진의 삼매ㆍ마음의 삼매ㆍ사유의 삼매로 단절하고 결합하여, 여의족을 성취하느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5근(根)이라고 하는가?
믿음의 근ㆍ정진의 근ㆍ기억의 근ㆍ선정의 근ㆍ지혜의 근이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5력(力)이라고 하는가?
믿음의 힘ㆍ정진의 힘ㆍ기억의 힘ㆍ선정의 힘ㆍ지혜의 힘이니라.
수보리야, 무엇을 7각지(覺支)라고 하는가?
기억의 각지(覺支)ㆍ택법의 각지ㆍ정진의 각지ㆍ기쁨의 각지ㆍ경안의 각지ㆍ삼매의 각지ㆍ평정의 각지이니라.
무엇을 8성도분이라고 하는가?
올바른 견해ㆍ올바른 사유ㆍ올바른 언어ㆍ올바른 직업ㆍ올바른 생활ㆍ올바른 정진ㆍ올바른 삼매이니라.
무엇을 3삼매(三昧)라고 하는가?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의 문이다.
무엇을 공삼매라고 하는가?
공의 행과 무아의 행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을 공삼매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무상삼매(無相三昧)라고 하는가?
적멸의 행과 떠남의 행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을 무상삼매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무작삼매(無作三昧)라고 하는가?
무상(無常)의 행과 괴로움의 행으로 마음을 섭수하는 것을 무작삼매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8해탈(解脫)이라고 하는가?
안에 물질의 생각을 갖춘 채, 밖의 물질을 관찰하는 이것이 첫째 해탈이다.
안으로 물질의 생각은 없지만 밖으로 물질을 관찰하는 이것이 둘째 해탈이다.
정해탈(淨解脫)이 셋째 해탈이다.
그리고 일체 물질의 생각을 지나 모든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일체의 다른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무변허공을 관찰하여 무변허공처에 들고, 나아가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멸수상정(滅受想定)의 해탈에 들어가니, 이것을 8해탈이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9차제정(次第定)이라고 하는가?
수행자가 애욕과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떠나고,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으면서 애욕을 떠난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켜, 초선에 들고, 2선ㆍ3선ㆍ4선과,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멸수상정에 들어가니, 이것을 9차제정이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부처님의 10력(力)이라고 하는가?
경우와 경우 아닌 것을 여실히 아는 지력(智力)이 있고,
중생의 과거 또는 미래 또는 현재의 모든 업과, 모든 받는 법칙을 알고, 업을 짓는 곳을 알고, 인연을 알고, 과보를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모든 선정ㆍ해탈ㆍ삼매ㆍ정의 더럽고 청정한 모습을 분별하여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느니라.
다른 중생의 근기에 대해 높고 낮은 모습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다른 중생의 모든 의욕과 믿어 이해하는 바를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세간의 무수한 계를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일체에 도달하는 길의 모습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느니라.
모든 전생의 한 생애 내지 무량겁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며,
천안으로 중생의 선하고 악한 길에 태어남을 여실히 보는 지력이 있으며,
무루인 까닭에 무루인 마음의 해탈을 여실히 아는 지력이 있으니,
이것을 부처님의 10력이라고 부르느니라.
무엇을 4무소외(無所畏)라고 하는가?
부처님은 진실된 말로,
‘나는 일체를 바르게 안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법을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으며,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첫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진실된 말로,
‘나는 일체의 번뇌를 다했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번뇌를 다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으며,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두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진실 된 말로,
‘나는 도를 장애하는 법을 설한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법을 수용해도 도를 장애하지 않는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고,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세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부처님은 진실 된 말로,
‘내가 설하는 바 성스러운 도는 능히 세간을 벗어나고, 이 행에 의해서 능히 괴로움을 다한다’라고 선언하느니라.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이 바로 말하기를,
‘이 도를 행하여 세간을 벗어날 수 없고, 괴로움을 다할 수 없다’라고 해도,
그러한 것에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느니라.
