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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44권
12. 구의품(句義品)을 풀이함
【경】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인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니라.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에는 뜻[義]이 있는 곳도 없고 또한 나[我]도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새가 허공을 날 적에 발자국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꿈속에서 보는 것이 처소(處所)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환(幻)에 진실한 뜻이 없고 마치 아지랑이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그림자와 같고 부처님께서 변화시킨 것에 진실한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여(如)와 법성(法性)과 법상(法相)과 법위(法位)와 실제(實際)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에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幻人]에게 물질은 뜻이 없고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눈[眼]은 뜻이 없고 나아가 뜻[意]은 뜻[義]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에게 빛깔[色]은 뜻이 없고 나아가 법(法)까지도 뜻이 없으며, 눈
의 접촉[眼觸]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意觸因緣生受]까지도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내공(內空)을 행할 때에 뜻이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을 행할 때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이 4념처(念處)에서 18불공법(不共法)에 이르기까지를 행할 때에도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ㆍ아라하(阿羅訶)ㆍ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에게 물질이 뜻이 없음은 이 물질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다타아가도ㆍ아라하ㆍ삼먁삼불타에게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뜻이 없음은 이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눈은 처소가 없고 나아가 뜻까지도 처소가 없으며,
빛깔에서 법에 이르기까지는 처소가 없고,
눈의 접촉에서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까지도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에게 내공(內空)은 처소가 없고, 나아가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가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에게 4념처는 처소가 없고 나아가 18불공법까지가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유위의 성품[有爲性] 가운데에는 무위의 성품[無爲性]의 뜻[義]이 없고 무위의 성품 가운데에는 유위의 성품의 뜻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나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不生不滅] 뜻에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짓지 않고[不作] 벗어나지 않고[不出] 얻지 않고[不得] 더럽지 않고[不垢] 깨끗하지 않다[不淨]는 뜻에 처소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법이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으며,
어떤 법이 짓지 않고 벗어나지 않고 얻지 않고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물질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으며,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까지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입(入)과 계(界)가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며,
4념처가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며,
18불공법이 나지 않고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처소가 없고 나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는 것도 또한 그와 같나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4념처의 청정한 뜻[淨義]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4정근(正勤) 내지 18불공법의 청정한 뜻을 마침내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청정함 가운데에서 나[我]를 얻을 수 없음은 나가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청정함 가운데에서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를 얻을 수 없음은 알거나 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해가 나왔을 때는 어둡고 캄캄함이 없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겁의 불길로 태워지면[劫燒] 그때에는 온갖 물건이 남지 않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계율[戒] 가운데에는 파계(破戒)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마치 부처님의 선정[定] 가운데에는 산란한 마음이 없고,
부처님의 지혜 가운데에는 어리석음이 없으며,
부처님의 해탈 가운데에는 해탈 아님이 없고,
해탈지견 가운데에는 해탈지견 아님이 없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語句)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수보리야, 비유컨대 마치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는 해와 달의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고,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는 사천왕천(四天王天)ㆍ삼십삼천(三十三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범중천(梵衆天) 내지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 등의 광명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처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는 것도 또한 그러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보살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과 이 온갖 법은 모두가 합하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빛깔도 없고 형상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한 모양[一相]이어서 이른바 모양이 없기[無相]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온갖 법의 막힘없는 모양[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만 하고 또한 알아야만 하느니라.”
【논】
【문】 앞에서 부처님은 수보리를 위하여 갖가지의 인연으로 보살이란 이름을 깨뜨렸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 때문에 보살이란 어구(語句)의 뜻을 묻는가?
【답】 수보리는 보살의 이름을 깨뜨렸으나 부처님은 깨뜨리지 않으셨다.
보살이란 이름은 본래부터 필경공(畢竟空)이요 단지 5중(衆) 안의 범주에 임시로 보살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인데, 중생들이 임시의 이름을 진실한 것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임시의 이름[假名]은 진실이 없으며, 단지 모든 법의 범주가 화합하면서부터 이름이 되었을 뿐이다.”라고 하신다.
