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8권
8. 비구니품(比丘尼品)
79) 바사닉왕의 못 생긴 딸에 대한 인연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의 마리(摩利) 부인이 딸아이를 하나 낳았으나 그 얼굴이 너무 못생겼으며, 몸은 마치 뱀 껍질같이 거칠었고 머리털은 마치 말꼬리같이 억세었다. 왕은 이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되어 궁내에 명령하기를,
‘아이를 잘 보호해서 밖에 내보내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한편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아이가 비록 추하고 못생겨 사람 같지는 않으나 마리 부인의 소생인 만큼 잘 양육해야 하리라.’
그러던 차 아이가 점점 장대하여 시집을 보내야 할 때가 되자, 왕이 더욱 근심하고 걱정한 나머지 어떻게 할 방도가 없어서 신하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가 나의 사윗감을 구해 보라. 그 근본만 호족(豪族)의 종성(種姓)이라면, 지금은 비록 재산이 없어 빈궁하더라도 데리고 오라.”
신하가 왕의 지시를 받아 널리 사람을 구해 본 결과, 마침 빈궁한 호족의 아들이 있으므로 불러서 왕에게 데리고 오자,
왕이 보고는 한쪽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가만히 그 사정을 말하였다.
“듣건대, 그대가 호족의 아들로서 지금 매우 빈궁하다 하니 앞으론 내가 모든 것을 공급해 주겠다.
그리고 내게 있는 딸 하나가 얼굴이 너무나 추하고 못생겼는데, 그대가 나의 청을 거역하지 않고 이 딸아이를 다행히 받아 주겠는가?”
빈궁한 호족의 아들은 곧 무릎을 꿇고 앉아 왕에게 대답하였다.
“분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설사 대왕께서 개[狗]를 주신다 하더라도 제가 어김없이 받아야 할 일이거늘, 하물며 마리 부인의 소생이신 딸이겠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명령만 하신다면, 제가 아내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왕이 이에 저 빈궁한 사람을 곧 사위로 삼는 동시에 사택(舍宅)을 마련해 주었다.
특히 그 대문을 일곱 겹으로 굳게 해 두고는, 사위에게 부탁하기를,
‘그대만이 이 문을 열고 닫되 외출할 때에도 그대가 손수 문을 닫아 두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내 딸아이의 추악한 꼴을 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항상 문을 굳게 닫아 두어 집안에서만 있게 하게’ 하고,
한편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다 공급하여 모자람이 없게 했다.
또 왕이 직접 사위를 불러들여 대신의 지위에 임명하였다.
그는 이 때로부터 모든 재보가 풍부하여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다른 호족들과 함께 읍회(邑會)를 같이하게 되니, 그 모임을 가질 때마다 남녀가 서로 즐겨했는데, 다른 호족 대신들은 모두 부부가 동반하여 그 모임의 오락을 같이했으나 저 국왕의 사위인 대신은 언제나 홀로 오게 되자, 뭇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저 대신의 부인이야말로 단정하고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혹시 너무나 추악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제 우리가 어떤 계획을 꾸며 함께 가서 그 부인을 보는 것이 좋겠구나.’
이와 같이 모두 합심하고는, 그 대신에게 집중적으로 술을 권하여 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게 한 다음, 그 몸에 차고 있는 열쇠를 풀어 다섯 사람이 같이 그 집에 가서 문을 열고 부인을 보려고 하였다.
그때 그 부인은 마음이 매우 괴로워 자신의 죄의 허물을 책하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남편에게 미움을 받아 항상 어두운 방에 갇혀 있어서 해와 달의 광명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과 접촉을 할 수 없는가?’
한편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세간에 계시는 부처님께서 항상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관찰하시어 고액에 허덕이는 자가 있을 때엔 곧 친히 가서 제도하신다고 들었다.’
그리고서 이 부인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발원하기를,
‘원컨대 세존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제 앞에 나타나시어 잠시 교훈을 나타내 주소서.’라고 하였다.
이렇게 부인의 정성이 지극하고 신심과 존경심이 돈독하자, 부처님께서 그 뜻을 아시고 곧 그 집에 도착하시어 땅 속으로부터 솟아나와 그 부인 앞에 나타나시되,
검푸른[紺] 머리털 모습을 나타내시자, 부인이 머리를 들어 부처님의 머리털 모습을 보고서 몇 배의 환희심을 내고 더욱 존경심을 돈독히 하였는데, 이에 따라 부인의 머리털도 자연히 부드럽고 검푸르게 되었다.
또 부처님께서 얼굴 모습을 차츰 나타내시자 그 부인이 역시 얼굴 모습을 보고 환희심을 냄으로써 부인의 얼굴도 단정해지고 그 거친 피부가 차츰 다 사라졌다.
또 부처님께서 온몸에 금 빛깔 광명을 차츰 나타내시자 그 부인이 금 빛깔 몸을 보고 역시 환희심과 존경심을 냄으로써 부인의 몸도 마치 천녀(天女)처럼 단정 장엄하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께서 다시 갖가지 묘법을 설해 주시자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자, 이 세간에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뛸듯이 기뻤고, 부처님께선 본래의 처소로 돌아가셨다.