그러한 까닭에, 나는 편안을 얻고 무소외를 얻고, 성인의 자리에 편안히 머물고,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를 하여, 능히 청정한 법의 바퀴를 굴린다.
이것은 모든 사문이나 바라문ㆍ하늘ㆍ마신ㆍ범신 혹은 나머지 대중들은 도달할 수 없는 굴림이니, 네 번째의 무소외이니라.
무엇을 4무애지(無礙智)라고 하는가?
첫째는 의미에 걸림 없는 지혜[義無礙智]이며,
둘째는 법에 걸림 없는 지혜[法無礙智]이며,
셋째는 말에 걸림 없는 지혜[辭無礙智]이며,
넷째는 변재에 걸림 없는 지혜[樂說無礙智]이니라.
무엇을 의미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의미에 의한 지혜를 의미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법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법에 의한 지혜를 법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말에 의한 지혜를 말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변재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는가?
변재에 의한 지혜를 변재에 걸림 없는 지혜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18불공법(不共法)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 모든 부처님의 몸에는 허물이 없으며,
두 번째, 말씀에 허물이 없으며,
세 번째, 억념에 허물이 없으며,
네 번째, 다른 생각이 없으며,
다섯 번째, 집중되지 않은 마음이 없으며,
여섯 번째, 안다고 버리지 않는 마음이 없으며,
일곱 번째, 뜻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여덟 번째, 정진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아홉 번째, 억념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 번째, 지혜를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한 번째, 해탈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두 번째, 해탈지견을 줄이는 것이 없으며,
열세 번째, 일체의 몸의 행위를 지혜를 따라서 실행한다.
열네 번째, 일체의 말의 행위를 지혜를 따라서 실행한다.
열다섯 번째, 일체의 뜻의 행위를 지혜를 따라서 실행한다.
열여섯 번째, 지혜로써 과거세를 알아 걸림 없고 장애가 없으며,
열일곱 번째, 지혜로써 미래세를 알아 앎에 걸림 없고 장애가 없으며,
열여덟 번째, 지혜로써 현재세를 알아 걸림 없고 장애가 없느니라.
무엇을 32상(相)이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발 밑이 평평하여 편안하기가 거울 넣은 상자의 바닥과 같으며,
두 번째는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과 테로 바퀴의 모습을 구족하였으며,
세 번째는 손가락 또는 발가락이 길어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며,
네 번째는 손발이 부드러워서 다른 몸의 부분보다 뛰어나며,
다섯 번째는 발꿈치가 넓고 구족되고 원만하고 좋으며,
여섯 번째는 손가락 또는 발가락 사이의 엷은 막이 묘하고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며,
일곱 번째는 발뒤꿈치가 높고 평평하여 좋기가 발꿈치와 서로 같으며,
여덟 번째는 이니연(伊泥延) 사슴의 장딴지는 가늘고 좋은 것처럼 장딴지가 이니연 사슴왕과 같으며,
아홉 번째는 편안하게 서서 양손으로 무릎을 만지며,
열 번째는 음부가 감추어진 모습이 마치 말이나 코끼리의 왕과 같으니라.
열한 번째는 몸의 종횡이 균등하여 비유하건대 마치 니그로(尼俱盧) 나무와 같으며,
열두 번째는 하나하나의 털구멍에서 한 개씩의 털이 나는데 색깔이 푸르고 부드럽고 오른쪽으로 돌았으며,
열세 번째는 털이 위로 향하고 색깔이 푸르고 부드럽고 오른쪽으로 돌았으며,
열네 번째는 금색의 모습으로 그 색깔이 미묘하여 염부단금(閻浮檀金)보다 뛰어나며,
열다섯 번째는 몸의 광명이 사방으로 한 길이며,
열여섯 번째는 피부가 엷고 섬세하고 윤기가 있어서 때가 끼지 않고 모기가 앉지 못하며,
열일곱 번째는 일곱 곳이 충만하니 두 발바닥과 두 손바닥과 양 어깨 위와 이마 가운데가 모두 충만하고 글자의 모습이 분명하며, 열여덟 번째는 두 겨드랑이 밑이 가득하며,
열아홉 번째는 상체가 비유하건대 마치 사자와 같으며,
스무 번째는 몸이 넓고 단정하고 바르느니라.