또한 모든 부처님의 법은 한량없고 끝이 없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
수보리는 보살의 이름이 공하기에 인하여 반야바라밀의 모양을 설명했는데,
이제는 부처님께서,
“보살이라는 이름과 뜻을 말씀하신 것을 듣고 이로 인하여 반야바라밀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또한 인연이 한량없고 그지없음을 물어야 하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음성에는 60종의 장엄(莊嚴)이 있어서 모든 하늘에게도 오로지 듣게 하거늘 하물며 사람들이겠는가?
단지 음성만으로도 사람들로 하여금 듣기 좋게 하거늘 하물며 큰 이익 있는 이치를 말씀하심이랴.
수보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런 일을 듣고 아직 뜻을 일으키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게 한다.
뜻을 일으키게 한다[發意] 함은 아직 6바라밀을 행하지 못한 이에게는 행하게 하고,
행한 이가 청정하지 않으면 그로 하여금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청정하게 행하는 자는 아비발치(阿毘跋致)의 지위에 머무르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부처님의 법을 두루 갖추고 이에 일생보처(一生補處)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한량없는 인연과 이익 때문에 부처님은 수보리를 묻는 이[問主]로 삼아서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온갖 모임에 있는 중생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어구의 뜻이 없는 것이 바로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는 처소(處所)가 없고 또한 나도 없으며, 이름도 없나니,
이 가운데에서는 의지하는 곳도 없고 바로 그것이 법공(法空)이며 나[我]와 이름도 없고 도를 얻는 이도 없다.”라고 하신다.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설시하시되,
“만일 그대가 나도 없고 내 것[我所]이 없음을 안다면 아라한을 얻은 이이니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에 나도 없고 내 것도 없나니,
비유컨대 마치 새가 허공을 날되 자취가 없는 것처럼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도 또한 그와 같다.”라고 하시니,
모든 법을 행하되 허공 가운데에서는 의지하거나 집착할 곳이 없으므로 이 때문에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없다.”라고 하신다.
【문】 무엇이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인가?
【답】 천축(天竺)의 어법(語法)에서는 여러 개의 글자가 합하여 말[語]을 이루고 여러 개의 말이 합하여 구(句)를 이룬다.
마치 보(菩)는 하나의 글자요 리(提)는 하나의 글자인데 이 두 글자가 화합하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고,
만일 화합하면 보리(菩提)라고 부르게 되는 것과 같나니,
진(秦)나라 말로는 ‘위없는 지혜[無上知慧]’라 한다.
살타(薩埵)는 혹 중생(衆生)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큰 마음[大心]이 되기도 한다.
위없는 지혜를 위하여 큰 마음을 내는 이를 보리살타(菩提薩陀)라 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도[無上道]를 행하게 하려고 원하는 이를 바로 보리살타라 한다.
또한 이 품(品)에서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는 갖가지 인연으로 보살마하살의 뜻[義]을 설명하나니,
“보리”는 하나의 말이요 “살타”도 하나의 말인데 이 두 개의 말이 화합한 까닭에 뜻[義]이라 한다.
만일 이름[名字]과 말[語]과 구(句)를 설명한다면 모두가 동일한 일이요 있는 데가 없나니,
이제 수보리는 “어떤 정해진 모양의 법으로써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이 되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천축에서는 파타(波陀)라 하고 진나라 말로서는 구(句)라 한다.
이 파타에는 갖가지 뜻이 있나니, 마치 뒤의 비유 가운데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다.
【문】 단지 “새가 허공을 나는 것”만으로도 어구의 뜻을 설명하기에 충분하거늘 무엇 때문에 갖가지로 널리 설명하는가?
【답】 중생들이 들어서 받아들이는 것은 갖가지여서 같지 않나니, 뜻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비유를 좋아하는 이도 있다.