이때 바로 저 다섯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부인의 그 둘도 없이 단정하고 수승 미묘한 모습을 보자 서로 이상하게 여겨 말하기를,
‘저 대신이 무엇 때문에 이같이 단정한 부인을 두고서 함께 모임에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는,
도로 문을 굳게 닫고 돌아와서 열쇠를 그이의 본래 차고 있던 자리에 달아 두었다.
급기야 모임이 끝난 뒤 그 사람이 집에 돌아와 집안에 들어가서 부인의 그 누구보다도 단정 수특한 모습을 보고 기쁨에 넘쳐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시오.”
부인이 대답하였다.
“제가 바로 당신의 부인입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이제까지 그렇게 추악하던 당신이 별안간 무슨 인연으로 이같이 단정하게 되었소?”
이에 부인이 부처님의 신덕(神德)을 입어 그러한 몸을 얻게 된 전후 사실을 갖추어 남편에 대답하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는 저도 부왕을 만나 뵙고 싶으니 당신이 저를 위해 이 뜻을 좀 전해 주십시오.”
남편인 그는 이 말을 듣고 곧 왕에게 말씀드렸다.
“이제 아내가 대왕을 만나 뵙고자 합니다.”
왕이 사위에게 대답하였다.
“그런 말 하지 말고 빨리 종전대로 문을 굳게 닫아 부디 바깥으로 못나오게 하라.”
남편이 다시 왕에게 말씀드렸다.
“어찌 그러하십니까? 이제 제 아내는 부처님의 위신(威神)을 입어 천녀(天女)와 다름없는 단정한 몸을 얻었습니다.”
왕도 이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과연 그러하다면, 빨리 가서 데리고 오너라.”
이에 시종들이 수레를 장엄하여 왕녀를 맞이해 궁중으로 들어오는데, 왕은 그 딸의 모습이 이 세간에 둘도 없을 만큼 단정하고 뛰어남을 보고 한량없이 기뻐한 나머지, 곧 명령을 내려 장엄한 행차를 준비하여 딸과 함께 부처님 처소에 나아가 엎드려 예배한 다음 한쪽에 물러나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저의 딸이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 호귀한 왕가에 태어났는가 하면, 또 무슨 업을 저질러 저 축생보다 더 심한 더러운 몸과 거친 머리털을 받게 된 것이옵니까? 원컨대 세존께서 그 과보를 가르쳐 주소서.”
이때 세존께서 대왕 등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잘 들으시오. 이제 그대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한량없는 과거세 때 이 바라내국(波羅奈國)에 많고도 많은 재보를 지닌 장자가 있었는데, 그가 온 가족들과 합심하여 어떤 벽지불 한 사람을 항상 공양하였소. 그런데 이 벽지불의 얼굴이 아주 추악하고 몸이 매우 초췌하여 차마 볼 수 없는 정도이므로,
그때 장자 집의 어린 딸아이가 이 벽지불 오는 것을 보고서 나쁜 마음으로 깔보고,
모욕해 ‘어쩌면 그렇게도 얼굴이 못생기고 몸의 피부가 추악할까’라고 말하였소.
벽지불은 자주 그 집에 가서 공양을 받았는데, 세상에서 오래 살다가 열반에 들려고 할 무렵에 곧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 보이되 허공에 솟아 올라서 온몸에서 물과 불을 내는 한편, 동쪽에서 솟아올라 서쪽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남쪽에서 솟아올라 북쪽으로 사라지기도 하며, 다시 허공에서 자유로이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이러한 신통 변화를 장자의 가족들에게 모두 보인 다음 허공에서 내려와 그 장자의 집에 이르자, 장자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장자의 딸도 자신의 죄과를 뉘우쳐 이렇게 자책하였다오.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소서. 제가 이제 과거에 저지른 죄과를 깊이 참회하오니, 이 참회를 받아들이시어 용서해 주소서.’라고.”
부처님께서 대왕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시오. 그 당시 저 장자의 딸이 벽지불을 미워하고 헐뜯었기 때문에 뒷날 태어나는 곳마다 추악한 몸을 받았지만,
나중에 신통 변화를 보고서 벽지불을 향해 깊이 참회했기 때문에 이제 온 세간에 따를 이가 없을 정도로 단정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며,
또 그 당시 장자의 집에서 항상 벽지불을 공양했기 때문에 장자의 딸이 언제나 호귀한 가정에 태어나서 모자람이 없었고,
이제 다시 나를 만났기 때문에 그 근심과 괴로움을 벗어나게 된 것이오.”
바사닉왕과 그 여러 대신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이 업보의 인연을 듣자 모두 마음이 열리고 뜻을 이해하게 되어 그 중에 혹은 수다원과를, 혹은 사다함과를, 혹은 아나함과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벽지불의 마음과 혹은 위없는 보리의 마음을 낸 자도 있었다.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다 환희심을 내어서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