스물한 번째는 어깨가 원만하고 좋으며,
스물두 번째는 마흔 개의 치아가 있으며,
스물세 번째는 치아가 희고 가지런하고 촘촘하고 뿌리가 깊으며,
스물네 번째는 네 개의 어금니가 가장 희고 크며,
스물다섯 번째는 상체가 방정하기가 비유하건대 마치 사자와 같으며,
스물여섯 번째는 혀의 예민함이 최고도이어서 최상의 맛을 얻고 목구멍에서는 두 곳에서 진액이 흘러나오며,
스물일곱 번째는 혀가 크고 부드럽고 엷어서 능히 얼굴을 덮고 귀와 머리카락에 이르며,
스물여덟 번째는 청정한 음성이 매우 깊어 비유하건대 마치 가란빈가(迦蘭頻伽)의 소리와 같으며,
스물아홉 번째는 눈의 색깔이 비유하건대 마치 황금의 눈동자[精]와 같으며,
서른 번째는 속눈썹이 비유하건대 마치 소왕과 같으며,
서른한 번째는 눈썹 사이의 백호상이 부드럽고 희어 비유하건대 마치 도라(兜羅)솜과 같으며,
서른두 번째는 정수리가 육계골(肉髻骨)로 되어 있느니라.
그러한 32상이 부처님 몸에 성취되어 광명이 널리 삼천대천세계를 비춘다. 만일 널리 비추고자 하면 바로 널리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국토에 가득하게 되고 중생들은 그 광명을 받는다. 만일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버리면 일월의 시절이나 햇수가 없느니라.
부처님의 음성은 널리 삼천대천국토에 가득하고 만일 큰 소리를 일으키고자 하면, 바로 시방의 한량없는 아승기의 국토에 가득하게 되니, 중생의 다소에 따라서 음성이 널리 도달하느니라.
무엇을 80수형호[種好]라고 하는가?
첫 번째는 정수리를 볼 수 없다.
두 번째는 코가 곧고 높고 좋아서 구멍이 드러나지 않느니라.
세 번째는 눈썹이 초생달과 같고 감유리색이다.
네 번째는 귀가 둥근 흙두덕처럼 되었다.
다섯 번째는 몸이 튼튼하여 비유하건대 마치 나라연(那羅延)과 같다.
여섯 번째는 뼈 사이가 비유하건대 마치 쇠사슬로 묶은 것과 같으니라.
일곱 번째는 몸을 한 번에 돌리는 것이 비유하건대 마치 코끼리왕과 같다.
여덟 번째는 길을 갈 때에 발이 땅에서 네 마디가량 뜨고 무늬가 나타난다.
아홉 번째는 손톱이 붉은 구릿빛과 같고 엷어서 윤택이 있다.
열 번째는 무릎 뼈가 튼튼하고 원만하게 자리 잡았다.
열한 번째는 몸이 정결하다.
열두 번째는 몸이 부드럽다.
열세 번째는 몸이 굽지 않았다.
열네 번째는 손가락이 길고 가늘고 둥글다.
열다섯 번째는 손가락의 무늬가 정엄하다.
열여섯 번째는 맥박이 깊다.
열일곱 번째는 복사뼈가 드러나지 않느니라.
열여덟 번째는 몸에 윤택이 흐른다.
열아홉 번째는 몸을 반듯이 하여 굽지 않느니라.
스무 번째는 몸이 원만하고 구족되었다.
스물한 번째는 의식이 원만하고 구족되었다.
스물두 번째는 용모와 위의를 만족하게 구비했다.
스물세 번째는 머무름이 안정되어 능히 동요시킬 자가 없다.
스물네 번째는 위의가 일체에 진동한다.