비유로는 뜻을 이해할 수도 있고 비유로 인하여 마음이 즐겁게도 된다.
마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단정하게 생겼고 게다가 잘 꾸미게 되면 그 빛남이 더하는 것과 같다.
이 비유 가운데에서는 대개가 비유로써 뜻을 밝히게 되나니, 뒤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이른바 마치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마치 부처님께서 변화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일은 거짓이라고 앞에서 말한 것과 같나니,
보살이란 어구의 뜻도 또한 그와 같다.
단지 귀로는 거짓이요 진실이 없는 것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니, 이 때문에 보살은 스스로 교만해지지 말아야 한다.
마치 법성(法性)ㆍ법상(法相)ㆍ실제(實際) 등의 어구(語句)에서와 같아서 일정한 뜻이 없다.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사람은 5중(衆) 내지 모든 부처님 법이 없고,
마치 부처님에게도 5중 내지 온갖 법이 없는 것과 같고,
마치 유위의 법 가운데에는 무위의 법이 없는 것과 같으며,
마치 무위의 법 가운데에는 유위의 법이 없는 것과 같다.
무위법의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모든 법 가운데에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모양이 없고 또한 다른 모양도 없나니,
마치 37품(品)에는 청정한 모양이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이 37품의 법에 집착하면 곧 그것은 결사(結使)이기 때문이니,
마치 나 내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의 청정한 모양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
【문】 나 내지 아는 이ㆍ보는 이 등이 어떻게 하여 청정한가?
【답】 갖가지로 나의 모양을 구하고 찾아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을 나[我]가 청정하다고 한다.
첫째가는 이치[第一義] 가운데에서는 청정한 것도 없고 청정하지 않는 것도 없다.
비유컨대 마치 악취가 나는 죽은 개를 가죽ㆍ터럭ㆍ피ㆍ살 및 골수에 이르기까지 다 씻어버리면 그때에는 개도 아니요 돼지도 아니어서 깨끗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깨끗하지 않다고도 말 수 없는 것처럼,
나[我]와 아는 이ㆍ보는 이까지도 또한 그와 같아서 무아이고 공한 지혜로써 나의 모양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나니, 그때에는 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마치 해가 나오면 어두움이 없고 겁(劫)이 다할 때에는 온갖 물건들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부처님의 5중(衆)의 계율 가운데에는 파계(破戒)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고,
마치 해ㆍ달ㆍ별ㆍ진주 등과 모든 하늘ㆍ귀신ㆍ용왕 등의 광명은 부처님의 광명 가운데에서는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큰 복덕과 신통력으로부터 생기기 때문이다.
보살이라는 어구의 뜻도 그와 같아서,
이 반야바라밀의 지혜의 광명 안에 들어가면 나타나지 못하나니,
이런 비유로 인하여 모든 보살로 하여금 온갖 법을 배우면서 모양을 취하지 않게 해야 하나니, 얻을 바가 없기[無所得] 때문이다.
【경】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온갖 법이며 어떻게 온갖 법 가운데에서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을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이라 함은 착한 법[善法]ㆍ착하지 않은 법[不善法], 기법(記法)ㆍ무기의 법[無記法], 세간의 법[世間法]ㆍ출세간의 법[出世間法], 유루의 법[有漏法]ㆍ무루의 법[無漏法], 유위의 법[有爲法]과 무위의 법[無爲法], 공통하는 법[共法]과 공통하지 않은 법[不共法]이니,
수보리야, 이것을 온갖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온갖 법의 장애 없는 모양[無礙相] 가운데에서 배워야 하고 알아야만 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함은,
부모에게 효순(孝順)하고 사문(沙門)과 바라문(婆羅門)에게 공양하며 높은 어른을 공경하고 섬기면서,
보시로 복 짓는 곳[布施福處]ㆍ계율을 지니어 복 짓는 곳[持戒福處]ㆍ선정을 닦아 복 짓는 곳[修定福處]과 복 짓는 일을 권하고 인도하며 방편으로 복덕을 내는 것과 세간의 10선도(善道)이니라.
그리고 아홉 가지 모양이란,
창상(脹相)ㆍ혈상(血相)ㆍ괴상(壞相)ㆍ농란상(濃爛相)ㆍ청상(靑相)ㆍ담상(噉相)ㆍ산상(散相)ㆍ골상(骨相)ㆍ소상(燒相)이며,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과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ㆍ염선(念善)ㆍ염안반(念安般)ㆍ염신(念身)ㆍ염사(念死) 등이니, 이것을 세간의 착한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착하지 않은 법인지요?”
“남의 목숨을 빼앗고 주지 않은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이간질을 하고 거친 말을 하며, 때 아닌데도 말을 하고 탐욕을 내며, 괴롭히고 해치고 삿된 견해를 내는 등 이 10불선도(不善道) 등 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기법(記法)인지요?”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 등이니, 이것을 유기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기의 법[無記法]인지요?”
“무기의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과, 무기의 4대(大)와, 무기의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와 무기의 과보이니,
이것을 무기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세간의 법[世間法]인지요?”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ㆍ10선도(善道)와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이니,
이것을 세간의 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이라 하는지요?”
“4념처(念處)ㆍ4정근(正懃)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과 공해탈문(空解脫門)ㆍ무상해탈문(無相解脫門)ㆍ무작해탈문(無作解脫門)과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ㆍ지이근(知已根)의 3무루근(無漏根)과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ㆍ무각유관삼매(無覺有觀三昧)ㆍ무각무관삼매(無覺無觀三昧)의 3삼매(三昧)와 명(明)ㆍ해탈(解脫)ㆍ염(念)ㆍ혜(慧)ㆍ정억념(正憶念)이니라.
다시 8배사(背捨)가 있느니라.
무엇이 8배사인가?
안으로 물질의 모양[色相]이 있고 밖으로 물질을 관함은 첫 번째 배사요,
안으로는 물질의 모양이 없고 밖으로 물질을 관함은 두 번째 배사요,
청정한 해탈을 몸으로 증득함은 세 번째 배사이니라.
온갖 물질의 모양을 초월하는 까닭에 온갖 대함이 있는 모양을 없애고 일체의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는 까닭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감은 네 번째 배사요,
온갖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온갖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감은 다섯 번째 배사요,
온갖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감은 여섯 번째 배사요,
온갖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감은 일곱 번째 배사요,
온갖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감은 여덟 번째 배사이니라.
다시 9차제정(次第定)이 있느니라.
무엇이 아홉인가?
욕계(欲界)의 삿된 법을 떠나 거친 생각[覺]도 있고 세밀한 생각[觀]도 있으면서 애욕을 여읨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느니라.
모든 거친 생각과 세밀한 생각이 없어지고 안으로 청정하기 때문에 한마음이 되면서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이 집중[定]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일으키는 제2선(第二禪)에 들어가느니라.
기쁨을 여의는 까닭에 버림[捨]을 행해 몸의 즐거움을 느끼는, 이른바 성인이라면 그 안에서 능히 말하기도 하고 능히 생각을 버리기도 하면서 몸의 즐거움을 행하는 제3선(第三禪)에 들어가느니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끊어지는 까닭에 이전에 있었던 기쁨과 근심이 없어져서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不苦不樂], 버림[捨], 생각이 청정함[念淨]만이 제4선에 들어가느니라.
일체의 물질의 모양[色相]을 초월하고 대하는 모양을 없애며, 일체의 다른 모양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가느니라.
일체의 무변허공처를 초월하여 일체의 무변식처(無邊識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변식처를 초월하여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무소유처를 초월하여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에 들어가며,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초월하여 멸수상정(滅受想定)에 들어가느니라.
다시 출세간의 법이 있나니,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에 이르기까지와 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ㆍ일체지(一切智)이니,
이것을 출세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루의 법[有漏法]인지요?”