스물다섯 번째는 보는 자가 모두 즐거워한다.
스물여섯 번째는 얼굴이 크거나 길지 않다.
스물일곱 번째는 용모가 단정하여 몸을 요란하게 하지 않느니라.
스물여덟 번째는 얼굴이 원만하고 구족되었다.
스물아홉 번째는 입술이 붉어서 비유하건대 마치 빈바(頻婆)의 과일 색깔과 같다.
서른 번째는 음성이 깊다.
서른한 번째는 배꼽이 깊고 둥글고 묘하다.
서른두 번째는 털이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서른세 번째는 손발이 원만하다.
서른네 번째는 손발이 뜻대로 이다.
서른다섯 번째는 손금이 명확하고 바르다.
서른여섯 번째는 손금이 깊다.
서른일곱 번째는 손금이 끊이지 않았다.
서른여덟 번째는 일체의 악한 마음을 가진 중생도 보기만 하면 화평하고 기뻐한다.
서른아홉 번째는 얼굴이 넓고 용모가 뛰어나고 좋다.
마흔 번째는 얼굴이 청정하고 원만하여 비유하건대 마치 달과 같다.
마흔한 번째는 중생의 뜻에 따라서 화평하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말한다.
마흔두 번째는 털구멍으로부터 향기가 나온다.
마흔세 번째는 입으로부터 좋은 향기가 나온다.
마흔네 번째는 위의와 용모가 비유하건대 마치 사자와 같다.
마흔다섯 번째는 가고 머무르는 것이 비유하건대 마치 코끼리왕과 같다.
마흔여섯 번째는 나아가는 방법이 비유하건대 마치 거위왕과 같다.
마흔일곱 번째는 머리가, 비유하건대 마치 마다나(摩陀那)의 과일과 같다.
마흔여덟 번째는 일체의 음성을 구족하였다.
마흔아홉 번째는 치아가 예리하다.
쉰 번째는 혀의 색깔이 붉다.
쉰한 번째는 혀가 엷다.
쉰두 번째는 털이 붉은 물질이다.
쉰세 번째는 털이 청정하다.
쉰네 번째는 눈이 넓고 길다.
쉰다섯 번째는 구멍의 모습이 갖추어져 있다.
쉰여섯 번째는 손발이 붉고 희어서 비유하건대 마치 연꽃색과 같다.
쉰일곱 번째는 배꼽이 나오지 않았다.
쉰여덟 번째는 배가 드러나지 않느니라.
쉰아홉 번째는 배가 작다.
예순 번째는 몸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예순한 번째는 몸을 지탱하는 것이 신중하다.
예순두 번째는 그 몸이 크다.
예순세 번째는 키가 크다.
예순네 번째는 손발이 청정하여 고요한 못과 같다.
예순다섯 번째는 몸 주변의 광명이 각각 한 길이다.
예순여섯 번째는 몸의 광명을 비추면서 간다.
예순일곱 번째는 평등하게 중생을 본다.
예순여덟 번째는 중생을 가벼이 여기지 않느니라.
예순아홉 번째는 중생에 따라서 음성을 지나치게 크게 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작게 하지도 않느니라.
일흔 번째는 설법하되 집착하지 않느니라.
일흔한 번째는 중생의 말에 맞추어서 설법한다.
일흔두 번째는 한 번 낸 음성으로 모든 소리에 대답한다.
일흔세 번째는 차례에 입각하여 인연의 법을 설한다.
일흔네 번째 온갖 중생들로서 그 특징을 관찰하되 다하지 못하느니라.
일흔다섯 번째는 보는 자가 싫어할 수가 없다.
일흔여섯 번째는 머리카락이 길고 좋다.
일흔일곱 번째는 머리카락이 헝클어지지 않았다.
일흔여덟 번째는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굽었다.
일흔아홉 번째는 머리카락의 색깔이 비유하건대 마치 푸른 구슬과 같다.
여든 번째는 손발에 덕의 모습을 갖추었다.