“5수중(受衆)과 12입(入)과 18계(界)와 6종(種)ㆍ6촉(觸)ㆍ6수(受)와 선(禪) 내지 4무색정(無色定)이니,
이것을 유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루의 법[無漏法]인지요?”
“4념처 내지 18불공법과 일체종지(一切種智)이니,
이것을 무루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유위의 법[有爲法]인지요?”
“법으로서 나고[生]ㆍ머무르고[住]ㆍ없어지는[滅]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5중(衆) 내지 뜻의 접촉의 인연으로 생긴 느낌과 4념처로부터 18불공법까지와 일체지(一切智)이니,
이것을 유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무위의 법[無爲法]인지요?”
“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과,
음욕의 마음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한 것과,
여(如)ㆍ불이(不二)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이니,
이것을 무위의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통되는 법[共法]인지요?”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의 이와 같은 것 등을,
바로 공통되는 법이라 하느니라.
“무엇이 공통되지 않는 법[不共法]인지요?”
“4념처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공통되지 않는 법이라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이 자상이 공한 법 가운데에서 집착하지 않아야 하나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은 또한 온갖 법의 둘이 아닌 모양[不二相]을 알아야 하나니,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것을 보살의 이치[義]라 하느니라.”
【논】
【문】 수보리는 무엇 때문에 먼저 세간의 착한 법을 묻고 나중에 출세간의 법을 묻는가?
【답】 먼저 대강의 것[麤]을 묻고 나중에 세밀한 것[細]을 물어야 되나니,
먼저 세간의 모양을 알면 그 뒤에는 출세간의 모양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세간의 착한 법[善法]이란,
죄가 있고 복의 과보가 있으며,
금세(今世)와 후세(後世)가 있고 세간이 있으며,
열반이 있고 부처님 등의 모든 성현의 금세와 후세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증득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른바 부모에게 효순하는 것 등이며,
나아가 10념(念) 및 법답게 물건을 얻어서 사문과 바라문에게 공양하고 공급하는 것이다.
사문(沙門)은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 사람을 말하고 바라문(婆羅門)은 집에 있으면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니,
이 두 사람은 세간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하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기 때문에 마땅히 공양해야 한다.
높은 어른[尊長]이라 함은 숙(叔)ㆍ백(伯)ㆍ자(姉)ㆍ형(兄) 등으로, 공경하고 공양해야 되나니, 이것은 바로 온갖 가정을 다스리는 법이다.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는 것과 권하고 인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초품(初品)에서의 설명과 같다.
방편으로 복덕을 낸다 함은,
마치 참회하고 따라 기뻐하면서 부처님께 오래도록 머무시면서 열반하지 않고 법륜(法輪)을 굴리시기를 청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치 비록 공을 행하고 공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도리어 모든 선(善)을 수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의 방편으로 모든 복덕을 낸다.
10선도(善道)에서 4무색(無色)에 이르기까지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10념(念) 가운데에서 여덟 가지 일은 앞에서의 설명과 같다.
선념(善念)이라 함은 착한 업의 인연을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그 마음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것이다.
또한 열반은 바로 진실하고 착한 법이라 항상 마음에 매어 두고 열반을 염(念)하는 것이니, 이것이 선념이다.
신념(身念)은 곧 신념처(身念處)이다.
착한 법과 서로 반대되는 것을 바로 착하지 않은 법[不善法]이라 한다.
무기의 법[無記法]이란,
이른바 위의 있는 마음[威儀法]ㆍ공교로운 마음[工巧心]ㆍ변화 있는 마음[變化心]과 이 신업(身業)ㆍ구업(口業)을 일으키는 착하고 착하지 않은 5중(衆)을 제외한 그 밖의 5중과 허공과 비수연멸(非數緣滅) 등이다.