수보리야, 이것을 80수형호라고 이름하니, 부처님의 몸에는 성취되어 있느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두 가지 보시로써 중생을 섭수하니,
이른바 재물보시와 법보시이다.
이것을 보살의 희유하고도 도달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이름한다.
무엇을 보살마하살은 사랑스런 말로써 중생을 섭수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6바라밀로써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니, 이러한 말을 한다.
‘그대여 6바라밀을 행하여 일체의 선한 법을 포섭해야 한다.’
무엇을 보살마하살은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써 중생을 섭수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기나긴 세월 동안 중생을 교화하여 6바라밀을 행하게 하느니라.
무엇을 보살마하살은 협력하는 일로써 중생을 섭수한다고 하는가?
보살마하살은 다섯 신통력을 가진 까닭에,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다섯 갈래 윤회의 길속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협력하여 일한다. 그러한 4섭법으로 이들을 섭수하느니라.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교화하여 이렇게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잘 배워서 모든 글자를 분별해야 하고, 또한 한 글자 내지 마흔두 가지 글자를 잘 알아야 하느니라. 일체의 언어는 모두가 첫 글자의 법주에 들고 일체의 언어는 또한 두 번째 글자의 법주 내지 마흔두 번째 글자의 법주에 들며, 일체의 언어는 모두가 그 속에 들고 한 이름은 모두가 마흔두 가지 글자에 들고, 마흔두 가지 글자도 또한 한 글자에 든다.’
이 중생은 그와 같이 마흔두 가지 글자를 잘 배우고 나면, 글자의 법을 잘 설하니, 글자의 법을 잘 설하고 나서 다시 글자가 없는 법을 잘 설하느니라.
수보리야, 부처님은 글자의 법을 잘 알고, 글자를 잘 알고, 글자가 없음을 잘 알되, 글자가 없는 법을 위하여 글자의 법을 설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일체의 이름이 있는 법을 초월하는 까닭에, 일컬어 불법이라고 하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이 마침내 얻을 수가 없다면, 법도 또한 얻을 수가 없고, 법의 성품도 또한 얻을 수가 없으니, 필경공이고 무시공인 까닭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선나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단나바라밀을 행할 때에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ㆍ37조도법ㆍ18공을 실행하는지요?
그리고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ㆍ8배사ㆍ9차제정ㆍ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ㆍ32상ㆍ80수형호를 실행하는지요?
어떻게 과보로 얻은 5신통에 머물러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는지요?
중생은 실로 얻을 수가 없고, 중생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물질을 얻을 수가 없고, 나아가 식까지도 또한 얻을 수가 없습니다.
5중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6바라밀과 나아가 80수형호까지도 모두 얻을 수가 없고, 이 얻을 수가 없는 가운데서는, 중생도 없고 물질도 없고, 나아가 80수형호까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는지요?
세존이시여,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도 역시 얻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보살의 법이 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그대가 말한 것처럼 중생은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내공ㆍ외공ㆍ내외공ㆍ외공ㆍ공공ㆍ대공ㆍ제일의공ㆍ유위공ㆍ무위공ㆍ필경공ㆍ무시공ㆍ산공ㆍ성공ㆍ제법공ㆍ자상공ㆍ불가득공ㆍ무법공ㆍ유법공ㆍ무법유법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중생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5중이 공이고 12처가 공이고, 18계가 공이고 12연기가 공이고, 4성제가 공이고 나가 공이다.
영혼ㆍ목숨ㆍ태어나는 자ㆍ자라는 자ㆍ모든 것에 속하는 자ㆍ짓는 자ㆍ짓게 하는 자ㆍ일어나는 자ㆍ일어나게 하는 자ㆍ받는 자ㆍ받게 하는 자ㆍ아는 자ㆍ보는 자가 모두 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또한 중생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4선이 공이고, 4무량심이 공이며, 4무색정이 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4념처가 공이고, 나아가 8성도분이 공이고, 공삼매가 공이고, 무상삼매가 공이고, 무작삼매가 공이고, 8배사가 공이고, 나아가 9차제정이 공이니라.