세간의 법[世間法]이란,
5중으로서 선(善)이거나 불선(不善)이거나 혹은 무기(無記)인 것이며,
12입(入)으로서 8무기의 42종(種)과 18계(界)로서 8무기의 13종과 10선도(善道)ㆍ4선(善)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이다.
이 착한 법은 범부들도 능히 얻고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스스로 세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세간의 법이라 한다.
출세간의 법[出世間法]이라 했는데,
37품(品)과 3해탈문(解脫門)과 3무루근(無漏根)과 3삼매(三昧)에 대해서는 앞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명해탈(明解脫)에서 명(明)은 3명(明)이고,
해탈은 유위(有爲)의 해탈ㆍ무위(無爲)의 해탈이다.
염(念)이라는 것은 10념(念)이요, 혜(慧)라는 것은 11번째의 지혜이며,
정억념(正憶念)이라는 것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따르면서 관찰하는 것이니,
마치 몸을 좇아 관찰하는 것[隨身法觀]이 온갖 착한 법의 근본인 것과 같다.
또한 8배사(背捨)ㆍ9차제정(次第定)ㆍ18공(空)과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 및 18불공법에 대해서는 앞의 뜻 가운데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이 4념처 등으로는 일심으로 도를 닦기 때문이며, 또한 8배사와 9차제정등은 범부들로서는 얻지 못할 바라 출세간이라 한다.
염ㆍ혜ㆍ정억념에는 비록 세간과 출세간의 두 가지가 있기는 하나 이 가운데에서는 출세간에서 설명한다.
유루의 법[有漏法]이라는 것은 5중(衆) 등과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이며, 무루의 법[無漏法]이라는 것은 세간의 것이 아닌 이 4념처 내지 18불공법이다.
유위(有爲)의 법은 요약하여 세 가지 모양으로 설명되나니,
이른바 나고[生] 머무르고[住] 없어지는[滅] 삼계에 매인[界繫] 것이다.
그리고 4념처 내지 18불공법은 비록 무위(無爲)의 법이 된다 하더라도 조작하는 법[作法]이기 때문에 이것은 유위의 법이다.
이 유위와 반대되는 것이 바로 무위의 법이다.
또한 3독(毒) 등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5중 등이 차례로 상속(相續)하지 않은 여(如)ㆍ법상(法相)ㆍ법성(法性)ㆍ법주(法住)ㆍ실제(實際) 등을,
바로 무위의 법이라 한다.
【문】 물질[色]과 여(如)는 물질이 여를 여의지 않고 여가 물질을 여의지 않아서 물질은 곧 유위이거늘 어떻게 이것을 무위라 하는가?
【답】 물질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범부가 육안(肉眼)으로 기억하고 분별하는 물질이다.
둘째는 성인이 마음으로 아는 바의 물질이니,
실상(實相)과 여(如)와 열반(涅槃)이다.
범부들이 아는 바의 물질을 물질이라 하나 이 물질이 여(如) 가운데에 들어가면 다시는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유위와 같은 것에도 비록 이것이 5중(衆)이라 하더라도 갖가지의 이름이 있나니,
이른바 12입ㆍ18계의 인연 등이다.
무위의 법에는 비록 세 가지가 있다 하더라도 또한 갖가지로 이름을 분별하나니,
이른바 여ㆍ법상ㆍ법성ㆍ법주 및 실제 등이다.
공통되는 법[共法]이라 함은 범부와 성인들이 태어나는 곳[生處]이나 선정에 드는 곳[入定處]이 공통되기 때문에 공통되는 법이라 한다.
공통되지 않는 법[不共法]이라 함은 4념처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이다.
보살은 분별하면서 이 모든 법의 저마다의 모양을 아나니, 이 법은 모두가 인(因)과 연(緣)의 화합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성품[性]이 없고, 성품이 없기 때문에 자기 성품이 공하다.
보살은 이 장애 없는 법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동요하지 않나니, 둘이 아닌 데로 들어가는 법문[不二入法門]으로써 온갖 법에 들어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