또한 중생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에, 부처님의 10력이 공이고, 4무소외가 공이고, 4무애지가 공이고, 18불공법이 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가 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보살의 지위가 공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공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그와 같이 온갖 법이 공임을 보고,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되, 모든 법이 공의 모습인 것을 잃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그와 같이 관찰할 때에, 온갖 법에 걸림 없는 경지를 안다.
그리고 온갖 법에 걸림 없음을 알고 나서, 모든 법의 모습이 둘이 아니고, 분별이 없는 것을 부수지 않고, 단지 중생을 위해서 참되게 설법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이 변화로 사람을 만들어 내었는데, 이 변화로 만들어진 사람이 다시 한량없는 백천만억의 사람을 변화로 만들어 내어, 그들을 가르쳐서 보시를 하게하고, 가르쳐서 계를 지니게 하고, 가르쳐서 인욕하게 하고, 가르쳐서 정진하게 하고, 가르쳐서 선정을 하게하고, 가르쳐서 지혜를 닦게 한다. 그리고 4선 또는 4무량심 또는 4무색정을 가르치는 것과 같으니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이 변화로 만들어 낸 사람이 모든 법을 분별하고 파괴할 수 있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변화로 만든 사람은 마음이 없고 마음에 속한 법이 없는데, 어떻게 모든 법을 분별하고 파괴하겠느냐?
그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알아야 하니,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중생을 위해서 상응하는 법을 설한다.
그리고 중생을 뒤바뀐 곳으로부터 끄집어내고 구출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각자의 상응하는 곳에 머물게 한다. 그 모든 일은 매인 것도 아니고 벗어난 것도 아닌 법을 사용하는 까닭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야, 물질은 매인 것도 아니고 벗어난 것도 아니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또한, 매인 것도 아니고 벗어난 것도 아니니라.
묶임이 없고 풀림이 없는 물질은 곧 물질이 아니고,
묶임이 없고 풀림이 없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곧 식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물질은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유위의 법이나 무위의 법 등 온갖 법이, 본래 청정하기 때문이니라.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지만, 또한 중생 및 온갖 법을 얻지 않으니, 온갖 법은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법에 머물지 않음으로 모든 법의 모습인, 이른바 물질의 공 내지 유위 또는 무위의 법에 머무느니라.
왜냐하면 색 내지, 유위 또는 무위의 법은, 자기 성품을 얻을 수가 없는 까닭이니, 그것은 또한 머무르는 곳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무소유의 법은 무소유의 법에 머물지 않느니라. 그리고 자기 성품의 법은 자기 성품의 법에 머물지 않고, 다른 성품의 법은 다른 성품의 법에 머물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그러한 온갖 법은 모두가 얻을 수가 없는 까닭이니, 얻을 수가 없는 법인 이상 과연 어느 곳에 머물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되, 그러한 모든 공으로써 능히 그렇게 설법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든 부처님 및 성문, 또는 벽지불에 있어서 허물이 없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 및 성문, 또는 벽지불 또는 아라한은 이 법을 얻고 나서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지만, 또한 모든 법의 모습에서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은 성품이 없는 까닭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법성 또는 여 또는 실제가 전개될 수 없다면, 물질과 법성은 다른지요?
물질과 여 또는 실제는 다른지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유위ㆍ무위의 법, 세간과 출세간 또는 유루와 무루는 다른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물질은 법성과 다르지 않고, 여와 다르지 않고, 실제와 다르지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유루ㆍ무루도 다르지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물질이 법성과 다르지 않고, 여와 다르지 않고, 실제와 다르지 않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 내지, 유루ㆍ무루와도 또한 다르지 않다면, 어찌하여 검은 법에서 검은 과보인, 이른바 지옥ㆍ아귀ㆍ축생이 있는지요?
그리고 흰 법에는 흰 과보인, 이른바 모든 하늘 및 인간이 있고, 검고 흰 법에는 검고 흰 과보가 있고,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법에는,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과보인, 이른바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다고 분별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야, 세속의 진리에 입각하는 까닭에, 분별하여 과보가 있다고 설하지만, 제일의(第一義)의 진리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제일의의 진리 가운데서는, 인연과 과보를 설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제일의의 진리는, 실로 모습이 있을 수 없고, 분별이 있을 수 없고, 또한 말로 설할 수도 없는 까닭이다. 이른바 색 내지, 유루ㆍ무루의 법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모습이고, 더럽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은 것이어서, 필경공이고 무시공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세속의 진리에 의하여 과보가 있다고 설하지만, 제일의의 진리에서는 그렇지 않다면, 일체의 범부들에게는,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범부들이 어떤 것은 세속의 진리이고, 어떤 것은 제일의의 진리라고 알 수 있겠느냐?
만일 이것을 안다면, 범부들은 수다원의 과위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게 되리라.
수보리야, 범부들은 실로 세속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제일의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도를 알지 못하느니라. 도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모든 도의 결과 있겠느냐?
수보리야, 성인은 세속의 진리를 알고, 제일의의 진리를 알고, 도가 있고 도의 닦음이 있다. 그러한 까닭에 성인은 분별하여 모든 결과를 가지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도를 수습한다면, 얻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느니라. 수보리야, 도를 수습해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고, 도를 수습하지 않아서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니라. 또한 도를 떠나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고, 도 가운데 머물러서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한 까닭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중생을 위하여 모든 결과를 분별하지만 이 유위성과 무위성을 분별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유위성과 무위성을 분별하지 않고서 모든 결과를 얻는다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스스로 설하시기를, 세 가지 결박을 다하는 까닭에 수다원이라 하시는지요?
음욕ㆍ화냄ㆍ어리석음이 엷어진 까닭에 사다함의 과위라 하고,
아래의 다섯 결박이 다한 것을 아나함이라 하고,
위의 다섯 결박이 다한 것을 아라한이라 하고,
모든 집기한 법은 모두 소멸되고 흩어지고 마는 특징을 지녔다고 알기에 벽지불도라 하고,
일체 번뇌의 습기를 끊은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하시는지요?
세존이시여, 제가 어찌하여야 유위성과 무위성을 분별하지 않고서, 모든 결과를 얻는 것을 알 수 있겠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도ㆍ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두고, 이 모든 결과를 유위라고 하더냐, 아니면 무위라고 하더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모두는 무위인 것입니다.”
“수보리야, 무위는 법 가운데에 분별이 있더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온갖 법 중, 유위이거나 혹은 무위인 것이 한 모습으로서 이른바 모습이 없음을 통달한다면, 이때에도 유위라거나 혹은 무위라고 분별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중생을 위해서 설법하되, 모든 법을 분별하지 않느니라. 이른바 내공인 까닭에 내지, 무법유법공인 까닭에, 이 보살은 스스로 집착할 바가 없는 법을 얻고, 또한 사람에게 집착할 바가 없는 법을 가르치느니라.
혹은 단나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나바라밀ㆍ반야바라밀과, 초선 내지 제4선, 또는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 또는 무변공처(無邊空處) 내지, 비유상비무상처 혹은 4념처 내지 일체종지를 가르쳐서 얻게 한다.
이 보살은 스스로 집착하지 않는 까닭에, 또한 타인에게도 집착할 바가 없는 것을 얻게 하고, 집착하는 바가 없는 까닭에 걸리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부처님이 변화로 만들어낸 사람이, 보시를 하더라도 보시의 과보를 수용하지 않고, 단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마침내 일체종지를 행하되, 일체종지의 과보를 수용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보살마하살도 또한 그처럼 6바라밀과, 나아가 온갖 법으로서 유루 또는 무루, 유위 또는 무위를 행하되, 머물지 않고 또한 과보를 수용하지 않고, 단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할 뿐이니라.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모습에 잘 통달했기 때문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